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널 이해해 볼 테니까.
칼라일의 얼굴에 붉은 액체가 튀어있었다. 부모님 두 분 다 목을 감싸 쥔 채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마법으로 막지 못한 건가?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인데?
칼라일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얼어붙어있었다. 그 순간 단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칼라일의 뺨을 스쳤다.
칼라일의 고개가 무장한 남자 다섯 명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소리 없이 칼라일을 위협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막지 못한 게 아니었다. 멀리서 검을 던져서….
‘잠깐만.’
그런데 오늘, 어?
설마, 내가 이혼하자고 제안한 바로 다음날에 암살단을 보낸 거야?
내가 황궁을 나갈 것 같으니까, 다음 황후가 될 것 같으니까. 미리 불안요소를 없애기 위해서?
그래놓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행동 한 거야?
약혼자와 그의 가족에서 암살단을 보내놓고서는 환하게 웃으며 식사를 하고, 티파티에 참여한 거야? 네게 어떻게 폐하에게 이혼을 말할 수 있냐면서, 그래도 남편 아니냐고 했던 말들이…어떻게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으면서 태연하게 페르소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지??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놀라 움직일 수 없었다.
암살단을 보냈다는 것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당시의 상황을 눈앞으로 직접 마주하자 구역질이 몰려왔다.
샤를로테의 행동이 너무 소름끼쳤다.
칼라일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눈에서 루치아노와 만났을 때처럼 피눈물이 흘렀다. 칼라일은 덜덜 떨며 죽은 부모님 옆에 다가가 차갑게 식은 손을 부여잡았다.
자신의 근처로 무장한 암살단이 다가왔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비명인지 울음소리인지 모를 것들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아버, 아버지, 어머니, 왜…왜, 이럴 리가. 이럴 리가….’
뺨을 쓰다듬고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칼라일은 비명을 질렀다. 이럴 리가 없다고 소리쳤다.
암살자들은 울부짖는 칼라일의 주변으로 다가와 단검을 그의 목을 향해 던졌다. 시퍼렇게 빛나는 칼이 칼라일의 목을 향해 날아가다, 그러나 칼날은 그의 목에 닿지 않고 우뚝 멈췄다. 칼이 공중에서 멈춘 채 흔들리더니 빠르게 방향을 바꿔 암살자의 목으로 꽂혔다.
그리고 다른 암살자들은 다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확히는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이름 모를 기운에 붙잡히듯 덜덜 떨며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애썼다.
‘이럴 리가 없잖아, 이럴 수가 없어. 이 집은….’
칼라일의 피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 순간 암살자의 머리가 터졌다. 바닥으로 흩뿌려진 피와, 살점들. 칼라일의 입에서도 피가 흘렀다.
‘이 집은 마법으로 가려져있단 말이야,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텐데!’
멍하니 부모님의 손만 부여잡고 있던 칼라일의 목소리는 서글프게 울리더니 그대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었다.
곧바로 카렐리아를 데리고 저택을 빠져나온 칼라일은 로브를 눌러쓴 채 카렐리아를 끌어안고 뛰고 있었다. 뒤에서는 다른 암살자들이 쫓아왔다. 더 있었어? 도대체 몇 명을 보낸 거야?
‘오빠, 아파? 많이 아파?’
‘아니야, 괜찮아, 오빠 괜찮으니까 로브 꽉 눌러쓰고 있어.’
칼라일은 마법을 쓴 탓인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며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어디든 숨을 장소를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칼라일이 크게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뒤따라온 다른 암살자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카렐리아를 품에 꽉 끌어안은 칼라일은 카렐리아를 자신의 뒤에 숨겼다. 암살자들이 하나둘 검을 꺼내 들고 달려들자 칼라일은 빠르게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끝에서 떠오른 빛들이 점점 칼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더니 그대로 암살자의 복부에 박혔다. 그리고 칼라일의 입에서도 붉은 피들이 쏟아졌다.
‘허억, 으….’
눈동자가 점점 빨갛게 변하고 이내 은빛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그때 암살자 한명이 카렐리아에게 달려들어 아이의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었다.
‘카렐리아!’
칼라일은 날아오는 검을 피하지 않았다. 어깨와 등에 검이 박혔음에도 방어하지 않고 카렐리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공중으로 떠오른 마법진, 마법진에서 뿜어 나온 빛줄기가 카렐리아를 끌어당기고는 그대로 함께 사라졌다.
카렐리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칼라일의 눈동자가 서글프게 일그러진 순간 암사자들의 목도 함께 날아갔다. 칼라일은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처럼 바닥으로 쓰러진 채 움직이질 못했다.
‘카렐, 리아, 찾아야, 하는데….’
눈에는 여전히 붉은 피눈물만 뚝뚝 흘렀다.
차마 보기 힘든 장면에, 눈을 꾹 감았다.
