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화
열차 강도하는 용사님. (4)
[야생 영체가 나타나는 곳은 레일로드 6구획과 7구획을 통과하는 터널의 산이네. 최근 근처 터널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데다가. 소동을 눈치채고 그쪽이 출동해있을 때는 이미 코빼기도 안 보이더군. 미카즈키 공, 자네만 믿겠네.]
소환기에 좌표를 등록해놓은 단테는 트럭 엘리자베스를 끌고 에리스와 함께 레일로드의 선로를 따라 험지를 달렸다.
이런저런 장소를 방문할 일이 평소에 많았던 만큼, 엘리자베스의 엔진이나 타이어에는 특별한 단테만의 튜닝이 가해져 있기 때문에, 험지 돌파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주로 야생 영체들이 출몰한다고 알려진 장소에 기어를 박아넣고 주차한 단테는 방금까지만 해도 레일로드 주둔군을 속이기 위한 사무라이 풍의 복장에서, 평소의 레이븐으로서의 복장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갈아입었다.
"사무라이 복장으로 나서지 않아도 되겠어요?"
조수석에서 에리스가 내리며 묻자, 단테는 고개를 저었다.
"칼질에 자신 없는 건 아니지만. 상대는 약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영체야. 나 자신의 전투 방식을 고수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 쪽이 목이 따인다고.
그리고 마일즈 병장을 비롯한 레일로드 주둔군은 자신의 위치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 하니까. 녀석들에게 감시당할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단테는 트럭 짐칸에 총기 액서사리를 보관해놓는 작업대에서 소음기를 몇 개 꺼내 자신이 애용하는 소총인 M4와 권총 M1911에 꽂았다.
"총성은 저쪽까지 울릴 가능성이 높으니까. 소음기를 껴서 교전 시 총성이 울리지 않게끔 주의 정도는 해야지. 에리스, 자. 여기."
총기를 아직까지는 다루는 솜씨가 미숙한 에리스에게 벅샷을 수납하는 벨트와 펌프 액션 샷건을 던져준 단테는 마지막으로 짐칸 구석에 은은하게 붉은빛을 내뿜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에 다가갔다.
성검 : 리버레이터.
단테가 '용사'라는 증거이자, 그 힘의 원천.
그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들기조차 버거워보이는 거대한 기계장치의 대검을 어렵지 않게 '한 손'으로 번쩍 들었다. 자동으로 사용자인 '용사'를 인식한 성검은 주변에 진한 마소를 내뿜으며 작동을 시작했다.
[사용자 인증 * * * 확인. 귀환을 환영합니다. 용사님. 수납 모드로 전환하겠습니다.]
성검은 그대로 붉은 폴리곤과 같은 고운 입자로 변환되더니, 단테의 바로 등 뒤로 순간 이동해 그의 곁을 둥둥 떠다녔다.
200년 전 활약했던 용사는 어떻게 이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성검을 들고 다녔을까, 줄곤 단테는 생각했는데 정답은 바로 이 수납 모드에 있었다.
대검을 짊어진 모양새처럼 손잡이가 위로 가게끔 거의 단테의 등과 딱 달라붙어 있었지만 모종의 '힘'으로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있어 어깨가 아프지도 않고, 거추장스럽지도 않다.
전쟁 전, 고도로 발전된 마법 기술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에리스는 무슨, 반중력 장치인지 뭔지로 기동 된다고 말했었는데 황무지 출신인 단테가 그런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자."
마지막으로 본격적으로 출동하기 전에 단테는 허리춤에서 방독면을 분리해 얼굴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자동으로 단테의 얼굴 사이즈에 맞게끔 고정끈이 튀어나와 얼굴을 조이고, 소환기와 연결된 바이저가 붉은빛으로 활성화되었다.
에리스 역시 자기 나름대로 방독면을 뒤집어 쓰곤 정화통에서 제대로 산소가 공급되는지, 두 어번 손으로 쳐서 확인하고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준비 만전이에요."
* * *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은 이미 레일로드 주둔군으로부터 시간표를 받았기 때문에, 잘못해 열차에 치이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선로 위에서 먼저 단테가 집중했던 일은 이 곳을 왔다간 영체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이는 추적의 기본 중 기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뭔가 보여요?"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는 게 없어."
발자국이라도 남아있는 게 뭐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단테였지만 철도 주변에는 발자국이 남기 쉬운 부드러운 흙이나, 질퍽한 진흙이 아닌. 자갈들이 쫙 깔려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흔적이 남기가 어려웠다.
"소환기로 영체가 흘린 마나를 추적해봐야겠어."
