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부디 이 나라를 잘 이끌어주시길
뺨이 베인 기사는 주춤거리며 릴리의 팔을 천천히 놓았다. 검을 꽉 쥔 채 릴리를 일으켰다. 릴리의 팔에 상처가 생겼다. 뺨에서 피가 흘렀다.
참을 만큼 참았다. 소문에 시달리고 샤를로테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봐주었다. 그러다 아이도 잃고 내 사람도 잃을 뻔했다. 검을 쥔 채 아주 천천히, 내가 이 황궁에서 해온 일들을 떠올렸다. 나는 끝까지 황후답게 행동했다. 주변을 걱정하며 홀로 이혼을 준비했다. 내 말이 단순한 정신적 이상 문제로 판단되었을 때도 냉정하게 행동했다. 그랬는데…….
“폐하는 어디 계시지?”
“…폐하께서는 샤를로테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부터 나와 릴리에게 손을 대는 이들은 가차 없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 그러니, 비키도록.”
릴리는 이혼서류를 손에 꼭 쥔 채 기사들을 피해 뛰어갔다. 손가락을 베어버리겠다는 말 때문인지 아무도 릴리를 잡지 않았다. 한 손에 드레스 자락을, 다른 한 손에 검을 들고 방을 빠져나왔다. 샤를로테와 함께 있다고 말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이를 내쫒으라 명령시키고서는, 둘이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을 게 뻔했다.
‘정말로, 끝까지.’
복도를 지나, 황제의 침실로 찾아갔다. 하지만 없었다. 다시 한 번 복도를 지나, 샤를로테가 머무는 궁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샤를로테와 그는 없었다. 궁에서도 빠져나와, 황실 정원 쪽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아니기를.’
심장이 쿵쿵, 뛰었다. 분홍색 꽃이 가득 핀 나무의 향이 코끝에서 느껴졌다. 정원의 문 위에 손을 대고 살짝 밀었다. 마치 8년 전 내 손을 잡고 홍조를 띄우며 문을 열던 페르소나처럼. 눈앞으로 꽃잎이 살랑거리며 떨어졌다.
“황후의 행동에 대한 사과는 내가 꼭 받아내 주도록 하겠다. 그러니 울지 말거라, 샤를.”
“아니에요…하지만 저 너무 슬펐어요. 너무 아픈 말만 하시니까, 흐윽.”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이렇게 보니, 심장이 저 밑으로 추락해 바닥을 구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장소에서 다른 여자를 달래고 있었다. 내 사정은 전혀 듣지 않은 채. 내 사과를 받아내 준다고? 누구 마음대로.
나를 발견한 페르소나의 눈이 차갑게 식어갔다.
“…황후, 그대가 저지른 소란 때문에 지금 몇 명이나 고생하고 있는 줄 아시오?”
“릴리는 제가 가장 아끼는 아이였습니다. 폐하의 황태자 시절에도, 종종 릴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지요.”
페르소나는 검을 한 번, 그리고 나를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샤를로테를 뒤에 숨겼다.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 뒤로 숨기지 않았다면 검은 샤를로테에게 던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사랑에 미치면 제 사람도 못 알아본다더니, 그 말이 딱 폐하를 가리키나 봅니다. 릴리를, 왜 내쫓으라 명령하였습니까?”
“샤를로테의 험담을 했고, 사과조차 안 했다 들었는데.”
“샤를로테가 릴리의 뺨을 친 것은 들으셨습니까.”
“뺨을 쳐?”
페르소나가 샤를로테를 향해 정말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샤를로테는 흠칫, 떨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역시, 자신이 한 짓은 말하지 않았다. 당한 것만 그에게 말했구나. 한 치의 예상에도 벗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릴리가 잘못했다지만 그렇다고 어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폭력을 가한답니까. 정말 폐하는 사랑꾼이시군요. 이렇게 한 사람을 위해 예법이나 법도를 전부 무시하는 걸 보니까.”