이렇게 참혹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제발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잔인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다음의 장면도 역시나 잔혹했다. 칼라일은 심장 부근을 움켜쥔 채 어디론가 향했고, 도착한 장소에는 피가 묻은 카렐리아의 로브만 남아있었다. 칼라일은 겨우 남아있던 모든 의지를 잃은 사람처럼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칼라일은 텅 빈 눈으로 다시 저택으로 돌아갔다. 바닥에 쓰러진 부모님의 시신을 수습했다. 텅 빈 집 안에 혼자 앉아있던 칼라일은 목소리를 잃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았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칼라일을 끌어안았다. 닿지는 않았지만 제발 닿기를 바라며 그를 끌어안기 위해 노력했다.
비극이었다. 이렇게 비극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 처참할 줄은 몰랐다. 말로 들은 것과 직접 본 것은 너무 달라도 달랐다.
샤를로테와 대화를 나눴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 어떻게 단 둘이 얘기를 나눈 거지?
경악이 분노로 변했다.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러놓고서, 칼라일이 자신을 위협했다고 사람을 몰아간 거야?
내가 겪은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화가 났다. 칼라일은 나보다 더 심하겠지.
칼라일은 며칠을 거의 죽은 사람처럼 지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검을 든 채 저택을 나섰다.
‘저택은 마법으로 둘러싸여 있었어,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들어가는 출구가 따로 있어…그러니까, 그러니까…암살단을 보낸 사람은….’
한 손에 검을 꽉 쥔 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밤낮을 돌아다니고 또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사람이, 샤를로테였다. 나와 칼라일이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칼라일은 샤를로테를 보자마자 은빛 눈동자에서 희번득 빛이 났다.
페르소나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칼라일은 잠시 비소를 흘리며 인파가 몰릴 때쯤 샤를로테의 팔을 골목 안쪽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샤를로테가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입을 막고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샤를로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분명했다. 칼라일은 검을 바로 잡은 채 곧바로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차마 찌르지는 못했다. 그의 검이 샤를로테의 심장을 찌르기 바로 직전, 칼라일은 멈췄다.
‘왜 그랬어.’
‘!’
‘도대체 왜 그런 거야?’
그리고 물었다. 왜 그랬냐고, 나한테 왜 그랬냐고. 피눈물이 아닌 한없이 투명한 눈물을 흘리는 칼라일은 애처로워 보였다.
‘왜 그랬는지 말 해, 우리한테 암살단을 보내야 했던 이유를 말 해.’
‘….’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지? 응? 샤를로테. 제발 말해줘.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그런 거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 거지?’
‘….’
‘제발, 제발 말 좀 해 봐. 샤를로테.’
모든 것을 잃은 칼라일은 당장이라도 샤를로테를 죽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샤를로테가 그녀에게 꼭 어울리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햇살 아래에서 어여쁘게 웃고 있는 것을 본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샤를로테가 한 말이 사실이었다.
칼라일은 샤를로테를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했던 그녀를 마지막으로 이해하려 하고 있었다.
곁을 떠나간 샤를로테를.
암살단을 보낸 그녀를.
죽도록 슬프지만, 부모님을 죽인 것처럼 똑같이 해주고 싶지만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약혼자 샤를로테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처절하게 애를 쓰고 있었다.
칼라일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네가 그렇게 집을 나간 것은, 내가 제대로 못 해줬으니까. 네가 불편하다고, 나가고 싶다고 했는데 계속 붙잡아만 놔서…그래,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 내 잘못이야.’
‘….’
‘네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때, 그렇게 너를 찾아다녔을 때 다시 돌아와 줬으면 하면서도 차라리 멀리 떠나기를, 네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칼라일의 시선이 샤를로테를 찾으라고 지시하는 페르소나를 향해 닿았다. 분명 보았을 것이다. 다정하게 서로를 보고 웃으며 행복해하던 샤를로테와 페르소나를.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칼라일은 아주 잠깐이지만 안심했다.
눈동자가 분노로 번들거리기 전, 칼라일은 그도 모르게 화사하게 웃는 샤를로테를 보며 다행스러운 눈빛을 지었다.
‘좋은 사람 만나거나, 너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았으면 했어. 그래, 그랬어.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어.’
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칼라일은 샤를로테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너는 똑똑해. 그러니 네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야. 응? 왜 그런 거야? 다른 이유가 있지? 그렇지?’
고개라도 끄덕여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눈물을 흘리거나 미안하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샤를로테의 대답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처럼, 울지도 웃지도 않는 얼굴로 샤를로테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때 계속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샤를로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칼라일.’
샤를로테는 말했다. 미안하다고.
그녀는 칼라일의 목을 끌어안으며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가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칼라일은 인상을 찌푸린 채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그녀를 끌어안기 위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샤를로테가 목을 끌어안은 손으로 칼라일의 손에 있던 검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나는 놀라 손을 뻗었다. 칼라일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감싸 안았지만, 소용없었다.
칼라일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칼라일은 피를 토하며 자신의 배에 꽂힌 검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칼라일.’
‘….’
‘돈을 더 쥐어주더라도 가장 실력 좋은 암살자들로 보낼 걸.’
그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샤를로테는 손끝을 떨며 검 손잡이를 잡고 다시 한 번 검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럼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일도 없었을 텐데.’
다 내 탓이야. 눈물을 글썽이는 샤를로테의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