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화
레인브릿지 교도소로. (1)
Fly me to the moon.
(저를 달로 데려가 줘요.)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저 별들 사이를 여행하게 해 줘요.)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목성과 화성의 봄을 제게 보여주세요.)
펍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피아노 연주와 감미로운 목소리.
비록 값싼 싸구려 술 밖에 없었지만, 디바이너 교단의 막사에서 전투에 지친 기사들의 위락을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군기가 바짝 든 디바이너 안에서 유일하게 일탈이 허용되는 곳이다.
오늘은 늘 평소에 나오는 피아니스트 대신, 흑색의 코트를 입고 있던 한 마족눈의 남자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세션 멤버들과 함께 한 번도 합을 맞춰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와 노래는 펍에 있는 모든 여성들의, 남성들의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았다.
그의 연주와 미성에, 그리고 인간만이 존재하는 디바이너의 사회 안에서 어지간해선 보기 힘든 '반인반마'의 배덕적인 마성의 매력에 이끌린 디바이너의 수많은 여성들은 그가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빈 술잔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돈을 넣었다.
싸구려 술과 함께 그의 연주에 취한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그의 순수한 피아노 연주 실력에 놀라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돈을 넣어주었다.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다시 말하자면, 언제나 진실해줘요.)
In other words, I love you...
{다시 말하자면, 그대를 사랑해요...)
마지막 가사를 끝마치고 마지막 건반을 두드리자, 이전 피아니스트가 받았던 환호의 몇 배나 되는 환호가 그를 둘러쌌다. 오래 펍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던 건지, 그는 돈이 든 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달나라 여행은 다들 재미있게 즐기셨나? 레드 그레이브 황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벨라 루나에게 건배를."
반인반마의 사내는 자신과 함께 연주해준 세션 멤버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피아노 위에 올려두었던 코트를 챙기며 일어섰다.
앵콜을 원하는 선술집의 손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일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있었던 만큼 이 이상 더 늦게 펍에서 머물 수는 없었다. 그는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 앞에서 정중히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 크흠. 반인반마라고 해서 의심한 내가 바보 같을 정도의 실력이구먼... 이름이 '단테'... 라고 했었지? 자네, 우리 펍에서 계속 일해볼 생각은 없나? 제발 부탁이네. 페이는 넉넉하게 해 줄 테니... 아니. 이전 피아니스트의 두 배를 쳐주지! 제발... 생각해볼 수 없겠나?"
"미안. 이미 다른 직업이 있어서. 그리고 반인반마가 마그놀리아에서 일하는 것도 좀 보기 그렇잖아? 돈은 댁이 가져. 돈 벌러 온 거 아니니까."
단테는 시니컬하게 거절하고, 흑색의 방탄 코트의 소매에 팔을 집어넣었다. 그때, 객석에서 그의 연주를 듣고 있던 용사의 요정, 에리스는 감동을 먹은 듯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단테의 손을 잡았다.
"주인님... 대... 대단하시네요. 설마 이런 쪽에 재능이 있었을 줄은 전 상상도 못 했어요. 진짜로요. 피아노 연주하실 줄 알았었어요?"
"응. 어렸을 때 배울 기회가 있어서 배웠어. 선생은 내가 음악 쪽에 천부적인 재능. 그 뭐시냐. 앱솔루트 핏치?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서 잘 모르는데. 뭐 그런 게 있대.
피아노 건반을 치면 그게 얼마 정도로 높은 음인지 알 수 있는 정확히 능력이라더나. 웃기지 않냐? 아니 누구나 들으면 어느 정도 높은 지 다 아는 거 아니야? 그걸 모르는 게 더 멍청한 거 아니야?"
"그... 그런가요?"
과연, 천재가 보는 시각이란 아예 차원 자체가 다른 것이로구나. 총질이랑 싸움질만 할 줄 아는 줄만 알았는데, 이런 쪽에 재능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에리스는 그의 얼굴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만약...
정말 만약에 말이다.
핵전쟁도 없었고, 인간과 마족 사이의 전쟁도 없었다면. 평화로운 시기가 계속되고 인간계와 마계가 서로 싸우지 않고 화합했던 또 다른 미래가 있었더라면.
그 세계에서의 단테는 총과 폭탄. 성검과 소환기 대신, 악기를 손에 든 뮤지션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200년 더 일찍 그가 태어났덜가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에리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펍에 눈에 익은 여성이 한 명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들어왔다.
"숙소에 없길래. 어디로 갔나 싶었더니 여기 있었구나. 단테."
베아트리체는 업무 시의 딱딱한 말투 대신, 연륜이 묻어나는 부드러운 누나와도 같은 말투로 단테에게 먼저 과감하게 다가왔다.
열차 습격 사태 때는 '적', 데이터 칩 회수를 위한 브리핑 때는 '상관 겸 동료'로서 그를 대해왔지만, 사석에서도 딱딱한 태도를 유지할 필요는 전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앵콜 공연은 없어. 공연 시간에 좀 늦었네."
