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화
레인브릿지 교도소로. (3)
[지옥견의 응시]가 성공적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환수형 탈로스의 방어 시 내구 상승 버프가 사라진 건 물론이고, 어째서인지 탈로스의 기본 내구 스탯도 일부 하락했다.
야생 영체 특유의 보정 때문인 건지, 아니면 강화 해제 기술인 [지옥견의 응시]에 달린 추가 효과인 건지, 탈로스의 내구치는 기본 9에서 현재 7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7도 충분히 높은 수치이기는 하나, 전열에서 케르베로스의 공격을 정통으로 막아내고 무사할 정도의 내구는 아니다. 만약 여기서 제대로 공격받았다가는, 탈로스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전력에 공백이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
"버질, 나랑 위치 바꿔."
등 뒤에서 성검을 꺼내들며 자세를 고쳐 잡은 단테는 어깨로 버질을 밀치고, 베아트리체의 앞을 막아섰다. 마침 고내구형 서번트인 리바이어던으로 교체도 했겠다, 가장 최중요 딜러이자, 화염에 약점을 찔리는 베아체를 어떻게든 지켜낼 필요가 있었다.
"칫. 부탁하지."
단테 앞에서 자존심을 굽히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던 버질이었으나, 홀리의 기사단장의 위치에 있는 그는 적어도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업무를 철저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케르베로스 : 페이탈 바이트.]
다시 한 번 자세를 고쳐 잡은 케르베로스는 현재 용사 파티에서 '데미지 딜러'의 역할을 맡고 있던 마법사, 베아트리체를 한 번 힐끔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베아트리체는 현재 용사인 단테에 의해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거대한 고대 기계 장치로 가득한 성검과, 해룡신을 앞세운 채 버티고 있는 단테를 뚫고 베아트리체에게 유효타를 먹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용사 파티의 탄탄한 연계를 끊기 위해서는 최중요 인력부터 끊는 것이 아닌, 지금 당장 '끊어버릴 수 있는 인력'부터 끊어 팀워크의 기반부터 무너뜨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 케르베로스는 단테 쪽으로 달려오는 척하다가, 뒷다리를 이용해 방향을 갑자기 급 전환. 단테가 아니라 버질 쪽으로 달려들었다.
"칫...!"
에너지 실드를 전개해서 공격을 틀어막아보려는 버질이었지만, 이전처럼 쉽게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대로 케르베로스는 실드를 뚫어버리고, 버질의 흉갑에 그 날카로운 송곳니를 틀어넣었다.
"끄. 으... 아아악!!!"
콰아앙!!
소환사가 받는 피해는 '서번트'가 대신 받는다. 하지만 만약에 받은 피해가 너무나도 커서, 서번트가 버티지 못하고 먼저 퇴장해버렸을 경우, 그 남은 '잔여의 피해'는 얄짤없이 소환사 본체에게 들어간다.
서번트를 교체할 틈도 없었던 버질은 그대로 케르베로스에게 물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지면에 내동댕이쳐졌다. 갑옷은 거의 반쯤 반파되었으며, 선명하게 갑옷 틈으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커흑...!"
"버질...! 괜찮아?"
피로 흥건히 젖은 땅을 보고 당황한 베아트리체가 순간 정신이 팔려 버질을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는 오른손에 쥔 산탄총을 케르베로스를 향해 갈겨대며 외쳤다.
"신경 쓰지 마! 단테! 지금 마법을 때려 넣어! 빨리!"
[스카디 : 빙결의 원뿔.]
[리바이어던 : 뎁스 바이트.]
겨울과 혹한의 여신인 스카디가 공중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돌았다.
그녀의 등 뒤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혹한의 대지 니블하임의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솟구쳤던 그때, 스카디는 빙결의 마력을 전방을 향해 맹렬하게 발포해냈다.
공격 범위 내에 모든 것을 얼려버린 그녀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자, 광견처럼 마구 날뛰던 케르베로스의 움직임이 순간 멎었다. 빙결 상태 이상이 성공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틈을 타, 리바이어던이 세차게 지면을 뚫고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단테는 사용 편의성을 위해 리바이어던의 턱이나 비늘 등, 일부만 소환하는 식으로 운용했지만, 지금만큼은 딱히 그런 걸 가릴 필요가 없었다.
케르베로스보다도 거대한 몸집을 뽑내며 등장한 해룡신은 거칠게 얼어붙은 사냥개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다음, 그대로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3개의 머리 중 하나를 거칠게 부러뜨리고, 뽑아버렸다.
투확!!
