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디바이너 교단. (1)
"저기이..."
레일로드 위를 지나는 성스러운 디바이너 교단의 열차. 그중에서도 최고 귀빈들만 탑승할 수 있는 칸에서 단테는 수갑으로 두 팔을 묶인 채로 울상을 지었다.
홀스터에 차고 있었어야 할 총은 전부 빼앗겼다. 탄약도 뭐 하나 빠짐없이 압수당했다.
레이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검은 방탄 코트도 빼앗긴 탓에 단테가 레이븐임을 증명해주고 있던 물건은 오로지 그의 목에 걸려있던 찰랑거리는 군번줄뿐이었다.
마법을 통해 상황을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서번트를 통해 마법을 부리는 소환사인 단테는 사이커가 아니었기 때문에 왼팔에 찬 소환기를 이용해서 그때그때 알맞은 서번트를 소환해 마법을 부린다.
즉, 그 소환기만 작동 불능으로 만들면 단테는 그냥 평범한 일반인... 평범한 반인반마의 사람에 불과하다. 소환기를 작동 불능으로 만드는 법은 단순하다.
단테가 갖고 있는 모든 마탄을 압수하면 된다.
사이커가 아닌 단테는 소환기를 통해 소모되는 마나를 자력으로 보충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탄을 소모해야만 서번트를 소환하거나, 서번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지금 소환기의 탄창은 텅 비어있었던 데다, 서번트도 소환 해제되어 지금의 단테는 황무지를 돌아다니는 로그만도 못 한 얼간이나 다름없었다.
"저기이! 누구 없어요? 누가 이것 좀 풀어주면 안 돼요? 저항 안 할게요. 안 할 테니까. 적어도 수갑만 좀 풀어줘요. 어차피 마탄도 없고. 총도 빼앗긴 데다, 성검도 빼앗겼고, 방독면도 빼앗겼는데. 뭘 할 수 있다고. 저기요!!! 누구 없어요?"
원래는 베아트리체가 타고 있었던 칸에서 한숨을 나지막이 쉬었던 단테는 몸을 움직여 창 밖을 슬쩍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이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을 수밖에 없다.
창문에 귀를 딱 대어 바깥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귀를 기울이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열차의 방음 성능 하나는 매우 죽여줬던 지라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교단의 기사들은 일제히 어떤 통신을 받고서는 다시 도로 열차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컹, 하고 열차가 흔들리더니, 천천히 선로 위를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선로 앞을 가로막고 있던 트럭을 치워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출발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아마 트럭에 둘둘 감아놓은 다이너마이트를 폭발물 처리반을 통해 일일이 안전하게 제거하느라 그런 것이겠지.
단테는 자신이 준비해온 모든 꾀가 수포로 돌아갔음을 이번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혀를 차며 한숨을 깊게 내쉰 단테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반성했다.
쿄토 막부가 언급했던 대로,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었다면 마법 능력자들이 달라붙어 지키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가능성은 고려하고 있었지만, 열차 안에 타고 있었던 게 진짜 '베아트리체'였을 줄은 몰랐던 단테는 자신의 정보 수집 능력의 미숙함을 반성하며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베아체와의 마법전, 그녀가 '신령형 스카디'를 꺼낼 것을 상정하고서 스카아크의 '게-불그'를 원거리에서 쏘았었더라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신령형 로키를 조금만 더 일찍 내보내서 활용할 수 있었더라면 승기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신령 소환 및 마법 소환의 페널티라고 할 수 있던 마소 중독을 지나치게 두려워한 탓에 꺼내지 못한 게 패인이었다.
단테가 패배를 곱씹으며,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을 무렵, 열차의 통로의 문이 열리고 거기서 흑발 곱슬머리의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이 금속으로 된 열차의 바닥을 또각또각, 밟으며 단테 쪽으로 다가왔다.
"조용히 좀 해. 근처에 있었던 교단 기사가 시끄럽다고 죽이려고 하는 걸 간신히 막고 왔으니까."
베아트리체는 쌀쌀맞게 양 팔이 수갑으로 벽에 고정되어 있던 단테에게 쏘아붙였다. 아마 단테가 먼지 덮인 화물칸이 아닌, 베아트리체가 탄 귀빈 칸에 묶이게 된 건 그녀의 입김이 어느 정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리라.
"그거 참... 고맙네."
