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전쟁 이후 용사 파티-46화 (47/49)

제 46화

로키는 환영 뒤에서 웃는다. (7) -END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다른 사람들 몰래, 디바이너 교단의 사람들 몰래 잠깐 얘기가 하고 싶다. 그렇게 단테에게 전해 들은 베아트리체는 그것이 버질 몰래 그저 심야의 밀회를 즐기기 위한 단순한 구실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자마자 재생한 음성 메모. 거기에 실려있던 버질의 말.

그걸 듣고, 순간 그녀는 그 음성 메모가 조작된 것은 아닌지, 단테가 로키를 이용해 환청을 들려주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베아트리체는 땅바닥에 쓰러져 완전히 생기를 잃은 보라색의 눈동자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처음부터 버질이 자신의 '병'을 고쳐줄 생각이 없다는 그의 말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하겠다는, 광기까지 느껴지는 사랑에 베아트리체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단테. 이거... 진짜야?"

"버질이 약속했거든. 루시퍼가 들어있는 데이터 칩을 회수해준다면, 네가 숨기고 있는 걸 내게 얘기해준다고. 나도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서 꽤 충격 받았어.

아무튼, 버질은 네 병을 고쳐줄 생각은 전혀 없어. 그 녀석은 그냥, 그 병을 고쳐준다는 핑계로 디바이너에 계속 있게 할 생각이야.

그리고 널 이용해서 이 지긋지긋한 알력 싸움을 디바이너가 주도할 수 있게끔 하려는 것 뿐이라고. 이래도 버질 곁에 남아있을 거야?"

".... 하지만."

"트릭시. 날 봐. 나를 보라고."

단테는 의지를 잃은 채 쓰러진 베아트리체의 양 어깨를 잡고 자신의 눈을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운 보랏빛의 눈동자와 맞췄다.

"용사니 뭐니. 서번트 시스템이니. 난 그런 건 몰라. 네 병이 뭐 때문에 널 고통스러워하는 건 지도 잘 몰라.

하지만 두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네가 버질 곁에 계속 있다 하더라도, 네가 얻는 건 무엇 하나 없다는 것. 그리고... 트릭시. 난 널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거야.

지금은 내 손에 아무것도 없어. 내게 있는 건 그냥 조금 남들보다 큰 베짱이랑 잔꾀가 많다는 거. 그리고 조금 마법을 쓸 수 있는 배달부란 거뿐이지.

하지만. 우리가 같이... 같이 전쟁 전 유적을 탐사하고, 과거의 미스터리들을 모험하면서 해결하다보면, 분명 네 병을 고칠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적어도, 그 편이 버질이랑 함께 하면서 전쟁의 도구로 쓰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물론 선택하는 건 너야. 트릭시... 강요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었다면, 오늘 밤에 격납고에 있는 엘리자베스로 와줘."

단테는 끼고 있던 자신의 장갑을 벗고, 처음 베아트리체에게 고백했을 때와 똑같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다시 한 번... 모험을 해줘."

베아트리체는 진심이었던 단테의 마족의 눈을 보고, 살짝 달아올라있던 그의 뺨을 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마치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단테에게 기대며, 그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그것이 대답 대신이라는 듯, 교단 사람이 와서 볼까 봐, 그녀는 바로 황급히 어딘가로 도망치듯 떠났다. 그것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었던 단테는 한숨을 내쉬며, 반쯤은 포기한 채 쓸쓸하게 마그놀리아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반쯤은.

아직 희망을 품은 채로.

그는 찬란하게 빛나는 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 * *

[로키 : 환영술.]

단테는 로키의 환영술을 이용해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고 그대로 보급을 끝마친 트럭 엘리자베스로 돌아왔다. 바로 근처에는 단테가 오기를 조마조마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에리스가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요."

몰래 뒤에서 에리스의 어깨를 통, 치자 깜짝 놀랐는지 에리스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단테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팡팡 때렸다.

"흐걋!? 까. 깜짝 놀랐잖아요!! 진짜 떠날 거예요?"

"죗값은 청산했잖아. 루시퍼도 막아냈고. 인간 우월주의가 밑바탕에 깔린 이 동네에 반인반마인 내가 여기 더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거든. 격납고의 해치를 올릴 테니까. 후딱 가자고."

"네."

당직을 서는 기술자가 없는 지, 좌우를 살펴보면서 몰래 격납고의 해치를 조작하는 터미널에 다가간 단테는 별생각 없이 가상 키보드를 활성화했다.

그러나, 그의 장대한 탈출계획은 그 첫 번째 단계서부터 막혀버렸다. 바로 앞에... 'B등급 이상의 보안 등급을 요구함'이라는 문자열이 표시되었기 때문이었다.

사격도, 마법도, 검술도, 여자 꼬시기도, 피아노 연주도, 거의 만능 수준으로 해낼 수 있었던 단테였지만 유난히 기계와 고대 기술에는 약했던 단테가 작게 신음을 내뱉었던 바로 그 순간.

