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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비의 대역으로 살아남기-85화 (85/126)

85화. 미래를 꿈꾸는 달콤한 시간.

2018.07.04.

내가 요구한 것은 뽀뽀였는데, 하아. 그래 이걸 예상 못 한 내가 죄인이지.

"운디네 불러줘요, 얼른! 퉁퉁 부었잖아!"

어찌나 격렬하게 했는지 살짝 피도 맺힌 것 같아. 무슨 키스하나에 온 정열을 쏟고 그러냐.

물론 싫다는 소리가 아니다. 단지, 밖에 소드마스터 둘이 우리 이러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었을 거 아냐! 에효.

민망함은 언제나 내 몫이지요. 심지어 마차에 알비가 있었다. 착한 내 강아지는 고맙게도 자는 척을 해주셨지만.

"잠시만."

핥짝!

으아아악! 이 남자가! 한 번 더 내 입술을 핥은 카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입술에 피가 맺혔길래. 운디네!"

"으으으!"

민망하게도 커튼 사이로 테일러경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고개를 바로 돌려줬지만, 이건 정말, 어휴...

나는 카일의 등짝을 마구 후려쳤다. 하아, 세상에 황태자의 등짝을 마음껏 때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흠, 이건 마음에 드네. 나만 때릴 수 있는 남자... 응? 뭔가 약간, 변태 같잖아.

우리는 대리석으로 멋들어지게 지어놓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얼마 만의 데이트인가? 좋다. 너무 좋아.

우리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로 이동했다. 일단, 어머니의 일로 우울한 황태자비를 위로하기 위해 온 자리니까, 쭈굴한 모습을 보여야지.

한없이 가녀린 척, 속상한 척, 힘든 척하면서 걸음을 내디뎠다.

"어, 세이? 많이 힘들어? 아까 내가 못 본 사이 큰일이라도 겪은 거야?"

응? 당신이 왜 낚여요? 으휴, 내 연기가 너무 리얼했나?

한껏 염려스러운 카일의 표정을 보자 장난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장난은 언제나 카일의 큰 근심을 불러일으키니까, 참자.

"괜찮아요. 직원들이 보고 있어서 그랬어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그제서야 얼굴을 푸는 카일이었다. 어쩜, 내 남자는 이럴까? 내가 바람 불면 훅 날아가 버릴까 봐 걱정되는 거야?

"당신은 날, 너무 많이 걱정해서 큰일이에요. 이럴 거면 마탑주한테 날 작게 만들라고 해서 주머니에 넣어 다니지 그래요?"

"너 작아지면 밤에 못하니까 안 돼. 절대로. 내가 7년을 어떻게 참고 살았는데!"

7년? 아... 카일이 날 만난 것이 정확히 7년 전이구나. 또, 카일이 케이일지도 모른다는 증거 하나를 찾았다.

헤에, 속 시원하게 묻고 싶지만, 아직은 확실하지 않으니까. 좀 얼른 기억이 나면 좋을 텐데...

만약에 아니라고 하면 실망한 티 내게 될까 봐 못 묻겠어. 그건 정말 표정 관리가 안 될 듯! 다른 남자 때문에 실망하면 카일이 속상해할 거잖아.

돌아가면 모일라에게 7년 전 일을 일단 자세히 캐물어야지.

"당신, 그거 알아요? 나중에 나 임신하면 10개월간 당신 수절시킬 건데?"

"어? 왜? 임신해도 하면 되잖아."

"누구 맘대로요? 우리의 아이의 안전을 위해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할 거예요."

카일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아, 웃겨. 진짜 이 변태 황태자님은... 잠깐, 당신 내가 좋은 거야? 나랑 자는 게 좋은 거야? 앙?

"차, 참을 수 있어. 아니참을 게. 꼭. 널 닮은 딸을 얻으려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뭐. 그거 못한다고 말라죽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거 하지 않는다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아, 뭐야. 진짜, 이 남자 너무 사랑스럽잖아.

"나는 당신 닮은 아들이 좋은데요?"

"안 돼. 아바마마도 황녀였음 좋겠다고 했다고! 널 닮아야 해."

"흐음, 그럼 내 동생들처럼 이란성 쌍둥이로 해야겠다."

"쌍둥이는 낳는데 위험할 수도 있어. 안 돼."

"피이, 전부 자기 맘대로야."

"10개월 참겠다는데 그 정도의 권리는 달라고!"

푸흡, 아, 어쩌지? 밥 대신 이 남자를 잡아먹고 싶어진다고 이러면. 하지만 여긴 너무 야외야. 게다가 귀가 뚫려있는 두 소드마스터가 너무 가까이 있어 젠장!!