[스캐닝 중.]
소환기로 주변 마나 반응을 추적하기 시작한 단테는 주변에 적이 다가오는지 에리스에게 경계하게끔 시켜놓고서 조용히 숨을 죽였다.
[잔류 영체의 반응을 27개 확인. 추적하시겠습니까?]
"27개?"
아무리 그래도 27개나 된다고?
누가 페인트로 잘못된 반응을 흘려놓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단테는 슬쩍 고개를 올려 터널이 뚫려있던 산을 유심하게 바라보았다. 27개나 되는 반응.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습성.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략. 지하에 있는 철도의 선을 갉아먹는 습성.
그런 것들을 종합한 단테는 적이 어떤 존재인지 바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코볼트군."
"코볼트라고요?"
"정령형 코볼트. 주로 광산에서 안에서 출몰하곤 하는 서식하는 작은 정령이야. 주로 집단생활을 하고, 하나하나가 강하진 않지만 숫자가 좀 부담스러워.
거기다가 우두머리를 맡고 있는 주술사 계열 적은 '라이트닝 볼트' 마법을 시전할 수 있기도 해. 번개 마법에 약점을 찔리는 서번트는 얌전하게 집어넣는 게 좋겠어."
현재 단테가 보유 중인 서번트 중에서 번개 속성에 대한 약점을 보유한 서번트는 그의 환수형 리바이어던이 있다.
게다가 보통 번개 마법은 회피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고 '필중' 속성을 지닌 마법들이 많은 탓에, 민첩으로 승부를 보는 서번트보다는 우직하게 내구로 밀어붙이는 서번트나 괜찮아 보였다.
문제는 현재 단테가 갖고 온 그런 '내구형' 서번트가 번개에 약점을 찔리는 '리바이어던'이란 점이었지만.
"칫."
"만약 적이 코볼트라면 순순히 저희 앞으로 나와주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은신/환영 마법을 지닌 로키나 픽시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모습을 드러낼 때 급습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아니면 덫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지."
"덫이요?"
"코볼트는 인간 여자에 환장한다던데."
단테의 시선이 에리스에게 꽂힌 바로 그때, 에리스는 자신이 용사에게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그리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 주인님이 명령만 내리신다면."
용사님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죠.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탓할 수는 있어도 용사를 탓할 수는 없게끔 '만들어진' 에리스가 주섬주섬 옷을 벗기 시작하자 단테는 고개를 저었다.
"뭐하냐?"
"에? 미끼가 되기 위해서 옷을 벗고 있어요. 그거... 하시려는 거 아니에요?"
"아니 병신아."
단테는 신령형 로키로 서번트를 교체한 다음, 반나체나 다름없을 정도의 야한 속옷을 걸친 에리스와 '거의' 똑같은 모습의 환영을 만들어내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되잖아. 굳이 너가 벗을 필요가 있겠냐?"
".... 아아."
근데 묘하게 '환영' 쪽의 가슴과 엉덩이가 제 실제 사이즈보다 더 부풀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죠?
입 밖으로 새어나오려는 말을 애써 삼키며, 에리스는 단테와 함께 수풀 속에 숨었다.
"자. 이제 때를 기다려보자고."
* * *
"히후히호! 여자다아앗!!!"
픽시의 '요정의 가루' 마법을 통해 주변 수풀 속에 숨어 은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단테와 에리스 일행 바로 앞에, 작은 정령 한 마리가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그들이 나타난 장소가 더 가관이었는데,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지 느닷없이 땅 아래에서 퐁! 하고 튀어나왔다. 순간 에리스는 황무지에서 흔히 튀어나오곤 하는 변이 두더지인 줄 알 정도로 말이다.
"뭐? 여자!"
"여자앗?"
"인간 여자앗?"
순식간에 처음 '정찰대'라고 보이는 코볼트가 지하에서 튀어나오자마자, 뒤이어 다른 수많은 코볼트들이 땅 위로 치솟아올랐다.
아무리 환영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알몸에 환장을 하는 정령들을 보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던 에리스는 묵묵히 마법궁을 소환해 사격 준비를 했다.
"흠."
그러는 도중, 단테는 적들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서번트로 재빠르게 교체했다. 그가 고심 끝에 코볼트 무리를 쓸어버리기 위해 고른 서번트는 잭 오 랜턴이었다.
"코볼트의 약점은 화염이니까 이게 낫겠군. 에리스, 한 놈은 살려둬야한다?"
"알겠어요."
