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화
레인브릿지 교도소로. (2)
[단테 / 소환 서번트 : 신령형 로키.]
[베아트리체 / 소환 서번트 : 신령형 스카디.]
[버질 / 소환 서번트 : 환수형 탈로스.]
베아트리체가 기습할 때 사용했던 마법, [까마귀 대폭풍]의 여파로 안개가 걷히자마자, 버질의 에너지 실드를 강타한 괴물의 형체가 어느 정도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테가 배달 업무를 할 때 사용하는 트럭이자,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는 트럭 엘리자베스보다도 거대한 몸집을 가진 그 '영체'의 몸에서는 뜨거운 불꽃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고, 새까만 가죽과 털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그 머리라고 할 수 있었다. 몸은 분명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목 위로 삐져나온 머리는 무려 3개나 되었으며, 전부 험악한 사냥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빛의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찾아온 용사와 그 파티원을 노려보았던 머리 셋 달린 사냥개는 사납게 바닥을 앞발로 쾅쾅 내리치며 소리 질렀다.
[이곳에서 당장, 썩 꺼져라. 이 앞으로는 그 누구도 보낼 수 없다! 만약 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친해 보내주도록 하겠다. 그 사지가 갈기갈기 물어뜯긴 채, 피범벅이 된 시체의 모습으로 말이야! 컹!]
"강아지가 말도 하네?"
단테는 양 손에 쥔 총기를 겨눈 채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영체를 겁도 없이 도발했다.
"이야, 난 또 방사능 때문에 잘못 태어난 괴물 딱지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긴 영체도 있구나? 진짜 처음 알았다 야."
[이 몸 앞에서 뚫린 입이라고 제멋대로 아가리를 놀려대다니. 겁도 없구나. 그 기개만큼은 칭찬해주마. 반인반마의 용사. 크르르르. 네놈의 시체는 찢을 가치도 없다. 그 시체 째로 집어삼켜주마!]
"어허! 씁! 그럼 안 돼! 못 써! 자. 착하지? 얌전히 이리 와서 목줄 차야지. 우리 강아지?"
단테는 마치 애완견을 조련하듯이 총구 끝으로 머리 셋 달린 사냥개를 가리키며 외쳤다. 단테의 도발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녀석은 늑대가 하울링을 하듯 크게 울부짖어대며 단테에게 우렁차게 외쳤다.
[겁 없이 도발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나는 '케르베로스'! 명계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 산 자가 죽은 자의 영역을, 죽은 자가 산 자의 영역에 함부로 발 들일 수 없듯, 네놈들은 이 앞의 영역에 산 채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크르르르르. 컹! 컹! 아루우우우!!!!]
[환수형 케르베로스 : 지옥의 돌진.]
단테의 도발에 참지 못 하고 초대형 영체, 케르베로스는 단테를 향해 매섭게 지옥불을 몸에 휘감고 무턱대고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케르베로스의 속을 박박 긁어놓으면, 바로 다음 공격의 타겟이 자신이 되리라는 걸 당연히도 알고 있었던 그는 여유롭게 로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신령형 로키 : 환영술.]
케르베로스의 혼신의 힘이 실린 몸통 박치기가 단테의 몸에 바로 닿기 그 직전, 마치 싸구려 깜짝 상자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은 익살스러운 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은 케르베로스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단테가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나치게 몸통박치기에 힘을 준 탓에, 그 반동으로 제대로 제동조차 하지 못 한 케르베로스가 쭉 미끄러진 뒤였다.
로키의 환영술을 전투에 사용할 시에는 '반격기'로 사용할 수 있다.
로키는 '신령급'의 서번트이기는 하나, 원체 다른 서번트보다 민첩 스탯이 낮아 선공을 잡는 것이 별도의 마법의 도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까다로운 트릭스터의 신령을 운영할 때는 이런 식으로 상대의 공격을 유도한 뒤, 환영술로 카운터. 그 직후 잡아낸 선공권을 토대로 위력 높은 마법의 포화를 가하는 식의 전술이 기본이 되며.
이를 위해선 상대의 공격을 원하는 타이밍에 자신에게 유도할 수 있어야한다. 가장 이상적인 건, 이런 식으로 상대를 도발해서 로키의 환영술을 쓸 수 있는 타이밍에 자신에게 공격을 유도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로키 : 미라지 블레이드.]
[스카디 : 빙결의 원뿔.]
여유롭게 케르베로스의 공격을 흘려낸 틈을 베아트리체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미리 꺼내두고 있었던 신령급 서번트인 스카디를 이용해 빙결 속성의 주문을 쏟아냈다. 단테 또한, 무수한 환영의 검을 케르베로스를 향해 날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다당!! 타다다당! 타다다당!!
