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비의 대역으로 살아남기-59화 (59/126)

60화. 데뷔탕트 - 후궁 간택연. (1)

2018.06.05.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애들의 데뷔탕트이자 후궁 간택연 날이 밝았다.

이미 어제, 그제 밑밥을 많이 깔아놨었다. 그럼에도 어제 데뷔탕트에서 수많은 영애들의 욕심을 읽을 수 있었다.

"하아, 내 잘난 남편 덕에 나는 투기 심한 본부인이 되어버렸어."

"그러게 어제는 참지 그랬어요."

"옛날에 여자들이 막 발가벗은 채로 카일한테 뛰어들고 그랬다잖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었어."

평소 같으면 날 놀리기 바빴을 에이린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좀 덤벼봐. 그럼 나도 네 연애사로 놀리게.

"비 전하만 열렬한 시선을 보낸 건 아니니 투기 심하단 소리는 안 들을 거예요. 황태자께서 비 전하를 보는 눈은 연회장 안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뜨거웠으니요."

그건 그래. 우리 둘 다 눈 빠질뻔했거든.

"대부분의 영애들은 가문을 위해서 사랑받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오늘 참석하는 것으로 알아요."

가문이라... 자신의 행복보다 가문의 이익이 더 중요한 건가? 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미래보다 가문의 미래가 더 소중해?

"몇몇은 황태자 전하의 수려하신 외향에 반해서, 언젠가는 틈을 만들겠다는 심산이겠지만요. 두 분이 싸우는 날이 언젠가는 있을 것 아녜요?"

절대 안 싸워. 그냥 차라리 내가 다 져주고 말겠어.

"너무 걱정 마세요. 별일 없이 넘어갈 거잖아요."

"응, 그래도 계속 후사 문제가 지속적으로 나올 거니까, 걱정이야."

"아직 젊잖아요. 그리고 사이가 너무 좋으면 오히려 아이가 늦게 찾아온다던데요?"

그런가? 하긴, 우리 초야 이후, 너무 들러붙어 있긴 해. 좀 떨어져야 하나? 그러기엔 그게 너무... 좋단 말이야!!

헉, 나 이런 여자가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밝히는 여자가 된 거야. 정말 남편 정말 잘 못 만나서 변해 버렸어.

"왜 얼굴이 빨개져요?"

"흠흠, 아니야. 아무 것도."

너도 나중에 알리페르한테 시집가고 나면 알 거야. 뭐가 좋은지, 왜 좋은지.

화려한 치장을 마치고 카일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연회장에 도착했다. 오늘 내 인생 최고로 돈 들인 치장이었다. 보석도 번쩍번쩍, 내 온몸을 휘감고, 카일이 선물해준 티아라도 쓰고, 금가루도 아낌없이 뿌렸다.

이게 다, 얼마일까?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어째서 이렇게나 부담스럽단 말인가!! 이런 사치는 내게 맞지 않아!!

연회장 입구에서 카일과 나는 영애들에게 축하 인사와 함께 꽃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예전에 무료하게 꽃을 나눠주던 카일은 내가 활짝 피운 꽃송이만큼이나 활짝 웃으며 나눠줬다. 물론 내게만 웃고 영애들을 향할 때는 무표정이었지만. 호호호.

황후는 내내 그런 우리를 못마땅한 눈으로 봤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닭살 커플로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드디어 모든 영애들의 입장이 끝났다. 그래서 우리도 홀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모든 여인들의 눈에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작년 가을, 데뷔탕트에서 카일의 선택을 기다리던 여인들처럼. 모두들 카일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기대가 산산이 부서질 것을 생각도 못한 체.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오. 오늘 밤은 그대들의 시간이니 충분히 즐기기를 바라."

굳이, 본인도 있는데 카일에게 축사를 시키는 황후가 참으로 얄미웠다.

홀에는 잔잔한 선율이 울리기 시작했다. 영애들은 카일이 누구에게 첫 춤을 신청할지 관심을 갖고 카일의 모습을 쫓았다.

"자, 아름다운 나의 비. 내가 첫 춤을 청할 상대는 오직 그대뿐이니, 내 손을 잡아주겠소?"

우욱, 느끼해. 꼭 보는 사람들 많으면 이러더라? 적응 안 되게.

버터를 잔뜩 발라 구운 양고기처럼 느끼한 내 남편의 춤 신청이었지만, 나는 최대한 상큼하고 청순한 자태로 그가 내민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물론이에요, 나만의 황태자님."

윽, 따끔따끔해. 그만 좀 시기들 하세요. 이미 유부남이잖아요. 내 남편인데 왜 너네들 것을 내가 뺏은 것처럼 날 노려보는 거냐고.

