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우리는 철통경계 부부.
2018.06.05.
연회가 끝난 다음 날, 오후 늦게까지 나는 침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쩐지 어제 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요리사들이 열심히 보양식을 먹이더라니!
짐승, 변태 남편 같으니라고!!
뭐, 나도 동조했으니까 할 말이 전혀 없지.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아니다. 이건 전부, 아바마마를 위한 거니까! 손주를 만들어 드려야지.
결국 나는 느긋한 아침 아니, 오후를 맞이하기로 했다.
사실 어제 귀부인들에게 아카데미랑 보육 시설에 대한 영업을 열심히 했기에 밀려드는 후원금에 대한 답장을 해야 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당장은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것은 다, 카일 탓이었다. 그래서 정신도 차릴 겸 오늘 호위인 펠과 즐거운 티타임을 갖고 있었다.
"펠, 기사들에게 카일은 어떤 존재야?"
"가장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주군이자 기사이시죠."
"왜? 솔직히, 카일이 기사도가 넘치는 기사는 아니잖아. 레이디들에게도 막 매너 없이 굴고."
너도 어제 봤잖아. 막, 여자들 대 놓고 무시하고 비꼬고. 예전에는 살기로 여자들 울리기도 했다며?
"누님, 기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레이디이지, 다른 여자들이 아닙니다. 한 여인만을 그리고, 그 여인에게만 자신을 거는 매형은 충분히 멋진 기사님입니다."
아, 또 괜히 뻘쭘, 민망, 부끄럽네. 그 여인이 나라는 거지? 헤에에.
"흐음. 참, 너! 에이린이랑 어제 즐거웠어? 그, 네 어머니가 뭐라 안 해?"
"유베르 영애는, 누님만큼이나 여리고 참한, 천상 고운 레이디더군요."
응? 뭐? 걔가? 에이린, 감히 내 동생 앞에서 내숭을 떨다니!!! 착한 건 인정하지만, 여리다고? 푸흡.
"그리고 어머니는, 어쩌실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음, 얼마 전부터 반항을 많이 해서요."
"그래도 돼?"
"매형께서 유베르 영애와 자작가를 보호하고 계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마음 놓고 연애할까 생각 중입니다."
우와!! 벌써 연애라 그랬니? 진도 빠른데?
루카스는... 씁. 모른척해야지. 미안해요 보좌관. 나는 내 동생과 친구를 응원할게요.
"호오, 벌써 그런 사이야?"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사이입니다. 둘 다 누님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서 말이 잘 통하더군요."
"연인끼리는 너희 이야기를 해야지. 내 이야기를 왜 해?"
"누님이 어릴 때 보여주신 기적들을 알려주더라고요. 같이 누님 찬양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응? 저거 연애하는 애들 맞아? 뭔가 이상한데? 오페라 남자 주연 배우 후원회의 영애들 모임 같은 느낌은 뭐죠?
어쨌든, 에이린 두고 보자. 지금까지 날 놀린 것의 백배로 갚아 주마.
"참, 누님은 오늘 영식들의 데뷔탕트에 나가지 않을 겁니까?"
"뭐, 내일이 하이라이트니까, 안 가도 되지 않을까? 카일 혼자 가도 되지 뭐."
원래 문, 무관 관계없이 성인이 되는 영식들에게는 예검을 하사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것이 간택연 때문에 황태자가 예검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영식들은 존경하는 기적의 황태자가 검을 하사하는 게 더 좋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올해 초, 신년제 때 열린 성인식이 예전의 합동 데뷔식으로 바뀌고 많은 영식들이 탄식했다는 말이 있었지.
"내일 후궁 간택연 전에 한 번이라도 황태자께 눈도장을 더 찍으려고 젊은 영식들의 파트너로 따라오는 영애들이 많을 텐데요?"
빠지직. 어제 같은 여자들의 노골적인 시선이 오늘도 이어진다고? 그것도 파릇파릇한 어린 것들이?
