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화
까마귀의 마녀. (3)
헬기에서 떨어진 '그것'은 지면에 어마어마한 땅울림과 함께 흙먼지를 주변에 흩뿌렸다.
만약 저 아래에 자신이나 베아체가 있었더라면, 그대로 깔려 죽지는 않았을까는 생각이 들 정도의 크레이터가 '그것'의 발치 아래에 생겼다.
"... 마도 아머!"
마도 아머, 전쟁 전에 개발된 대형 강화 외골격으로, 말이 강화 외골격이지 사실 상 사이즈가 조금 작을 뿐인 이족보행병기나 다름없다.
착용 시 어지간한 소형 차량급의 사이즈를 자랑하는 이 마도 아머는 핵 에너지와 마나를 동력원으로 하여 굴러가며, 장착 시 미니건은 물론이고 거의 전차의 주포급 장비를 거의 무반동으로 쏴재낄 수 있을 정도로 근력이 강해진다.
저걸 착용하는 순간, 아무리 일반인급의 신체 스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고블린이나 코볼트와 같은 약체 영체 정도는 맨손으로도 쉽게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다.
칠흑의 기계 갑주, 방사능과 마소에 대한 대책으로 만들어진 방독면 모양의 헤드 파츠.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의 소리와 기계 관절이 움직이는 소리는 아군에게 있어서는 달콤한 승리의 찬미가일 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닌 이들에게 있어선 사신의 속삭임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이 칠흑의 마도 아머를 끌고 온 '병사'의 소속이었다.
마도 아머의 어깨 갑주, 그리고 가슴에 박혀있는 '문장'을 본 단테, 그리고 베아트리체는 각자의 일이 꼬일 대로 꼬였음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검'의 모양을 띈 붉은 역십자가 모양의 문양과 해골. 그리고 그 아래 적힌 666이라는 숫자.
레드 그레이브 황무지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거대 세력 중 하나이자, '악마'와 '구울', '사이커', 그리고 인간과 마족의 혼혈들로 이루어진 무력 집단.
'데빌즈 유니온' 산하의 정예 부대.
'와일드 헌트'다.
"유니온까지...!"
현재 유니온은 교단과 가장 격하게 대립하고 있는 세력 중 하나이며, 황무지 이곳저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 는데?"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도 아머는 단테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는지, 곧장 베아트리체 쪽으로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달려가선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에너지 샷건을 마구 발포하기 시작했다.
"스카디!"
신령형 스카디로 어떻게든 샷건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던 도중, 단테는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찬스가 없을 거 같아 바로 소환기에 부족한 마탄을 채워넣었다.
1밖에 남지 않은 마탄을 6까지 순식간에 재보충한 단테는 다시 동력이 보충된 소환기를 조작하는 것과 동시에, 베아트리체 쪽으로 미끄러지며 달려갔다.
[단테, 소환 : 환수형 리바이어던.]
성검의 날로 에너지 탄을 필사적으로 막아가며 돌진한 단테는 두 손으로 성검을 들어 있는 힘껏 마도 아머의 어깨를 내리쳤다.
그러나 전신에 두르고 있던 물리 보호막 때문에, 단테의 공격은 허무하게도 튕겨 나가고 말았다.
"단테...? 왜 날 도와준 거야? 너 쟤네들이 시켜서 칩 뺏으러 온 거 아니야?"
"의뢰인에 대한 건 철저하게 비밀이긴 한데. 하나 말해두자면 이거 쟤네들이 시킨 건 아니야. 그리고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 모르는 애먼 남자에게 네가 덮쳐지는 꼴을 내가 보고만 있을 리가 없잖아?"
[리바이어던 : 뎁스 바이트.]
단테의 배후에서 나타난 거대한 심연의 해룡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마도 아머를 맹렬하게 물어뜯었다.
그러나 상당히 강력한 물리 저항 보호막이 쳐져 있었는지, 힘 스탯이 무려 10이나 되는 리바이어던의 기술이 작렬했음에도 마도 아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와일드 헌트의 병사는 자신을 물어뜯은 리바이어던을 일방적으로 밀쳐내고, 에너지 샷건의 총구를 베아트리체에서 단테 쪽으로 돌렸다.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기 때문에, 그리고 리바이어던의 민첩이 그리 뛰어나지 않기에 회피로 공격을 흘려내는 건 무리다.
콰아앙! 투우우웅!!!
