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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비의 대역으로 살아남기-39화 (39/126)

40화. 우리의 진짜 첫날밤.

2018.05.11.

"비 전하, 오늘은 어떤 향유가 좋을까요?"

"..."

"전하?"

"응? 아, 뭐라고?"

"향유요."

아무것도 안 들려. 미치겠어. 심장이 튀어나갈 것 같아. 나 지금 어디에 있더라? 아, 욕조 안인가?

어쩌지? 향유는 뭘 골라야 하지? 카일이 무슨 향을 좋아하더라. 카일을 내가 유혹해야 하나? 유, 유혹은 어떻게 하지? 아니, 진짜로 할 거야?

"그냥, 적당한 거. 아니, 도발적인 거? 아니다. 은은한 걸 더 좋아하나?"

내가 갈팡질팡하자 클리페울룸 영애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뜨렸다.

"장미 중에 살구 향이 나는 이블린 로즈가 있는데 어떠세요?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것이 아주 매혹적이랍니다."

뭔가 부끄러웠다. 나는 욕조 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으며 살짝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내 표정을 긍정이라 여긴 것인지, 욕조 안으로 달콤하면서도 매혹적인 붉은 향유가 부어졌다. 그런데 시녀들의 표정이 다 한결같았다. 왜 흐뭇해 하는데?

이런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티나니? 히잉. 하지 말까? 부끄럽잖아. 진짜.

목욕을 끝낼 때가 되자, 유리아가 아주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평소랑 같은 침의 입으실 거, 아니죠?"

윽, 유리아! 너도 독심술 하니??

"어? 어. 그, 내가 친정에서 돌아왔을 때, 그때 그 침의랑 비슷한 걸로."

그럴 줄 알았다는 미소를 짓는 클리페울룸 영애는 내게 침의를 추천했다.

"엄마얏!"

이건, 너무, 으악, 야하잖아! 이거, 이럴 거면 왜 입는 거죠?? 하늘하늘한 침의는 속이 다... 끄악!!

결국엔 입었다. 대신 겉에 가운을 입었다. 안 보이게 숨길 거야. 남사스럽게, 이 무슨!

머리를 말린 뒤 자연스럽게 풀어 내렸다. 클리페울룸 영애는 내게 정체불명의 오일도 살짝 발랐다.

"뭐야?"

"전하께서 좋아하실 거예요. 이걸 드디어 쓰다니! 기뻐요, 비 전하."

뭐지?? 이, 요상한 향은? 킁킁.

모든 치장을 끝내고 시녀들과 하녀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갔다. 그런데 클리페울룸 영애가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응? 유리아, 왜?"

"화룡점정이오. 이렇게 해야, 더 도발적이고 예쁘거든요."

그녀는 내 입술에 붉은 와인색 연지를 바르고 아몬드 오일로 살짝 윤택을 주고는 나가버렸다.

카일은 아직이었다. 테이블 위의 음식들은 다 치워지고 없었고, 망가진 의자는 이미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적막이 찾아오자 들리는 것은 오로지 내 심장 소리뿐이었다.

쿵쾅 쿵쾅. 아, 뭐야, 이 무식한 심장소리는? 아 몰라. 다시 옷 갈아입을까? 카일은 내가 싫음 기다려 준댔잖아. 그냥 평생 기다리라고 하면 안 될까?

한 눈 팔 남자는 아닌... 데...

으아, 무서워. 아니야. 우린 이제 부부야. 아니, 나중에 카일이 내 신분을 알게 되면 나랑 얽힌 걸 싫어하진 않을까?

게다가 카일은 황후파가 제거되기 전까진 아이 갖고 싶지 않다고 했었는데...

시무룩. 나 혼자만 들떠서 착각한 거 아닐까? 그래, 그가 아이가 갖고 싶었다면, 그 뻔뻔하신 황태자께서 말했겠지. 안 그래?

