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전쟁 이후 용사 파티-30화 (31/49)

제 30화

까마귀의 마녀. (2)

"있잖아!"

마족들과 인간이 뒤섞여서 사는 어느 마을.

어느 한 순진해 보이는 소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까마귀의 문양이 그려진 코트를 입은 어느 여자에게 말했다.

허리춤에 살벌한 총기를 가지고 다녔던 그녀는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소년을 수줍게 내려다보며 살며시 마찬가지로 소년의 입가에 띄우고 있던 것보단 덜 했겠지만, 마찬가지로 환히 빛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크면. 베아트리체 누나랑 결혼할래!"

"괜찮겠니? 나는 이래뵈도 너보다 엄청 나이가 많은데. 이런 나라도 괜찮겠니?"

"응!"

찰랑거리는 흑발 곱슬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그녀는 소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나랑 결혼하려면 먼저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는 게 먼저겠는 걸."

"응! 언젠가 누나보다도 커질 거니까 걱정하지 마! 반드시 멋진 남자가 될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줘! 기다려줄 수 있지? 베아체 누나!"

"물론이지?"

베아트리체, 까마귀의 마녀는 소년의 머리를 마구 손으로 헝클어뜨리며 그에게 자신이 차고 있는 총을 한 정 건네주었다. 이쪽 지방에서는 흔히 유통되는 권총, .45 ACP탄을 사용하는 M1911 권총이다.

"이건 앞으로. 계속 나 대신 너를 지켜줄 거야. 그리고 언젠가, 어엿하게 성인이 되면. 나보다도 훌쩍 크게 되면. 돌려줘야 해. 알겠지?"

"응! 약속할게!"

"그래."

베아트리체는 인간과 마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의 소년을 바라보며 웃었다. 베아트리체는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소년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아주 순수한 미소를.

그리고...

* * *

콰아아아아앙!!!!

베아트리체는 마법을 이용해 열차의 벽을 파괴한 다음, 더 넓은 곳에서 싸우기 위해 순식간에 자리를 옮겼다.

좁은 곳에서 싸우면 서로 불편한 건 어차피 매한가지, 단테 역시 오른손의 성검으로 베아트리체의 마법을 경계하며 샷건으로 그녀를 사격하며 꾸준히 추적을 계속했다.

타앙! 타앙! 타아앙!!

철도에서 빠져나가자마자, 베아트리체는 손등에 새겨진 자신의 '각인'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비록 그녀는 단테처럼 왼팔에 소환기를 장착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마도구의 보조 없이 마법을 쓸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그 방식과 원리는 완전히 다르지만, '서번트'를 다룰 수가 있었다.

"와라! 필중의 창술사여!"

[베아트리체, 소환 : 영령형 쿠 훌린.]

"쿠 훌린이라니. 초반부터 빡세게 나오시는구만!"

쿠 훌린은 민첩에 치중된 스탯을 지닌 데다가, 근력 또한 어지간한 서번트보다 높다. 단테가 보유하고 있던 서번트 중에서 쿠 훌린과 민첩으로 맞상대가 가능한 서번트라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와라! 스카아크!"

[단테, 소환 : 영령형 스카아크.]

"스카아크라. 내가 선물해준 서번트. 지금까지 잘 쓰고 있었나 보네. 이 국면에서 스카아크를 꺼낸 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지만. 스카아크의 약점이라면 알고 있어. 애초에, 내 것이었던 거니까."

베아트리체가 말하자, 단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모르잖아. 안 본 사이에 내 잔기술이 더 늘었을지도 모르니."

필중의 창술사, 그 창술사에게 창과 지식을 전수한 스승.

민첩은 아주 약간이지만, 그대로 스카아크 쪽이 더 높다.

대신 내구와 힘 스탯은 쿠 훌린 쪽이 높다.

이를 알고 있던 베아트리체는 선공을 빼앗길 것을 예상하고, 스카아크보다는 높은 '내구' 스탯을 믿고 공격 한 방에 자신의 서번트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을 것을 읽고 자신의 스탯을 높이는 랭크 업 기술로 선제를 취했다.

이를 또 읽어낸 단테는 어차피 내구가 높은 쿠 훌린을 소환한 베아체에게 지금 공격을 해봤자 일격에 끝낼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마찬가지로 랭크 업 기술을 사용했다.

[스카아크 : 창술사의 발놀림.]

[쿠 훌린 : 창술사의 손놀림.]

쿠 훌린이 쓴 기술은 상대를 물리 속성의 마법으로 공격했을 때, 자신의 민첩 랭크를 2랭크 올려 명중률을 높이는 효과를 가졌다.

