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후폐하의 이혼사유-17화 (17/170)

#17화, 한 번만 안아주세요.

칼라일이 뻗은 손에는 새하얀 빛 여러 개가 떠다니고 있었다. 그가 그 빛을 움켜쥐자 땅 밑에서 꽃이 피어나더니, 그 줄기들이 세피노를 덮쳐 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세피노가 버둥거릴수록 더 심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뭐, 뭐야. 마, 마법사?’

세르빈은 덜덜 떤 채 칼라일을 보고 있었다. 마법사인 동생을 믿고 대공의 딸이자 후계자인 로젤리아를 그렇게 비웃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로젤리아에게도 있었다. 심지어 세피노보다 훨씬 더 강한, 그런 마법사.

세피노가 소리를 지르며 다시 마법을 쓰려하자 칼라일은 세피노의 손목을 꺾었다. 고통어린 비명소리에 세르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세피노에게 기어갔다. 그러나 꽃이 뾰족한 가시로 변하더니 세르빈을 위협했다.

“제 실력도 제대로 모른 채 멋대로 마법을 사용하다니.”

“너, 이거 당장 풀어! 세피노, 세피노!”

“마법사는 대체적으로 알 수 있지, 이 마법사가 정말 마법사인지.”

칼라일은 말끝을 늘리며 싱긋, 웃었다.

“마력석을 불법으로 섭취한 마법사의 마력은 섭취할 당시에만 강해.”

“뭐, 뭐라고?”

“마력석이라는 건 마력이 모이고 모여서, 굳어지는 결정체. 그걸 부수거나 녹이거나, 가루로 만들면 그 속에 있는 마력은 모조리 사라진다. 네가 삼킨 마력석은 아주 잠시 동안만, 마력을 보유하다가 천천히 사라져. 너, 이곳에 오기 전에 마력석을 먹었지?”

칼라일은 비웃는 표정으로 세르빈과 세피노를 내려다보았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칼라일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작은 빛들이 칼라일의 손에서 사라졌다.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세피노를 옭아매던 줄기들과 세르빈을 위협하던 가시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칼라일은 부러진 손목을 부여잡는 세피노를 보며 내려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참으로 약하구나, 칼라일.

-마력이 무한하면 뭐해. 어디서 이런 게 태어나서 일을 망치는지.

-너는 끝까지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끝까지!

세피노와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졌다.

칼라일의 머릿속으로 사납고 괴로운 말들이 스쳐지나갔다.

칼라일은 툭툭, 자신의 머리를 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모든 건 네가 약하고 쓸모없어서 벌어진 일이야.”

***

한 영애가 온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숨을 몰아쉰 채 뛰는 영애의 얼굴에는 홍조가 띄워져 있었다. 하지만 기뻐서 생긴 홍조는 아니었다. 온실을 빠져나가기 직전, 누군가 영애를 막아섰다.

“루비 루레드 양?”

“로, 로젤리아님?”

루비 루레드, 세실리아의 파티에 초대된 영애이자 이 모든 상황을 몰래 지켜보던 사람. 로젤리아는 루레드 남작과 닮은 곳 하나 없는 루비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가, 나랑 거래하지 않겠니?”

“네, 거, 거래라니요?”

“너 방금, 이곳에 있던 일을 기사로 쓰려고 하고 있었지? 하지만 고민이었잖니. 이걸 써도 되는 건지, 아닌지. 너는 루레드 남작과는 다르니 말이야.”

나는 루레드의 탐욕스러운 눈과 달리 순수한 눈동자를 가진 루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루비 루레드는 루레드 남작처럼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루레드 남작처럼 정보를 돈으로 판단하며 이득이 되는 것만을 기사로 내는 일을 무척이나 혐오했다.

그러나 루레드 남작를 포함한 다름 사람들도 그런 루비의 신념을 하찮게 여기며 비웃는 일이 대다수였다. 결국 제대로 된 기사를 쓰지 못하자, 루비는 아버지에게라도 인정받기 위해 남작의 뜻대로 자극적이고 물고 뜯기 좋을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에 죄책감을 느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루비는 이 일을 기사로 쓴다면 분명, 자신의 기사에 이목이 몰릴 것을 알았다. 아버지에게도 인정받겠지. 로젤리아의 정부가 사실은 마법사였다, 그렇게 쓴다면 더더욱 몰릴 것이다.

좋은 소재를 잡았다며 몰래 온실을 빠져나왔지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런 기사를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쓰지 않는다면 내 기사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남작의 신문소를 내가 사들인 건 알고 있었지? 남작의 기사를 내가 모조리 막는 것도?”

“…네, 알고 있어요.”

“그래. 그 신문소장 자리를 너에게 주지.”

“네?”