다행히 내 욕구가 분출되기 전에 맛있는 코스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알비가 먹을 요리도 있었다.

아, 조금 미안하네. 강아지조차 밥을 먹는데, 다들 우리 호위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것 아닌가 몰라.

"기사들 식사는 어떻게 해요?"

"우리는 코스라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니까, 교대로 먹을 거야. 메인 요리만으로도 여기 요리는 최상급이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마음껏 먹어."

카일의 말에 작은 죄의식을 떨치고 전채로 나온 관자 요리를 입에 넣었다. 향긋한 레몬향과 오이의 아삭함이 관자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으으응! 카일 맛있어요. 그런데 음, 여기 제국 음식을 다루는 곳이 아닌가 봐요?"

"남부 왕국 요리집이야. 세이가 해산물을 좋아하잖아. 그래서 온 거야."

아잉, 진짜 내 취향까지 살뜰히 챙기다니. 최고야.

"병문안 핑계로 잘 나왔네요. 호수도 예쁘고, 음식 맛도 좋고."

"이제는 그 여자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낸 거지?"

카일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왔다. 내부 사정을 들었겠지만 걱정이 됐나 보았다.

"음, 그런 것 같아요. 좀,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게 힘없고 나약한 여자한테 내 인생을 통째로 휘둘렸다니... 참 한심하더라고요."

어릭석은 아르세이아. 바보 같이 이름까지 빼앗기며 잘못도 없는데 고통받고 살았어. 이쯤 되니 그 여자를 만나기 전에 내가 겪었던 일들도 후작부인의 조작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자신을 그렇게 되돌아볼 수 있게 됐다니 완전히 극복했나 보네. 잘했어. 아르세이아."

"당신한테 칭찬받으니까 좋다. 봄에 당신이, 후작부인을 막아줬잖아요. 나, 그때부터 당신이 너무 좋았어요. 동생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면서도, 당신이 좋았어. 계속 당신 옆에 있고 싶었어요."

내 말에 카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때 네가 너무 울어서 내 심장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 거기다가 기절까지 해서 얼마나 놀랐다고!"

"당신 품이 놀랍도록 안심이 돼서 마음 놓여서 기절한 거예요. 처음으로 그 여자를 막아준 사람이 당신이었는걸요."

내 말에 카일의 눈이 잠시 찡그려졌다. 속상했나 보았다.

"나 이제 진짜 괜찮아요. 후작부인의 채찍을 보고도 움직일 수 있었는걸요. 예전 같으면 꼼짝도 못 했을텐데, 그거 내가 뺏어서 부러뜨렸어요."

내가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하는데도 카일의 미간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그가 날 얼마나 걱정하고 아끼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음 아파하지 마요. 결국에는 당신 덕분에 이렇게 강해져서, 이렇게 이겨냈잖아. 당신은 날 지켜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날 강하게 만들어 줬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하는걸요."

"나도... 네가 있어서 더 강해졌어."

"그럼 우리 앞으로도 서로 더 강해지게 만들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로 해요. 제국 최강, 아니 대륙 최강의 부부, 어때요?"

"네가 원한다면 뭐든지."

우리는 함께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어? 뭐지? 우리 이제 웃음소리도 닮아버린 것 같아. 아잉, 도대체가 이러다가 죽을 때 되면 너무 닮아서 남매인 줄 알겠네.

"자, 이제 배불리 먹어볼까?"

"우와! 카일!! 대박! 이거 진짜 맛있어요."

붉은 바닷가재를 반으로 갈라 버터를 바르고 치즈를 올려 오븐에 구워진 요리가 나왔다. 거기에 오징어 먹물이 들어간 파스타가 곁들여졌다.

이게 뭐야. 어째서 세상에는 내가 먹어보지 못한 요리가 이렇게나 많은 거니!!

알비도 만족스러운지 계속 찹찹 거리며 고기와 뼈를 뜯고 있었다.

"저기, 남편님?"

"응?"

"부자라서 감사해요."

먹는데 이렇게 사치하게 해주셔서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합니다!!

"크크큭, 내 돈으로 사치하는 건 싫다며?"

"맛있는 건... 조금만 사치할게요."

"내가 생각해 봤는데, 온실에 바다도 만들까 봐. 그럼 우리 세이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가장 신선한 상태로 공급 가능하잖아."

"그거 유지하는데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럴 체력 있으면 그냥 나한테 써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겨울을 앞둔 테라스의 공기는 조금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우리 둘의 온도는 조금도 식지 않았다. 아니, 어째서 우리는 점점 더 뜨거워져만 갈까?

"카일, 하늘은 정말 날 많이 사랑하고, 내 편이 되어주나 봐요."

"응? 내 라이벌은 하늘인 건가?"

