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화
열차 강도하는 용사님. (5)
"터널 내부에 이런 공간이 있었을 줄이야."
메트로 상회에서 일하는 기술자. 혹은 200년 전 이 철도를 유지 보수했던 이들이 사용했던 통로를 통해 터널 내부에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에리스는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았다.
철도 위에 열차가 다닌다는 것은 곧, 열차를 기동하는데 필요 최저한의 전력은 공급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밝은 곳을 꺼리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코볼트들의 특성 때문에 시설 내부는 거의 완전히 암전 되어 한 치 앞도 보기 힘들었다.
만약 단테가 자신의 서번트인 잭 오 랜턴을 계속 옆에 대동시키지 않았더라면 코볼트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다행히도, 잭 오 랜턴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 그가 들고 있는 작은 랜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불빛 덕에 단테와 에리스는 쉽게쉽게 코볼트에게 바짝 붙어 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야."
단테는 길을 잘 안내하고 있던 코볼트의 머리 뒤에 권총을 겨누곤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만약에 함정에 빠뜨리려한다든가. 그런 수작 보이기만 해 봐라. 너 진짜 뒤진다."
동포들을 수십 마리를 태워죽인 단테의 말이다. 코볼트는 이 반인반마의 사내라면 정말로 자신이 뭐 하나 실수하는 순간 뒤에서 총탄이 가차 없이 날아올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노리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걸 이 사내가 눈치채지 않아야하는데. 코볼트는 얌전히 어두운 터널의 시설 속에서 야생의 본능대로 익힌 방향감각을 토대로 길을 찾아갔다.
"주인님. 만약에 이 코볼트의 본거지를 찾으면 그때부터 어쩔 생각이신가요?"
에리스가 물었다. 원래 단테의 목적은 레일로드를 위협하는 야생 코볼트들로부터 레일로드를 구해내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짜 신분인 '미카즈키'의 목적일 뿐.
진짜 '단테'의 목적은 보호막 동력을 끊어버릴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만약에 단테가 순수하게 보호막 동력의 파괴를 노린다고 한다면, 굳이 코볼트들을 없앨 필요도 없으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둥지 안에 찾아갈 이유 또한 없다. 오히려 야생 영체를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훨씬 단테에게는 이득이었다.
"코볼트의 본거지를 찾으면 뭘 할 거냐니. 일단 레일로드 주둔군의 부탁을 들어줘야하지 않겠어?"
"네? 하지만 저희의 목적은 보호막 동력의..."
"그러니까. 레일로드 주둔군의 의뢰를 해결해서 그쪽으로부터 보급품이랑 돈을 뜯어낼 대로 뜯어낸 다음.
이쪽은 이쪽대로 터널 아래에 이런 지하 시설이 있다는 걸 알아냈으니까. 코볼트가 뜯어먹었다고 하는 동력 전선을 끊을 방도를 찾으면 돼.
그냥 코볼트들에게 전선이 갉아먹히는 걸 기다리는 건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야.
데이터 칩을 실은 열차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곧 출발해. 그 시간에 딱 맞춰 코볼트들이 전선을 온전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우리에겐 없잖아. 능동적으로 전선을 파괴할 방도를 찾아야지 않겠어?"
겸사겸사, 주둔군으로부터 의뢰 해결 비용을 챙기면 그것대로 좋고. 단테는 그렇게 말했다.
주둔군이 단테에게 부탁한 건 어디까지나 야생 영체와 그 영체들이 나오는 둥지를 없애달라는 의뢰뿐이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단순한 용병인 단테의 알 바는 아니었다.
"도착했습니다요."
잭 오 랜턴의 빛으로 주변을 비추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일종의 발전 시설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터널 안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오래전에 지냈던 장소인지, 희미하게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코볼트들의 서식지가 되면서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지고, 세월의 풍파로 인해 낡아 비틀어지고, 녹슬어버리긴 했지만 터널 안에 이런 공간이 나올 줄은 몰랐던 단테는 내심 감탄하더니 코볼트의 뒤통수에 겨누고 있던 권총을 거두었다.
코볼트는 드디어 이 사나운 용병의 협박이 끝난 줄 알고 시시덕거리며 웃었다. 이 반인반마의 사내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이제 코볼트들의 '어머니'이자, '왕'이나 다름없는 무섭디 무서운 괴물이 저 어둠 안에 똬리를 튼 채 숨어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단테가 권총을 치운 건 협박을 관두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거추장스럽게 총구에서 삐져나온 검은 소음기를 제거하고, 다시 코볼트의 정수리에 총구를 겨눈 뒤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꺄아아악?!"
