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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폐하의 이혼사유-38화 (38/170)

#38화, 지금 나랑 장난해?

루치아노는 칼라일의 마력석을 마치 과자를 먹듯 먹었다.

그의 눈동자는 푸른색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금빛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마력석을 가득 먹는데도 무엇 때문인지 눈동자 색은 여전히 푸른색이었다.

오독거리는 소리를 내며 먹던 루치아노는 질린다는 듯이 들고 있던 마력석을 내려놓았다.

“마물용 마력 제어 수갑에 걸린 마법이, 그냥 마법이었습니까? 마력을 제어하는 마법이라고요!”

“아, 아니. 상황이 그랬잖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그냥 그 자리에서 치유 마법으로 치료하면 되는 거잖아요. 굳이 워프를 해서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야 해요? 마력의 반을 써버렸어요. 봐요, 제 눈동자!”

루치아노는 자신의 눈치를 보는 칼라일의 손목을 잡아 소매를 들췄다. 그러자 까맣게 그을린 것처럼 변한 손목이 보였다. 멍도 아까 그 저택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심해져 있었다.

칼라일은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트린 채 손목을 떨고 있었다. 계속 괜찮다, 괜찮다고 하더니 역시 거짓말이었다.

아파하면서도 계속 어떻게든 아픈 티를 안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로젤리아님, 그거 아세요?”

화를 겨우 참아가며 칼라일의 손목에 치유 마법을 불어넣던 루치아노는 싱긋 웃으며 칼라일의 손목을 꾹꾹 눌렀다.

“마법은 말이죠. 자연계, 정신계, 인계로 나뉘어요. 쉽게 자연을 이용하는 마법과 정신적으로 해를 가하는 마법, 물리적이고 사람의 신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마법을 말하죠.”

자연계, 정신계? 인계?

잘은 모르겠지만 자연을 이용하는 마법은 조금 이해가 갔다. 칼라일이 사용하는 마법이 자연계인 건가? 바람을 불게 하거나, 꽃을 피우는 마법을 자주 사용하지. 그러고 보니 공격할 때도 뾰족한 가시덤불을 이용하거나 채찍같이 긴 식물 줄기를 이용하던데.

근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칼라일님은 주로 자연계 마법을 사용하시죠. 두 분이 허공에서 걸을 수 있던 것은, 바람을 이용해 몸을 띄운 것이라 사실상 마력이 크게 소모되지 않습니다. 자연계는 보통 마력이 그렇게 많이 소모되지 않으니까요.”

많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말에 순간 안도했다.

칼라일과 하늘을 걸었을 때, 사실 좋았다. 바람도 불고, 별이 가득한 하늘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으니까.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라 좋기는 했지만 또 얼마나 마력이 깎여나갈지, 멍이 얼마나 심하게 들지 걱정하는 마음에 좋아하는 티를 그리 많이 내지 못했다.

“그리고 워프는 인계입니다. 왜 인계일까요?”

인계는 사람의 몸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마법. 워프가 어떤 타격을 주어서 인계에 속한다는 거지?

모르겠다고 말하려는데 어찌 칼라일의 얼굴이 새파랬다. 뭐지?

“워프는 사실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일정한 공간을 축소시키는 마법이라 어디에 속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인계에 속한 이유는 워프를 쓸 때마다 마법사의 몸에 큰 무리를 주기 때문이에요.”

“설마 그럼 워프를 쓸 때마다 마법사 몸에 타격이 와서…그래서 인계인 건가요?”

마력이 많이 소모된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 정도라고?

칼라일은 삐걱거리며 조금씩 내게서 멀리 떨어지고 있었다.

“칼라일님. 제가 지금 마력석을 먹어서 그렇지, 마력의 반이 날아갔거든요. 제가 다른 마법사들보다 마력이 많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마력이 많았는데도 반이나 사용되었다고?

“혹시 워프시키는 사람의 횟수나 공간 범위에 따라 마력이 소모되는 양이 다른가요?”

“그렇긴 한데, 애초에 워프 자체가 마력을 가장 많이 소모하는 마법입니다.”

대공저로 돌아오기 전, 칼라일 기사들을 워프시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루치아노가 워프시킨 것이었다. 기사 열 명 정도를 황궁 입구 앞으로.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렇게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어서 괜찮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칼라일의 마력석을 먹고 있어서 그랬나….

“지금 이 상태에서 워프 같은 마법을 쓰면 손목이 뜯겨나가는 고통이 동반될텐데.”

“….”

“칼라일님도 그걸 알고 있고요. 그쵸, 칼라일님?”

루치아노는 귀엽게 고개를 기울이며 천사같이 웃었다.

