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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이후 용사 파티-29화 (30/49)

제 29화

까마귀의 마녀. (1)

에리스가 예정대로 다이너마이트를 두른 트럭을 선로 위에 대놓자, 멀리서 사전에 해야 할 일을 처리한 단테가 뚜벅뚜벅 HK416 한 정과 권총 한 정을 각각 양손에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디바이너 교단의 레일로드 주둔군은 그야말로 그의 손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평소 에리스는 단테를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고는 있었으나, 총 좀 잘 쓰고, 마법을 잘 다루는 일개 용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치밀하게 짜여진 작전 아래에서 하나의 조직을 안에서부터 신뢰를 얻어 서서히 무너뜨리는 그 모습은 거의 인간 병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평소에 단테 본인 말마따나, 멍청하다면서 노래를 부르고 다녔음에도 이런 일에서 두각을 보이는 걸 보면 정말 그가 얼마나 이 혹독한 황무지에서 용병으로서 굴렀는지 그녀는 대략 알 수 있었다.

선로에 느껴지는 진동을 통해 멀리서 곧 있으면 열차가 9구획에 도착하게 된다는 걸 눈치챈 단테는 에리스에게 퇴로를 확보해놓으라고 명령해두고 단숨에 트럭 위에 올라섰다.

"에리스.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따로 부를 테니까. 지금은 퇴로 확보에 집중해줘. 너까지 디바이너 교단 녀석들에게 얼굴이 팔려버리면 곤란해져."

"네. 주인님의 말대로 할게요."

에리스가 총총거리며 물러나자, 단테는 침을 삼키며 HK416에 탄창을 밀어 넣으며 이쪽으로 매섭게 다가오는 열차를 패기롭게 바라보았다.

만약 열차가 그대로 선로 위에 놓인 차량을 무시하고 돌진하는 걸 택했을 경우, 그대로 자신의 목숨이 날아가는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단테는 기죽는 일 없이 자신의 작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거기에 황무지에 용병으로서 구르며 길러진 깡다구 하나로 그 자리에서 총을 난사하며 열차를 협박했다.

"보호막도 해제된 상태에서 진짜 들이박으려고? 그럼 한 번 해보자.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거야 시팔."

타앙!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마구 총질을 거듭하는 단테의 광기에 가까운 깡다구 앞에서 열차의 기관장은 한 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물건을 싣고 교단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고작 해봤자 열차 날강도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다니. 기관장의 귀에는 벌써, 상부의 잔소리가 맴도는 듯했다.

거친 브레이크와 함께 맹렬하게 돌진해오던 열차는 선로 위에서 스파크를 흩뿌려대며 급정지했다.

거의 단테가 위에 올라탄 트럭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지한 열차를 보고 단테는 안도의 한숨도 내쉬지 않고, 작전이 성공했다는 쾌재도 섣불리 부르짖지 않은 채, 묵묵히 트럭 아래로 뛰어내렸다.

기관장은 열차를 막아 세운 게 고작 해봤자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단단히 기관실의 문을 걸어 잠갔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열 명 이상. 때로는 스무 명 이상이 동원되는 열차 강도를 '혼자서' 계획한 건가.

베짱 한 번 두둑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 명'인 이상 교단 기사들의 도움이 있다면 얼마든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일로드 주둔군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이 열차에도 '물건'을 호위하기 위한 기사들이 타 있으니 말이다.

기관장은 메마른 미소를 지으며 벽 옆에 걸려있던 펌프 액션 샷건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고, 단테가 기관실 안으로 쳐들어오는 걸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단테는 등 뒤에서 성검 리버레이터를 뽑아 들고 쿨하게 마탄 하나를 소모해 성검의 '기술'을 발동했다. 대상은 눈앞에 있는 견고한 열차의 강철문이었다.

[단테 : 브레이버.]

"문... 열어어어!"

콰직! 콰아아아앙!!!!

머리 위로 힘껏 검을 치켜들고 그대로 내려 베자 네오 쿄토에서 간식이나 반찬으로 판매되는 두부가 칼에 잘리듯 그 강도가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쉽고 간단하게 반으로 잘렸다.

두 동강 난 문 앞에서, 인외의 힘을 지닌 상대의 얼굴을, 정확히는 그 방독면을 본 기관장은 순간 겁에 질려 손에 쥐고 있던 샷건을 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기관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내의 얼굴을 멍하니 노려보았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어."

(Nothing personal.)