"잊고 있었네. 나도 영식들에게 꽃을 내리기로 했는데. 아하하하하."
급히 치장을 했다. 무도회에 잘 나가진 않지만 황태자비라 연회용 드레스는 늘 구비되어 있었다. 고르기만 하면 됐다.
큼큼, 일단 최대한 가리는 옷으로 입자. 내일도 가리는 것으로 입어야겠지? 하루 만에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가자."
비장하게 외쳤다. 원래 영식들에게 꽃 주는 행사 따위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급하게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가서 뭐하실려고요?"
"내가 영웅인 새를 한 마리 키우고 있잖아?"
후훗, 나 아무리 생각해도 똑똑한 것 같아. 나는 잔꾀를 낸 뒤 아나이스를 예쁜 리본과 장식으로 치장한 뒤 데리고 나갔다.
"카일, 나도 갈래요."
"어? 세이, 지겨울 텐데. 더 쉬지 그랬어? 밤새 힘들었잖아."
"그냥 카일과 떨어지기 싫어서요."
내가 헤실헤실 웃으며 그에게 매달리자 카일은 좋아 죽었다. 떨어지기 싫단 말이 그렇게도 좋아요??
내 속셈은 숨겨야지. 카일 쳐다보는 여자들로부터 카일을 지키러 왔단 말은 하지 말자. 뭔가 의부증 가진 아내 같아 보일 것 같아. 흠흠.
"밤하늘을 비추는 별, 황후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맞다. 오늘 연회 주관이 황후였지? 어휴, 내가 불청객인 것처럼 노려보시네. 오늘 카일한테 선보일 영애라도 있었나 봐. 하하하.
기분 나빠.
"황태자비, 너는 오늘 맡은 역할도 없는데도 왔구나."
"폐하, 카일을 돕는 것이 제 일이지요. 영식들에게 저의 흰 까마귀의 용맹함을 축복 내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제가 시찰을 나갔다가 습격을 받았을 때, 적장의 머리를 누구보다 용기를 뽐내며 공격한 새거든요."
"까아악."
가슴을 쭉 내밀며 잘난체하는 새의 모습을 황후의 수행원들이 신기한 듯 쳐다봤다.
아나이스, 알비케라랑 친하게 지내더니 조금 알비스러워졌구나. 이래서 친구가 중요한 법이지.
"제국의 미래가 될 영식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지 않습니까?"
황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지만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진짜 영식들에게 꽃을 달아 줄 수도 없잖아?
"혹시 내일도 나올 생각이더냐?"
"물론이죠. 카일이 영애들에게 하사하는 꽃에 축복을 내려 싱싱하게 만들 생각이랍니다."
애초에 우리 계획상 내일 참석을 해야 했다. 우리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야 하니까.
그러니 절대, 무슨 수를 써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 당신이 무슨 짓을 해서 카일을 속여 후궁을 들이려 할지 모르는데, 눈 부릅뜨고 관찰해야지.
게다가 유부남인 카일에게 영애들이 막 달려들고 치근덕대는 꼴은 못 보지.
"황태자가 네 눈치를 보느라 후궁을 들이고 싶어도 못 들이겠구나."
"어머, 폐하. 저는 내일 모든 결정을 카일에게 맡기기로 했답니다. 누가 후궁이 되든 동생처럼 잘 보살필 터이니 걱정 마세요."
절대 당신 뜻대로 되진 않겠지만.
카일은 옆에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고 있었다. 이런, 이봐요. 내가 열연을 펼치는데 그렇게 비웃을 필요는 없잖아!
내가 살짝 째려보자 카일은 기침하는 척을 했다. 확, 때릴까?
황후는 이런 우리를 질린다는 표정으로 보다가 자리를 옮겼다.
뭘까, 더러워서 피한다는 이 느낌은? 그, 그래도 우리가 이긴 거다 뭐!!
