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나의 추종자들은 늘어만 가고.
2018.06.09.
"루시엘라, 어서 와요."
"밤하늘을 비추는 작은 별, 황태자비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플로랄 영애의 방문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은 영애와 앞으로의 교육 방향을 의논하고, 또, 식물도감의 책 편찬을 새로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라는 로열 아카데미의 교수도 함께 왔다. 고지식에 보이는 늙은 교수는 어쩐지 아주 긴장되어 보였다.
저기요? 제가 늑대도 아니고, 안 잡아먹거든요?
"로열 아카데미의 생물학 교수 플로란스입니다."
"반가워요. 교수님."
"황태자 전하께서 말씀하시길, 제 책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나는 숨을 들이 마셨다. 내가 자연과 교감한다는 소식은 카일의 탄생일에 널리 널리 알렸다. 게다가 일부러 소문을 더 과장해서 퍼뜨렸다.
나를 카일만큼이나 기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하하, 물론 언론플레이의 힘이다!
그렇다고 이 고지식하고 깐깐하게 생긴 교수가 내 말을 믿어줄까 조심스러웠다. 안 믿으면 어떻게 설득하지?
그런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고 플로랄 영애는 아주 해맑은 미소로 내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네, 제가 교수님의 식물도감을 보다가 이상한 것을 여럿 발견했답니다. 이것은 리그랄리아가 아닙니다. 리그랄리아는 겨울잠에서 깬 곰이 제일 먼저 찾는 풀로 봄철 기력을 회복하는데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도감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톱니 달린 하트 모양의 풀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도감의 잎은 리그랄리아가 아니에요. 리그랄리아는 이런 광택이 없고 솜털이 많아요. 또 줄기의 양쪽에 보라색 줄이 있답니다. 이 그림은 클라타 미노르에요. 약성이 있지만 독이 있어서 함부로 채취해서 먹다가는 위장이나 신장을 크게 상하게 한다고요.
내 설명에 교수는 심각한 얼굴로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실수를 눈치챈 듯했다. 얼굴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올라오는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죠? 잘못하셨죠?
이런 오류투성이 책이라니!
이것뿐만 아니었다. 나는 차근차근 오류를 지적했고, 잘못 알려진 식물들의 효능을 지적했다.
"이 식물은 소량만 먹으면 민가에 알려진 대로 해열 효과가 일시적으로 오지만 일정량 이상 장복하면 독성이 쌓여 오히려 고열을 일으키며 내장기관을 상하게 해요. 이런 것을 검증도 없이 싣다니, 로열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에 대한 신뢰가 뚝뚝 떨어지네요."
솔직히 내 말을 전혀 안 믿거나 자존심 때문에 우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강하게 말했다. 건방지게, 오만하게 만든 표정이 먹혔는지 교수님 표정이 이상했다.
으응? 저건 자존심 상한 사람의 표정이 아닌데? 이, 이것은?? 낯익은 저 모습은!! 으, 으악!!
"비 전하!!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갑자기 내 손을 꼬옥 붙잡고 간절하게 외치는 나이 많고 머리숱이 아주 적은 아저씨의 모습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저기요? 손을 얼른 놓지 않으면 내 남편이 싫어할 겁니다.
"네?"
"저는 식물학을 담당하고 있지만 원예나 농업 쪽이 더 전공입니다. 그래서 식물도감을 편찬하긴 했으나 자신이 없었습니다. 대지의 사랑을 받고 모든 식물에 대한 지식을 갖춘 비 전하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아하하하! 옆에서 플로랄 영애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루시엘라, 제발 당신까지 이러진 말아요.
하아, 덕분에 나는 이 교수와 함께 새 식물도감을 만들기로 했다. 일이 늘었다.
하아아아, 나는 일복 터진 황태자비인가 봐.
한편, 프리케가 내 어머니를 구하러 떠난 뒤 카일은 무지 신나 보였다. 눈엣가시를 뽑은 후련함 때문인가?
나는 보답도 못해주는데 프리케가 날 위해 또 희생하는 것 같아 마음 아파 죽겠는데, 나쁜 사람! 친해진 척 한 것은 연막이었어.
그래서 지금 플로랄 영애와 함께 하는 회의 내내 바보처럼 보일 만큼 좋아하는 티를 내고 있었다.
입 다물어요. 침 떨어지겠다.
"루시엘라, 그럼 아카데미에 남부 왕국인 이에니스의 교수들을 초청하자는 거예요?"