선혈이 폭포처럼 케르베로스의 뜯겨 나간 머리로부터 새어나간 그때, 단테는 쓰러진 버질을 향해 달려가 그의 몸을 들어 올려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었다.
"쿨럭... 지나치게 방심했어. 베아트리체를 먼저 노려올 줄 알았는데."
"좀 닥쳐. 피 나오잖아. 가만히 누워서 쉬고 있어. 마무리는 내가 할게."
빙결 상태 이상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비록 전신을 감싼 얼음은 깨졌지만, 근육과 뼈는 아직 니블하임의 한기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저 개새끼가 빙결에서 헤어나오기 전에. 뭐든 해야 해."
버질이 당해버린 나머지 다급했던 베아트리체는 레이븐즈 로지스틱스에서 일했을 때의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문제가 있다면 신령형 서번트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 탓에 온 '반동'이었다. 신령급 서번트는 그만큼 강력하지만, 사용자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준다.
체내에 정화 가능한 마소 수치 이상으로 마소 수치가 뛰어버리면, 전투에 지장이 갈 정도의 부작용이 올 수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베아트리체는 '사이커', 단테처럼 기계의 힘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 능력자가 아닌, 순수한 자신의 육체와 머리로 마법을 쓴다.
신령급 서번트를 이번 전투에서 꽤 이용했으니, 그 반동이 어느 정도 슬슬 올 타이밍이 되었을 터. 단테는 그걸 감안해 베아트리체에게 명령했다.
"베아체. 쿠 훌린으로 바꿔."
"뭐? 지금 빙결 마법을 한 번 더 써서 확실하게 끝내버리는 편이 더 나아!"
"그 빙결 마법을 쓰려다가, 마소 때문에 부작용 와서 빌빌거리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쿠 훌린으로 바꾸는 게 나아! 빨리 바꿔! 내게 생각이 있어."
"칫... 알았어."
[단테, 소환 : 신령형 로키.]
[베아트리체, 소환 : 영령형 쿠 훌린.]
다시금 로키를 꺼내 든 단테는 아직 케르베로스가 빙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를 틈타, 로키에게 재빨리 명령했다.
[로키 : 변신술=매혹의 날갯짓.]
단테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장난꾸러기의 신은 그 모습을 작은 '요정'으로 바꿨다. 그리곤 마치 케르베로스를 유혹하듯 주변을 익살스럽게 날아다니더니, 고혹적인 춤으로 녀석의 눈을 사로잡았다.
[크... 르... 끼... 끼잉. 끼이이잉...]
어느 정도 누적 피해도 준 데다가, 보정 없이도 서번트급의 매력 스탯을 자랑하는 단테의 스테이터스, 거기에 더해 로키의 강력한 변신 마법까지 합쳐진 덕에 케르베로스는 바로 매혹 상태 이상에 빠져서 헤롱거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픽시에게 빠져버린 탓에 한 번에 2회씩 마법을 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케르베로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픽시로 변한 로키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틈을 노려, 단테는 성검을 집어들었고 베아트리체는 손등의 문신에 힘을 주었다.
[단테 : 버스트 슬래시.]
[쿠 훌린 : 게 불그.]
가운데에 있는 머리는 이미 '리바이어던'이 물어뜯어놓았기 때문에, 단테는 좌측의 머리에, 베아트리체의 쿠 훌린은 우측의 머리에 각각 도약했다.
아까는 튕겨져 나갔던 성검의 날이었지만, 스카디가 때려 박은 빙결 마법 탓에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단테의 성검의 칼날은 이번에는 케르베로스의 머리 정가운데의 두개골을 뚫어버리고, 그 안을 비집고 들어갔다.
성공적으로 칼날을 때려넣은 단테는 거칠게 성검을 뽑아듬과 동시에 다시 도약, 조준 보조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양손에 M4와 M1911을 들고 구멍 뚫린 두개골에 총탄을 퍼부어 주었다.
쿠 훌린도 마찬가지로 창 끝으로 케르베로스의 머리를 꼬치처럼 꿰뚫어버린 다음, 뇌수를 마구 휘젓고 찌르기를 반복하다가 케르베로스의 머리 위에서 도약해 빠져나갔다.
[크르. 크루아아아아...!!!! 인간! 악마!!! 용사아아아아...!!!]
마지막 순간, 케르베로스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하더니 바로 힘없이 바닥에 혀를 내민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후우."
단테는 로키의 변신술을 해제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린 후, 바로 서번트를 영령형 스카아크로 교체했다. 신령형 서번트를 오래 조작할 시에 페널티를 받는 건, 베아트리체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본질이 '영체'였던 만큼, 용사 파티에 의해 전투 불능이 된 케르베로스는 그대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푸른빛의 영혼의 입자로 변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베아체. 저거, 안 가질 거야?"