스카아크의 기술은 반대로, '회피' 판정을 하였을 때 자신의 민첩 랭크를 1랭크 올려 회피율을 높이는 효과를 가졌다.

이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한 쪽은 명중 확률을, 다른 한쪽은 회피 확률을 높였으니까. 그러나 아직까지는 단테가 살짝 더 유리했다. 민첩 계열 서번트끼리의 싸움에선 선공을 빼앗는 쪽이 승산이 높기 때문이다.

[스카아크 : 게-불그.]

[쿠 훌린 : 리포스테.]

자신 있게 민첩 스탯을 믿고 단테가 게-불그로 먼저 공격을 시도하자, 베아체는 반격기인 리포스테를 이어서 발동했다.

스카아크의 공격은 날카로웠지만, 창 끝이 심장에 틀어박히기 전에, 쿠 훌린은 이를 자신의 창으로 그대로 받아내고, 역으로 흘려내더니 발차기로 스카아크의 복부를 걷어찼다.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쿠 훌린'이 본격적인 민첩 계열 서번트랑 붙었을 때, 선공 싸움에서 불리하단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내밀 수 있는 반격기를 채용했다.

민첩이 높은 서번트를 상대로 '확실하게' 우선권을 잡아오기 위해서.

"이런...!"

단테는 당황하며 등 뒤의 성검 : 리버레이터로 황급히 방어 자세를 잡았다. 공격을 받아, 흘려넘기는 데 성공했으니 스카아크의 민첩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다음 선공은 쿠 훌린이 잡게 될 게 뻔했다.

[쿠 훌린 : 투척, 게-불그.]

이어서 쿠 훌린은 베아체의 명령을 받아 매섭게 손에 쥔 창을 단테에게 날렸다. 회피하거나, 막아내거나, 선택지가 둘 밖에 없었던 단테는 '회피'를 택했다.

그러나 창술사의 발놀림을 먼저 사용했다고는 해도, 저쪽도 마찬가지로 공격 시 명중률을 높이는 기술을 사용한 뒤다. 아이러니하게도, 단테가 이번 회피에 성공할 확률은 거의 '반반'에 가까웠다.

"끄으으읏!!!"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쿠 훌린이 던진 창은 단테의 발치를 스쳐 지나갔다. 공격의 회피에 성공한 단테는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다가, 다시 한번 스카아크에게 명령했다.

[스카아크 : 창술사의 발놀림.]

"또 회피율을 올렸다라. 공격을 틀어넣을 좋은 기회 아니었어?"

"어차피 쿠 훌린을 한 번에 전투불능으로 만들 순 없어. 이게... 최선이다!"

[단테 : 버스트 스팅어.]

단테는 사납게 외치며 성검에 마탄을 불어넣고, 그대로 마법의 힘으로 앞으로 돌진하며 찌르기를 찔러 넣었다. 그러자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선보인 예상외의 공격에 살짝 당황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느긋하게 그녀는 자신의 마법으로 단테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베아트리체 : 흉조의 날갯짓.]

베아트리체의 등 뒤에서 검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치솟더니, 그대로 앞으로 돌진하며 성검을 내세운 단테를 뒤로 멀리 날려보냈다.

뒤로 날려보내지는 와중에도 샷건으로 사격을 거듭했던 단테였지만, 베아트리체는 그의 몇 수 뒤는 내다보고 있다는 듯 여유롭게 산탄을 피하며 역으로 오른손에 쥔 리볼버로 단테를 저격했다.

단테가 입고 있던 방탄 가죽 코트에 몇 발 박혔지만, 데미지는 거의 없다. '서번트'를 활용한 공방이 아닌, '서머너'끼리의 공방을 주고받은 베아체는 여유롭게 쿠 훌린을 바라보았다.

"좋아 그럼. 회피율을 높여서 대응하겠다면 나도 나 나름대로의 대처 방법이 있지. 수고했어. 쿠 훌린."

[스카아크 : 게-불그.]

전투에 집중하느라 말 한 마디 거의 꺼내지 못하고 있던 단테 앞에서 베아트리체는 눈앞에서 스카아크의 매서운 창 끝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쿠 훌린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 대신 나타난 건 단테의 모든 털이 곤두세워질 정도의 어마어마한 한기를 품은 빙결정이었다.

매서운 겨울의 바람과 함께 나타난 얼음의 결정에 스카아크의 창이 때려 박힌 바로 그 순간, 결정은 산산조각 나 깨지며 스카아크에게 '상태 이상'을 걸었다.

"이 서번트는... 너 설마!"

[베아트리체, 소환 : 신령형 스카디.]

