소설리스트

황후폐하의 이혼사유-46화 (46/170)

#46화, 안케도니아 황실을 무너트린 제국.

깊게 눌러쓴 로브, 금빛 눈동자. 루치아노? 뭐야, 왜 창문으로?

창문을 열어주자 루치아노가 일부러 로브를 더 푹 숙인 채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로젤리아님. 혼자 계실 줄 알았는데.”

“괜찮아요, 루치아노. 칼라일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 다시 나가보려 합니다. 마법을 광범하게 넓힐 생각이라, 오늘 밤은 못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 말씀 전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칼라일님을 발견하는 즉시, 곧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도와줄까요? 아직 제대로 사용은 못하지만 두 명이 함께 찾는 게 나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루 종일 마법을 사용하며 칼라일을 찾아다닌 루치아노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있었다. 카렐리아의 마력 흔적도 찾아야 하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그 와중에 내가 걱정할까봐 와줬다는 게 고마웠다.

나는 다시 나가려는 루치아노의 로브를 붙잡았다.

“잠시 들어와서 쉬다 나가요.”

“괜찮습니다. 일하시는데 바쁘실 텐데요. 마음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로젤리아?”

로웬의 의심 어린 눈초리가 느껴졌다.

‘정부가 둘이야?’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 눈빛에 굉장히 불쾌하다는 얼굴로 맞받아쳤다. 루치아노는 내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대로 가버리면 상항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인지 로브를 푹 눌러쓴 상태에서 로웬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나는 일부러 로웬에게 루치아노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몸으로 최대한 그를 가렸다.

“이 사람은?”

“손님이야, 내 손님.”

“손님? 손님이 창문으로 온다고?”

“오빠 옛날에 나 놀려준다면서 벽 타고 창문으로 들어온 거 기억나? 릴리에게 알려주면 좋아 하려나?”

“그래, 손님의 성함이 뭐라고?”

루치아노는 상황파악을 한 듯, 눌러썼던 로브를 벗었다. 은발의 금색 눈이 흑발에 보랏빛 눈으로 바뀌었다. 나는 조용히 안도했다. 샤를로테와 똑같은 얼굴이면 더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그렇다고 루치아노가 샤를로테의 동생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이고.

“아. 루치아노, 내 오빠, 로웬 가넷이에요. 레이몬드 제국의 기사단장을 맡고 있죠.”

“!”

“이쪽은 루치아노 엘렌. 잠시 저택에 머물고 있는 손님이야.”

빠르게 서로 인사를 시키고 루치아노를 먼저 내보낼 생각이었다. 업무 때문에 잠시 머무는 손님이라고 둘러댈 생각이었다, 어차피 로웬은 그렇게 자주 대공저에 오는 것도 아니니까.

“…레이몬드 기사단장이라고요?”

아무리 모습이 바뀌었다고 해도 혹시 모르니 방에서 자리를 비워달라고 할 참이었다. 나는 루치아노의 로브를 살짝 당기며 신호를 보냈는데 어쩐지 루치아노의 시선이 정확하게 로웬을 향해 있었다.

마치 칼라일이 로웬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살벌하게, 더 노골적인 눈빛으로.

로웬은 하, 하는 짧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나같이 나를 원수 보는 듯 보는군. 이쯤 되면 기분이 나쁜데. 그 정부 놈도 그러지 않았나?”

“…저를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일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

“네, 만난 적이…있는 것 같은데요.”

루치아노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든 표정을 관리하기 위하여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로웬은 웃지도, 울지도 않는 그 표정에 한숨을 내쉬며 루치아노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너를 만난 기억이 없는데. 나를 어떻게 알지?”

“베논 제국.”

“뭐?”

“베논 제국에, 군사 지원을 나가신 적이 있으시죠?”

베논 제국이라고?

‘여기서 왜 베논 제국이…?’

그 제국은 분명….

“베논 제국?”

“….”

“…나는 그 제국으로 지원을 나간 적이 없는데.”

로웬은 한참 동안 ‘베논 제국’이라는 이름을 곱씹었더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2대 황제 때부터 무역과 항구는 가넷 가문의 것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군사권만큼은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혹시 모를 반란을 위해 대비하는 것임을 알기에 로웬에게 군사권을 넘겨주었고. 그러니 나는 황후시절에도 군사권만큼은 일절 관여할 수 없었다.

물론 로웬이 어느 제국으로 지원을 나가고, 전쟁을 치르는지 정도는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매번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대 지원을 나가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까.

오직 군사 지원에 관한 정보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페르소나와 로웬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군사 지원을 나간 제국을 모른다고?

그 순간 루치아노를 보는 로웬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제국 이름을 착각했나 보군. 나는 베르트논 제국에 대해 알지 못한다.”

“정말로 모르십니까, 그때 군사 지원을 오신 것은….”

“내가 기사단장인데, 군사 지원을 나간 제국을 잊었다고?”

“…….”

“로젤리아, 이 자 이름이 뭐라고 했지? 루치아노, 엘렌?”

로웬은 벽에 걸린 검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이 검에 닿은 것을 알자마자 그의 앞을 막아섰다.

“오빠. 그만해.”

“너도 들었잖아, 지금 이 말에 얼마나 많은 의문스러운 점이 있는지. 다짜고짜 사람 죽일 눈빛으로 보질 않나, 지원 나간 적 없는 제국의 이름을 대질 않나. 날 본 적이 있다고 하질 않나. 그 질문, 주로 기사단에 숨어든 첩자에게서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궁금해서 물은 것뿐입니다. 제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지, 듣기만 했지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어서.”