삐-

누군가가 터미널에 '카드키'를 가져다대어 보안을 해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총을 꺼내려고 했던 그 순간이었다.

"봐봐. 내가 없으니까. 바로 이 꼴이잖아?"

어깨너머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검지와 중지 사이로 카드키를 잡고 있던 까마귀의 마녀 베아트리체는 미소를 지으며 단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트릭시. 너...!"

"자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여기서 빨리 튀자고. 내가 여기서 카드키를 쓴 사실이 버질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일이 곤란해지니까. 빨리."

"알았어."

격납고의 해치가 열리는 걸 본 단테는 잽싸게 베아트리체와 함께 엘리자베스로 달려갔다. 트럭의 뒷좌석에 베아체가 올라탄 걸 확인한 단테는 곧장 운전석 안에 뛰어들어 시동을 걸고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

"정말로 디바이너에... 미련은 없는 거지?"

격납고에서 몰래 엘리자베스를 몰고 빠져나가는 단테가 묻자,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그런 거. 3년 동안... 3년 동안이나 그 녀석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재혼했던 내가 등신이었지.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베아트리체는 안전 벨트를 매면서 말했다.

"거의 최강의 악마라고 할 수 있는... 신령 루시퍼의 영체 데이터가 버질이랑 디바이너의 손에 떨어졌다는 거 정도일까. 그 녀석들이 루시퍼를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지만.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단테는 왼손으로는 운전대를, 오른손으로는 스틱을 잡고 기어를 바꿔가며 말했다.

"너... 나에 대한 정보를 버질에게서 캐내기 위해서. 동시에 디바이너로부터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와일드 헌트로부터 빼앗은 루시퍼의 데이터 칩을 버질에게 넘긴 거 아니었어?"

"아하? 그거? 여깄는데?"

단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소환기에서 '데이터 칩'을 꺼내며 베아트리체에게 말했다.

"어... 에? 음... 어어?"

"푸훕... 버질에게 준 데이터 칩. 그거 사실 로키로 만들어낸 환영이거든 풉. 푸풉. 푸하하하핳!!! 녀석은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거야. 내가 미쳤냐? 그딴 미친놈한테 루시퍼를 쥐여주게? 안 되지. 안 되고 말고. 아하하하핳!!!"

에리스는 이 웃음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분명 그때... 열차 강도에 필요한 차를 구하기 위해 정크 샵을 운영하는 로그들의 뒤통수를 후렸을 때, 단테는 시원하게 그들을 비웃어주면서 엘리자베스를 운전했다.

"하아. 역시 그러실 줄 알았어요. 베아트리체 씨. 단테 씨좀 말려보세요."

적어도 베아트리체는 정상적인 사고관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한 조수석의 에리스가 말하자, 베아체 역시 마찬가지로 누구의 아내 아니랄까 봐, 시원하게 웃어젖히며 말했다.

"아하하하하하!!! 역시 그래야지. 이 정도는 돼야 내 남편이지! 푸하하핫!!!"

"... 이거 뭔가. 부부 사기단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데요."

"이야. 어떻게 알았대? 우리가 레이븐 시절 때 다른 레이븐이 우리에게 붙여준 별명인데 그거."

마그놀리아의 문을 통과해 황무지로 빠져나온 단테는 트럭의 라디오의 전원을 올리고 베아트리체에게 물었다.

"자 그럼. 신청곡 받습니다. 뭘로 틀어드릴까? 하나 죽이는 걸로 골라봐."

"음... 좋아. 그럼 Redbone의 'Come and Get your Love'로 부탁할게."

"역시. 선곡 센스 하나 죽이는 구만."

단테는 능숙하게 라디오의 트랙을 돌려서, 금방 베아트리체의 최애곡을 찾아내고 재생했다.

흥겨운 R&B 비트에 맞춰 어깨를 흔들며, 단테는 창문 바깥에 왼손을 내밀고 마그놀리아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렸다.

[Hail! (hail!), What's the matter with your head, yeah

이봐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Hail! (hail!),What's the matter with your mind

이봐요, 당신의 마음은 왜 그런 건가요?

And your sign an-a, oh-oh-oh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거죠?]

"그래서 카우보이. 다음 행선지는 어디야?"

베아트리체가 묻자, 단테는 코트 안주머니에 꾸깃꾸깃 접힌 송장 하나를 보여주며 말했다.

"네오 쿄토에 잠깐 볼 일이 있거든. 그쪽에 가서 돈 좀 받아온 다음에 생각하자고. 아, 후렴 놓치겠다. 다 같이 불러!"

[Come and get your love!]

[Come and get your love~]

[Come and get your love!]

[Come and get your love~]

* * *

성검은 부러졌지만, 용사의 여정은 계속된다.

방사능과 마소로 오염된 원자의 사막 너머의 요정향.

그곳에서 용사는 무엇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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