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디바이너 교단. (2)
전쟁.
전쟁은 변하지 않는다.
디바이너 교단.
약 200년 전.
이곳에는 신을 섬기는 거대한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옛날, 인간들이 무슨 신을 섬기고, 어떠한 내용의 기도를 올렸는지는 불명이다.
아직까지도 방사능, 그리고 방사능으로 인해 변화한 마나인 '마소'가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의 핵폭격을 가한 마왕이었지만.
마지막 남은 마왕의 양심이었을 지, 아니면 그냥 기막힌 우연의 일치였던 건지. 가장 거대한 인간의 종교 시설이 있던 이곳만큼은 핵폭발의 마수가 다른 곳에 비해서는 많이 미치지 않았다.
초창기, 막 핵이 떨어진 직후, 아슬아슬하게 핵폭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인간들은 거대한 성당을 중심으로 조금씩 발전을 해나갔으며.
대부분 종교인으로 이루어져 있던 성당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 종말을 가져 온 마왕을 증오했으며, 그가 지옥 너머에 존재하는 심연의 나락 끝으로 떨어지기를 기도했다.
그러한 '마왕 증오'의 신앙이 마왕을 원정 끝에 살해한 '용사 찬양'으로 이어지는 데까지는, 마계가 용사 일행에 의해 완전히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나 인간계로 넘어온 마족들에 대한 격렬한 '혐오'로 이어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이란, 아니. 마족을 비롯한 모든 지성체는 척박한 야생에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이기적인 유전자를 각인된 채 태어나기에.
인간들은 자신들이 과거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기보다는,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데 더 사람들을 규합하고 하나의 목적 아래에 통일하는 방식이라는 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용사 찬양의 종교 집단은 거대한 종교 도시, '디바이너 교단'이 되어 황무지 위의 마족들을 다시 섬멸하기 위한 힘과 기술을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이 땅에 남아 척박한 황무지를 개척하기 시작한 마족들, 그리고 그런 마족들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2세, 3세들의 후손들은 그러한 디바이너의 위협으로부터 저항해나갔다.
그렇다.
전쟁은 변하지 않는다.
* * *
"레이븐이라는 이유로 다른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그닥 좋지 않은 눈초리를 받은 적은 많았지만."
단테는 디바이너 교단 본부가 위치한 도시, 마그놀리아의 가도 위에서 손발이 묶인 채 호송되고 있었다.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고, 목에는 칼이 채워져 있다.
작은 감옥 안에 갇혀있던 그는 곧 공개 처형이 확정된 죄인 마냥, 앞에 승용차 두 대에 의해 질질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혐오의 눈초리를 받게 된 건 거의 한 2년 만인 거 같은데. 내가 이 사람들에게 뭔 짓을 한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단테. 부탁이니까 지금은 제발 조용히 해줘."
감옥 옆에서 지끈거려오는 이마를 매만지며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이런 식으로 죄수를 호송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탓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단순 로그가 홀리의 기사들을 쓰러뜨린 것이라면 그냥 평범하게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하고 끝났을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홀리의 기사를 죽인 건 그냥 로그 나부랭이가 아니라, '반인반마'의 배달부다.
일단 '마족'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는 인종차별주의적 분위기가 깔려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얼른 단테의 목에 총알이 박히는 그 순간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뭐 여러가지 요인은 있겠지만.
지금 그 요인을 따져봤자,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단테는 바로 옆에 똑같이 수갑과 칼을 찬 에리스를 바라보았다.
"죄... 죄송해요. 제가... 제가 조금만 이성적인 판단이 되었더라면... 이런 일까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알았으면 반성 좀 해라. 뭐...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
"그건 그렇고. 여기는 원래 사제들의 도시였을 텐데. 이런 식으로 바뀌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제가 알고 있던 장소는. 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에리스가 뭐라고 말하자, 호송을 담당하고 있던 교단의 기사가 사납게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으로 감옥의 창살을 후려치며 외쳤다.
"침묵해라! 이 불경한 것!"
"우우."
에리스가 훌쩍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이런 감옥 안에서 호송되는 것에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주변의 풍경이 창살 사이로 너무나도 잘 보인다는 점일까.
아무래도 디바이너 교단의 본부, 추기경들이 머무는 종교 재판소로 이송되는 모양이었다. 디바이너의 종교 재판은 무시무시하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 당사자가 본인이 될 줄은 몰랐던 단테는 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나 보험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보험이요?"