"세이, 나, 네가 너무 좋아. 황후 얼굴 봤어? 완전 썩어들어가더라. 푸흐흡."
그래, 만족하셨다니 다행이네요.
카일은 영식들에게 예검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카일에게 검을 건네 받는 어린 영식들은 정말 가문의 영광이라며 굽신굽신 거렸다.
우리 남편. 멋지네. 그런데 인상 펴요.
어떤 영식하나가 아나이스의 축복 - 이라 쓰고, 단지 부리로 쪼아줬다. - 을 받다가 내게 손등키스를 시도한 이후부터 인상을 팍팍 쓰고 있었다.
그 이후로 어느 영식들도 내게 손등키스를 청하지 못했다.
흐음, 이거 본받을까 보다.
"자네들은 이 제국의 미래를 이끌 인재들이다. 성인이 되었음에 가질 책임과 의무를 마음속에 잘 갈무리하여 나와 함께 보다 나은 제국을 만들길 바란다. 이제 다들, 성인이 되었음을 즐기도록."
카일의 축사가 끝나고 파트너들과 첫 춤을 청하는 풋풋한 영식들의 모습들이 곳곳에 보였다.
뭐, 나도 그래봐야 작년 가을에 데뷔했지만.
곳곳에는 여러 어린 영애들도 보였다. 이제 어른이 됐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짙은 화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영애들이 어쩐지 귀여워 보였다.
"흠, 다들 당신 눈에 띄려고 애썼네요."
"뭐, 저 풋내기들이 당신을 노리고 있는 눈빛도 만만찮거든?"
우리 둘은 서로에게 접근하려는 이성에게 경고의 눈빛을 날리며 서로 철통 경계를 섰다.
아무도 접근 못해!!
... 아무리 부부는 일심동체라지만 너무 쓸데없는 곳에서 닮아 버렸다. 이런.
그래도 일단 오늘은 경계 근무를 잘 선 것 같았다. 어떤 여인도 예전 사교계에서 일어났던 일을 시도하지 못했다. 카일에게 몸을 던지기에는 우리가 너무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
게다가 황후조차 자신이 아끼는 영애들을 데리고 우리 쪽으로 오지 못했다. 카일에게 소개해서 얼굴이라고 익히게 하고 싶었을 텐데, 안됐네요. 호호호.
영애들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내가 이러고 있으니 속이 부글부글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후궁을 받겠다고 해놓고, 카일 곁을 지키고 있으니.
이거, 절대 카일에 대한 독점욕 때문만은 아니다! 내일을 위한 큰 그림이라고!!
내가 얼마나 눈엣가시일까? 특히 황후가 친히 보살피는 영애들의 눈에서 시기와 질투가 넘쳐흐르는 게 보였다.
흐음, 이봐요 거기 아가씨들. 그냥 있어도 뽑히기 힘들 텐데, 그렇게 황후랑 나란히 있으면 더 찍혀요. 하지만 그녀들은 황후를 등에 업고 아주 자신만만해 보였다.
오호라, 쟤들이 내일 주연이 되어 줄 것 같은 예감? 좋아, 그렇다면 더 시기하도록 다정한 모습을 연출해야겠네.
"누님, 눈에 힘 좀 빼세요. 매형도. 이러다 다들 체하겠습니다. 이제 볼일도 끝났는데 차라리 궁으로 돌아 가시죠?"
알리페르가 말려주지 않았다면 눈에서 불을 뿜을 뻔했어. 일단 오늘은 철수.
아이고, 피곤해. 다리에 부기가 빠지질 않겠고만, 한참이나 서 있어서.
운디네가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좋았지만 남편이 마사지해주니까 더 좋았다. 피로가 풀릴 것 같아. 야릇도 하고.
"세이, 오늘 같이 간 거, 다른 여자들이 나한테 접근하는 거 싫어서 맞지?"
흐익, 하여간에 저 독심술!!
