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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폐하의 이혼사유-16화 (16/170)

#16화, 생각보다 약한데?

샤를로테는 아침부터 분명 기분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황후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파티에 초대받았다.

황제의 정부라고는 해도 여기저기서 깔보는 이들이 많았다. 원래 같았으면 손톱이라도 뽑아버리라 지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부의 위치라 시녀나 하인들이면 모를까 귀족들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황후가 되면 처벌이나 그런 게 마음대로 가능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페르소나는 어째서인지 샤를로테가 직접 처벌을 하는 것에 민감하게 굴었다. 특히 지난 번 간식 시간을 놓친 시녀를 벌하려 들자 이를 목격한 페르소나는 크게 소리치며 황후실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페르소나가 모두들 앞에서 크게 소리친 이후, 샤를로테는 시녀들과 기사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기회가 왔다. 만약 정부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런 거라면 고치면 되는 일이었다. 샤를로테는 시녀를 모조리 불러들였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와 장신구들을 가져오라 말했다. 그리고 값비싼 보석들을 사오라 명했다. 보석으로 이미지 청산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파티가 열린 바르셀민 저택의 온실로 들어서자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로젤리아가 보였다.

“로젤리아님의 수제 쿠키라니! 세상에 맛도 너무 좋아요.”

“그런가요, 요즘 새로운 취미를 찾고 있답니다. 쿠키 만들기라던가, 자수라던가. 결투, 검술 등이요.”

보석 상자를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혼했으면 집에서 잠자코 처박혀 있을 생각이지, 왜 이런데 기어 나오는 거야! 이를 뿌득 갈며 금빛 눈동자를 형형히 빛내자 로젤리아는 비웃는 표정으로 샤를로테를 돌아보았다.

“아, 황후 폐하 오셨습니까?”

샤를로테가 움찔거리자 로젤리아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외쳤다.

“머리카락을 자르셨군요. 단발도 참으로 잘 어울리십니다.”

“이렇게 된 게 다 누구…덕분인데요. 황제 폐하의 총애 때문이죠. 단발도 퍽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잘라보았답니다.”

샤를로테는 푸른색 치맛자락을 꽉 움켜준 채 입술을 꾹 물었다.

여기서 더 이미지를 망칠 수는 없었다.

최대한 조용하고 상냥하게 굴어야 했다.

샤를로테는 일부러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탓에, 누군가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제가 오늘 파티에 초대된 보답으로 선물을 가져왔답니다.”

나는 말없이 차를 마시며 샤를로테가 가져온 선물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놓인 보석 케이스는 최근 새로운 보석 세공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사벨라 보석 케이스였다.

선물로 이미지 청산이라도 할 생각인 건가?

“어머, 선물이라뇨? 무슨 선…물….”

딱히 보석에는 관심이 없던 터라 나중에 열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주변에 있는 귀족 영애들이 얼어붙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왜 그러지? 단지 보석일 텐데. 꽤나 비싼 보석 아닌가?

그때 창백하게 질린 세실리아와, 비소를 흘리는 세르빈이 보였다. 나는 그제야 다급하게 보석 케이스를 열었다.

“…예쁜, 보석이네요, 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이 보석, 이제는 플로트 가의 소유가 된 보석 광산에서 채굴되는 보석이었다.

티파티가 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 그 사이 바르셀민 가문의 광산 소유권이 플로트 가문으로 넘어갔다는 기사가 수도 전체로 퍼져나갔는데.

‘신문이라는 것을 안 읽는 건가? 업무는 다 팽개쳤나보군.’

나는 조용히 혀를 차며 릴리에게 손짓을 해 미리 준비한 선물을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세실리아는 당장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보석 케이스를 품에 안았다. 샤를로테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파티에 초대된 다른 영애들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수근거렸다. 여기서 웃고 있는 건 세르빈 뿐이었다.

그때 릴리가 새장을 가져와 세실리아에게 건넸다.

내가 준비한 하얀 새였다.

“파티에 초대된 보답으로 하얀 새를 준비했습니다. 세실리아 양.”

“아, 아! 예쁜 새네요! 세실리아 영애, 평소에 새를 많이 기르시지요.”

“맞아요. 어쩜 이렇게 예쁜 새인지. 로젤리아님의 안목이 탁월하시네요!”

다른 영애 중 한 명이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미세하지만 아까보다는 밝아진 세실리아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안도했다. 하얀색은 바르셀민 가문에게 행운으로 상징되는 색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하얀 새를 준비한 거였는데, 세실리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뻐하는 반응을 보였다. 새를 준비하길 잘했구나.

‘다행이네….’

그리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굳어진 샤를로테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신문을 안 읽은 건가, 아니면 정말 몰랐던 건가? 아니면 일부러? 심란함을 감춘 채 말없이 쿠키를 입 속에 밀어 넣었다.

“그나저나.”

블랑쉐가 잠시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부채를 펼치며 입을 열었다.

“플로트 가에서 마법사가 탄생했다지요?”

세르빈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영애는 수군거리며 갑자기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수다가 많던 영애가 입을 가린 채 ‘어머, 어머!’ 거리며 세르빈에게 질문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마법사라뇨, 세르빈 영애! 혹시 동생 분이 마법사가 되신 겁니까?”

“네, 제 동생. 세피노 플로트가 마법사가 되었답니다!”

“후천적으로 마력이 발생하는 경우는 희귀한 경우 아닌가요?”

“역시, 플로트 가문답네요. 특별해요!”