코볼트 중 한 명이 곧장 바지를 내리기 시작하고, 에리스의 환영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자 그녀는 오만 상을 쓰며 대천사 미카에리스의 힘을 빌려 사격을 개시했다.
[에리스 : 새벽의 화살.]
[잭 오 랜턴 : 화염 마스터리.]
빠른 속도로 날아간 푸른 빛의 화살이 에리스의 환영 째로 코볼트의 대가리를 관통했다.
한 편, 단테가 소환한 잭 오 랜턴의 호박 머리에선 불꽃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치솟기 시작하더니 수풀을 눈 깜짝할 사이에 불태우기 시작했다.
"우끼?"
로키의 환영이 사라지고 일격에 급소에 꿰뚫리게 된 코볼트가 저 세상에 가버리자 단테는 마법을 통한 저격을 에리스에게 맡기고 M4를 꺼내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구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우꺅?! 모험가! 모험가다앗!!"
코볼트들이 뒤늦게 눈치를 챈 모양이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적 중에 코볼트 주술사, '유의미한 마법을 쓸 수 있는 개체'가 없다는 걸 방독면의 바이저를 통해 확인한 단테는 소음기를 장착한 M4로 모여든 코볼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고막을 오함마로 두드리는 듯한 총성은 소음기 탓에 울려 퍼지지 않았지만, 소음기를 달았다고 해서 총탄의 위력이 약해지는 건 아니었다.
정령형 코볼트는 영체 중에서도 단일 개체로만 따지면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약함을 자랑한다. 서머너인 단테의 총탄 한 두 발에 픽픽 쓰러질 정도로 말이다.
"이 고야아안!"
코볼트 중 하나가 저항하기 위해 뛰어들며 등 뒤에 맨 곡괭이를 휘두르려 하자, 단테는 녀석을 발로 걷어차고 등 뒤에 장비하고 있던 성검을 뽑아 들어 바로 녀석의 몸을 어렵지 않게 양단했다.
그리고 바로 왼손을 뻗으며 그는 주변에 도망치기 위해 흩어진 코볼트들을 향해 잭 오 랜턴에게 그의 '간판기'라고 할 수 있는 마법을 명령했다.
[잭 오 랜턴 : 소각.]
"잭! 다 태워버려!"
잭 오 랜턴이 바로 방금 전 전투 시작과 함께 사용했던 마법, '화염 마스터리'는 화염 속성 마법의 기술 위력과 명중률을 한 랭크 올려주는 효과를 지녔다.
즉 화염 마스터리가 적용된 잭 오 랜턴의 '소각'의 위력은 지금, 화염에 '내성'을 지닌 영체에게 쏘아도 유 효타를 보장할 수 있을 정도까지 올라간 셈이다.
그런데 화염에 '약점'을 찔리는 코볼트가 지금 '화염 마스터리'가 적용된 '소각'을 맞는다?
결과는 뻔했다.
화아아악! 콰아아아아앙!!!!
산불이 도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거대한 화염의 폭풍이 코볼트의 무리를 한 번에 덮쳤다. 물론, 철저하게 살려둘 코볼트 한 두 놈 정도는 소각의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게끔, 세심하게 조절하는 센스도 단테는 잊지 않았다.
"으... 우. 으끼?"
살아남은 두 코볼트는 서번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소환사의 강함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묵묵하게 성검에 묻은 피를 좌우로 털은 단테는 본격적으로 녀석들의 본거지를 알아내기 위해 협박 태세로 들어갔다.
"에리스?"
"부르셨나요?"
"두 놈까진... 필요없지? 어차피 본거지를 불게 만드는 데는 입이 굳이 두 개일 필요는 없잖아."
단테가 말하자, 에리스는 생글생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자신의 알몸에 고작 해봤자 '정령' 주제에 욕정 하면서 뛰어든 코볼트들을, 그녀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물론이죠."
[에리스 : 새벽의 속검.]
오른손에 섬뜩한 푸른 빛 마력의 칼날을 만들어내며 에리스는 생글생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때로는 여자의 분노가 남자의 분노보다 효과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던 단테는 자긴 이젠 모르겠다며 어깨를 움츠리곤 슬쩍 덧붙였다.
"먼저 너희들 둥지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는 놈은 살려줄게."
"제가! 제가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니오! 저는 안내까지 해드리겠습니다!"
단테가 만들어낸 화염 폭풍, 차분한 에리스의 분노를 눈앞에 두고 코볼트는 자기가 먼저 알려주겠다고 발악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뭐 딱히 매혹계열 서번트로 바꿀 필요도 없구먼. 자자. 시간 없어. 냉큼 길안내 시작해."
"네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