"단테... 너 때문에 일이 다 꼬여버렸어. 솔로몬의 마신을 다루는 소환사긴 했지만. 와일드 헌트의 드라군 정도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는데.
네가 내 마나랑 스카디의 내구를 소모시키지만 않았었더라도. 데이터 칩은 유니온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을 거 아니야. 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생각이야? 너."
"거기까지는 미안한데, 애석하게도 계획해놓은 게 하나도 없어. 아하하..."
"하아. 그래. 그렇겠지."
베아트리체는 두통 때문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매만지다가, 근처 테이블 위에 하얀 장갑을 벗어 올려두었다. 매끈한 맨손을 드러낸 베아트리체는 손발이 묶인 채, 바닥에 주저앉은 단테를 내려다보곤 한숨을 쉬었다.
"3년 만이지? 우리. 너는... 여전히 바뀐 게 뭐 하나 없구나."
"너도 마찬가지야. 트릭시."
"그 호칭은 밤에만 쓰기로 했잖아. 교단 기사들이 사방에 깔린 지금은 쓰지 마. 알겠어? 그건 그렇고, 너... 어떻게 성검을 다룰 수 있게 된 거야?"
"리버레이터? 홀리의 간부가 의뢰를 했었어. 용사의 옛 길드 사무소에서 성검을 갖고 오라고. 난 성검만 갖고 오려고 했는데.
그때 성검을 잡는 순간, 나를 '용사'라고 취급하기 시작하더라고. 그리고, 의뢰를 내준 홀리의 간부. 맥킨지였나? 의문의 폭발 사고로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냥 내가 쓰기로 했어."
"확실히. 그런 보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
"것보다, 베아체. 너 성검에 대해서 뭐 아는 게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많이 알고 있지."
베아트리체는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성검을 손에 넣었다는 건, '요정'도 가까이에 있다는 소리겠네. 행동은 같이 하고 있는 거야? 에리스랑?"
"너... 걔 이름을 어떻게 알아낸 거야?"
요정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려고 했던 베아체는 잠시 입을 열었지만, 금방 고개를 다시 도로 저으며 어중간하게 얼버무렸다.
"네가 알 필요는 없어.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살았고. 오래 살았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정보에 접촉할 기회가 많다는 걸 의미해.
내가 알기로는... 모든 요정은 '한 가지'의 예외를 제외하면 전부 '에리스'라는 이름을 공유해. 그래서 어렵지 않게 네가 데리고 다녔던 요정이 에리스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거지. 간단한 문제야."
"... 그러냐."
베아트리체를 마주할 때마다, 단테는 늘 생각했다.
퀸의 노래에서 등장하는, Killer queen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가... 바로 베아트리체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녀는 똑똑하고 영민하며, 단테에 지지 않을 정도로 꾀가 많다. 오래 살아왔다, 라고 본인이 밝힌 만큼 실제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감조차 잡을 수 없으며, 그 나이에서 오는 여유와 통찰력이 있다.
"지금부터...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일단은 디바이너 교단 본부로 널 데리고 갈 거야. 죄목은 공무 집행의 방해. 및 교단 기사의 살해. 레일로드 주둔군의 시체를 다수 확인했어.
솜씨를 살펴본 결과, 레이븐이라는 결론을 우린 내릴 수 있었고. 레일로드 근처에서 어슬렁거린 레이븐은... 너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다음에는?"
"재판의 결과에 따라서 처우가 결정 나겠지."
"처형당하는 거야? 여기서 죽고 싶지는 않은데..."
단테가 고개를 숙이자, 베아트리체는 단테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얼굴을, 두 뺨을 손으로 어루만지곤 자신의 이마를 단테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단테, 아무리 우리가 3년 전에 헤어진 사이라고 해도 교단이 네 목을 치는 걸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어. 내가 추기경들을 어떻게든 설득할게."
지근거리에 비치는 보랏빛의 눈동자에 녹아든 '애정'을 확인한 단테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것이 3년 전, 자신들이 서로 정해놓은 '신호'라는 걸 알아챈 베아체는 자신의 입술을 단테에게 가져다 대려다가, 근처에 교단 기사의 눈이 있다는 걸 깨닫고 재회의 키스를 주저했다.
"미안... 단테. 여기선 안 돼."
"... 응. 그렇겠지."