영애들의 칭찬이 오고갔다. 하지만 세르빈의 시선은 조용히 쿠키를 먹고 있는 나를 향해 있었다. 시선이 따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마법사가 태어난 가문에 잘 보이는 건 분명 이득이 따라올 테니. 나는 문득 칼라일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의 손에 피어난 분홍빛 복사꽃과 붉은 장미꽃이 떠올랐다.

그러나 내가 미소 짓는 것을 본 세르빈은 나와 달리 얼굴을 마구 일그러트리며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쳤다.

“그래서, 제가. 세피노를 이 파티에 데리고 왔답니다. 세피노?”

칼라일의 말이 맞았다.

나는 그제야 쿠키를 먹던 손을 멈추고, 어디선가 느껴지는 바람의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마법사가 된 동생만을 믿고 날뛰는 세르빈과 달리 따스한 바람이었다.

“세르빈.”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투명한 푸른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세피노가 나타났다. 세실리아의 말대로 그의 손길에 따라 바람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가 약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칼라일의 마법을 보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가 약한 것인지.

세피노의 등장에 몇몇 영애들이 얼굴을 붉혔다. 얼굴을 붉히지 않는 사람은 나와 세실리아뿐이었다. 세피노는 세르빈에게 다가오다가 세실리아를 발견하고는 세르빈과 비슷하게 오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를 비웃었다.

“아, 누군가 했더니. 세실리아 영애 아니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세피노 경.”

“그러게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찻잔을 든 세실리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동생 분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잘 지내야 할 텐데요. 아니, 못 지내시려나?”

바르셀민 가문과 플로트 가문 사이의 일은 그렇게까지 멀리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세실리아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세피노의 말을 끊어냈다.

“말을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세피노 경. 듣자 하니 경이 먼저 폭력을 휘둘렀다고 하던데.”

그러자 다른 영애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말을 끊으며 그 사이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세피노는 내게 무어라 말하려다 갑자기 샤를로테를 향해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황후 폐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나도 만나서 기쁩니다. 세피노 플로트.”

세피노는 일부러 샤를로테에게 ‘황후 폐하’라는 말을 강조하며 말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세피노는 세르빈과 달리 의외로 신중했다. 자신의 동생만 믿고 까부는 세르빈과 달리 그는 상대의 신분과 위치를 보았다.

나는 아무리 전 황후라지만 대공의 딸이었다. 세피노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르빈은 내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었지만 세피노는 그와 정반대로 ‘사실’을 이용해 나에게 엿을 먹이려 하고 있었다.

임시 황후인, 신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정부였던 샤를로테를 이용해서. 샤를로테도 그의 말에 싱긋, 웃으며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세실리아에게 쿠키에 대한 칭찬을 늘여놓았다. 자존심에 금이라도 간 건지 세피노는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샤를로테님은 상냥하고, 발랄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경솔이니 뭐니 말이 많은데, 인형처럼 서류만 처리하고, 차가워서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어디서 개소리가 들리는군요.”

이번에 세피노의 말을 끊은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말을 끊은 것은 칼라일이었다.

그 순간 나는 샤를로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칼라일이, 왜.”

샤를로테는 칼라일의 등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칼라일은 꽃병을 세실리아에게 건네면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나중에 들어가겠다고 한 이유가 세피노가 먼저 나타나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나?

“아, 칼라일님 아니십니까. 로젤리아님의 정부, 맞으시죠?”

“네, 로젤리아님을 보러 왔답니다. 오늘, 침대에서 깨어나고 보니 무척 아름다운 모습으로 파티에 다녀오겠다고 하시더군요. 착하게 기다리려했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이렇게 와버렸습니다. 세실리아 양께 초대장을 받기도 했고요.”“꽃 감사해요, 칼라일님.”

“저야말로 감사드려요.”

세피노의 시선이 천천히 칼라일을 훑어 내렸다. 이번에는 란제리 차림으로 오지 않았다. 대공저에 지낼 때처럼 포엣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목에는 붉은색 보석이 달린 초커가 채워져 있었다.

세피노에게 몰렸던 시선이 순식간에 흩어져 칼라일에게 향했다. 세피노는 그 사실이 심하게 마음에 안 드는 듯 보였다.

“어디서 정부 출신에다가 계집같이 생긴 게 내 말을 끊어?”

“이 개뼈다귀같이 생긴 건 무엇입니까?”

“하, 개뼉다귀?”

“마법사라는 것 하나 믿고 이렇게 까부는 거 보면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야!”

“자꾸 반말까지 쓰시고…마법은 후천적이지만, 천박한 건 태생인가 보네. 아니면 나도 반말을 쓰기를 원하는 건가?”

얼굴이 새빨개진 세피노는 화를 참지 못한 채 욕설을 내뱉으며 크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까와는 달리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스치는 곳마다 금이 가고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바람에 스친 칼라일의 머리카락의 일부가 잘려나갔다. 뺨에 칼에 베인 듯한 상처가 생겨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칼라일은 무덤덤해 보였다. 오히려 ‘겨우?’라는 표정으로 세피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칼라일!”

세피노는 손으로 칼라일을 가리켰다. 날카롭게 불던 바람이 멈추더니, 허공으로 불투명한 칼날 같은 형체가 떠올랐다. 그리고 칼라일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겉옷 안에 숨겨놓은 검을 움켜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검을 빼들기 직전, 세피노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온실 벽에 부딪혀 커헉,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심하게 부딪혔는지, 세피노는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아, 미안해.”

칼라일은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마법을 쓰니까, 나도 쓸 수밖에 없었어. 근데 이거 되게 약한 마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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