초야 거부했을 때, 나 꼬실 거라고 유혹할 거라고 온갖 교태와 아양 다 떨던 남자가 말 안 하고 있었던 건 이유가 있었을 거야.

아씨, 민망하게 나 혼자 설레발친 거 아냐? 민망해, 에잇.

가운 끈이나 단단히 매야지. 이제 카일 자극하지 말아야겠어. 굿나잇 키스도 자제하고, 돈 터치! 안 건드릴 거야.

이불로 온몸을 칭칭 감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쳇, 왜 이렇게 늦어? 난 치장까지 다했는데.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도 갑자기 듣기 싫었다.

"어? 세이, 벌써 자? 많이 피곤했나 보네. 굿나잇 키스도 안 해주고. 흑!"

당신의 건강을 위해 참는 건데요?

"세이, 진짜 자?"

카일이 어느새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내 어깨를 흔들었다. 꺅! 내 가운이 어깨에서 스르륵 흘러내릴 뻔했다.

"뭐야, 안 자네. 뭐 한 거야?"

"자, 잠들려는데 당신이 깨운 거예요."

"그래? 킁킁, 근데 이거, 무슨 향이야? 평소랑 다른데?"

"아, 무슨 장미랬는데..."

그거 말고, 또 바른 게 있었는데 그건 나도 몰라요.

"흐음, 아니 장미향 말고, 어...? 근데 세이 입술은 왜 그렇게..."

앗 이런, 입술 지우는 거 깜박했어. 에잇, 바보같이. 남편은 금욕하면서 참고 있는데, 그걸 자극해서 어쩌자는 거야?

난 나쁜 아내임이 틀림없었다.

"아, 유리아가 예쁘다고 발라보래서요."

"어, 예쁘네. 게다가, 오늘 향도, 어, 뭔가 위, 위험한 것 같기도 하고."

카일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목울대가 울렁이는 것이 침을 삼킨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냄새가 나서 그러는 걸까? 내일 클리페울룸 영애한테 물어봐야지.

카일의 얼굴은 점점 묘하게 일그러져 갔다. 냄새가 그렇게 싫은가?

그런데 진짜 아직은 우리 사이에 아기 같은 거 필요 없나 보구나. 왜 인상 쓰면서 살짝 뒤로 가는 건데??

"하아, 미치겠다. 못 참겠어. 더 이상은."

카일의 의사를 존중해야지. 그래, 카일은 가족이 황후에게 다치거나 해를 입어 1황자님처럼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까, 오늘은 불편해도 각방쓰자고 해야지. 씁.

카일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내 입이 차마 들썩여지지 않았다. 아니, 내 마음이 조금 서운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세이, 나! 리틀 카일, 아니 리틀 세이 만들고 싶어!"

"네?"

"네가 또 나 파렴치한으로 여기고 거부할까 봐 계속 참았는데, 이젠 안 되겠어. 나 말라죽을 것 같아. 나, 너랑 진짜로 하나가 되고 싶고, 너랑 닮은 아이 갖고 싶어. 우리 이제 초야 그만 미루자!"

어머, 어머. 이 남자!! 박력 있잖아!

얼굴이, 너무, 빨개지려고 했다. 저거 진심인 거지?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냉큼 대답하면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을까?

"시, 싫어? 네가 싫으면 내가 더 참, 읍!!"

참긴 뭘 참아요. 바보같이. 오늘 같은 날은, 내가 먼저 덮쳐도 돼. 사실 자주 입술을 덮쳤지만.

떨리는 마음을 숨기려니 그저 그의 목을 팔로 감고 서툴게 그의 입술을 훔치는 것 밖에 못했다. 그런데 뒷일을 의식하고 하는 키스라서 그런지 심장은 더 터질 것만 같았다.

왜 카일조차 평소 능숙하던 키스가 뻣뻣한 걸까? 그의 긴장감까지 내게 전염되는 것 같았다.

"으음... 세이."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살짝 붙인 채로 잠시 모자란 숨을 몰아쉬었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얼굴이 열기로 들떠 있었다.

