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비의 대역으로 살아남기-118화 (118/126)

118화. 카일을 찾아서. (1)

2018.08.26.

"헉, 헉, 헉."

"다들 계속 뛸 수 있겠습니까?"

"후, 눈치채기 전에 이동해야 하잖아. 괜찮아."

여자 셋, 남자 하나, 강아지, 흰 새의 조합은 눈에 뜨이기 쉬웠다. 그러니 빠른 속도로 목적지에 도달해야 했다.

"전하께서 정말 적절한 위치에 만드셨네요."

"그치? 카일이 만든 유리온실이 이렇게나 적절하게 쓰일 줄이야. 우리를 쫓는 자들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 부지런히 가자."

솔직히 힘들었다. 밖에 나갈 때 입던 수수한 옷차림에 굽 낮은 신발을 신었다지만, 힘들었다. 목장에서 뛰어놀던 시절에는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는데, 황궁에서 살면서 너무 나태해졌어.

"조금만 더 가면 밖인 것 같습니다. 온실에 혹시 지키는 이가 있을지 모르니 제가 먼저 망을 보겠습니다. 세 분은 기다리시죠."

어느새 빛이 새어들어 오는 비밀통로의 끝에 닿았다. 나는 펠에게 외부로 통하는 문의 작동법을 알려주었다. 펠을 신중하게 장치를 만져서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검을 뽑고 조심스레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여기는 생각 못 한듯합니다. 어서 나오세요."

펠의 말에 우리는 조급한 움직임으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펠은 아나이스에게 온실의 정찰을 맡겼고, 펠의 말을 알아들은 아나이스는 희고 고운 날개를 쫙 펴고 날아올랐다.

온실과 이어지는 비밀 통로는 온실의 중앙에서 밖으로 나오게 설계되어 있었다. 내가 가려는 목적지는, 정령수가 있는 정령계였다.

"모일라, 다른 사람들은 와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모일라도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들어."

"혹시 저는 못 가더라도 걱정 마세요."

"안 돼. 황후는 분명 모일라에게 악한 감정일 거야. 그러니 꼭 통과해야 해. 제발."

약한 입덧이었지만 덕분에 영양 공급이 부족했던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현저히 속도가 떨어졌다. 덕분에 온실의 끝에 가는 시간이 느려졌다.

"까악, 까악."

"이런, 눈치 챘나 봐."

카일이 잘 가꿔놓은 온실에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곧, 병사들이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뛰어, 다들! 저쪽 끝이야."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다들 뛰기 시작했다. 나도 숨이 어디까지 차오를 수 있는지 한계를 느껴가며 뛰었다. 목이 너무 말라 건조해서 숨이 넘어가지 않는다라고 생각할 만큼 열심히 달리자 거의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을 탄 기사들의 속도는 인간의 발걸음 보다 빨랐다. 저 자식들, 감히 카일이 날 위해 만든 온실을 다 망가트리다니! 나중에 모든 것이 끝난 뒤, 꼭 죗값을 치르게 할 테다!

"황태자비 전하! 황제 폐하의 시해범으로 연행하라는 황후 폐하의 명이 계셨습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기사가 나에게 정중한 태도로 외쳤다. 당장 정령계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충직한 기사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알리페르가 앞을 막아서 주었고, 나는 그 뒤에 안전하게 섰다.

"내가 아바마마를 시해했다는 증거는?"

"... 저는 명을 받드는 기사일 뿐입니다."

"황제 폐하의 근위대는 황제 폐하의 명만 받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폐하의 부재 시, 그 대리인이신 황후께서..."

"폐하의 대리인은 황태자 전하이시다. 전하가 부재하시니 황후께서 대리라고 치도록 하지. 그런데 그분이 그대에게 명을 내릴 때 폐하의 인장 반지가 찍힌 문서로 명을 내렸나?"

"아, 아닙니다."

"폐하께서 인장 반지도 내어주지 않은 사람이 어찌 대리인이지?"

"허나, 현재 궁에 계신 분 중 가장 높은 이는 황후 폐하이신지라..."

기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에 반박을 하기 곤란했을 것이다. 분명 황제 폐하의 근위대는 폐하의 명만 따라야 하는 자들이니까, 그분의 생명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의 이유였다.

"진짜 시해범이 나라고 생각하나? 어째서 폐하가 쓰러지자마자 황성 밖에 콘스탄트 공작의 사병이 성내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지?"

"그것은..."

"너희들이 할 일은 나를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폐하를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렇게나 답답하게 굴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너는 정말 내가 아바마마를 시해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분이 내게 어떻게 하셨는데, 내가 그 은혜도 모르는 패륜아라고 생각해? 심지어, 나는 정령의 딸이다,"

"그게..."

그 순간 우리 쪽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이 있었다. 알리페르가 화살을 쳐내는 순간, 뒤쪽에서 검을 들고 달려드는 몇몇 기사들이 보였다.

"황제 폐하의 시해범이 도망치려 한다. 생포가 안 되면 죽여! 어차피 저 여자는 진짜 황태자비가 아니야!"

"다들 가자."