“그런 것까지는 듣지 못했소, 하지만 황후의 시녀가 샤를로테의 험담을 한 것은 사실, 내쫓는 처분은 철회하고 그에 따른 벌을 따로 내리도록 하지. 일단 릴리라는 시녀를 다시 불러들이라고 명령을….”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검을 쥔 손이 떨렸다. 하지만 떨리는 걸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써 다른 손으로 덮었다.
“제가 내보냈습니다. 폐하와 저의 이혼 서류와 함께요.”
“뭐라고…?”
이혼 서류, 그 말에 페르소나의 눈이 흔들렸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폐하께 이혼을 요구 한다고요.
“지금 나와 장난이라도 하자는 건가, 이혼 서류를 보냈다고?”
“그러게, 왜 릴리를 내보내셨습니까? 샤를로테의 말만을 듣고 제가 괴롭혔다 판단하셨죠. 그때, 왜 제 시녀들의 손톱을 모두 뽑아 내보내신 거죠? 왜 제 사람을 건드십니까? 왜!”
악에 받혀 소리 질렀다. 황후의 위엄 따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저 정부라는 아이를 가지고, 뭐라고 한 적 있습니까? 차분히 생각해보시지요. 제 사람을 상처 입혀가며 이뤄낸 사랑, 즐거우십니까?”
“너무 흥분한 것 같군, 일단 진정부터 하고.”
“진정이요? 제가 왜 진정해야 합니까. 저는 이제 황후도 뭣도 아닌, 로젤리아 가넷일 뿐인데 말입니다.”
검을 뽑아들었다. 페르소나가 내 팔을 잡았지만 뿌리치고는 샤를로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은빛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참 예쁘구나. 모두들 네 머리카락을 칭찬했지.”
처음으로 샤를로테를 향해 웃어보였다. 미소를 띠며, 샤를로테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쥔 채 검으로 서걱, 잘라 내렸다. 공중으로 흩어지는 머리카락과 샤를로테의 비명이 뒤섞였다. 바닥으로 새하얀 머리카락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페르소나는 내 손에서 검을 뺏어들어 바닥으로 던졌다.
“그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잘라버리고 싶었다.”
샤를로테가 황궁으로 들어오고,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잘라버린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손끝으로 드레스 자락을 쥐었다. 내 행동이 진심이란 걸 뒤늦게 안 건지 다급하게 내 손을 잡아왔다. 하지만 손을 잡아와도 마음은 기울어지지 않았다.
“저는 이제 함께하지 못하지만, 폐하께서는 앞으로도 즐거운 사랑을 하시며 제국의 번영을 위해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다시는 보지 말아요, 폐하.
바닥에 떨어진 검이 달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황제와 황후로 이어져 있던 8년간의 실이 끊어졌다.
*
“로젤리아님.”
“응?”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신문이 구겨짐과 동시에 릴리가 마차 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릴리의 주먹이 닿은 벽이 움푹 패였다. 릴리는 당장이라도 자극적이고 선이 넘는 기사를 쓴 기자를 찢어죽일 것처럼 보였다. 진정하려고 해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건지 속상한 표정으로 입술을 꾹 물었다. 나는 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내 시선이 굵은 글씨의 제목으로 향했다.
「 버려진 황후,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결국 신분 불명의 정부인가! 」
황궁을 나온 지 이틀. 그 이틀 사이, 정말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이혼이라니, 그것도 황제와 황후가? 레이몬드 제국에서 황제와 황후가 이혼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신관들은 릴리가 갖고 온 이혼장을 보았을 때 이를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후 직접 신전으로 찾아온 나를 보고는 릴리가 제출한 이혼장이 진짜인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의심을 거두지 않은 몇몇 신관들이 페르소나에게 이 일에 관한 보고서를 올렸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황후는 이혼서류를 제출했지만, 나는 이혼을 할 생각이 없다’였다.