"네, 비 전하. 제국과 우방이기도 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많아서 평민 여아들에게 많은 귀감이 될 거예요. 거기에는 제국 출신의 교수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남부 왕국이라. 스타티나가 있는 곳이랬지? 스타티나가 거기서 재밌게 산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네.
카일은 이 안건에 찬성했다. 나중에 우리 사이에 혹시 황녀가 태어나 황위를 물려받게 하려면 미리미리 여자 관료나, 학자들이 진출하면 좋을 것 같다 했다.
"하지만 카일, 귀족들이 많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평민들을 위한 아카데미부터 시작하자는 거야. 작은 곳에서 변화를 일으키다 보면 더 큰 변화를 만들기 쉽잖아."
이런 카일의 모습에 플로랄 영애는 감동받은 것 같았다. 알게 모르게 많은 세월 동안 차별받으며 살아온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겠지.
"루카스님, 후원금은 잘 모이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비 전하께서 탄생연 때 워낙 홍보를 잘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내가 아주 열심히 귀부인들에게 떠들었지.
아카데미에서 평민들에게 예법과 기술을 가르치고 실력이 뛰어난 인재는 아카데미에서 보증을 서 줄 예정이었다.
후원금을 많이 낸 귀족들에게 인재들을 우선 추천하고 고용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마지막 부분을 열심히 강조했었다.
"볼라드 공작부인이 비 전하의 사업을 후원하기 위해 조만간 후원회를 조직하고 자선 파티를 열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모님이 비 전하를 대단히 좋아하고 존경하세요."
화악, 아직은 이런 칭찬이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민망하고 어색해 하는데 다들 흐뭇한 표정이었다.
"이제 칭찬에 익숙해지지 그래?"
"이런 점이 비 전하의 매력이지 않습니까?"
"네가 왜 나의 세이의 매력을 운운하는데?"
여전히 유치한 두 남자들. 플로랄 영애 앞에서 참, 잘 하는 짓들이야.
"저기, 전하. 저는 비 전하의 매력을 마음껏 이야기 해도 되나요?"
하아, 그만들 좀 해!!!!!
"내일 수확제는 두 분이 같이 나설 예정이시죠? 프리케경 하나가 빠졌으니 경비를 더 튼튼히 해야겠습니다."
"설마 지난번에 실패했는데, 바로 또 습격을 벌일까요?"
"황태자께서 후궁 철폐를 외치는 바람에 이제 다음 황제의 모후를 노릴 방법은 비 전하의 제거뿐이니까요."
경솔한 짓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그들의 세력을 누르지 않는 한 계속될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법적인 빌미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서로가 유일한 반려라는 확인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날은 카일도 곁에 있을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당연히 내가 널 지킬 거야. 하지만 방심하지 말아야지."
슬펐다. 이제는 황궁 밖에 나가 노는 것도 힘들어졌다. 너무해!!
"시무룩하지 마, 모든 것이 해결되고 나면 다시 나가 놀 수 있을 거야. 황궁에서 자주 탈출하자!"
무서우리만큼 내 마음을 잘 읽는 카일 덕분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보좌관의 얼굴이 일그러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어!
다음날 카일과 나는 수확제 참석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수확제 전통의상인, 앞치마가 있는 편한 옷이었다.
수확제는 신년제와 더불어 황실과 제국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행사 중 하나였다.
"카일이 황제 대리라서 황후도 참석 안 하는 걸까요?"
"그렇겠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괜히 찝찝했다. 우리가 차기 황제와 황후니까, 그래서 우리 부부가 나서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는데 묘하게 거슬렸다.
"카일, 오늘 출발 전에 태양궁에 들렸다 가요."
황후의 속내를 알아내야겠어. 자고로 미리미리 대비하는 자가 이기는 법이거든.
오후부터 시작하는 수확제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꿍꿍이가 있다면 간을 봐야 했다.
"아바마마, 큰 행사를 저희끼리 해내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 격려를 받고자 왔어요."
우리의 방문에 황제 폐하는 기분이 좋으셨던 모양이었다. 업무를 쉬면서 건강관리도 하고 즐겁게 사시길 바랐는데 기운이 많이 빠지셨다.
"아바마마, 감기라도 걸리신 거예요? 많이 피곤해 보이셔요."
"괜찮아. 걱정 말거라. 그나저나 아가, 요즘 손수건을 만든다며? 내 것도 당연히 만들고 있는 거지?"