성검으로 공격을 방어하자, 단테는 그대로 그 충격에 휩쓸려 뒤로 멀찍이 날아갔다. 단테를 베아트리체로부터 떼어낸 녀석이 노리는 건 오로지 베아트리체와 그녀가 갖고 있던 칩뿐이었다.
[스카디 : 빙결의 원뿔.]
스카디는 곧장 단테가 밀려나자마자, 그 사이에 스카디를 통해 마법을 준비하고 강력한 빙결 속성의 광역 마법을 끼얹었다.
원뿔형으로 퍼져나간 극한의 한기와 날카로운 얼음의 조각, 거기에 '신령'의 힘을 품은 스카디의 마법은 나름 강력했지만, 한 가지 베아트리체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적이 단순히 마도 아머를 운용하는 평범한 병사가 아닌, '서번트'를 다룰 수 있는 '서머너'였다는 점이었다.
"엘리... 고르!"
마도 아머의 헬멧 사이로 '보이스 체인저'가 적용된 굵직하고 사나운 남성의 노이즈 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검은 철갑을 두른, 흑마 위에 올라탄 창기사였다.
"솔로몬의 72마신이라. 유니온 소속 아니랄까 봐, 악령형 서번트를...!"
엘리고르는 빙결과 냉기에 저항이 있는 서번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점을 찔리지도 않으며, 스탯 중에서 힘과 내구에 스탯이 집중된 파워형 서번트다.
빙결 상태 이상은 상대가 '내구' 스탯이 낮아야 잘 적용된다. 신령형 스카디의 격이 아무리 높고, 강력할 지어도 내구가 높은 서번트는 얼음 여신의 한기를 저항해낼 수 있을 것이다.
빙결의 원뿔은 높은 확률로 빙결 상태 이상을 걸 수 있는 마법이지만, 내구 판정에서 우위를 지니는 강철의 기사는 이를 뚫어내고 오히려 역공을 가했다.
[엘리고르 : 랜스 차징.]
엘리고르는 타고 있던 흑마에 박차를 가해 돌진해, 창 끝으로 스카디를 자비 없이 꿰뚫었다.
공격당하기 직전, 빙결정 안에 숨었던 스카디였으나 엘리고르의 창은 결정을 뚫어버리고 그 안의 스카디를 무참히 찔러, 죽였다.
[아아아... 아악!!!]
"끄읏!!!"
일시적으로 서번트가 전투 불능 상태가 되면서 베아트리체는 순간 힘이 빠져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소환기를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마법적 능력에 기대어 서번트를 사역하는 서머너는 별도의 마탄 장전 없이도 서번트를 통해 자유롭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서번트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을 경우, 그 피해의 일부를 서머너 본체도 받게 된다.
"커흐... 허으그윽..."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몸을 잠식하는 마소 때문에 베아트리체가 힘들어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마도 아머를 입은 와일드 헌트의 병사는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고 그녀가 소중하게 품고 있던 데이터 칩을 강제로 빼앗았다.
"기... 다려어어!!! 이 씨발 악마 새끼야!! 기다. 리라니까!!"
미니건의 반동조차 무시하면서 마구잡이로 쏠 수 있을 정도의 출력을 지닌 마도 아머다. 거기에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베아트리체는 사납게 다시 헬기에 올라타려는 와일드 헌트의 병사에게 외쳤다.
그리고.
[소환 : 잭 오 랜턴.]
[잭 오 랜턴 : 화염 마스터리.]
스카디와 엘리고르.
베아트리체와 와일드 헌트가 접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자신의 서번트를 잭 오 랜턴으로 교체, 거기에 자가 버프기까지 사용하면서 화력을 끌어올린 단테는 진심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살벌한 얼굴로 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잭 오 랜턴 : 화염 화살.]
"한 번 이것도 막아봐. 이 씹새끼야."
호박 머리의 불꽃 망령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세 발의 화염 화살, 파이어 볼트는 그대로 레일로드의 광활한 평야를 지나 마도 아머에 틀어박혔다.
"우옷...!"
번쩍!
순간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섬광이 사방에 터져 나오며 마도 아머의 가슴팍에 화염 화살이 착탄,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크허... 어윽...!!"
단테의 공격은 상당히 치명타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물리 저항 보호막을 뚫어버리고, 마도 아머의 가슴 갑주 부분이 완전히 파괴되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단테가 선보인 기지와는 정반대로, 역시나 전쟁 전 유물답게 가슴 부분의 갑주가 박살이 났지만, 프레임과 엔진은 무사했던 탓에, 녀석은 조금 고통스러워할 뿐 멀쩡히 마도 아머를 움직여 단테가 있는 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서번트였던 악령형 엘리고르 역시 건재했다. 나름 필살의 일격이었는데, 고작 해봤자 마도 아머의 파괴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니. 단테는 혀를 차며 성검을 고쳐 들었다.
