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화
아내를 뺏어간 놈과 만나다. (2)
베아트리체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단테와 버질은 기싸움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쪽은 과거, 베아트리체의 남편이었던 사람. 다른 한쪽은 현재 베아트리체의 남편인 사람.
한 쪽은 레이븐즈 로지스틱스 소속의, 정처 없이 트럭 하나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방랑하고 다니는 배달부, 다른 한쪽은 인간만을 위한 황무지를 재건하기 위해 힘쓰는 홀리의 기사단장.
인간의 눈동자와 마족의 눈동자 사이에서 불똥이 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기센 신경전이 오갔던 그때, 홀리의 연구 부서에서 일하고 있던 고글을 쓴 여자 한 명이 쫄래쫄래 단테의 뒤로 돌아오더니, 그가 등에 들쳐 메고 있던 성검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우와... 진짜다. 이게 진짜 '성검'..."
황급히 단테는 순간 자신도 깜짝 놀라 홀스터의 권총을 뽑을 뻔했다.
험한 황무지에서는 등 뒤에서 예상치 못 했던 소리나 기척이 들려온다는 건 백이면 백, 좋지 않은 것이 곧 덮쳐올 것이란 징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머쓱하게 홀스터로 뻗은 오른손을 부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집어넣은 그는 자신의 성검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고글 낀 여자에게 툴툴거리며 사과했다.
"아. 미안."
"아. 아니요. 괜찮아요. 잠깐만 그거 봐도 될까요? 저희 부서에서도 성검을 해석해보는 건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서요."
단테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찌저찌 자신의 손에 들어온 고대 병기고, 지금까지 도움도 많이 받아왔지만 '용사'로서의 자각이 조금 옅었던 그는 성검에 대한 주인 의식이 희박한 편이었다.
"음... 뭐 크게 상관은 없어."
선뜻 등 뒤에 성검을 조심스럽게 들어 연구원에게 내밀자, 그 고글 쓴 연구원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양손으로 단테가 건네준 성검을 받아 들려 했다.
그러나 단테의 손을 떠난 탓에 '반중력 시스템'이 해제된 탓에, 그에게 있어 그냥 마체테 수준의 무게였던 성검은 다시 원래의 무게를 되찾고 말았다.
"우... 우와아앗!! 무거!"
쿠우우우웅!!!
바닥에 흔적이 생길 정도로 큰 소리와 함께 지면에 떨어진 성검은 은은한 붉은빛을 내뿜으며 다른 사람의 손에 들리는 것을 거부했다.
"죄. 죄송해요. 어... 그. 기사들에게 부탁해서 연구실로 옮기도록 할게요. 호오... 특정 사용자에 반응해서 무게가 줄어드는... 그런 효과가 있는 걸까나..."
디바이너에게는 빚도 있겠다. 홀리의 기사들과 연구원들이 땀 뻘뻘 흘리며 성검을 옮기는 걸 도와줄 생각이 전혀, 요만큼 치도 없었던 단테는 그들이 힘겹게 끙끙거리며 거대한 전쟁 전 기술력의 집합체이자, 그들에게 있어선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성검을 옮기는 걸 재미있게 구경했다.
"좀 도와주지 그러냐. 네가 정말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라면, 네게 있어선 깃털 한 장보다도 가볍게 느껴질 텐데."
버질이 팔짱을 끼고 딴지를 걸자, 단테는 어깨를 움츠리며 대꾸했다.
"지네들이 섬기던 용사의 용안조차 못 알아보고 감옥에 쳐넣은 사이비 종교 집단을 도와줄 생각은 미안한데, 요만큼도 마음속에서 안 우러나와서 그래."
"주인님... 그. 디바이너 교단이 마음에 안 드시는 건 이해하겠는데요. 그래도 일단은 저희가 저지른 죗값이 있으니까. 여기서는 넘어가는 편이 좋지... 좋...지. 않을까요?"
단테는 자신을 째려보는 베아트리체, 그리고 겁 먹은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에리스를 봐서 단테는 짓궂은 트릭스터로서의 본성이 올라오려는 걸 꾹꾹 눌러 담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느그... 으르스랑... 브으츠 을글 브스 츰는드 느그...(내가 에리스랑 베아체 얼굴 봐서 참는다 내가.)"
"흥... 여전히 어릿광대처럼 한없이 가벼운 남자로구만."
버질도 내심 단테를 한껏 비꼬아주고 싶었지만, 천박한 서큐버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근본 없는 배달부와 똑같은 꼴로 전락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인류의 재건을 도맡은 성스러운 기사단, 홀리의 기사단장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베아트리체 앞에서 단테와 유치한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단테. 인류 최후의 보루. 홀리 기사단의 본부에 온 걸 환영해. 데이터 칩을 회수하기까지, 너는 이제부터 홀리의 단원들과 행동을 같이 한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
버질 대신 홀리를 소개해준 베아트리체는 연구 부서에는 더 볼 일은 없다고 짤막하게 말하며, 단테를 데리고 본격적으로 그를 지휘통제실에 소개해주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거대한 스크린 위에 투박한 초록색의 지도가 띄워져 있다.