공격에 집중하고 있던 단테와 베아트리체와는 달리, 이번 원정에 있어서 든든한 '방벽'의 역할을 맡고 있었던 버질은 공세를 퍼붓는 대신,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상승시키는 것에 주력했다.
[탈로스 : 헤파이스토스의 가호.]
버질의 등 뒤에서 케르베로스와 거의 지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지닌 거대한 청동의 거인이 나타나선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대장장이 신의 가호가 있는 버질은 공격을 막아낼 시, 내구 스탯을 무려 2나 높일 수 있는 권능을 손에 넣게 된다. 원체 내구 스탯 자체가 높았던 탈로스였는데, 거기에 내구 스탯이 더 높아지니. 그를 순수한 힘으로 뚫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
"와라, 지옥을 지키는 사냥개여. 내 신념의 방패가 있는 한, 나의 원정대가 쓰러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마법 포화를 일점에 받은 나머지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케르베로스는 입에 불꽃을 머금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케르베로스 : 씹고, 뜯고, 할퀴고, 죽인다!]
"뭐. 뭐야 저 마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 한 마법이 기습적으로 발동되자, 숨을 돌리고 있던 베아트리체 AR-15로 케르베로스의 눈에 정확하게 사격을 가하며 덧붙였다.
"이건 안 좋은데."
"뭐길래... 그래?"
"이중 영창 기술이야. 보통 마법을 한 번 사용하면, 다음 마법을 쓸 때까지 약간의 텀이, 쿨다운이 존재하잖아. 저건 '한 번'에 한해서는 그 쿨다운을 없애줘."
"뭐?! 그런 기술을 가진 서번트는 듣도보도 못 했는데?"
"상당한 마나를 축적한 채 현계한 야생 영체들이 사용하는 마법이야. 일반적인 서번트 전에선 볼 일이 아예 없지. 아무튼 조심해. 이제부터 녀석은 '한 번에 두 번씩' 마법을 써올 거야."
베아트리체의 경고를 들은 버질은 오른손에 든 샷건으로 왼팔에 꺼내 든 방패를 탕탕 후려치며 외쳤다.
"뭐가 오든 상관없어. 자, 와라!"
[케르베로스 : 화염 마스터리.]
[케르베로스 : 헬-플레어.]
"우왓!"
처음에 쓴 것이 화염 속성 마법의 위력을 올리는 것. 두 번째로 사용한 건 딱히 소환기로 분석해보지 않아도 이름에서부터 화염 속성이라는 걸 용사 파티는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케르베로스는 잠시 몸을 웅크려 지옥의 화염을 몸에 축적한 다음, 이를 한순간에 사방에 화산을 분출시키듯 뿜어냈다. '광역'으로 덮쳐온 기술이었기에, '회피'는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떼우면서 이를 받아낼 수밖에 없는데, 버질의 방패가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스카디의 약점 속성이 '화염'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단테는 버질에게 명령했다.
"버질! 스카디의 약점!"
"흥, 네놈 따위보다 내가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알아서 잘 살아남아라!"
애초에 자신의 방패로 단테를 감싸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버질은 헬-플레어가 덮쳐오기 직전, 바로 베아트리체를 감싸며 에너지 실드를 전개했다.
"화염 속성 마스터리를 쓴 건 좋았지만 아깝네. 로키는 화염에 내성이 있거... 든!"
등 뒤에 성검을 냅다 뽑아 지면에 틀어박은 단테는 덮쳐오는 지옥의 열화를 어찌저찌 성검의 날 뒤에 숨어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어마어마한 열기가 몸을 훑고 지나가자, 실시간으로 소환기에서 경고 알림이 전해져왔다.
아무리 화염 속성에 내성이 있는 로키라고는 해도, 원체 내구 스탯 자체가 낮은 데다 케르베로스는 야생 영체기 때문에 서번트화로 인한 스탯 다운이 전혀 없어 마법의 위력이 초월적으로 강하고, 거기에 화염 마스터리로 화염 속성 마법의 위력을 올렸으니 로키의 내구도는 거의 녹아내리듯이 깎여져 나갔다.
"큭...!!! 서번트를 바꿔야겠어...!"
내구도가 걸레짝이 된 서번트를 방치했다가는 다음 공격 때 서번트가 전투 불능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기에, 단테는 헬 플레어를 받아낸 직후 자신의 서번트를 교체했다.