타앙!

권총을 착실하게 기관장의 이마에 박아 넣어 한 발에 끝장내자, 녀석은 최후의 순간, 이렇게 말했다.

"레... 이븐...!!!!"

단테의 정체성, '레이븐.'

레이븐즈 로지스틱스라는 물류 운송 회사에서 일하는 배달부이자.

전원 '마법 능력자'로 이루어진 용병.

개개인의 능력차가 꽤 큰 편이지만, 소환기를 통해 서번트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녀석부터 시작해 선천적으로 서번트와 비슷한 체질을 지닌 탓에 마법을 쓸 수 있는 사이커, 혹은 강화 인간들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황무지의 '외로운 늑대'들.

단테는 기관장이 갖고 있던 펌프 액션 샷건을 챙긴 뒤, 열차의 객실 안으로 여유롭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관실 안에서 한 차례 울려 퍼진 총성, 그리고 그 기관실의 문에서 등 뒤에 기계대검을 짊어진 채, 피범벅이 된 검은 코트를 입고 나타난 방독면의 남자가 나타나자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일제히 겁에 질렸다.

"왜 구경 났냐?"

에리스와의 약속이 있었던 만큼, 그리고 단테 개인적으로도 민간인에 대한 피해는 최대한 내지 않는 주의였다.

저항하는 승객이 있다면 그에 따라 응징이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일제히 단테의 카리스마와 눈빛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단테가 평범한 로그 떨거지였다면, 한 마디 하는 승객이나 저항하기 위해 권총이라도 꺼내 드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그의 팔에 달린 소환기, 검은 코트, 군번줄을 본 이들은 단테가 레이븐이라는 걸 알아채고 일제히 겁에 질려 고개를 숙였다.

대체 누가 그를 고용한 건가.

무엇 때문에 레이븐이 이 열차를 노리는 건가.

제발 목숨만이라도 살려줬으면 좋겠는데.

승객들은 완벽하게 겁에 질려 저항할 기색 자체를 보이지 않았다. 레이븐인 단테로서는 호재라고 할 수 있었다. 탄환을 아낄 수 있었으니까.

쿄토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데이터 칩이 보관된 장소는 열차의 중간 지점에 있는 터미널이라고 한다. 거기서 칩을 회수하는 대로, 곧장 에리스와 합류하면 작전은 성공이다.

당연하지만, 물론 그렇게 일이 쉽게 풀리진 않았다. 다음 객실로 천천히 움직이자, 교단의 기사들이 각자 개인 화기를 들고 단테를 일제히 조준하며 그를 협박했다.

"뒤로 물러서라! 이 불한당 녀석! 신의 심판이 두렵지 않으냐!"

교단 기사의 협박에 단테는 근처에 눈에 밟히는 아무 여자 승객 한 명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린 다음 샷건의 총구를 그녀의 턱 아래에 들이밀었다.

"너희들이 쏘면 이 여자의 목숨은 없다고 생각해라."

"뭐...?"

"신 같은 거 부르짖을 시간에 머리를 굴려서 생각이란 걸 좀 해보지 그래? 폭탄 실린 트럭이 무서워서 선로 위에 열차를 세운 시점에서, 내가 이 열차 위에 올라탄 시점부터. 너희들의 패배야.

나는 서번트를 다룰 수 있는 서머너. 그럴 마음만 있다면 이 열차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 승객들은 어떻게 되지? 내가 이 열차에 올라탄 그 순간, 열차의 승객은 전부 내 인질이나 다름없다.

당장 그 총 내려놔."

단테가 매섭게 열차에 탄 승객 전원을 들먹이며 협박하자, 그의 카리스마에 억눌린 교단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총과 검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 태도. 아주 마음에 들어."

단테는 교단 기사의 갑옷을 샷건의 총열로 통통 두드리고는 그대로 터미널이 위치해있는 열차의 다음 칸 쪽으로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터미널 앞까지 도착한 그는 소환기에 터미널을 연결해, 안에 삽입된 데이터 칩을 꺼내려했지만 그 순간, 바로 등 뒤에서 강력한 마나의 반응을 느낀 그는 성검을 뽑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 : 깃털 폭풍.]

"끄윽?!"

갑작스럽게 불어 젖힌 검은 깃털의 선풍 앞에서 뒤로 쭉 밀려난 단테였지만, 성검으로 어떻게든 방어에 성공해 큰 피해를 입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기술...