신전에는 대비상이 걸렸다. 이혼 재판은커녕 뭘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몰라 외국 사례를 찾아보던 도중, 페르소나가 샤를로테는 임시 황후로 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신전은 다시 한 번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노예거나 평민이거나 귀족인 경우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샤를로테 안케도니아는 멸망한 제국의 황녀였다. 물론 이 사실은 황제와 황후. 아주 몇 명의 시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제국민들에게는 샤를로테가 어느 제국인지, 귀족인지 평민인지, 외향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신관들도. 페르소나가 철저하게 숨겼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했다. 신관들의 입장에서는 신원 불명의 여성을 황후로 들이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다른 귀족들이 반발이 강했지만 페르소나가 직접 공표한 것도 모자라 이에 대한 언급을 삼가 하라는 말 때문인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평온한 것은 전 나뿐이었다.
이혼을 선언한지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제국 곳곳에 황실의 이혼과 정부 출신의 황후의 이야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나와 페르소나. 그리고 샤를로테에 관한 신문들이 가게 이곳저곳에 꽂혀있었다. 심지어 바닥에도 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기사들 중 어느 하나 진실은 없었다.
“릴리, 진정하렴.”
“진정할 만한 일인가요, 이게? 아무리 그래도 전 황후였습니다. 어떻게 이래요?”
“그래,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선을 넘기는 넘었구나.”
모욕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적나라한 제목을 보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릴리는 신문을 구기며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욕을 했다.
이 정도의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니다. 한 제국의 황후가 황제에게 이혼을 선언했는데, 당연히 여러 이야기가 떠도는 게 맞는 거겠지, 하지만 신문에는 내 명예를 깎아내리고 심지어 가문의 욕까지 적혀있었다.
“로젤리아님. 가서 경고만 주고 오려는 건 아니죠?”
“릴리.”
“저 그러면 진짜 화낼 거예요. 진짜!”
“릴리, 나도 더 이상 참고만 있지 않을 거란다. 난 이제 황후가 아니니까.”
릴리의 말대로 평소 같으면 경고만 주고 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미 구설수에 올랐고, 황후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내가 더 신경 써야 할 건 없었다. 항상 황후니까, 황후는 그러면 안 돼, 라고 했지만 참을 만한 명분도 없었다.
“가서 정식적으로 항의를 할 거란다.”
“적반하장으로 나오면요?”
“그 건물을 사들여 기자들을 내쫓을 거야. 나를 위협하려 든다면 손목을 잘라버릴 거란다.”
릴리에게 하는 말 중에는 거짓은 없었다.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다.
그때 마차가 멈췄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마부의 비명이 들려왔다.
놀라 마차에서 내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마부에게 다가가자 흐릿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마차 앞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붉은색 로브를 눌러쓴 남자였다. 남자가 쓰고 있던 붉은 로브 아래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릴리는 천천히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로브를 들어 올리자 상당한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남자가 복부를 움켜쥔 채 일어났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더니 비틀거리며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누군가에게서 쫓기는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도망치려 했다.
“어, 어? 뭐야, 로젤리아님! 피하세요!”
로브를 깊게 눌러 쓴 탓에 앞을 보지 못한 건지 그대로 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남자를 보며 피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바로 앞에서 또다시 쓰러지려는 남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팔을 뻗었다. 남자를 부축하자 손에 미끈거리는 액체가 묻어났다. 붉은 로브가 아니었다. 흰색 로브가 피에 젖어 붉게 물든 거였다.
“피, 피가…릴리, 가서 의사를 불러와. 어서!”
사람들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저 사람 황후 폐하 아니야? 한명이 외치자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저 로브 쓴 사람 누구야? 남자 아니야? 바닥에 흐르는 거 피 아니야? 릴리는 주변을 살피며 내게 조용히 속닥였다.
“로젤리아님, 일단 몸을 옮기시는 게,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이 다쳤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릴리. 의사를 불러와.”
“의사를 불러오려면 족히 20분은 걸려요.”
20분이면 너무 늦잖아. 일단 상처를 지혈할 생각에 로브를 벗기려던 찰나, 누군가 억센 힘으로 남자와 나를 단숨에 떨어트려 놓았다.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황실의 기시단이 나를 보호하며 남자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게 보였다.
“황후 폐하, 괜찮으십니까?”