[단테 : 버스트 스팅어.]
물론 갑주를 부순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성검이 발하는 추진력에 그대로 몸을 맡기고, 마도 아머의 텅 빈 가슴 팍에 성검의 끝을 찔러 넣었다.
"끄어... 어윽?!"
키기긱. 지. 지지직...쿠우웅!!!
내부 프레임을 꿰뚫고 성검이 틀어박혀 들어가자, 단테는 왼손에 쥐고 있던 펌프 액션 샷건의 총구를 녀석의 몸에 들이대고, 매섭게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겼다.
영거리에서 발포된 산탄. '서머너'의 데미지는 '서번트'가 대신 받는다는 공식에 따라, 엘리고르는 단테의 기습에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렸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데이터 칩을 탈환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단테였지만 상공에서 와일드 헌트를 강하시켜준 헬기가 날아와선, 단테에게 개틀링건을 쏴대기 시작했다.
내구가 강한 리바이어던이라면 모를까. 잭 오 랜턴을 소환해두고 있었던 지라 중화기 급의 화력을 버틸 만한 내구력은 현재의 단테에게는 없었다.
단테는 하는 수 없이 뒤로 후퇴하며 다음 마법을 준비하기 위해 숨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헬기에서 내린 사다리에 올라 탄 마도 아머는 그대로 단테가 뭘 하기도 전에 헬기와 함께 유유히 레일로드를 떠나가고 있었다.
"씨발. 홀리의 기사들이여! 저 헬기를 격추시켜라!! 지금 당장!!!"
베아트리체는 빼앗긴 데이터 칩을 뒤늦게 회수하기 위해 교단의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교단 기사들은 대전차 로켓 발사기로 주로 RPG로 헬기를 격추하려 했지만, 정밀한 조준 없이 마구잡이로 발포된 로켓이 헬기에 제대로 맞을 리가 없었다.
"하아... 이런."
마찬가지로 의뢰 대상을 눈앞에서 놓쳐버린 단테는 깊게 한숨을 쉬며 성검을 수납 모드로 전환, 등 뒤에 고정시켰다. 소모한 마탄을 소환기에 바로 갈아 끼운 단테는 고통을 호소하는 베아트리체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부축해줬다.
"베아체. 괜찮아?"
"지금... 너에게 걱정받고 싶지 않... 거든...! 단테! 너만 없었어도 저딴 어중이떠중이에게 칩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 다고. 끄흑...!!!"
하지만 눈 앞에서 나도 의뢰 대상이 날아가버린 걸 어떡하냐.
단테는 복잡하게 꼬여버릴 대로 꼬여버린 지금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면 원만하게 해결을 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럴 때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그 최악의 상황만큼은 어떻게든 면한다는 식으로 움직이면 된다.
지금 가장 최악의 사태는, 지금 이 시점에서 교단 기사들에게 붙잡히는 것이겠지. 베아트리체가 걱정되긴 했지만, 만약 여기서 홀리의 기사들에게 잡혀 교단까지 끌려가게 된다면 그것만큼 나쁜 상황이 또 없다.
"에리스. 상황 종료야. 퇴로를 확보해줘."
"괜찮은 거 맞아요? 어마어마한 마법의 힘이 여기까지 느껴지는데. 무슨 일... 생기신 건 아니죠? 통신도 안 받으셔서. 걱정했다고요."
"됐으니까. 빨리 이쪽으로 와! 발신기로 위치를 추적... 하... 면....."
에리스를 불러내 재빨리 이 미친 수라장에서 빠져나가려 했던 단테였지만, 베아트리체를 보호 및 치료하기 위해 모인 의무병들, 그녀를 엄호하던 로열 가드. 거기에 레일로드 주둔군까지 싹 다 모이는 바람에 빠져나올 구멍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어... 음. 그냥 보내주시진 않겠죠?"
아무리 일반적인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레이븐이라고 할 지어도, '마탄'의 제약이 있는 단테에게 있어서 이 정도 병사들을 전부 정리하고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순간적으로 서번트를 '로키'로 교체하고, 환영 마법으로 도망가는 것도 생각해볼 순 있겠지만. 그 따위 트릭은 이 앞에 있는 베아트리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든 단테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물론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의 뒤에는 갑옷을 걸치고 있던 기사가 떡 하니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 좆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