"그건 좀... 아쉽네. 오랜만에 들어보고 싶었는데. 네 노래."
"아... 아바바..."
베아트리체와 단테 사이에 펼쳐지는 묘한 뜨거운 분위기에 에리스는 얼굴을 물들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고개를 홱 돌렸다.
"아... 그. 자리. 비워드릴까요?"
"용케도 버질 눈을 피해서 왔네."
"말도 마. 작전 전에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면서. 어디 못 가게 한 걸 투명화 마법으로 어찌어찌 빠져나온 거야. 만약... 이 시간에 널 만나고 있다는 게 들키면 엄청 화낼 걸."
"나라도 화 내겠다."
단테는 술 대신 물이 담긴 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베아트리체도 내일 있을 작전 때문에 취할 수 없는 몸이라, 가볍게 무알콜 주스만 마시고 있었다.
"베아트리체. 지금 와서 묻기는 좀 그렇지만. 질척... 거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랑 헤어지고 버질이랑. 만나게 된 건 대체 왜야?"
"..."
단테의 질문에 베아트리체는 그의 눈동자를 피하며 침묵했다.
대답을 주저하는 베아트리체를 몰아세울 생각은 없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그녀가 자신의 품에서 멀어질까 봐, 경계하는 자기 자신이 단테의 마음속에 있었기에.
"솔직히 말할게. 나는 버질이 씨발 새끼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내 개인적 감정이고. 그와는 별개로, 그 녀석이 괜찮은 남자라는 데는 동의해. 홀리의 기사단장이고, 디바이너에게 선택받은 인간이니까. 너도... 인간이고. 하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나는..."
하 씨.
단테는 머리를 마구 손으로 헝클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 버질은 내가 찾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뤄줄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야. 네가 부족했던 점은 없어. 오히려... 내가 개년이지. 나는..."
"..."
여자의 마음을 잘 안다고 단언할 수는 없던 단테였지만, 이 이상 대화했다가는 내일 작전 도중에, 어색한 분위기만 감돌 거 같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쯤 하자. 지금은 뭐. 사정이 어찌되었든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 난 어디까지나 네 전 남편이고. 현재 남편은 버질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해줘. 트릭시, 널 향한 내 마음은 네게 피아노를 배우고, 권총을 넘겨받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없다는 걸."
"... 응."
베아트리체는 가볍게 뒤를 돌아본 단테의 목에 입을 맞추곤 황급히 다른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보기 전에 자리를 떴다. 단테 역시 마찬가지로,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펍의 문을 열고 나갔다.
* * *
"준비는 다들 되었겠지?"
레일로드 8구획의 막사까지 디바이너에서 운영하는 험비를 타고 이동했던 용사 원정대의 멤버, 버질은 자신의 갑옷의 상태를 확인했다.
옛 용사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갑옷을 발굴해낸 것으로, 일종의 소형화된 마도 아머라고 볼 수 있는 전쟁 전 하이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물건이다.
동력으로 무려, 통상적인 마도 아머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핵-마나융합 코어가 들어가며 크기가 마도 아머보다 한참 작은 탓에 실질적인 출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성능은 무시할 수 없다.
오버 테크놀로지로 무장하고 있던 파티원은 버질 뿐만이 아니었다.
단테는 과연 이게 사람의 몸으로 휘두를 수 있는 지 자체가 의문인 거검인 '성검 : 리버레이터'를 짊어지고 있고, 앞의 홀스터에는 M1911 권총이 한 정, 카빈으로 개조된 M4A1이 한정 홀스터에 매달려 있다.
베아트리체는 비록 다른 두 남자에 비해서는 무장이 소소했다.
유탄발사기가 옵션으로 달린 무난한 AR-15 계열 총을 메고 있었지만 그녀의 전력은 핵전쟁 전에 쓰였던 무기가 아니라, 그녀 자체에서 초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니, 별 상관은 없었다.
"슬슬 가이거 카운터에 반응이 오는데? 뭐야 여기. 핵폭탄이라도 터뜨렸냐?"
단테는 허리춤에 매달아두고 있던 방독면을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착, 하고 고정끈이 저절로 단테의 머리를 꽉 조였고, 바이저 부분에 붉은빛이 감돌며 소환기와 연동되어 각종 HUD를 표시했다.
버질 역시 마찬가지로, 디바이너 교단에서 쓰이는 방독면 겸 투구를 뒤집어 썼다. 베아트리체는 레이븐즈 로지스틱스 시절 때부터 사용했던 자기 전용의 '역병 의사 가면'과 비슷하게 생긴 까마귀 가면을 썼다.
"이제부터는 걸어가셔야 하겠습니다. 여기 부근서부터 영체에 의해 습격당했다는 보고가 있어서요. 연락이 두절된 단원들도 꽤 있습니다. 그리고 마소가 짙어서 이 지역서부터는 통신이 먹통이 되니 주의해주시길."