뭔가... 낯이 많이 익었다.

"이 마법은...!"

단테의 앞에 나타난 건, 역병 의사 가면을 연상케 하는 특이한 디자인의 방독면을 뒤집어쓴 한 여자였다.

단테와는 달리 왼팔에 소환기를 차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전신에 흐르는 농도 짙은 마나는 그녀가 사이커. 마법 능력자라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오른손에 작은 리볼버를 들고, 왼손에는 터미널에서 막 뽑아낸 듯한 작은 데이터 칩을 들고 있던 그녀는 긴 곱슬머리를 목 뒤로 요염하게 넘기며, 순간 당황한 눈치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잇지 못 한 건 단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위력의 강력한 '까마귀'의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은 단테가 알기로, 황무지에서 단 한 명밖에 없다.

단테는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뒤집어쓰고 있던 붉은 바이저의 방독면을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상대 역시도, 데이터 칩을 뺏기 위해 난입한 강도를 그 사이에 제압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방독면을 벗어 맨 얼굴을 보여주었다.

강렬하게 마나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보랏빛의 눈동자. 잔 주름 하나 없는, 인형과도 같은 얼굴. 차가운 인상을 주지만, 동시에 정열과 야망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카리스마.

틀림없었다.

"... 단... 단테?"

"... 베아체?"

그곳에 서 있던 건... 현 디바이너 교단의 마법 조언자이자, 전 단테의 '아내'였던...

까마귀의 마녀, 베아트리체였다.

"내... 내가 없는 동안에도 잘 지내고 있었구나."

베아트리체는 열차를 강도질한 단테 앞에서 반가운 기색을 차마 숨길 수 없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빵긋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 그녀는 고개를 양 옆으로 저으며 단테를 향해 소리쳤다.

"... 방금 건 잊어줘."

"아니. 내가 널 어떻게 잊을 수가 있어. 베아체. 내가 그렇게 너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왜 답장을 하나도 안 해준 거야?"

"편지? 무슨 편지를 보냈다는 거야? 그날 헤어진 이후로 연락 하나 없었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거의 짧으면 2주일에 한 번. 길면 한 달에 한 번씩 연락했는데! 아니아니. 그건 그렇고... 너 손에 쥐고 있는 그 데이터 칩. 내게 넘겨줘."

"보나 마나 누가 의뢰해서 이걸 가져오라고 시킨 모양이구나?"

"당연하지. 내가 의뢰 없이 이런 미친 일을 하겠어?"

사실 베아트리체를 만에 하나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의뢰를 받아들인 거긴 하지만. 설마로 진짜 눈앞에 그렇게 사랑했던...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날 수 있다니.

하나,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하필이면 '적'으로 만나버렸다는 거지만.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이 데이터 칩은 넘겨줄 수 없어. 아무리 너라고 해도 그건 안 돼. 이건 교단에 속해있어야 하는 물건이야. 네게는 말해줄 수 없지만, 아주 '강력한' 무언가가 안에 들어있어."

"강력한 무언가든 어쨌든. 난 그걸 회수해서 의뢰인에게 가져다줘야 해. 만약 그걸 틀어막겠다면, 힘으로라도 뺏을 수밖에 없어."

"단, 제발 부탁할 테니까.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 줘."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애칭을 언급하며 한숨을 내쉬며 부탁했다.

"너, 마법전에서 단 한 번도 날 이겨본 적이 없잖아. 여기서 싸우면 밀리는 건 너야. 어떻게 만났는데, 너를 공격할 수는 없어. 고작 해봤자 임무 따위에... 단테. 너, 의뢰 때문에 나를 공격하겠다는 건 아니지?"

"그건. 아. 으. 그러니까... 아무튼! 내놔! 너도 한 때 레이븐이었다면 알 거 아니야! 개인적인 원한은 없어. 오로지 계약과 신뢰. 그리고 배달부만 있을 뿐이야!"

"그럼 어쩔 수 없네. 단테, 미안하지만 널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

"버질이 시킨 거야? 이 데이터 칩을 회수하라고?"

"... 맞아."

"하아. 그렇다면 뭐."

단테는 왼손으로 샷건을 베아체를 겨누며 선언했다.

"그 버질 새끼가 맘에 안 들어서라도 데이터 칩을 뺏어가야겠어. 힘으로."

"단테... 하아. 알았어.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진심으로 상대할 거야. 후회해도 모른다? 진짜 모른다?"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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