베아체 역시, 자신의 서번트를 교체하는 것을 이번만큼은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적이 화염 속성을 주로 사용하는 영체라면, 언제 약점이 찔려 귀중한 신령급 전력인 스카디를 잃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잠깐 현재 전황을 살피고, 서번트를 교체하지 않는 쪽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현재, 파티에서 탱커를 맡은 버질이 방패와 환수형 : 탈로스의 높은 내구 스탯을 이용해 자신을 계속 지켜준다면 위험에 처할 일은 거의 없으며, 그녀가 가진 서번트 중에서 가장 높은 피해량을 뽑아낼 수 있는 서번트는 스카디였다.
안정적인 탱커가 확보된 상황이니, 지금은 베아트리체에게 주어진 역할인 '데미지 딜러', '마법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베아체는 스카디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와라! 리바이어던!"
[단테, 소환 : 환수형 리바이어던.]
[단테 : 버스트 스팅어.]
단테는 그러는 와중에 '화염 속성'에 내성을 지닌 서번트이자, 높은 내구를 지닌 리바이어던으로 서번트를 교체했다.
소환기를 경유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쿨타임을 생각했을 때, 지금 바로 뎁스 바이트를 비롯한 고위력 물리 마법을 쓰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녀석의 다음 헬-플레어는 여유롭게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리바이어던으로 서번트를 교체하느라 날려버린 시간을 유의미하게 사용하기 위해, 단테는 성검에 마탄을 장전하고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성검의 추진력을 이용해 케르베로스의 몸에 성검의 칼날을 때려 박았다.
키이이이잉!!!
그러나 케르베로스의 높은 내구치 때문이었을까.
단테가 '소환'의 틈을 메우기 위해 사용한 성검의 기술은 녀석에게 별 피해를 입히지 못 한 채,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뭐 이딴. 개 같이 단단하네 진짜...!"
[스카디 : 니블하임의 혹한.]
방금 공격으로 케르베로스가 높은 '내구' 스탯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한 베아트리체는 다음번에 한해서 자신의 '빙결' 상태 이상 기술의 성공률을 대폭 올려주는 랭크 업 기술을 사용했다.
다음 턴 버질의 방패를 이용해 여유롭게 한 턴을 버텨낸다는 가정 하에, 니블하임의 혹한] 마법과 연계되어 거의 반 확정적으로 빙결 상태 이상을 걸 수 있게 된 [빙결의 원뿔] 마법으로 역전의 찬스를 노리기 위해서였다.
[탈로스 : 헤파이스토스의 가호.]
다시 한 번 방어 시 내구를 올리는 랭크 업 마법을 사용한 버질은 아예 단테와 베아트리체에게 '딜'을 맡겨두고, 자신은 방벽의 역할에 집중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용사가 사용했던 갑옷의 성능과 에너지 실드. 이 두 개만 믿고 땅에 굳건하게 선 버질은 케르베로스를 향해 샷건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흥! 그딴 인간의 총알 따위, 간지럽지도 않다!]
"뭐. 딱 봐도 그래 보이긴 하군. 하지만 네놈의 공격 역시, 내게 있어선 간지럽지도 않다. 와 봐라!"
버질이 한 번 소리치며 도발하자, 케르베로스는 나름의 생각이 있다는 듯이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케르베로스 : 지옥견의 응시.]
"잠깐...!"
베아트리체는 케르베로스가 발동한 마법을 보고 급박하게 버질에게 외쳤다.
"왜 그래?"
"저건 '강화 해제 기술'이야. 지금 저걸 썼다는 건...!"
상대에게 적용된 '랭크 업'을 해제하는 기술. 방금 1턴에 두 번씩이나 행동을 해줄 수 있게 하는 케르베로스의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베아체가 언급했던 '강화 해제 기술'이라면 단테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랭크 업 마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해 스탯을 올리기 시작한 서번트를 견제하기 위해선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손꼽힌다. 하나는 상대의 서번트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 약점을 찌를 수 있는 서번트로 교체하는 것이다.
아무리 랭크 업을 통해 스탯을 올린다고 해도, 약점이 찔리는 상황에서는 무력해지니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이 바로, 강화 해제 기술. 몇몇 마력 혹은 매력 기반 서번트가 가지는 이 기술로 상대의 랭크 업을 전부 무로 되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강화 해제 역시, 확률에 작용한다. 마력 스탯이 어느 정도 되면, 이에 저항할 수 있을 터. 단테는 버질을 바라보며 착잡하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잔혹한 법이다.
"끄.... 어윽...!!"
버질의 등 뒤에 서 있던 청동의 거인이 뒤로 크게 움츠러드는 것과 동시에, 버질의 '방어 시 내구 스탯'이 큰 폭으로 낮아졌다. 케르베로스의 강화 해제, [지옥견의 응시]가 성공해버린 것이다.
"에휴. 널 믿은 내가 잘못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