갑자기 울려퍼진 에리스가 깜짝 놀라자, 바로 옆에서 같이 길안내를 해주고 있던 코볼트의 얼굴이 순식간에 공포와 적의로 물들었다.
길안내를 해주면 살려주겠다고 약속해놓고선, 이제 와서 말을 바꾸다니!
곧바로 코볼트는 단테에게 달라붙어 거세게 저항하려 했지만 그전에 단테는 홀스터에서 또 다른 권총을 한 정 꺼내 녀석의 미간에 총탄을 박아주었다.
타앙!!
"주. 죽일 것까지는 없잖아요!"
"죽일 이유는 충분했다고 보는데."
단테는 총구 끝으로 깊게 깔린 어둠 저 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뭐가 있는 지 안 보이는 거야? 하기야 넌 뭐 딱히 사이버네틱 임플란트 같은 거 안 심었으니까. 모를 법도 하지."
에리스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어둠 저 편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던 바로 그때. 단테와 에리스가 발을 디딘 시설 안이 갑작스럽게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테는 암전된 시설 안에서 빛을 확보하기 위해, 잭 오 랜턴에게 보이지 않는 '적'을 공격할 겸, 주변을 밝히기 위해 명령했다.
[잭 오 랜턴 : 소각.]
화아아악!!!
순식간에 망령의 불꽃이 치솟으며 주변을 환히 밝혔다. 그리고 그때서야, 에리스는 코볼트 일당들이 자신들을 무엇 앞에 데려다 놓았는지, 뒤늦게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 무머... 무어야 저게에엣!!"
에리스의 앞에 있었던 건, 거대한 '뱀'이었다. 뭐 뱀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크겠어. 라고 생각할 수야 있겠지만, 그것의 크기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다.
기준점을 단테의 트럭인 '엘리자베스'로 잡자면, 그 엘리자베스의 거의 두 배는 될 정도로 거대했다고 해야 할까.
에리스는 느닷없이 나타난 괴물 앞에서 깜짝 놀라 뒤로 뒷걸음질 쳤지만, 단테는 여유롭게 콧노래를 부르며 소환기의 마탄을 장전했다.
"안녕하신가."
"스스스... 스스슷!!!"
그 거대한 뱀은 단테 바로 앞에 대가리를 내밀곤 양 옆으로 갈라진 혀를 매섭게 날름거렸다.
뱀 특유의 세로 동공 눈동자를 번득이며 지금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던 괴물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단테를 향해 먼저 공격을 걸어오진 않았다.
아마 그 괴물은 알게 모르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단순한 반인반마의 남자, 섣불리 공격했다간 도로 자신이 당하게 되고 만다는 사실을.
"서큐버스의 자식이여. 스슷. 썩 돌아가도록 해라. 네놈 앞에 진정한... 스슷. 재앙이 닥쳐오기 전에."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단테는 등 뒤의 성검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려 어깨에 살짝 기대어 놓곤 대답했다.
"레일로드 주둔군이 그러던데. 코볼트들이 전선을 뜯어먹는 바람에 곤란하다고 말이야. 그거 때문에 찾아왔어. 둥지를 통째로 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그러던데."
"코볼트들이 어떻게 행동하건 내 알 바는 아니다. 우리는 이 지하에서 나아갈 것이다. 인간들의 문명의 이기는 지나치게 시끄럽고, 요란하며, 크게 요동친다. 코볼트들은 그저, 열차의 진동이 닿지 않는 지하 저 편으로 나아갈 뿐이야... 스스슷."
"협상을 해보자."
단테는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얌전히 이 곳에서 썩 꺼지고 완전히 다른 곳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해보는 건 어때? 레일로드 주둔군도, 너희들도 서로 언제 토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줄다리기하는 거. 솔직히 힘들지 않아?"
"서큐버스의 자손이여. 스슷."
'뱀의 괴물'은 단테의 바로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네놈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색기와 마성의 매력이 이 몸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어째서 우리가 이곳에서 나가야 하지? 이곳은 우리의 스슷. 나의 보금자리다."
(매력 판정 실패.)
"뭐. 매혹도 안 썼으니까. 안 넘어올 거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 괜찮겠냐? 만약에 네가 여기서 안 나가겠다면. 그럼 나랑 싸울 수밖에 없을 걸. 서로 누구 한 명 뒈질 때까지."