"세이, 너 지금 짜증 났지?"

"호호호. 제 속마음 그만 읽으시죠?"

"오늘만 넘기자. 내일, 당장 행정부 회의 때 후궁 제도 없애자고 안건 올릴까 해. 내가 황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우리 세이의 고운 마음에 상처가 많아지겠어."

카일이 날 리드하면서 귓가에 속삭여준 말에 미소가 번졌다.

날 습격했던 자의 배후는 당장 밝힐 수 없겠지만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리라.

"나는 널 해치려던 자들에게 자비 따위 베풀 생각이 없어.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야지."

"아주버님의 일도 재조사 할 거죠?"

"당연하지."

"반드시 죄를 지은 사람들이 벌을 받고 당신에게 용서를 빌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지 모르는 영애들은 그저 부러운 눈으로 우릴 볼 뿐이었다.

그중에는 콘스탄트 공녀도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가문의 영애를 위한 샤프롱으로 참석한 거겠지?

그러기엔 나이도 어리고 연륜도 부족할 텐데... 탄생연에서의 수모도 있고... 참, 여러모로 대단한 정신력이야.

첫 곡이 끝난 뒤, 놀랍게도 황후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황태자, 황태자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것은 아니겠지?"

"물론이에요, 황후 폐하. 그렇지 않아도 카일이 춤을 추면서 주변의 영애들을 일일이 관찰하더라고요. 카일과 저는 오늘 끝까지 남아 영애들의 됨됨이를 관찰할 예정이랍니다."

내 말에 미심쩍은 표정을 하던 황후는 우리가 남겠다니까 별다른 말을 하진 못했다.

트집 잡히지 않으려면 귀찮아도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연회장을 관찰하는 척 천천히 돌아다녔다.

흐윽. 탄생연날 밤의 과식으로 평소보다 코르셋을 너무 많이 쪼았어. 나는 연회장 한편에 진열된 핑거푸드를 바라만 봐야 했다.

맛있겠다. 츄릅.

"자, 세이. 과일 주스라도 조금씩 마셔."

"내가, 진짜, 코르셋 필요 없는 드레스를 개발하라고 해서 유행시켜 버릴 테다."

"코르셋을 법으로 금지 시킬까?"

솔깃, 나쁘지 않은데? 여성들의 건강을 위해 강제로 중지시키자.

연회장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가는 허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보다 가는 영애들도 많구나.

"어머, 헬레니아, 오늘 샤프롱으로 참석 한 거예요?"

"창공의 두 번째로 높은 태양과 밤하늘을 비추는 작은 별, 두 분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볼라드 공작부인 옆에는 순수해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으음? 부인도 설마 친척 아이를 카일의 후궁으로 소개하려고 온 것은 아니겠죠?

"제 친정 조카에요. 루시엘라, 인사드리렴."

공작부인이 소개한 적갈색 머리의 영애는 우아한 자태로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영애의 눈이 너무 초롱초롱해서 낯이 간지러워졌다.

아니, 왜 카일이 아니라 날 향해 그런 시선인데?

"이 아이는, 꽃을 좋아해서 로열 아카데미에서 원예학을 공부했거든요. 탄생연 때 참석을 못했었는데, 비 전하께서 꽃을 피운 이야기를 듣고 꼭 소개해달라며 절 귀찮게 하지 뭐예요?"

"저기, 비 전하. 너무 멋지세요. 식물들을 이용해 빈민들을 구제하신 것도 멋지시고, 꽃도 피우시잖아요. 식물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씨도 곱다는데, 비 전하는 혹시 천사가 아닐까요?"

부, 부담스러워. 뭐야, 이 낯 뜨거운 찬사는? 이런 칭찬은 카일만으로도 충분해.

"고마워요, 저, 그..."

"플로랄 자작가에요. 하지만 이름을 불러주셔도 돼요."

"어, 플로랄 영애. 칭찬은 고마워요. 더 친밀해지면 이름을 불러드릴게요."

"네, 네. 저기, 그런데 비 전하. 혹시, 탄생연때 제국민들, 특히 빈민들에게 나눠주셨다던, 축복받은 곡물들의 씨앗, 저도 주시면 안 될까요? 차마, 귀족이라 빈민들을 위한 것을 뺏을 수 없었어요."

착한 영애구나. 호감이 급상승했다. 귀족이라는 지위를 이용했으면 얼마든지 뺏을 수 있었을 텐데...

빈민들에게 카일의 생일을 축하해서 나눠 준 것은 가을 밀과, 귀리였다. 거기에 내가 특별히 축복을 넣어서 겨울을 잘 견디게 만든 씨앗들이었다.