"나, 준비, 됐어요."

"응?"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의 준비요."

"세이!!"

바보같이, 오해하고 또 고생시킬 뻔했네. 미안해요 카일, 그리고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정말 사랑해요.

내가 꽁꽁 싸맸던 가운의 끈을 풀기 시작하자 그의 온몸이 붉어진 것이 보였다. 스르륵, 가운이 흘러내리고 얇은 침의가 드러나자 카일은 붉어지다 못해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수줍은 소년처럼 망설이던 그는 갑자기 야수가 된 듯 다시 한번 내게 입술을 겹쳐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었다.

조금 전의 뻣뻣했던 남자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능숙하면서도 상냥한, 그리고 농밀한 그의 손길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가자 나도 카일처럼 온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 뜨거움이 싫지 않았다. 왜 참았을까? 카일은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키스보다도 애가 타고, 황홀하고, 끓어오르는 이 기분. 몸도, 생각도 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어진 피부보다 뜨거운 우리의 열기가 온 방을 가득 매웠다. 열기가 가득 차는 순간 드디어 하나가 된 우리는 서로를 향한 열망으로 일그러진 탐욕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가 인내했던 시간이 길었기에, 우리의 밤은 끝이 없었다. 그가 참아왔던 욕망의 깊이만큼 우리가 하나가 되는 시간은 계속 이어져 갔다.

달콤하고도 뜨거운 밤.

그렇게 우리의 초야는 깊어만 갔다.

"세이, 힘들지 않아?"

왜 묻지? 나 괜찮은데? 완전 쌩쌩했다.

"민망하게도 오늘도 운디네님이 계셔서 뭐."

그래. 운디네 덕분이지 이게 다.

"저기, 좋았어?"

"그런 걸 왜 물어요? 당연한걸. 그나저나 당신이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음...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그러게, 내가 또 바보같이 혼자 삽질하고 참고 있었나 봐."

장난스럽게 웃으며 날 간지럽히는 그의 손길에 꺄르륵 웃음며 그의 품에서 도망을 쳤다. 그러자 그가 다시 날 제 품에 가두며 끌어안아 왔다.

우리 사이를 가로 막던 천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그의 품이 오늘따라 더 뜨겁고 포근했다.

아르세이아, 고마워. 네가 내게 양보해준 모든 것들, 잘 지킬 거야. 그리고, 네 몫까지 행복해 질래.

보고 싶어, 내 동생.

"세이, 나, 끙, 더 해도 돼?"

으익!! 소드마스터의 체력이란. 어휴. 난 일반인이라고요.

"저기, 그, 운디네가 도와준다면요."

"운디네!

운디네, 당신은 최고의 정령이에요. 그리고 미안해요.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데 당신을 이용해서.

이러다 우리의 진짜 첫날밤은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결국 평소보다 늦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내가 깨어날 때까지 팔베개를 해준 카일은 어젯밤 일이 꿈이 아닌지 확인해야겠다며 내게 또 덤벼들려 했다.

왜 이래 도대체!! 우리 앞으로 함께 할 날이 많다구요!

"계속 치근덕대고 힘들게 하면 각방쓸거니까, 적당히 해요."

각방 쓸 생각은 없지. 아무렴. 이 좋은 걸, 흠흠. 단지, 사슴눈이 되어 불쌍하게 날 올려다보는 것을 감상할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

"곧 대귀족회의니까 준비 잘 해야죠. 빨리 가서 일찍 끝내고 와요. 나 오늘 피곤해서 일찍 잘 거니까. 자기 전에 상 받으려면 알았죠?"

그의 얼굴이 다시 싱글벙글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오늘의 카일일 것이다. 좀 불안한데? 오늘 밤도 자긴 글렀다는 예감이...

그래도 역시 그가 웃는 것이 제일 좋았다. 어젯밤의 욕정 가득한 타락한 얼굴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쪽이 더 내 취향인 것 같았다.