* * *
열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갑자기 열차가 우뚝 서더니, 짧은 총성과 마법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단테는 느낄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도 마찬가지로, 레일로드를 둘러싸고 또다시 뭔가 이변이 벌어진 걸 느끼고, 바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장갑을 끼고, 방독면을 챙겼다.
"단테. 네가 한 짓 아니지?"
"내가 지원을 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지금."
단테가 시니컬하게 대답하자, 그것도 그렇지. 라며 베아트리체는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열차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녀가 사건을 정리하기도 전에, 이미 총성은 멎었고 전투의 열기 또한 가라앉았다.
"뭐지?"
단테가 의문을 표할 무렵,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베아트리체가 타고 있던 칸에 덩치 큰 교단 기사가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수갑을 채운 여자 한 명을 일방적으로 바닥에 내던졌다.
"습격범을 잡았습니다. 베아트리체 님. 놀랍게도 체내에 영체를 보유한 마법 능력자더군요. 관리에 주의가 필요할 거 같아, 일단은 베아트리체 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일찍 진압되기는 하였으나, 디바이너 교단 소속의 열차를 습격할 줄이야. 주모자는 상당한 강심장을 지닌 용병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분수도 모르는 얼간이이거나. 이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단테는 생각했다.
레일로드 테러의 주범이었던 여자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 교단의 기사의 힘에 밀려 바닥에 내팽개쳐진 충격으로 인해 후드가 뒤로 넘어가며 벗겨졌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얼굴은... 불행인 건지, 다행인 건지, 단테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 에리스?"
"아. 주. 주인님! 무사하셨군요! 저, 주인님을 구하러 왔어요!"
"..."
단테는 두 팔이 수갑에 구속된 채 아등바등 발버둥 치고 있던 에리스를 딱하다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리스. 그건 구하러 온 게 아니라. 잡혀왔다고 하는 거야."
그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던 베아트리체는 얼굴에 막 뒤집어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어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에리스를 유심하게 살펴보았다.
"어떤 간 큰 녀석이 또 레일로드를 습격할 생각을 했나 싶었더니. 요정이었구나. 뭐... 그럴 만도 하지."
"아니. 베아체, 지적 좀 해라. 에리스. 디바이너 교단은 황무지의 절반 정도를 먹은 거대 세력이야. 그 세력이랑 정면에서 맞붙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서는 이러는 거야?"
"단테, 냅둬."
베아트리체는 에리스를 힐긋 내려다보며 말했다.
"요정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인식한 용사를 최우선적으로 지키고 보호하게끔 만들어져 있어. 설령... 그 목숨을 내다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그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정은 없어. 에리스는 해야 할 일을 했던 것뿐이니, 그녀를 탓하진 마."
에리스는 베아트리체의 말을 듣곤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그 얼굴, 낯이 익은 듯 보였지만 과거의 기억을 아무리 들춰보아도 에리스는 기시감의 원인을 알아챌 수가 없었다.
"당신은 대체 뭐죠...? 저에 대해서 잘 아는 듯이... 저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던가요?"
기시감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에리스는 베아트리체에게 물었지만 그녀가 에리스에게 무언가 답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때, 단테의 머리에는 그날, 성검을 뽑았던 바로 그 날, 용사의 옛 길드 사무실 건물에서 보았던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방치된 수많은 냉동 포드.
그 속에 갇힌 채, 얼어 죽은 '에리스와 똑같이 생긴 여자'들.
그리고... 아직까지 에리스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마음속 한편에서 두려웠던 나머지 열지 못 했던 마녀의 연구실에서 다운로드했던 '연구 기록과 데이터 파일들.'
베아트리체는 어쩌면, 휘황찬란한 용사의 전설 이면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과거, 마왕을 살해하고 인간계를 구한 영웅담 뒤에, 어떤 추악한 이야기가 고개를 집어넣은 채 숨어있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째서 베아트리체는 용사의 전설에 대해서, 성검을 얻은 장본인인 자신보다 더 아는 것이 많은 걸까. 디바이너 교단과 교단의 휘하 무력 집단, 홀리는 무얼 노리고 있는 건가.
그리고 교단이 그렇게나 확보하려고 했던 '데이터 칩'에는 무슨 데이터가 담겨있는 건가.
의문만 불어난 채, 단테는 에리스와 함께 열차가 이끄는 대로, 디바이너 교단의 본부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