대충 마그놀리아 근처의 지형이 표시된 지도를 물끄러미 단테가 바라보고 있자, 버질은 건틀릿의 손가락 끝으로 붉은 점이 있는 부근을 가리켰다.
"현재 회수해야할 데이터 칩은 이쪽에 있다. 아마 와일드 헌트 녀석들의 임시 초소가 위치한 곳이겠지. 언제까지 여기서 녀석들이 물러날지 확실하지 않은 데다, 서머너를 적으로 두고 있는 만큼. 빠르게 병력을 투입하여 그들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
"그전에 하나만 확실하게 하자."
단테는 지도에 뻗은 버질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
"대체 이 데이터 칩 안에 무슨 데이터가 들어있길래 사방에서 이걸 가지려고 염병 지랄을 하는 거야? 유니온도 그렇고. 디바이너도 그렇고. 내가 의뢰받은 곳도 그렇고."
"용병으로 뛰는 레이븐이 알기에는 너무 과분한 정보다. 모르는 편이 좋을 거야."
버질이 차갑게 대꾸하자,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베아트리체 역시 그에게 쌀쌀맞게 대꾸했다.
"무슨 레이븐이 알기에는 과분한 정보야. 너도 거기 안에 뭐가 들었는 지 모르잖아. 안 그래?"
"읏..."
버질은 정곡을 찔렸다는 듯, 동시에 그 사실만큼은 단테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했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야 그럼. 여기서 아무도 그 칩 안에 든 게 뭔지 모른단 말이야? 베아트리체? 너는?"
"용사와 관련된 정보라는 건 확실한데. 자세한 건 본격적으로 사이퍼를 해봐야지 알 수 있어. 근데 한 가지 그 칩에 대해서 단언할 수 있는 게 딱 한 가지 있긴 하지."
"뭔데?"
"안에 데이터화 된 '영체'가 들었어.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녀석으로. 사이커인 난 느낄 수 있어. 그 안에 든... 그 알 수 없는 그 영체가 얼마나 강력한 지."
"신령급이야?"
신령급 서번트를 보유하고 있던 단테는 불쑥 물었다. 신령 씩이나 되는 영체는 좀처럼 잘 등장하지도 않고, 서번트화되지 않은 야생의 형태로 그대로 현현 시 자연재해급의 피해를 각오해야만 한다.
그러나 베아체는 단테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진 알 수 없어. 하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강력해. 잘못된 소환사의 손에 만약, 그게 돌아가게 된다면, 막대한 피해가 생길 거야. 유니온에는 강력한 소환사들이 많으니까. 잘못하면 인간 거주 지역 몇 개가 날아갈 수도 있어."
"유니온... 은. 인간을 적대하는 집단인가요?"
에리스가 질문하자, 베아트리체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대체로 그래. 온건파도 있지만, 대부분의 유니온 사람들은 인간을 싫어해. 그것만으로 뭉친 집단이니까. 어쩔 수 없어. 과격파의 손에 넘어갈 시, 마그놀리아가 위험해져."
네오 쿄토 막부에서는 저 칩 안에 사이버네틱 관련 기술이 있다고 추정하고 자신을 보냈을 터인데, 베아트리체는 저 안에 영체의 데이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막부는 사실 저 안에 있는 강력한 영체를 노리고서, 일부러 사이버네틱 기술을 훔쳐오라고 단테에게 거짓으로 알려준 뒤에 회수를 시킨 걸까.
아니면 디바이너 교단 측에서 일부러 다른 세력의 견제를 걱정해, 잘못된 정보를 뿌린 걸까.
섣불리 원래 그 칩에는 사이버네틱 기술이 담겨있다고 들었다, 라고 밝혔다가는 자신의 의뢰주가 들킬 가능성이 있었던 만큼, 단테는 입을 철저히 단속하며 물었다.
"자 그럼 사정은 알았어. 그럼 하나만 묻자. 유니온의 손에 들어가면, 수많은 인간 거주민들이 피해를 본다. 이해했어. 와일드 헌트 새끼들에게는 '인간 사냥꾼'이라는 별명도 있으니까.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서. 그 칩이 너희들의 손에 들어가면, 악마 거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거 아닌가? 아니, 악마 거주민도 아니지. 그냥 디바이너 교단이 배척하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보겠지."
"그게 무슨 말이지?"
버질이 묻자, 단테는 뻔한 거 아니냐며 대답했다.
"와일드 헌트에게 '인간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었듯. 너희들 홀리에게 붙은 이름은 '마녀 사냥꾼'이야. 아니면 종교 재판관.
자기 맘에, 교리에 맞지 않는 악마들, 마소병 환자들, 사이커들, 반인반마.