"신령이 네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게 좋을 거야."

산산조각 난 빙결정 사이로 드러난 건, '겨울의 여신'이었다. 전신이 얼어붙을 정도의 한기를 두르고 나타난 얼음의 신령은 제대로 당황한 단테를 비웃듯이, 혹은 그를 동정하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소환기를 통해 정보를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스카디에 대한 정보는 몇 번이고 그녀와 함께 작전을 해오며 쌓아온 데이터가 그의 머리에 남아있었으니까.

[신령형 : 스카디

힘 : 4 마력 : 9 민첩 : 2

내구 : 8 지능 : 5 매력 : 6

얼음 속성에 대한 완전 내성.

어둠 속성에 대한 완전 내성.

화염 속성에 취약.

플레이버 텍스트 : 북유럽 신화에서의 '사냥', 그리고 '겨울'의 신. 그녀가 나타난 곳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매서운 한기가 몰아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지옥'을 다스리는 신이라고 보기도 한다.

주요 기술 : 불명.]

강력한 얼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베아트리체의 주력 서번트로 , 성가신 패시브 특성을 몇 개 가진 탓에 어중간한 서번트로는 공략이 어렵다.

가장 성가신 건, 스카디와 어떤 식으로든 접촉하면 빙결 상태 이상을 얻어간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스카디의 냉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스카아크처럼 말이다.

게다가...

"스카아크는 퇴장해줘야겠어."

[스카디 : 블리자드 버스터.]

빙결 상태 이상에 걸리면 '민첩'이 1랭크 하락하고, 해당 상태 이상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내구' 스탯 판정을 하여, 실패 시에는 아예 해당 턴 '회피'와 '방어'를 비롯한 움직임이 봉쇄된다.

스카아크는 민첩이 높고, 내구가 낮은 서번트. 단테의 서번트가 이번 턴, 행동할 수 있는 확률은 애석하게도 매우 낮았다.

서둘러 소환기를 통해 명령을 내리는 단테였지만, 몸 전체에 서리가 껴 꽁꽁 얼어붙은 스카아크는 단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못 했다.

그 사이에 스카디의 강력한 냉기의 마법이 덮쳐왔다. 눈보라를 압축한 것과 같은 강렬한 파동이 스카디의 왼손에서 뻗어나오자, 스카아크는 그대로 그걸 피하지도, 막아내지도 못한 채 살을 에는 냉기에 쓸려나갔다.

"끄으으으윽!"

콰아아아아앙!!!!

[영령형 : 스카아크가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음 서번트를 소환할까요?

잔여 마탄 수 : 1 Y/N.]

단테의 앞에 이 상태에서 전투를 계속하겠느냐는 소환기의 질문이 표시되었다. 그저 평범한 소환기의 알림이었을 뿐이지만, 단테에게 있어서 그 질문은 이렇게 느껴졌다.

'과연 당신은 지금, 승산없는 싸움에 몸을 던지시겠습니까?'

"얌전히 항복해. 단테. 어차피 넌 나한테 못 이겨. 매번 마탄을 소환기에 재장전해줘야 하는 너랑은 다르게, 난 그런 성가신 제약도 없고. 서번트를 다루는 전략도 내가 더 위야."

"칫..."

"다음 턴, 네가 무슨 서번트를 소환할지는 뻔히 보여.

바닥난 마탄을 재장전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동시에 스카디의 빙결 상태 이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태 이상에 견딜 확률이 높은 내구형 서번트를 꺼내겠지.

네 엔트리라면... 그건 '환수형 리바이어던'일 거고. 아니면 내가 이 말을 함으로써 전략이 들통 나버렸으니까. 로키를 소환할 수도 있겠네. 어느 쪽이든 스카디를 이기는 건 불가능해. 알겠어?"

그야말로 단테가 생각하고 있던 전술을 그대로 그에게 말해준 베아트리체는 더는 싸워봤자 의미가 없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칩 만큼은 절대로 다른 세력의 손에 넘어가선 안 돼. 이 칩에 들어있는 데이터는 '디바이너' 아래에 들어가야 그 가치를 발하는 물건이야. 그러니까... 음?"

바로 그때였다. 전투에 집중하느라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하늘 위에서 헬기가 한 대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합을 나누고 있던 레일로드 9구획의 평원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단테는 그게 교단에서 온 지원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의 표정을 보면 또 그것도 아닌게, 그녀는 일이 더욱 성가시게 되었다는 듯 혀를 차며 서둘러 열차 쪽으로 달려갔다.

"이런 개같은..."

단테가 왜 그러느냐고 베아트리체에게 묻기도 전에.

헬기에서 '무언가'가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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