겉보기에는 같지만, 내년 봄에 더 많은 수확을 거둘 것이었다.

"영애, 꽃에 관심이 많다면서요? 그러면 곡물 씨앗보다는 꽃씨에 축복을 담아 주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어머! 그것도 좋아요. 그런데 헤헤, 제가 원예학으로 들어갔지만, 요즘 식량생산을 늘리는 연구를 하는 쪽으로 전공을 바꿔서요."

너무 마음에 드는 영애였다. 제국에서 귀족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존경스러웠다.

"영애, 언제 졸업이에요?"

"아, 올해 졸업 논문을 쓰고 나면 졸업이에요."

"저기 졸업하고 나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글쎄요. 지금까지 공부는 제가 우겨서 했지만..."

아, 역시 부모들이 영애의 미래는 혼인으로 정해 둔 모양이었구나.

"그럼, 내년에 개원하는 평민들을 위한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에게 식물학을 가르치지 않을래요? 그러면서 연구도 한다면 지원해 줄게요."

"어머, 비 전하, 제 조카는 이제야 졸업한 풋내기인데 그런 큰일을 맡겨도 되겠어요?"

"콧대 높은 귀족들보다는 영애가 훨씬 제가 바라는 선생님이에요. 제국의 평민들을 가르칠 사람에게는 그들을 향한 배려와 관심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까요."

플로랄 영애는 내 손을 덥석 잡고, 꼭 하겠다고, 이번에 제대로 논문을 써서 졸업할 테니 취직시켜달라고 말했다.

화기애애하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고, 카일은 내가 인재를 발견한 것을 축하해주며, 영애에게 덕담을 건넸다.

"세이, 너는 사람 보는 눈도 갖춘 것 같아."

"역시 비 전하는 천상 황태자비인 것 같아요. 어쩜."

"어머, 다들 그만 구름에 태워요. 호호."

덕분에 루시엘라 플로랄 영애는 다른 영애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카일이 잠시, 공작부인을 찾으러 온 볼라드 공작과 대화를 나누며 떠난 사이, 그 적의들은 우리에게 쏟아졌다. 아니, 나를 공격할 수 없기에, 플로랄 영애에게 향했다.

"어머, 어떡해."

"드레스가 엉망이 됐네."

"여벌 옷을 가져왔나요? 아님 더 이상 연회 참석이 힘들겠네요."

카일이 떠나고 나 역시 귀부인들과 대화 중이었다. 그런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아, 설마 했는데 진짜 소란이 일어날 줄이야.

"루시엘라!"

가장 유치한 방법, 넘어지는 척 와인 쏟기였다. 무려 공작부인이 뒷배인 소녀에게 무례를 범한 영애의 얼굴을 확인해야지.

도대체, 네 뒷배는 누구니?

고맙게도 스스로 분란을 일으키는 영애들을 보며 작은 한숨이 나왔다.

이건 영애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권력자에게 환심을 사면 질투를 하고, 그의 흠을 잡아 평판을 깎아내리려 한다. 그리고 괴롭히지.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갔다. 아니, 어떻게 부었길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붉은 와인 범벅이야?

태연한 루시엘라와는 달리 와인을 쏟은 영애는 덜덜덜 떨고 있었다.

왜, 황태자비가 바로 찾아올 줄 몰랐니?

"카일!"

내 부름에 카일은 즉각 반응했다. 착해라. 나중에 뽀뽀 더 해줘야지.

"루시엘라를 부탁해요."

"나의 비가 하는 부탁이라면. 운디네, 실프."

걱정했는데 와인의 붉은 얼룩도 운디네는 다 거둬줬다. 그리고 실프가 언제나처럼 보송보송하게 말려주었다.

그러자 루시엘라는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니, 정령들의 효과로 더 반짝반짝해졌다고나 할까?

영애들의 탄식에 헛웃음이 나왔다. 카일의 보살핌을 받고 싶어서 자신들이 와인을 뒤집어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연극 무대를 끝낼 때가 되었나?

"프리케 경."

"예, 비 전하."

오늘의 내 호위 담당. 프리케를 불렀다.

"프리케, 당신은 소드마스터예요. 맞지요?"

"예, 황태자 전하, 클리페울룸 근위 대장께서 인정하신 소드마스터입니다."

"카일, 맞나요?"

"어, 황태자비를 호위하려면 그 정도는 돼야지."

영애들과 귀족들은 내가 왜 이런 것을 묻나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 그대들은 소드마스터 남편을 두지 않아서 모르나 보구나?

자신만만한 웃음이 내 얼굴에서 피어났다. 카일도 의미 심장하게 웃었다.

"소드마스터의 청력이라면 이 연회장에서 일어난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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