화를 내고 있었던 거구나. 그의 말에서 분노가 꾹꾹 담겨진 게 느껴졌다. 이렇게 마력 소모가 심한 마법을 써? 그것도 마물용 마력 제어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아까 기사들 고생시킨 것 같아서 워프시키려고 그랬죠?”

“진짜에요, 칼라일?”

“아니, 제가 갑자기 사라져서 그 새벽에…고생한 것 같아서….”

나는 그대로 의자에 놓여있던 베개를 들어서 칼라일의 어깨를 퍽 내려쳤다. 루치아노는 눈을 빛내며 내가 칼라일을 베개로 때는 것을 말리지 않고 구경하고 있었다. 아프지 않으면서 아프다고 말하는 게 더 얄미웠다.

몸에 큰 무리가 가면서 마법을 써? 그래놓고 나한테는 치유 마법을 쓰지 말라고 화낸 거야?

때리는 것도 힘들었다. 몇 대 못 때리고 베개를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칼라일은 머리가 살짝 헝클어지기만 할 뿐 멀쩡했다. 심지어 괜찮은지 물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또 이상한 일로 워프를 써 봐요.”

“하지만 저는 마력이 많습니다, 수갑을 찼다고 해도 다른 마법사들보다는 타격이 덜 오는데….”

“그걸 말이라고 해요?”

차갑게 쏘아붙이자 칼라일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칼라일님이 마력이 많기는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 안 가리고 워프를 쓰면 안 되죠.”

나는 루치아노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칼라일이 대마법사가 되었을 정도의 많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다.

대마법사가 되었을 정도의 마력? 그게 어느 정도의 마력인 거지?

“얼마나 많은데요?”

“얼마나 많으냐고 물으신다면…음….”

루치아노는 다시 마력석을 주워들며 만지작거렸다. 칼라일의 마력석은 새끼손가락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다.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마력석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양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칼라일님의 마력이라면 이 마력석을 일주일 동안 비처럼 내리게 할 수 있어요.”

“?”

“몸만 약하지 않았다면 왕국 하나 정도는….”

그게 어느 정도인 건데? 루치아노는 ‘아마도?’라는 말을 덧붙이며 마력석을 삼켰다.

푸른빛이었던 그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

잠들기 전 업무 몇 개만 처리하자는 생각에 침실이 아닌 집무실로 향했다. 무도회에 가기 직전까지 업무를 살피기는 했지만 제대로 살피지 않고 넘긴 게 몇 개 남아있었다. 서재에서 업무 해결에 도움을 줄 서적을 든 채 집무실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많이 바빠 보이시네요, 대공 각하.”

“오빠?”

“그래, 네 오빠다.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로웬은 벽에 기댄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뭔가 심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뭐지? 대공저로 오자마자 오빠가 아니라 릴리부터 달래줘서 화난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지.

“잘됐어. 나 업무 처리하는 것 좀 도와줘.”

“…이럴 줄 알았다면 내일 오는 건데.”

“어딜 가려고. 빨리 들어와.”

집무실 문을 활짝 열자 로웬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가 들고 있던 책의 반을 거의 빼앗다시피 가져갔다.

“어차피 도와줄 거면서 심술은 왜 부려?”

“내가 안 부리게 생겼어?”

“왜 화가 난 건데?”

“화? 화가 아니라 걱정이지. 왜 말 안 한 거야?”

…혹시 이혼 때문에 그러는 건가? 대충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나는 책상에 기댄 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성격 때문에 말 안했지.”

“성격이 문제가 아니잖아, 로젤리아.”

“문제 맞는데. 오빠 성격이면 분명 군사지원 도중 제국으로 돌아왔을 걸?”

찔리기라도 한 것인지 로웬은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물론 정말로 오빠 성격 때문인 것도 있지만…일부러 말하려 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내가 황후가 되었을 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생전 한번 울지 않던 로웬이 무표정으로 눈물을 펑펑 흘렸으니까.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말하겠어.

“그럼 황제 놈은?”

“응?”

“얼마나 정부에 빠져 살면 네가 임신을 했는데 황제는 몰랐다는 소문이 돌아?”

“!”

“처음에는 그렇게 안 봤는데, 무슨 황제가 소문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해? 아무리 정부를 들였다지만…물론 정부를 들인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황후는 너야. 네가 임신했는데 황제가 모른다는 헛소문이 버젓이 도는데!”

그거 헛소문 아닌데.

헛소문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정말 로웬이 폭발하다 못해 검을 들고 황궁으로 뛰어갈지도 몰랐다. 페르소나가 다음날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까 무도회에서 사라진 거….”

“무도회?”