쓰러뜨린 서번트를 회수할 거냐는 단테의 물음에,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4개밖에 서번트를 휴대하고 다닐 수밖에 없는 단테와는 달리, 사이커인 그녀는 자신의 몸이 허락하는 한, 그 몸에 서번트를 받아들일 수가 있다.
비록 야생 영체 특유의 보정까지 받은 상태로 용사 일행에게 쓰러졌다고는 하나, 나름 강력한 환수형 서번트다.
이미 좋은 서번트 엔트리를 보유한 베아트리체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유용한 서번트는 아니겠지만, 디바이너에 소환사가 그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소환기도 다수 있으니, 회수해둬서 나쁠 건 없었다.
"버질을 빨리 의무실로 옮겨야겠어. 여기서 가장 가까운 의무실은..."
"아니. 통신으로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줬던 험비 운전병한테 근처 레일로드 주둔군 막사로부터 의료품 받아서 오라는 게 더 빠를 거야. 서두르자. 저 출혈량, 진짜 뒤질 수도 있어."
"... 의외네. 너라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단테는 쓰러진 버질이 걸치고 있던 용사의 갑주를 벗기고, 자신의 등 뒤에 업었다.
"그렇게 하면 네가 슬퍼할 게 뻔하잖아. 그것 말고도 얘가 죽으면 곤란해지는 일이 한 두개가 아니야. 빨리 가자. 이 개새끼를 다시 살려내야지."
* * *
"쓰읍... 크흐."
스팀팩 주사를 맞으며 의무실의 침대에 누워있던 버질을 내려다보고 있던 단테는 팔짱을 낀 채,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있었다.
소환해둔 서번트인 탈로스 덕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치명상'이란, 척추가 부러지거나, 내장이 전부 파열되거나, 할 정도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었다.
피를 지나치게 많이 흘린 탓에, 그리고 아직까지도 피를 흘리고 있던 탓에 사경을 헤매고 있던 버질을 바라보며, 단테는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궐련 끝에 불을 붙였다.
"너도 한 개비 주랴?"
"쿨럭. 쿨럭쿨럭. 날 죽일 셈이냐? 그리고... 큽. 나는 비흡연자야. 멍청아."
"알아. 그래서 여기서 피고 있는 거야. 너 좆같으라고."
"폐나 다 썩어버려라."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험한 폭언을 주고 받았던 그 둘 사이에 다시금 침묵이 감돌았다.
"그래도. 고맙단 인사는 해야겠군... 감사한다."
자존심이 높았던 기사단장이었지만, 그래도 은혜를 입은 상대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네가 좋아서 구한 게 아니라. 베아트리체의 인상이 구겨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구한 거란 점만 알아둬라."
"... 아직 베아트리체에게 미련이 남은 건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응. 아직 남았어. 난 아직도 모르겠다고. 왜 베아트리체가 네 쪽으로 갔는지."
"단세포 용병은 알 턱이 없겠지."
"이 자리에서 그냥 쏴죽여버릴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그녀가 쫓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오로지 디바이너 교단 아래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걸 이뤄주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고. 그 조건으로 내건 것이, 너와의 결별이었다."
"뭐..."
"그렇게 된 거다. 용병. 자,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잖아. 네가 해야 할 일은 케르베로스의 토벌이 아니라. 와일드 헌트가 뺏어간 데이터 칩의 회수지. 이 이상의 이야기를 내게서 듣고 싶으면, 그 데이터 칩을 가져와서 내게 바쳐. 그럼, 아직 하지 않은 이야기의 결말을 알려주지."
"진짜 넌 마음에 안 들어."
"동감이야. 내가 왜 베아트리체가 너랑 어울리는 걸 그냥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냐? 이미 헤어진 전 남편이랑 어울리게 하는 일 따위, 지금 남편된 자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지.
베아트리체의 마음이 네게 기우는 일은 그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언젠가는 다시 내게 돌아오게 되어있어. 내가 디바이너의 기사단장으로 있는 한은 말이야."
"역시."
단테는 주먹을 꽉 쥐며 막사를 나왔다.
"널 구하지 말 걸 그랬어."
필터까지 다 탄 담배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화풀이를 하듯 즈려밟은 단테는 험악한 얼굴로 권총을 버질에게 겨누었다. 갑자기 단테가 보인 느닷없는 총기 위협에, 버질을 치료하고 있던 의료진들은 순간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약속 지켜라. 성스러운 홀리의 단장님. 그 데이터 칩,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목숨 걸고 빼앗아올 거니까."
"그러길 바라지. 단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