“둘 다 그만해, 밖에 아무도 없느냐, 릴리!”

다급한 내 외침에 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루치아노를 노려보며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주먹을 쥐고 있는 로웬의 팔을 급하게 붙잡았다.

“로웬님, 진정하세요!”

“릴리 양, 팔 좀 놔주시겠습니까.”

“릴리, 오빠를 데리고 나가주렴. 난동을 피우려 하면, 예전처럼 기절시켜버려.”

“네, 로젤리아님.”

릴리와 함께 방을 나가는 와중에서도 로웬은 루치아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방문이 닫히고, 로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지 않게 될 때쯤 다시 루치아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루치아노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혼란스럽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루치아노가 한 질문들은 대부분 첩자들이 할 만한 그런 질문들이었다.

때때로 군사 지원을 나갈 때 제국에 속한 기사단을 데리고 나가는 경우가 많기는 했지만 타국과의 분쟁을 우려해 일부러 기사만 따로 보내 위장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레이몬드 제국의 경우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조금 더 많았다.

로웬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해한다. 3년 전, 그와 비슷한 질문을 한 첩자가 있었다.

첩자인 것을 모르던 기사들은 어디를 군사지원을 나갔는지, 어떻게 위장을 했는지, 어디로 군사지원을 나갈 것인지 그러한 정보를 발설했고, 그로 인해 크게 전쟁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승리는 레이몬드 제국이 가져갔지만 로웬은 그로 인해 가장 친했던 친우 두 명을 잃어야 했다.

나는 침착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왜 베논 제국에 대해서, 그것도 로웬에게 물은 거지?

“로젤리아님은 베논 제국에 대해 아십니까?”

“제국 자체는 알고 있습니다. 베논 제국은 유능한 마법사가 많이 나온 제국이죠. 외교 목적 차 몇 번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것은요?”

루치아노의 눈동자가 천천히 흔들렸다.

베논 제국, 내가 알고 있는 베르토논 제국에 대한 정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마법사가 많이 배출된 제국이라는 것, 나머지 하나는….

한참을 입술을 뗐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루치아노에게는 민감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이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베논 제국은.”

“….”

“안케도니아 제국을 멸망시킨 제국이죠.”

안케도니아 제국의 침략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다. 안케도니아 제국과 베논 제국 모두 레이몬드 제국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안케도니아 제국이 침략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우리 또한 나름 비상상태였다.

그러나 베논 제국은 침공 이후 아무 일 없다는 듯 군사를 데리고 돌아갔다.

이후 페르소나는 며칠간 베논 제국을 계속 예의주시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안케도니아 제국을 멸망시킨 이후, 평소와 같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오로지 안케도니아 제국의 멸망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듯이.

안케도니아 제국이 비록 작고, 다른 제국보다는 폐쇄적이지만 그렇게 한 번에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케도니아 제국의 끝은 멸망이었다. 베논 제국은 이에 대해 한 번의 언급도 없이 타국의 초대에 응하는 등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제국 하나를 멸망시켰으면서, 사람을 죽이고, 황족을 죽였는데.

그런데도 그렇게 태연한 모습이라니.

페르소나는 당시 비상상태를 유지하면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침묵을 유지했다.

베논 제국은 레이몬드 제국은 갖지 못한 마법사를 소유한 제국이었으니까.

“그런데 로웬과 베논 제국이 무슨 관계죠?”

“….”

“루치아노. 대답해줘요.”

“로젤리아님은 군사권에 얼마나 많이 관여할 수 있었습니까?”

그런 질문을 왜 하느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베논 제국이 도대체 로웬과 무슨 상관이지?

“나는 관여하지 못했어요. 우리 가문과, 레이몬드 황실이 꽤 복잡하게 얽혀있거든요. 특히 군사권에 관해서는요.”

“…….”

“왜 그런 것을 왜 묻는 거죠?”

루치아노는 한참을 로젤리아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로젤리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베논 제국에 관해서 왜 로웬에게 물은 거지? 그것도 군사적 지원에 관해서?

언제 나갔던 군사적 지원이지? 로웬은 군사 지원을 나가면 아주 오래 나갔다가 돌아왔다.

“…로젤리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사실, 제가 칼라일님을 찾아온 것은…!”

심장이 쿵쿵, 거세게 뛴다. 너무 뛰다 못해 살갗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아.

뭐지, 왜 이래.

왜 이렇게……불안하지?

루치아노의 입이 떨어진 순간, 그의 몸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의 눈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기운에 짓눌린 사람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어떻게든 움직이려 애를 쓰는 것 같은데 무엇인지 계속 루치아노의 행동을 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칼라일을 찾아온 이유가 뭔데?

뭔가 중요한 걸 놓친 듯한 기분에 숨이 턱 막혔다. 칼라일에게, 왜?

루치아노에게 어서 말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루치아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순간 창문 밖으로 금빛의 형체가 보였다. 빠르게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내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루치아노의 말에 집중하려던 순간 그는 말없이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로젤리아님.”

“루치아노?”

“칼라일님을 찾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잡을 새도 없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도대체 뭘 말하려고 했던 거지?

왜 베논 제국에 대한 것을 로웬에게 물으려 했을까.

물론 단순한 궁금증에서 물어본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집요하게 묻는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불안한 찬 기운이 뱀처럼 기어 올라와 내 숨을 옥죄어왔다.

이 불안에 대한 답이 루치아노가 말하지 못한 그 말 속에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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