나는 재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로웬이 검을 들고 뛰쳐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맞아, 무도회. 아까 릴리 양이 너무 많이 울었어. 너무 울어서 나도 울 뻔했어.”

“그런 것까지 듣고 싶지 않은데. 내 걱정 먼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오빠? 아무리 릴리를 짝사랑하고 있다고 하지만. 안 그래?”

“릴리 양이 운 이유가 너잖아…나 정말 놀랐어. 도대체 피를 왜 쏟은 거야. 네 주변에 날아다니던 나비는 뭐고. 네가 갑자기 사라져서 내가 얼마나!”

내 품에 안겨서 울던 릴리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로웬도 딱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안색은 창백했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눈앞에서 동생이 피를 토하고, 그대로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마법을 써서 그래. 마력 컨트롤을 잘 못 했다고 들었어.”

다른 변명을 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지.

“뭐라고? 마법?”

“예전에 마력석으로 만든 목걸이를 받은 적이 있어. 그러다 그 마력석에 몸이 흡수되어서…그때, 때마침 마력학에 대한 서적도 읽었거든. 그때 치유 마법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

“….”

“칼라일은 내가 아끼는 정부야. 샹들리에가 무너진 걸 알자마자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한 것 같아. 그것 때문에 피를 쏟았어.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칼라일이 나를 데리고 사라진 것이었고, 몸은 괜찮아, 칼라일이 마법으로 치료해줬으니까.”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하자, 로웬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이라니, 난 또 뭔가 잘못된 줄 알았잖아. 독이라도 삼킨 줄 알았어.”

“독은 무슨, 내가 어디 독 먹고 피를 토할 사람이야?”

“그치, 네가 독으로 그렇게 쉽게 쓰러질 아이가 아니지. 근데 로젤리아, 그 샹들리에. 네 정부를 덮친 그 샹들리에는 어떻게 된 거야?”

샹들리에, 로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잊고 있던 분노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샹들리에, 그래. 샹들리에, 그걸 잊고 있었어.”

“황제 놈의 소행이야?”

“샹들리에가 떨어지기 직전에, 페르소나가 웃었어.”

“그 망할 새끼가…네 정부는 물론 자칫하면 너도 다칠 뻔했어.”

“그러게 말이야.”

나는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집무실 천장에 있는 샹들리에보다 무도회장에 있는 샹들리에가 더 화려했다. 유리 장식품이나 조각들이 잔뜩 달려있던 그 샹들리에가 칼라일의 머리 위로 곧장 떨어졌을 생각을 하니 아직도 눈앞이 아찔했다.

로웬은 화가 나는 듯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도와줄까?”

“….”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로젤리아.”

“….”

“지금까지 황제 놈이 어긴 조약을 생각해봐. 정부를 두는 거? 정부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네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이혼까지 하고 돌아와? 너 이혼하고 다른 귀족들이 그렇게 업신여겼다면서? 뭐, 이혼한 황후니까 가문에서 버려질 줄 안 것인가? 하! 목 위에 달린 것들은 장식품인가?”

“….”

“네가 큰 싸움을 싫어하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피하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야.”

“싸움을 피하는 게 아니야.”

로웬은 싸움을 피한다고 말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페르소나의 행동과, 귀족들의 무례함, 떠도는 소문들, 마음 같으면 전부 쓸어버리고 싶었다. 가넷 가문은 충분히 그럴 능력도 있었다. 심지어 마음만 먹는다면 황실조차 눌러버리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벌레가 시끄럽게 운다고 죽이지 않아.”

“로젤리아.”

“아무리 눈앞에서 날뛰고, 무례하게 굴어도 내게 상처 하나 제대로 낼 수 없어.”

“그래서 이대로 또 넘어가려고?”

“그럴 리가.”

페르소나와 샤를로테는 이미 선을 넘을 대로 넘었다. 너무 날뛰었고,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내 주변 사람들까지 깊은 상처를 받고 슬픔의 바다에 빠져야 했으니.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샹들리에 건은 물증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것뿐이었어.”

“물증이 중요해?”

“아니. 물증의 유무는 상관없어. 물론 물증이 있다면 더 확실하게 항의할 수 있다는 거지. 뭐가 되었든 이번 일 포함하여, 앞으로의 모든 황실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게 할 거야. 칼라일을 다치게 한 것은 넘어가지 않아. 계속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그러면?”

나는 벽 쪽으로 다가가 열일곱 살에 로웬에게 선물 받은 레이피어를 들었다. 시종에게 부탁을 해놓은 덕에 날은 마치 새것처럼 날카로웠다.

“검을 쓰지 않은 지도 벌써 몇 년이야.”

“?”

“며칠 내로 황실 기사단을 방문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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