"내일을 위해 겸사겸사죠. 그리고 당신이 잠깐이라도 다른 여자들한테 틈 보이는 거 싫어요. 게다가 예전에 여자들이 막, 몸을 던져가며 유혹했다면서요? 악! 므에요오."
내 볼! 카일이 양쪽에서 볼을 잡아당겼다. 아프잖아. 요즘 자주 애 취급이야.
"우리 세이는 어째서 이렇게 귀여울까? 어릴 때도 이렇게 귀여웠는데.”"
"우웅, 놔요. 그런데 카일은 나 어릴 때 모습 기억해요?"
그가 날 처음 봤다던 시기의 이야기겠지? 궁금하다. 헤헷. 나 그렇게 귀여웠어요?
"당연하지. 그때는 요정이었어. 예쁘고 신비한 꼬마 요정."
꼬마 요정? 케이도 그렇게 불러 줬었는데. 내가 그렇게 귀여웠나?
"흠흠!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한 미모 하긴 했죠!"
"지금은 성숙함까지 더해져서, 아무리 봐도 세이는 대륙 최고의 미녀야."
흐이이익, 내 손발!!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노골적인 칭찬은 여전히 내 정신세계에 이롭지 못했다.
이렇게 찬양만 받다가 누가 나 못생겼다고 하면 절망할 듯!!
"오늘은 그나마 덜 했지만, 내일은 더 노골적으로 카일을 유혹하겠죠? 흐으으음."
"하든지 말든지."
"어머? 안 넘어갈 자신 있나 봐? 영애들이 사향이나, 미약 같은 거 써서 유혹하면 어쩌죠?"
카일은 피식 웃었다. 왜, 내 질문이 우습나요??
"저기, 가끔 잊나 본데, 제가 정령왕을 부리는 소드마스터거든요. 내가 흥분하고 반응하는 건 네 향기뿐이야. 게다가 어지간한 미약은 독으로 인식해서 마나가 다 막아줘. 운디네도 항상 대기하면서 중독을 고치고."
우와, 사기적인 능력이다. 그래도 든든하네.
일단, 그럼 여자들이 아무리 덤벼도 우리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 안 해도 되는구나. 호호호.
"운디네가 대기 중인 거, 혹시... 막 독살 시도 있고 그래서인 거예요?"
"어??? 뭐, 예전에는 없지 않았지."
카일은 습격에, 독살 위협에 항상 노출된 채로 살았구나. 나라면 견디지 못했을 거야. 우리 남편은 정말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멋져.
나는 그를 향한 안쓰러움과 사랑스러운 마음을 담아 꼭 끌어안아 주었다.
"음, 세이, 오늘 아침까지도 했는데, 또 하고 싶은 거야? 나야 좋지만."
죽일까, 이 남자.
"내일은 나 더 예뻐 보이고 싶으니까 잠 푹 재워줘요."
"알았어!!"
으아악!!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잖아!! 지쳐서 잠들게 만들 셈이냐? 이, 이봐요! 남편씨?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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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본선 진출이라니!!
2018.06.05.
우리 황대살이 본선진출했습니다^^
솔직히 연재 초반에는 자신감이 뿜뿜했는데요!!
예선심사기간 동안 정말, 많이 힘들고, 지치고, 그만둘까 고민도 했었어요.
그런데!! 정말!! 꿈만 같습니다!!
네이버님, 제 작품 잘못 올린 거 아니죠?? 막 착각하시고 그런 거 아녜요??
저 딴동네 절대 안 갈래요. 여기서 뼈를 묻게 해주소서!!
본선진출만으로도 만족하지만,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나요? 결선 진출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비축 쌓아야지!!
작가는 현재 둠칫 두둠칫 하느라 정신 없습니다.
나 진짜 본선 진출맞아? 아하하하하핳
세이랑 카일, 우리 끝까지 알콩달콩 살아남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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