"응."
* * *
"죄수 번호 694241번."
종교 재판소 한가운데로 인도받은 단테는 두 팔이 뒤로 묶인 채 단상 위에 앉은 세 명의 추기경을 올려다보았다. 뭐, 말이 추기경이지 사실 상 단테에게 있어서는 사형 집행 머신이나 다름없다.
"홀리 기사의 살해. 디바이너 교단의 중요한 공무 집행의 방해. 거기에 서큐버스랑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마. 뭐 이건 더 볼 필요도 없을 거 같소. 판례를 찾아보는 시간을 덜었군."
단테가 단상에 올라서자마자, 그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곧장 의사봉을 치켜드는 추기경을 보고 단테는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아니. 잠깐! 변호인의 말은 들어봐야할 거 아니야! 거 일처리 한 번 빠르네. 이건 아니지!"
단테가 외치자, 옆에서 그를 감시하고 있던 홀리의 기사가 창 끝으로 그의 몸을 살짝 찔렀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만약 여기서 다시 한 번 소리쳤다가는 단테의 말이 추기경에게 닿아, 사형이 선고되기 전에 이 기사에게 꼬챙이처럼 꿰뚫릴 게 뻔해 보였다.
"불경하고 천박한 악마의 아들 녀석! 목소리를 낮춰라!"
"그의 말이 맞습니다."
단테의 옆에 서 있던 베아트리체가 추기경에게 대꾸하며 외쳤다.
"마녀여. 로마에 왔다면 로마의 법을 따르는 게 인지상정이듯. 교단에 왔다면 교단의 법을 따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 자를 감싸겠다면 마녀여, 그대의 위치 또한 위험해질 것이다."
"그에게 악의는 없었을 겁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황무지를 떠돌며 의뢰를 받는 용병. 레이븐즈 로지스틱스의 배달부입니다. 그를 처형하기보다는, 그를 고용한 의뢰주에게 신벌을 내림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의뢰주에게 신벌을 내린다 하더라도, 저 불경한 악마의 자식의 죄가 사해지는 건 아니다!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는구나! 베아트리체여! 한 때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동료라고 해서, 그를 감싸도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거죠? 저는 홀리의 기사단장, 베르질리우스의 배우자입니다. 추기경들이여, 홀리의 기사단장이 가진 권한은 당신들이 나눠가진 권한과 동일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분수를 생각해라. 까마귀의 마녀! 반인반마를 기사단장의 배우자가 감싸고 돌았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지게 된다면, 베르질리우스의 입장은...!"
"곤란해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남자에겐 당신들이 살려둬야만 하는 이유가 존재합니다. 아직 당신들은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한 모양이니, 알려주도록 하죠. 이 남자는 우리 교단이 섬기는 존재 그 자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베아트리체가 외치자, 그때 자리에 앉아있던 추기경 중 한 명이 창을 빼들고는 베아트리체를 향해 내던졌다. 이게 재판의 현장인지, 아니면 전투의 현장인지 알 수 없게 될 정도로, 재판장의 분위기는 격앙되어 있었다.
"신성 모독이다!!! 까마귀의 마녀를 지금 당장 감옥에 쳐 넣어라!"
홀리의 기사들이 그녀에게 육중한 갑옷의 소리와 함께 접근해오자, 베아트리체는 어딜 만지냐는 싸늘한 눈동자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딱히 매료나 석화의 마법을 건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타오르는 보랏빛 눈동자에서 새어 나오는 카리스마의 편린과 '버질'의 배우자라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베아트리체의 옷깃 하나,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뭣들 하는 것이냐! 재판 방해죄로 지금 당장 감옥에."
"저 남자는 성검에 의해 선택받은 '용사'입니다!"
베아트리체의 말이 재판소에 울린 바로 그때, 추기경들을 비롯하여 모든 교단의 기사들이 그 자리에서 스카디의 냉기 마법에라도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유일하게 그 자리에서 싸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건 딱 두 사람이었는데, 바로 단테가 용사임을 밝힌 베아트리체 본인과 그 당사자였던 단테였다.
그러나 싸늘한 분위기가 재판소를 완전히 휘어잡기 전에, 정신을 차린 추기경은 역으로 베아트리체를 호통치며 그녀에게 따지고 들어갔다.