“대신 조건이 있다. 기사를 써, 자극적이고 사람이 물고 뜯기 좋은 기사로.”

루비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기사를 쓰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류의 기사를 쓰라는 게 아니란다.”

“그럼요?”

“세르빈 플로트가 연구 목적으로 마력석을 사들이고는 일부를 빼돌려 세피노 플로트에게 먹였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바르셀민의 광산을 빼앗았고, 로젤리아의 정부를 공격했다.”

“!”

“어때, 이런 기사는?”

루비의 눈이 아주 잠깐 빛났다. 하지만 후폭풍이 두려운 건지,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루비는 나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에게 부탁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그 말에 나는 책상 서랍에 있는 신문 몇 개를 떠올렸다. 모두 루비가 쓴 기사였다. 내가 본 기사 중에서 사실만은 담은, 흔치 않은 기사들이었다.

“나는 괴로워서 이혼을 했다.”

“네?”

“그 말을 그대로 실어준 건 너밖에 없었다.”

나는 막고 있던 길을 비켜주었다.

“신문소장을 주겠다고 했지, 신문소를 주겠다고는 안 했어. 네가 무슨 기사를 내든 그건 내 책임이다. 후폭풍을 신경 쓰지 말고 가서 기사를 쓰렴.”

그 말에 루비는 결심에 찬 표정으로 온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기사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어떻게 나올지, 샤를로테와 세르빈이 어떻게 물어 뜯길지. 더불어 페르소나가 그 기사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 기사를 보고도 샤를로테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일까? 나는 다시 온실로 들어갔다. 온실에는 테이블을 정리하는 세실리아와 시녀들만 남아있었다.

“로젤리아님.”

“세실리아 양.”

“로젤리아님, 오늘 정말 감사드려요. 덕분에 속이 후련해졌어요.”

“내일 아침에는 후련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실리아에서 시선을 떼고 칼라일을 찾았다.

“칼라일은 어디 갔나요?”

“아, 칼라일님이요. 방금 나가시던데요.”

“나갔다고요?”

“네, 저 온실과 연결된 복도 쪽으로요. 아! 맞다, 로젤리아님. 이거 선물이에요.”

세실리아는 드레스 소매 안쪽에서 옅은 금빛의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꺼냈다. 작은 빛을 보석 표면 위로 잔뜩 뿌려놓은 듯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많은 보석을 보아왔지만 이렇게 예쁜 보석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보석을 멍하니 바라보다 내 손에 목걸이를 쥐어주는 세실리아의 손길에 몸을 움찔, 떨었다.

“마력석이에요. 그것도 최상품.”

보석이 아니라, 마력석?

“마력석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제가 성인식 때 받은 건데, 오늘 너무 감사해서 드리고 싶어요. 그거, 진짜 특별한 마력석이예요. 이중 마법이 걸려있다고 들었어요. 그 중 하나가…마법이 통하지 않는 방어형 마법이라나?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력이 있는 건 맞아요!”

세실리아는 발랄하게 웃으며 목걸이를 꼭 쥐어주었다. 나는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는 마음에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들려온 비명에 놀라 도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소리가 난 곳은 온실과 연결된 복도였다.

“왜 그러세요?”

“방금 누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나요?”

“네? 비명이요? 저는 못 들었어요.”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세실리아와 시녀들은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귀를 매만지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칼라일 목소리 같은데. 그때 목걸이에 달린 마력석이 잠깐 빛을 내다가 사그라들었다.

나는 세실리아에게 고맙다 말하고는 복도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의문의 비명이 들리는 곳과 점점 가까워졌다.

소리를 따라 모퉁이를 돌려는 순간, 영문을 알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카, 칼라일, 내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니, 네게 미안하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

“내, 내가 잘못했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정말이야. 날 믿어줘.”

“믿어달라고?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는 샤를로테가 칼라일의 손을 잡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순간,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샤를로테.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널 믿으라니.”

“칼라일, 제발….”

“그렇게 잔인한 말이 어디 있어, 샤를로테.”

칼라일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자 샤를로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칼라일을 올려다보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무서웠어, 무서웠단 말이야!”

“뭐가 무서워? 네가 내 가문 사람들보다 무서웠어? 눈앞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칼에 찔리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무서웠을 것 같아?”

“칼라일, 일단 내 말을 들어줘. 내가 다 설명할게…!”

샤를로테는 칼라일를 끌어안으며 맑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 어떻게 하면 날 믿어 줄 건데?”

샤를로테의 얼굴은 천사 같았다. 정말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칼라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벽 뒤로 몸을 숨긴 채 입을 막았다. 샤를로테는 다시 한 번 노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살려고 정부로 들어간 거야. 나, 나 알잖아. 13황녀인 거. 그때 1황녀라고 거짓말 하지 않았다면 정부는커녕 그대로 내쫓겼을 거야.”