우리는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온실의 끝에 있는 나무 두 그루 사이로 뛰어들었다. 알리페르와 아나이스까지 통과하고 나서 기사들 쪽을 돌아 보니 화살이 무더기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 화살들은 정령계의 결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끝부터 사라졌다.

"아슬했어."

"화, 화살들은?"

에이린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습격 때마다 황궁에 있어서 이런 공포가 처음일 그녀였다.

"바깥에서 보면 그냥 통과되고 있을 겁니다."

"모일라, 괜찮아?"

다행히 카일과의 친분 때문인지 모일라도 무사히 통과되었다.

"네, 괜찮아요. 그런데 황후가 그 사이 황제 폐하를 정말 죽이면 어쩌지요?"

"죽이지 못해. 인장 반지가 어딨는지 못 찾았거든. 그전에 폐하를 죽이면 황제 대리 인장 반지를 가진 카일이 바로 황제가 될 거야."

"인장 반지를 찾으면요?"

"수도 방위군 등 모든 군권을 차지하게 되겠지. 아직은 콘스탄트 공작의 사병이 황성 밖에 있지만 그들을 들여오고 카일을 어찌하던지 죽이거나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7개월 뒤에 공녀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황제로 옹립할 거야."

내 설명에 모일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황궁이 그들의 손에 있는 한 곧, 그런 일이 번어질 것이라는 건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예측 못한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황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장 반지를 빼앗길 염려는 없어."

"폐하가 깊숙한 곳에 숨겨 뒀나요?"

"아니, 내게 맡기셨거든."

출정식 날 폐하와 가진 티타임 때 받은 작은 상자 안에 든 것이 폐하의 인장 반지였다. 국새를 내게 맡긴 아바마마는 역시 혜안을 가진 분이셨다.

"다행이네요. 이곳이 정령계라고 했나요? 여기서 황태자 전하께서 오실 때까지 버티고 있으면 절대 빼앗기지 않겠어요."

"나갈 거야."

"네?"

"누님?"

"카일을 찾으러 갈 거야. 그래서 정령계로 온 거라고."

다들 말리기 시작했다. 황성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부터 인장 반지를 지켜야 한다, 카일이 어딨는 줄 아느냐, 여기서 어떻게 나갈 생각이냐, 아까 병사들 중에서 나더러 가짜라고 하는 이가 있었다, 등등 여러 가지 말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일단 인장 반지는 여기 정령계에 두고 갈 거야. 사실 제일 걱정인 것은 이미 아바마마가 돌아가셨는데 황후파가 숨기는 것일까 봐 찝찝한데, 지금 밖의 기사들 분위기를 보니 걱정 안 해도 되겠어."

정령계의 경계에서 보니 우리를 습격한 병사들은 근위대의 손에 포박되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의 명령도 없이 일을 저지른 자들을 보고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겠지. 게다가 내 말도 들었고.

"매형을 어찌 찾아가실 생각입니까? 저들의 마음이 돌아섰다 해도 일부이고,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여기가 괜히 정령계가 아니거든?"

사실, 나도 도박이긴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무슨 소리예요?"

안전이 확인되어서 마음이 놓인 에이린이 내게 질문을 했다. 나는 에이린을 보고 웃으며 답해줬다.

"정령계는 인간 세상 어느 곳이든 연결되어 있어. 그리고 정령들은 카일의 생사를 제일 잘 알고 있을 거고."

내가 정령들을 볼 수만 있었어도 진작에 와서 확인했을 텐데... 그래서 도박이라는 것이었다. 딸이라고 인정해주고, 친밀해졌다지만 나는 정령에게 명을 내릴 수도 없었고, 대화도 할 수 없었다.

"그렇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누님께서는 정령을 볼 수가 없지 않으십니까?"

"어? 어, 그래서 도움을 받아야지. 내 부탁을 들어 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령계로 와서 불만스러운 표정의 알비케라를 돌아 봤다. 내 간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비는 살짝 으르렁거리며 정령들을 벌써 경계했다.

"제가 더 빨리 수련해서 정령들을 소환하는 방법을 배웠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소드마스터라고 다 정령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뭘. 정령과의 친화도가 더 중요한 것이기에 알리페르가 나중에 강해진다 해도 카일처럼 정령을 부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카일이 아니라서 생명력을 써야 할지도 모르고... 절대 안 돼 그건.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 지켜주고 있는걸."

어째서 이 아이는 아직도 내게 늘 미안한 마음일까? 내가 더 잘해주지 못해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한데... 게다가 지금도 나 때문에 이렇게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을...

"자, 이제 가자."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령수 곁으로 걸어갔다. 아나이스는 지난번처럼 즐거운 비행을 하고 있었고, 알비케라는 으르렁거리는 정도가 심해졌다.

조금은 친해졌다고 봤는데 아니었니?

"누님 정령들이 나타났습니다."

대화를 나누지는 못해도 다들 정령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만 빼고.

"알비, 부탁할게. 나, 카일이 너무 걱정되어서 견딜 수 없어."

"끼웅."