"풉, 라이벌이 아니라 감사해야죠. 당신과 나를 이렇게 만나게 해줬는데.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 바로 하늘이 날 사랑한다는 증거인 걸요."

내 말에 카일의 얼굴이 저 호수에 부딪혀 흩어지는 햇빛만큼이나 반짝반짝 빛이 났다. 기분 좋은 미소. 나만 가질 수 있는 미소가 내게 살며시 스며들었다.

올해 겨울은 혼자가 아니라서 따뜻하겠다. 그게 너무 기대됐다. 추운 겨울에 카일과 따뜻한 난롯불에 고구마랑 감자를 구워 먹으며 기대앉아 있는 상상.

거기에 알비가 내 무릎 위에 앉아서 우리에게 재롱을 떨겠지? 알리페르랑 에이린은 우리를 위해서 고구마를 구워주고.

그 상상이 내 심장을 따뜻하게 채워줬다.

"무슨 생각하는데 그렇게 입꼬리가 올라가?"

"당신이랑 함께할 따뜻한 겨울이오. 지금까지는 겨울에 난로에 불을 피울 수 없어서 조금 춥게 지냈거든요."

카일이 내 말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불을 무서워하니 방안의 벽난로를 켤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누가 하겠어?

"프리케나 에이린이 낮에 미리 불을 피워서 방을 데워주곤 했어요. 가죽 주머니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워주고. 그래도 새벽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추위에 떨었죠."

카일이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보였다. 또, 또 그런다!! 나 괜찮다니까!!

"아, 그래서 목장의 양이랑같이 자서 아프거나 하진 않았어요. 걱정 말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앞으로는 당신이랑 함께 불에 맞설 거니까."

"나는 못난 놈이었어. 널 지키겠다고 맹세해놓고 못 지켰잖아. 혼자 두어서 널 고통받게 했어."

"카일, 나는 당신이 지나간 일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속상해하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도 속상해하면 내가 더 마음 아프거든요? 매번 내 과거 이야기 들을 때마다 속상해 하면, 내가 말을 할 수가 없잖아.

"지금이, 그리고 앞으로가 더 행복할 거잖아요. 그니까, 응?"

포크를 들어 랍스터 살 한점을 뜯어낸 뒤 쪽 뽀뽀를 했다. 그리고는 카일의 입에 그 쫄깃한 살을 넣어주었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지금에 충실해요. 알았죠?"

"응, 그래. 대신 널 힘들게, 아프게 하는 모든 것을 다 없앨 거야. 절대 그 몬테가로 돌아간 그 여자는 용서 안 해."

나는 카일의 다짐을 들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런 살벌한 말을 하면서도 나를 보는 눈에는 꿀이 떨어졌다.

그러니 믿지 않을 수 있겠어? 날 지켜준다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의 사랑의 시작이니까.

"남부 왕국의 음식도 맛있네요. 다음에 한 번 더 와요."

"응. 자주 오자."

우리는 잠시 호숫가로 나가 말을 타고 산책하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속보만 했다. 알비도 곁에서 우리를 쫓았다.

아, 달리고 싶다. 날고 싶어!

"시시해."

"오랜만에 내기라도 할까? 단, 지난번처럼 내 말을 꼬셔버리기 없기!"

아차차, 그러고 보니까 그런 일도 있었네.

"그때 나한테 질 거 알면서도 내기 한 거예요?"

"어."

"내가 그때 뭘 요구할 줄 알고요?"

"날 버리진 않을 것 같았어."

피, 그때 황궁 나간다는 소원은 안 된다면서 안절부절해놓고는! 좋아. 오늘은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겨보겠...

"그런데,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내 힘 안 쓰면 내가 불리하잖아요. 쳇."

"그런가?"

당할 뻔했다. 나는 역시 똑똑해! 낚이지 않았어. 이 뻔뻔한 남자 보게! 모른척하기는!!

히이이잉!!

갑자기 말들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호수 근처의 여러 동, 식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이 내게 전해졌다.

공포, 두려움이 뒤섞인 혼란. 뭐지?!

갑자기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람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멍! 멍! 멍!"

"카일!"

"세이, 위험한 것 같아. 가까이 와."

놀란 말을 진정시키며 카일의 곁으로 다가갔다. 기사들도 모두 검을 뽑아들고 우리의 곁으로 몰려왔다.

"카일, 저기, 저기에 뭔가 있어요."

내가 가리킨 곳은 호수 옆의 작은 숲이었다. 그 숲의 나뭇잎들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커짐과 동시에 땅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쿵!!

울림이 멈출 때 즈음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 위로 올라온 그것은 괴이한 소리를 내며 우리가 있는 곳을 돌아 보았다.

"크르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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