으윽, 왜 다들 나한테 손수건 타령인 거야? 이미 내 손가락 만신창이인데, 폐하 것까지 만든다면 내 엄지는 곰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요. 아바마마 것도 준비하고 있어요. 제 솜씨가 미천해서 빠른 속도로 만들진 못하니까 좀 기다려주세요."
"신년제 때나 받으실 겁니다."
우씨, 이 남편이!! 하지만 사실이었다. 한 땀 뒀다가 다시 풀고, 또 뒀다가 다시하고. 심지어 처음 시도한 손수건은 바늘구멍으로 비단 결이 너무 상해서 버렸지. 크흑.
얼른 어머니를 찾아서 제대로 배우든가 해야지.
우리는 적당히 황제 폐하와 대화를 나누면서 눈치를 살폈다. 황후는 몸이 안 좋음을 내세워 나오질 않았다.
떠보려 했는데, 아쉽게 됐어.
태양궁을 떠나려고 1층 로비까지 내려가는 길이었다.
푸드드득.
웬 앵무새 한 마리가 로비 위를 날아다녔다. 얼굴이 낯이 익은데... 아 황후의 응접실에 있던!!
태양궁의 시종들이 그 새를 잡으려고 뜰채 같은 것을 휘두르고 난리였다.
"카일, 혹시 저 새 카일이 잡아 줄 수 있어요?"
좋은 생각이 났다. 내가 직접 부를 수도 있었지만 황후의 사람들 앞에서는 동물과의 교감을 숨기는 편이 나았다.
"물론이지."
카일은 실프를 불러서 가볍게 날아올라 천장에 있던 새를 손으로 잡아챘다.
오~ 멋진대? 카일 품에 안겨서 날 땐 몰랐어. 카일이 이렇게나 잘 날아다니는지!!
"어머, 이 아이는 황후 폐하의 응접실에 있던? 카일, 나도 앵무새 키우고 싶은데 잠깐 만져봐도 돼요?"
주인이 있는 앵무새이니 나와 신뢰를 쌓기 쉽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누구야? 천하의 늑대 대장도, 사나운 불곰 아줌마도 내 친구로 만들었던 사람이란 말이지.
"그래, 준비해."
"불꽃?"
"좋아, 그 정도면 돼."
"가장 화려한 순간."
앵무새에게 황후가 했던 말을 시켰다.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앵무새가 더 많은 정보를 말하도록 유도했다.
"어머, 카일. 이 새 정말 말을 잘하네요."
"그러게, 똑똑해."
조금만 더 시키면 중요한 정보를 알아낼 것 같았다.
"새를 돌려주십시오. 황후 폐하가 아끼는 새입니다."
"우리가 새를 다치게라도 할 것처럼 말하는군. 무능력한 시종들이 새를 놓친 실책을 만회해 준 나인데 말이야."
카일은 비꼬는 능력도 타고난 것 같았다. 아주 그냥 아니꼽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 당하는 사람은 제대로 기분 나쁠 것 같았다.
자신을 돌보던 사람이 나타나서인지 앵무새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돌려보내야 했다.
아까워. 진짜.
"그래도 대충 감은 오는데?"
카일은 앵무새의 말에서 어느 정도의 단서를 읽어낸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역시 유능한 황태자비야. 내가 반려를 정말 제대로 골랐단 말이지?"
"진짜요?"
"응, 최고야."
뭔지 모르겠지만 나 뭔가 제대로 하나 성공했나 봐. 뒷걸음질 치다 쥐도 잡고 하는 거지 뭐.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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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커미션 받은 것 구경하러 오세요ㅎ
2018.06.10.
예선에서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주문했던 표지가 어제 도착했어요^^
베스트리그 갈 수는 있을 거란 자신감은 어디서?? ㅋㅋㅋ
아무튼, 최소 베스트리그행은 확정되었고, 25일 이후로 아마도 가게 되겠죠?? ㅠ.ㅠ 결선은 못 갈 거야ㅠ.ㅠ
너무 다들 쟁쟁하고 재미있으셔서...
아무튼 독자님들께 표지 먼저 보여 드리려고 블로그 오픈 했습니다. 달랑 표지 소개글 뿐이지만ㅋㅋㅋㅋㅋ
구경하러들 오세요♡♡♡
작가의 말에 작가 블로그를 누르시면 바로 슝 세이, 카일 곁으로 날아갑니다^^
http://naver.me/51cVO1W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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