전부 다 못 죽여서 안달 난 크루세이더에게 그런 강력한 서번트가 넘어가게 된다면 아까 너희는 인간 거주민들이 학살당할 거라고 경계하듯, 유니온도 그런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걸 똑같이 경계할 거란 소리야.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만 묻자.
'너희들이 '유니온'이랑 다를 게 대체 뭐야?"
단테의 결정적인 질문에 순간 지휘통제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러나 버질은 나름대로 추구하는 정의와 이상이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반인반마의 생각은 그러하군. 하지만 뭐 안심해라. 홀리가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일은 없을 거다. 그 점만큼은 단테, 베아트리체의 이름에 걸고 네게 약속하지."
"그럼 어떡할 건데. 그 서번트를 회수해서."
"일단, 유니온의 손에 그냥 넘어가게 둘 수는 없다는 거지. 디바이너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럼 지금 바로 저 칩을 가지러 가는 거야?"
"아니. 그 전에 진정으로 너를 신용할 수 있을지. 네 실력은 어느 정도 되는지 한 번 볼 거야."
버질은 대답하곤 지도를 돌리고, 마그놀리아의 레일로드와 데이터 칩이 위치한 장소 사이에 위치한, 푸른빛으로 점멸하는 점 하나를 가리켰다.
"현재 와일드 헌트는 이 지점에 영체를 몇 체 소환해두고 도망쳤다. 야생 상태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서번트화되었을 때보다 훨씬 스테이터스가 높아서. 일반적인 기사들로는 퇴치하기가 어려워.
하지만 와일드 헌트의 본거지를 쫓아가기 위해 병력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이 도로를 무조건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을 벌 셈이겠지."
"너희 그. 디바이너 측에 남는 헬기 많을 거 아니야. 그걸 쓰면 안 돼? 와일드 헌트 녀석들도 헬기 쓰더만."
"데이터 칩이 위치한 저 곳은 이전에 전쟁 전에는 교도소로 쓰였던 장소다. 이름이 레인브릿지 교도소였나, 그랬을 텐데.
대공 병력으로 접근하려고 했으나, 곧바로 교도소에 설치된 터렛과 서머너의 마법을 이용한 저격으로 인해 격추당했다.
상공에서의 진입은 불가능해. 남는 건 길을 빙 둘러서 가는 것과 이 도로를 돌파하는 것밖에 없는데. 현재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무슨 영체인지는 확인했어?"
"근처에 짙은 마소가 깔려 있어서 장거리 관측 기계가 죄다 먹통이야. 어떤 영체인지는 이쪽에서는 알 수 없어. 직접 가서, 확인해보는 수밖에."
베아트리체의 말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영체를 줘 패는 거야 내 특기니까."
"야생화된 영체니까. 서머너 혼자서는 버거울 수도 있어. 그렇다고 해서 마법도 못 쓰는 기사들의 희생을 늘릴 수는 없지. 그러니까 영체를 토벌하는 인원은 딱 세 명이다."
버질은 먼저 자신을 엄지로 가리키고, 그 다음 베아트리체, 바로 그다음 단테를 가리켰다.
"그엑. 너랑 같이 가야 한다고? 진짜 최악이다. 차라리 동네 개새끼랑 합을 맞추고 말지."
"이쪽이 할 말이다. 단테. 나도 너랑 같이 협력하는 날이 설마 다시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하지만 명심해라.
이번 영체 토벌 작전은, 단순히 팀워크를 맞춰보기 위한 전투가 아니야. 네 신뢰도를 가늠해보기 위한 전투다. 중간에 배신할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순간... 나의 성기사의 검이 널 용서치 않을 거다."
"네. 네. 그래서 출발은 언제야? 후딱 끝내버리자고. 시간도 없다면서."
"단테, 일단은 너도 그렇고 에리스도 그렇고. 조금은 쉴 필요가 있어. 교도소 근처에 수상한 움직임이 없는지는 계속해서 내가 마법을 통해 모니터링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적은 '마도 아머'를 끌고 쳐들어왔어. 그거 하나 운용하는 데 최소 하나의 소대 급의 인원이 필요하니까. 그 정도 인원이 움직이면 반드시 뭔가 전조가 있을 거야.
그리고 날도 이미 어두워졌으니까, 지금 섣불리 움직이면 와일드 헌트를 잡기 전에 섀도에게 먹히는 게 먼저일 거야. 작전 수행은 내일 오전 11시. 그때까지 편하게 쉬어."
"막사에 남는 방을 하나 준비해놨다. 원래는 장교들이 머무는 방이니까. 소중히 쓰도록 해."
* * *
현재 용사 파티.
1. 단테 / 직업 : 용사, 아케인 트릭스터.
특화 스탯 : 매력
2. 버질 / 직업 : 팔라딘.
특화 스탯 : 내구
3. 베아트리체 / 직업 : 소서리스.
특화 스탯 : 마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