"알았네. 제군, 수고했어. 토벌이 끝나면 바로 여기서 빠져나간 직후 연락을 주도록 하지."
"네. 그럼 단장님. 고생하십시오."
용사 파티를 태워준 험비가 물러서자,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의견에 동의하며 자신의 정화통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이 정도 마소 반응이면 진짜 누가 핵을 터뜨린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인데."
"안개 때문에 시야가 제한까지 되었어. 저격으로 해치우는 것도 어렵겠구만."
"그럼 제군들. 시야가 제한되고 방사능까지 깔려 있으니. 조심해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자고. 베아트리체, 안개를 걷어낼 방법은 없나?"
"[까마귀의 폭풍] 마법으로 걷어내는 걸 시도해볼 순 있겠는데. 잠깐 시야를 밝혀줄 뿐이지 금방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거야. 마나 효율을 생각해봤을 때는 안 하는 게 나아."
"차라리 그것보다는 은신하면서 천천히 영체에게 들키지 않게끔 나아가는 편이 더 좋아. 로키를 이용해서 환술을 걸게. 딱 붙어봐."
[신령형 로키 : 환영술.]
단테는 첫 번째 엔트리에 고정해둔 로키를 활용해 버질, 자신, 그리고 베아트리체를 '안개'와 완전히 동화될 수 있게끔 환영술을 걸어두었다.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단테는 몸을 낮추며 소곤소곤 말했다.
"마법을 쓰거나, 갑자기 움직이거나 하면 환술이 풀릴 거야. 이상한 짓거리 하지 마. 특히 너. 버질."
"전술적인 상황에서 이 내가 오판을 할 거 같나?"
"아 네. 그러시겠지요."
로키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며, 단테는 겸사겸사 소모한 마탄을 채워넣었다.
그렇게 얼마 정도를 지나왔을까, 기척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거의 오리 걸음으로 나아가다 보니, 슬슬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전방에 강력한 영체 반응이 잡혀. 안개 때문에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적의 방향은 대략 알 수 있으니까. 기습을 시도해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사이커인 베아트리체가 영체 반응을 '몸으로 느끼고' 보고하자, 단테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버질, 실드를 전개할 준비하고 베아체는 앞에서 대기해. 베아체는 마법으로 저격 준비하고, 나는 만에 하나 있을 상황을 대비해 퇴로 및 플랜 B를 확보할게."
"네게 플랜 B를 맡기는 게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 상황은 어쩔 수 없어보이는군."
팔라딘이 전열에 서고, 마법사가 기습. 트릭스터는 만에 하나 있을 상황을 대비한다. 비록 단테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버질이었지만, 그의 지시는 현 상황에서 정확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그렇고, 에리스는 왜 참여 안 시킨 거야?"
[베아트리체 : 까마귀 대폭풍 / 준비.]
단테가 묻자, 버질은 엄지로 마그놀리아 본부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요정의 전투 능력을 믿지 못 하는 건 아니야. 에리스의 경우, 전선에 나서게 해서 싸우게 하는 편보다는 연구 부서에서 데이터를 제공하는 쪽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흐음. 뭐 나로써는 에리스가 안 싸우는 편이 훨씬 더 마음이 놓이긴 하네."
"간다!"
[베아트리체 : 까마귀 대폭풍.]
마법의 발포 준비를 끝마친 베아트리체는 앞으로 확 굴러 나오며 마법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소환된 마법의 까마귀들이 마구 울부짖으며 선풍을 자아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마나 냄새가 난다!!]
베아트리체의 반응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스피드로,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가 순간 베아트리체를 향해 내질러져 왔다.
규모가 큰 마법을 사용하느라 힘을 써버려 잠시 행동할 수가 없었던 베아체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 다가온 그때, 대기하고 있던 버질이 로키의 환술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갑옷의 에너지 실드를 작동. 유탄조차도 막아내는 방패를 전개하며 괴물의 턱을 받아냈다.
"크윽...!!! 단테!"
[단테 : 버스트 슬래시.]
등 뒤에서 공격을 틀어막고 있던 버질의 어깨를 밟고 도약한 단테는 매섭게 성검에 마탄을 장전해 강렬한 횡베기를 날렸다.
괴물의 얼굴에 큼직한 상처를 남기는 것과 동시에, 반동으로 튕겨져 나온 단테는 땅을 미끄러지며 착지, 동시에 성검을 수납하고 양손에 M1911과 M4A1을 들었다.
"락 앤 롤. 베이비. 시작됐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단테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음악에 대한 재능 또한, 높은 매력 수치에 어느 정도는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드디어 파티가 조금 모양새가 나기 시작했네요. 성기사, 마법돚거 겸 용사, 마법사라는 클래식한 조합이지만, 이런 조합도 좋죠. 원래 클리셰대로라면 성기사에게 용사 자리가 갔어야할 구성이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