알비는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더니 정령수 앞으로 갔다. 정령들은 내 말을 알아듣기에, 알비케라가 그들의 말을 전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카일은 무사한 거죠? 어디 크게 다친 건 아니죠?"

"멍."

"휴우, 다행이다."

겨우 마음이 놓였다. 멀쩡하게 살아 있으면서 왜 행방불명으로 되어 버린 거지?

"어디에 있는 거예요?"

"멍멍멍."

"응?"

왜? 어째서 거기로 간 거지?

"왜 그러십니까?"

"카일이... 비스 영지의 금지된 숲에 있대. 그런데 금지된 숲에서 카일이 자신들을 부르지 않는 한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긴 힘들대."

카일이 어째서 거기로 간 거야? 전쟁 중인데 어째서? 그래, 프리케가 우리를 공격했다는 것도 사실 이상했어.

"월월월!!"

"너희들은 금지된 숲에 갈 수 없어. 인간에게 아직 허락되지 않은 것을 가져올 수 있어서 허락할 수 없다는데? 딸인 나만... 갈 수 있어. 원한다면 길을 열어 준대."

"안 됩니다. 그런 곳에 누님을 보낼 수 없어요. 초대가주께서 금지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맞아요. 비 전하. 위험하다잖아요."

하지만... 카일도 위험한걸. 어째서 그리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카일을 도와주고 싶어.

"어차피 우리가 가진 식량으로 정령계에서 버티는 데 한계가 있어. 일단 근처로 가자. 내 기억에 멀지 않은 곳에 아버지의 별장이 있지 않아? 우리가 벌써 그리로 이동했으리라 생각 못할 테니, 거긴 안전할 거야."

내 말에 알리페르는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사실 그 편이 가장 안전했다. 전쟁 중인 것이 불안하긴 했지만, 차라리 비스 기사단과 황태자의 군대가 있는 비스 영지 쪽이 황후파가 점령해 가는 황궁보다는 낫겠지.

알비, 내 말 들리지? 내 의사를 정령들에게 전해줘.

"멍멍!"

"준비됐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반대편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별장의 로비인 것 같았다. 사용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다들 그리로 이동한 뒤, 알리페르가 이번에도 결계를 먼저 통과하고 상황을 살핀 뒤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별장의 사용인들이 깜짝 놀란 듯했지만 작은 주인의 모습에 소요는 금방 진정되었다.

모일라와 에이린도 결계를 넘어서는 순간, 에이린에게 외쳤다.

"나, 카일을 찾아서 아바마마부터 구해야 해. 미안해. 안전하게들 있어!"

"비 전하, 안 돼요!"

나는 모일라와 에이린의 손을 뿌리치고 그들을 밀어 보냈다. 그리고 곧 결계가 닫혔다.

"알비, 정령들에게 카일이 있는 곳으로 예상되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보내달라고 해."

그러자 아까 별장의 모습이 비쳤던 자리에는 조금은 음산한 숲이 펼쳐졌다.

"아가야, 힘들지? 조금만 버티면 네 아버지를 만날 거야. 참고 힘내자. 알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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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변경 및 신작 안내입니당^^

2018.08.26.

헤헷. 제게는 중.고.대.직딩 시절까지 함께한 친구가 있는데요ㅎ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그려요.

그래서 제가 공모전 본선에 진출했을 무렵 일러스트를 그려보자고 권유하고 같이 새로운 꿈을 위해 노력중이랍니다.

아직 저도 병아리 작가이고, 친구도 초보 그림쟁이이지만^^ 친구가 예쁘게 세이와 카일을 그려줬어요ㅎ 그래서 표지를 살짝 바꾸어 보았답니다.

현재 저는 친구에게 킹크랩을 먹이고 굴려서 차기작 남녀 주인공들을 모두 뜯어내고 여전히 계속 연습시키고 있어요ㅋ

저희 꿈이 저는 카페에서 글을 쓰면 거기에 들어갈 삽화를 친구가 옆에서 그려서 네이버 정연에 함께하는 것이랍니다ㅎㅎ

그리고 차기작도 연재 시작했어요ㅎ

'왕녀님이 제국 길들이는 법'라는 작품이에요.

대륙통일을 외치며 전쟁을 시작한 전쟁광 황제와, 미래를 꿈꾸는 왕국의 보물, 왕녀 사피엔시아의 이야기에요.

전쟁의 피해를 막기위해 신전에서 기도를 올리던 왕녀는 한국의 5살 소녀의 몸에 빙의해 30년 가까이를 살게되었답니다.

사랑하는 남자와의 신혼여행 후 귀국 비행기가 추락해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시 전쟁을 앞둔 왕국으로 돌아온 왕녀는 제국의 볼모로 끌려가 황제에게 수모를 겪어요.

하지만 꿈속에서 본 책에 담긴 미래와 한국에서의 삶을 바탕으로 제국에서 당당히 살아남는 왕녀의 사랑과 삶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아직 비축을 많이 쌓지 못해 조마조마하지만ㅎㅎ 일단 연재 들어갑니다ㅎ 초반 수정이 잦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요즘 내글구려병이 심해서... 황.대.살의 후광이 너무 커요...

아무튼 응원부탁드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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