“지금 이게 무슨 짓들이냐!”
뭐지? 황실 기사단이 왜? 당황 하며 큰 소리로 황실 기사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지금 저자는 다친 상태이다. 칼을 거두어라.”
기사들을 제치고 남자를 천천히 부축했다.
“황후, 폐하, 라고…?”
기사들이 나를 황후 폐하라고 부른 걸 들은 건지, 갑자기 남자가 내 드레스 자락을 잡아왔다. 피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은빛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도저히 굴렀다고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상처였다.
“도, 도와주세요, 황후 폐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진정하세요, 괜찮으십니까?”
로브가 벗겨지면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살짝 벗겨지면서 보게 된 그는 옅은 금색의 머리카락과 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옅은 금색? 레이몬드 제국에서는 이런 옅은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로브를 벗기는 상처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한눈에 봐도 누군가의 공격으로 인해 심하게 다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뭔가 죄를 지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어째서 황실의 기사에게 쫓기는 것이지?
“황후. 그자에게서 떨어지시오.”
그때였다. 페르소나가 한 손에 검을 쥐고 기사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옆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기사들에게 보호를 받는 샤를로테도 보였다. 그런데 샤를로테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마치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후.”
“저는 황후가 아닙니다, 폐하. 로젤리아라고 불러주십시오.”
페르소나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여전히.
나는 아무 말 없는 페르소나를 뒤로 하고 쓰러진 남자를 천천히 일으켜주었다. 로브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남자가 허리에 난 상처를 누르며 휘청거렸다. 그로 인해 내게 기대듯 쓰러졌다.
흰색 드레스가 붉게 물들어갔다.
“어서 이 남자를 부축해라.”
상처가 너무 심한 탓에 의사를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호위 기사들에게 지시하는데, 페르소나가 이를 저지했다. 황실의 기사들에게 남자를 생포하라고 명령하기 시작했다.
“저자가 샤를로테를 다치게 했오, 황후. 비키시오.”
“못 비킵니다, 폐하. 어디를 어떻게 다치게 했다는 것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샤를로테가 수도에 나가보고 싶다는 말에 잠깐 데리고 나왔지. 잠시 어디를 갔다 온다고 하더니 갑자기 비명을 질렀소. 가보니 저 남자를 보고 기겁을 하며 배를 감싼 채 심하게 떨고 있었지.”
“그럼 이 남자가 샤를로테를 위협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위협했을 수도 있지.”
“정확하지도 않은데 저자를 기사들을 시켜 공격하게 하도록 시켰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이렇게 심하게? 그러자 페르소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소. 생포하라고만 했지.”
생포를 명령했다고? 그렇다면 이 상처들은?
“상처가 너무 심해요, 죽을 수도 있어요. 의사에게 데려가겠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잡아가겠소. 샤를로테를 위협하지 않았는데 저렇게 두려워 할 리가 없잖소.”
그때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사들 사이로 작게 웃고 있는 샤를로테가 보였다. 그 미소는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안도하는 것과 동시에 비웃는 듯한 그런 미소. 숨이 턱 막혔다. 저 미소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이혼을 선언하고 황궁에서 나올 때 보았던 똑같은 그 미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남자가 이렇게 다친 게, 샤를로테 때문이란 것을.
그 순간 샤를로테로 인해 괴롭게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샤를로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소문에 시달렸는지. 그렇게 홀로 숨죽여 울고 참아왔던 날들이 눈앞으로 스쳤다.
하, 두려워한다고? 샤를로테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졌다.
나도 모르게 다친 남자를 꽈악, 끌어안았다.
“손대지 마라. 지금 누구에게 손을 대는 것이냐.”
남자의 로브를 움켜쥔 기사의 손을 쳐냈다.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폐하. 검을 거두라 해주십시오. 이 자는 누굴 위협할 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요.”
“…아는 사람인가?”
“네, 잘 알지요.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뒤이어 내가 덧붙인 말에 페르소나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배를 감싼 채 숨죽여 미소 짓던 샤를로테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 자가 바로 제 정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