“알아, 그건 이해해. 살고 싶었겠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겠지. 알아, 다 이해해. 하지만, 하지만 내 가족에게만큼은 그러지는 말았어야지. 살 거라면 조용히 혼자 살았어야지!”

“칼라일….”

칼라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너 살자고 우리 가문 사람들에게 암살을 사주해?”

‘……암살?’

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암살, 설마?

샤를로테가 헬리오도르 사람들에게 암살을 사주했다고?

“아니야, 암살이 아니야. 나는 암살을 의뢰하지 않았어. 나는, 그저, 그냥 위협만 하라고 지시했을 뿐이야. 네가, 네 가문 사람이 내 비밀을 밝혀낼까 봐 무서웠어….”

“위협? 나를 발견하자마자 가차 없이 베어버리던데? 그게 너에게는 위협인가 봐?

“카, 칼라일….”

칼라일은 샤를로테를 세게 뿌리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든 것인지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래, 네 비밀을 우리가 알릴까 무서웠던 거, 이해해. 겨우 찾은 삶이니까. 네가 원한 삶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네 비밀을 퍼트릴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네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칼라일의 눈은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샤를로테를 찢어죽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는 듯 입술을 꾹 물었다.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샤를로테. 나한테는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부모님께는 그러지 말았어야지.”

“아, 아니야.”

“네게 흐리지만 미약한 마력이 흐른다는 거, 그 능력을 밝혀준 게 우리 어머니야. 네가 황궁에서 무시 받지 않게끔 힘을 써주신 분은 우리 아버지야.”

샤를로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런 건데? 무서웠니? 정부가 되니까, 13황녀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누리니까, 우리 쪽으로 돌아오기 싫었어? 내가 나타나 모든 사실을 발설할까 봐 두려웠어?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 그래서 우리 가족을 죽인 거야? 암살단을 보냈어? 그때 나에게 그런 거야? 내가 너를 위협했다고 거짓말을 했어?”

심장을 쥐어뜯는 듯한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칼라일이 저렇게 울부짖는 건 처음 보았다. 듣는 사람이 괴로워질 정도로 처절한 음성이었다.

“그때 우리 가문으로 도망친 너를 죽였어야 했는데.”

목소리에서 떨림이 묻어났다.

차마 듣기 힘든 말이었다.

샤를로테는 말없이 울며 칼라일을 지나쳐 온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샤를로테가 가버린 순간, 칼라일은 그대로 벽을 짚고 주저앉았다. 기침을 하며, 목이 메는지 심장 부근을 세게 두드렸다. 차라리 심장이 터져버리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주먹으로 가슴을 내려치다 끅끅, 거리며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암살단, 정부, 13황녀. 그제야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자세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칼라일이 왜 그렇게 피투성이였고 샤를로테 얘기를 꺼냈을 때 괴로워했는지를 얼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달래주고 싶었다. 저렇게 제대로 소리도 못 낸 채 우는 모습이 어쩐지 익숙했다. 나는 칼라일에게 다가가려다 그대로 멈춰 섰다. 목걸이를 꽉 움켜쥔 채 지금 이 자리를 피해줘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 순간 울고 있던 칼라일과 눈이 마주쳤다. 칼라일의 눈이 커지더니, 그대로 주저앉은 채 나를 멍하니 응시했다.

“로, 로젤리아님?”

“…칼라일.”

“내, 가, 보여요?”

내가 보이냐니? 그게 무슨 소리지?

그때 시녀 한 명이 복도를 지나다 칼라일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아야……뭐야, 아무것도 없는데? 응? 왜 넘어진 거지?”

칼라일을 바로 앞에 두고, 시녀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로젤리아는 목걸이를 꽉 움켜쥔 채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세실리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방어형 마법, 그래. 이거 마법이었구나. 이제 어쩌지?

나는 문 쪽으로 몸을 돌려 온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보면 안 될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사정도 모른 채 달래줬다가는 상처받을까 봐, 차라리 자리를 피해주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 위로 느껴지는 온기에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다가온 칼라일이 덜덜 떨며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

“….”

그 상태로 나와 칼라일 사이로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칼라일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 손을 아플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었다.

손을 타고 점점 차가운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침묵이 계속 이어질수록 머리도 몽롱해졌다. 아주 살짝 휘청거리자 칼라일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벌렸다.

그 순간 얼음장 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몽롱하던 기분도 사라졌다.

그리고 칼라일이 말라붙은 입술을 움직이며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조심스레 팔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안기기 바로 직전, 어쩐지 붉게 빛나는 눈을 본 것 같았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 따위는 없었다.

천천히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소리 없이 떨리던 그의 등이 진정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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