단테가 일부러 등을 보이며 말하자 괴물은 혀를 날름거리다가 느닷없이 단테에게 돌진했다.
[바실리스크 : 독사의 송곳니.]
[단테 : 반격의 자세.]
키이이잉!!!!
"이거이거."
아슬아슬하게 성검 : 리버레이터로 바실리스크의 공격을 받아낸 단테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이렇게까지 말을 못 알아들을 줄은 몰랐는데. 이거, 협상 결렬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상관 없지?"
"스스. 스스스슷. 천한 악마의 자식 따위가. 얕보지 마라."
검과 독사의 송곳니가 맞부딪힌 그때, 단테는 성검을 옆으로 바로 틀어 강한 횡베기로 독사의 얼굴을 후려쳤다. '마탄'을 소모한 공격이었던 만큼, 바실리스크의 대가리는 그대로 옆으로 내동댕이쳐저 벽에 홈이 만들어질 정도로 강하게 부딪히고 말았다.
"크하윽!? 끄우!"
"협상이 결렬되면 나야 좋지."
단테는 등 뒤에 성검을 납도하고, M4와 M1911를 꺼내 들며 외쳤다.
"이제 '상호 협의 하'에 네 대가리를 딸 수 있게 되니까 말이야."
"... 얕보지 마라. 잡조오옹!!!"
[!WARNING!]
[!WARNING!]
[환수형 : 바실리스크
힘 : 11 마력 : 4 민첩 : 4
내구 : 12 지능 : 1 매력 : 8
약점 불명.
야생 영체 '보스' 보정 있음.
플레이버 텍스트 : 지하 코볼트들을 지배하는 마수. 바실리스크. 그 송곳니에는 강산성의 체액과, 온갖 맹독이 서려있다고 한다. 특히나 바실리스크의 눈에는 강력한 마력이 서려있기에, 바실리스크와의 시선이 서로 맞는 순간, 그 사람은 돌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바실리스크의 마안'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요 기술 : 불명.]
"민첩이 낮은 대신 힘이랑 내구가 미친 듯이 높군."
빠르게 적의 분석을 끝낸 단테는 옆에 엎어져 있던 에리스를 일으켜 세우고 총구를 바실리스크를 향해 겨누었다.
"뭐해? 빨리 안 싸우고."
"네. 네엣!"
[잭 오 랜턴 : 화염 마스터리]
[에리스 : 새벽의 화살.]
[바실리스크 : 석화의 응시.]
민첩이 높은 순서대로 차근차근 두 마법 사용자와 하나의 괴물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단테가 자기 강화에 힘을 쓰고 있을 무렵, 에리스의 새벽의 화살이 쏟아졌다.
"꺄웃!"
빛 속성의 화살이 틀어박힌 그때, 바실리스크는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사납게 에리스를 노려보았다. 적의 반응을 통해, 바실리스크의 약점이 '빛'이라는 걸 알아낸 단테는 재빨리 자신의 서번트 엔트리를 살폈다.
"칫. 빛을 사용할 수 있는 서번트는 없는데."
이렇게 되면 에리스가 마음 편하게 바실리스크에게 약점 유효타를 먹일 수 있도록, 단테가 옆에서 보좌해주며 전투하는 편이 훨씬 전투를 풀어가기 쉬울 것이다.
거기까지 판단이 그쳤던 단테에게 순간, 바실리스크의 강력한 시선이 내리 꽂혔다.
플레이버 텍스트를 통해, 바실리스크에게 상대를 '석화'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걸 사전에 알고 있던 단테는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등 뒤로 돌리는 것으로 바실리스크의 시선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는 걸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실리스크의 시선은 눈과 눈이 직접 맞닿지 않아도, 유효타를 내지 않아도 상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류의 스킬이었다. 서번트 정보를 살펴보자, 잭 오 랜턴의 민첩이 살짝 낮아졌다는 걸 단테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석화.
눈이 마주치지 않아도 민첩이 랭크 다운된다.
바실리스크의 민첩이 약간 평균 이하 치였기 때문에, 높은 민첩 스탯을 지닌 서번트로 공략을 하려 했지만. 적극적으로 서번트의 민첩을 낮출 수 있는 랭크 다운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쩐다...
단테는 얼굴을 찌푸리며 오랜만에 만난 강적을 노려보았다.
"발버둥쳐보아라. 이 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