그가 먼저 일한다면서 나가고 나는 느긋하게 차를 한잔 마시고 씻고 치장을 하기로 했다.

"유리아, 그런데 어제 마지막에 바른 향유는 뭐야?"

"사향이예요. 효과 있으셨나요?"

"어? 어..."

으앙. 이렇게나 바로 티가 나는 줄은 몰랐어.

그냥 얼른 씻자.

운디네의 축복이 있었다고는 해도 조금은 몸이 불편했다. 안 쓰던 근육을 쓴 데다가 처음이었으니까.

뜨거운 물에 얼른 몸을 담가야지.

"이, 이게 뭐야!!"

얼굴이 어젯밤만큼이나 붉어졌다. 온 몸에 울긋불긋 꽃이 펴 있었다. 가끔 키스하다가 그가 목이나 쇄골 쪽에 흔적을 남긴 적은 있었지만.

이 인간이!! 정령력을 쓰면서 이건 왜 치료 안 해준 거야!!

"저, 전하께서 도장을 지독히도 남겨놓으셨네요. 이렇게나 많이 안 찍어 놓으셔도 비 전하가 황태자 전하의 것임을 누구나 아는데. 푸흡!"

하필 에이린이 날 놀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친구에게 나의 밤 일을 고스란히 들켰다.

"어제 저한테 프리케랑 무슨 일 없었냐고 집요하게 물으시더니. 질투를 아주 그냥 온몸으로 표현하셨네요. 깔깔깔.

"너, 카일한테 뭐라고 했어?"

"그저, 친했다고만 했어요. 어릴 때부터 단짝 같은 친구고, 추억을 오랜만에 나눴다고만 했는데요."

아, 그래서 의자를 부셔 먹었던 거구나. 내가 부채질까지 했으니 더 질투에 불타올랐던 거였어.

"너, 의자한테 죄를 지었구나."

"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욕조 안으로 더 파고들었다. 물 위로 올라가기 민망했다. 으아아아!! 부끄러워!!

"그나저나, 비 전하 결국 끝까지 가셨네요. 후훗. 축하해. 우리 전하 드디어 진짜 여인이 됐어."

에이린이 신중히 고른 라일락 향유를 물에 부으면서 남들 몰래 귓가에 속삭이는 말에 더 이상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양손으로 얼굴까지 묻어 버리자 에이린이 웃으며 내 얼굴을 뒤로 살짝 젖히더니 수건으로 덮어 버렸다.

곧 숙련된 하녀들과 시녀들의 시중으로 눈 깜짝할 사이 단장을 마쳤다.

시찰 준비 상황을 최종 점검하기 위해 오늘은 요리사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고아원 아이들 간식이랑, 같이 먹을 점심을 점검해야지.

으쌰, 부끄러워도 할 일은 하자.

나, 이제 카일을 위해서 진짜 황태자비가 될 거야. 더 이상 나는 대역으로만 있지 않을 거야.

그의 옆에 섰을 때 어울릴 만한 황태자비가 되고 싶었다.

결심을 마치고 일하러 가려고 일어서는데 황궁의가 잠시 들렀다.

"비 전하께서 오늘 힘에 부치실 거라고 황태자 전하께서 탕약을 올리라 하셨습니다."

카일도 참, 운디네로 회복 다 시켜줬으면서.

음... 알고 보면 아침에 힘들다고 안 받아줘서 먹이는 건가? 더 하려고? 역시 음흉한 변태 황태자!!

그래도 뭐, 카일을 위해서니까, 이 맛없는 약은 꿀꺽꿀꺽 마셔야지.

나 위해서 아니다! 다 카일 좋자고 마시는 거야. 흠흠.

"비 전하, 제가 약에 힘을 좀 썼습니다. 사흘 후부터 합방하면 좋은 날이라서요."

"쿨럭, 쿨럭!!"

내가 왜 아직 이 인간을 안 잘랐지? 근무처라도 바꿔야겠어!!

"당분간 매일, 이 탕약을 올리도록 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카일을 위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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