"불경한 것. 반인반마 따위를 신성한 성검 따위가 선택할 리가 없지 않느냐! 베아트리체! 지금 당장 그가 용사임을 증명해 보이지 않겠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신성을 모독한 죄로, 네 년의 목을 치겠다!"
"흥. 그 허세가 어디까지나 갈 수 있나 한 번 보죠."
베아트리체는 콧방귀를 한 차례 뀌고는 자신의 '사이커'로서의 능력을 발휘, 염동력을 이용해 재판소의 문을 열어젖혔다.
밖에는 거대한 관짝 하나를 짊어진 네 명의 기사들, 베아트리체의 호위 무사인 로열 가드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한 번 손짓해 명령하자, 그들은 낑낑거리며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관을 떨어뜨렸다.
관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단테에게서 홀리의 기사들이 빼앗은 성검이 거기 있었다.
단테가 용사라는 걸 증명해줄 유일한 증거이자,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나 다름없는 성검이 눈앞에 들어오자, 그는 추기경들이 들으란 듯이 큰 소리를 쳤다.
"나는 성검! 리버레이터에게 선택받은 신성한 용사다! 지금 내 두 팔의 수갑만 풀어준다면, 교단의 내로라하는 기사들조차 들기 힘든 이 성검을 가볍게 들어 내가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임을 증명해 보이겠다!"
단테의 말에 재판을 맡고 있던 세 추기경은 그를 노려보았다.
200년 전, 마왕의 머리를 떨어뜨린 성검과는 다른 모델, 다른 힘을 품긴 하였으나.
전쟁 전 터미널에 남아있던 데이터베이스에서 이와 비슷하게 생긴 성검의 데이터를 접한 적이 있던 추기경들은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 드러난 '거검'을 보고 순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재판의 흐름이 자신 쪽으로 넘어온 걸 확인한 단테는 '적합자'를 잃어 원래의 붉은빛을 잃은 성검을 바라보며 베아트리체에게 부탁했다.
"베아체. 부탁이야. 오른쪽 수갑만이라도 잠깐만 풀어줘. 그래야 성검을 들 수 있으니까. 제발."
"그럼 단테. 하나만 약속해."
베아트리체는 꽁꽁 족쇄와 수갑으로 구속된 단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단테와 오래 알고 지낸 그녀는, 그가 타고 난 트릭스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성검을 낚아채자마자,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베아체는 그에게 M1911 권총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 권총에 대고 약속해줘. 제발 부탁이니까. 그 성검을 들자마자 허튼짓 하지 않겠다고. 이번 한 번만. 알았지?"
"아무리 내가 빡대가리라도 이 상황에서 앞뒤 안 가리고 날뛰는 게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건 알아. 오른쪽이 무리라면 왼쪽이라도 좋아. 풀어주기만 해 줘."
추기경들이 잠시 '실제 성검'을 본 충격에 사로잡혀있을 때, 교단의 기사들이 베아트리체의 견제를 받아 섣불리 단테를 감시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때.
베아트리체는 손 끝에서 작고 날카로운 까마귀의 깃털 하나를 검지와 중지로 잡고 단테의 오른쪽 수갑의 쇠사슬을 정확히 조준하고 던졌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마력의 깃털은 빵을 자르듯 단테의 팔을 옭아매고 있던 사슬을 끊었다. 그 직후, 단테는 자신 앞에 놓여있던 성검을 향해 손을 뻗으며 짧게 소망을 섞어 외쳤다.
"와라 리버레이터!"
"자... 잠깐! 베아트리체가 죄수의 족쇄를 풀었다! 지금 당... 장...?"
그 순간, 관에 방치되어있던 성검 : 리버레이터가 단테의 '목소리'와 그 속에 담긴 '소망'을 읽어내었다.
에리스가 말하길 성검에 적용된 특수한 '반중력 시스템'에 의해, 희미한 붉은빛과 함께 관에서 두둥실 떠오른 성검은 자신의 주인인 반인반마의 사내의 오른손을 향해 곧장 날아왔다.
[소환기 반응 * * * 확인.
적합자 목소리 인증 * * * 확인.
체내에 '악마 감염' 확인.
바이탈 체크 * * * 정상.
정상 가동 판단 중 * * * 확인.
* * *
성검 : S-24 리버레이터.
슬립 모드에서 해제되었습니다.
당신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