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전쟁 이후 용사 파티-19화 (20/49)

제 19화

바이츠 더 더스트.

네오 쿄토, 극동의 문화에 심취한 어느 핵 방공호에 있던 사람들이 세웠다고 하는 도시.

지금은 황무지를 거느리는 하나의 세력까지 발전한 상태로, 사이버네틱 임플란트와 같은 전쟁 전 고대 문명의 기술을 다수 점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도시들을 털어먹는 로그들이나, 갈 길 잃은 영체들로부터 도시를 지키고 있다.

네오 쿄토의 상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러한 기술력으로 인해 탄생한 다수의 강화인간들. 그리고 지금 레이븐의 눈앞을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네온사인들에 있다.

번쩍이는 네온 사인들이 비추는 네오 쿄토의 정경 때문에, 이곳은 '밤이 오지 않는 도시'라고도 불린다. 사실은 빛이 없으면 어두워질 때마다 인간과 악마를 무턱대고 습격하는 레드 그레이드의 부기맨, 섀도를 경계해서 이렇게 과도하게 불을 지펴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단테는 근처 가게에서 대충 사온 병 맥주를 선 채로 꼴딱꼴딱 마시며 비스듬히 엘리자베스의 짐칸 옆에 기대 있었다. 왼팔에는 네온 사인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소환기가 있었으며, 허리춤에는 두 정의 권총이 게슴츠레 자기 과시를 하고 있다.

만약 한베의 암살이 성공적이었다면.

자신이 리버레이터의 선택을 받지 못 했더라면.

이 자리에 지금 병 맥주를 꼴딱거리며 마시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한베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단테는 병 안에 맥주를 전부 비웠음을 확인하고 상표를 쓱 훑었다.

호가든. 전쟁 전 문명의 맥주 상표다. 지금은 핵으로부터 그나마 무사히 원형을 갖추고 있는 공장을 몇몇 장인들이 점거해서 맥주를 만들어내는 거 같지만, 과연 200년 전의 맥주 맛과 현재의 맥주 맛이 같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단테는 들고 있던 유리병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졌다. 째앵, 하고 병이 깨지는 소리가 잠깐 울려 퍼졌지만, 단테의 엘리자베스가 주차된 주차장의 정적은 그 정도로는 깨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운전석의 문을 열어 안을 살펴보자, 오랜 시간 동안 긴장 상태로 운전 하느라 완전히 운전석에서 뻗어, 지금은 누울 수 있게끔 시트를 아래로 내린 채로 담요를 덮은 채 자고 있었다.

일단 네오 쿄토 안으로 들어왔으니 섀도가 급습해올 일은 없다. 단테는 엘리자베스의 차 키를 뺀 다음 철저하게 문단속을 하고 네온의 불빛이 반겨주는 도시를 향해 뛰어들었다.

네오 쿄토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체재했기 때문인지, 그의 존재는 이미 주변 주민들에게 알려질 대로 알려진 듯 보였다.

물론, 그가 여기서 쌓아 올린 행적 때문에, 단테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을 게 뻔했다. 오자마자 느닷없이 사람 한 명을 쏴 죽였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그가 지나갈 때마다 묘하게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치안 관리를 위해 돌아다니는 사무라이들도 하나같이 그를 묘하게 주시하며, 허튼 짓을 하진 않을지 감시하는 게 보일 정도로 말이다.

"이거 하나 줍쇼."

근처 과일점에서 가장 겉모양이 멀쩡해 보이는 사과를 몇 개 한 바구니 산 단테는 고개를 올려 네오 쿄토 중앙에 우뚝 솟은 탑을 노려보았다.

네오 쿄토 타워.

한베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맥킨지와 한베는 의뢰가 끝나면 바로 이 쿄토 타워에서 만나 보수에 대해 협상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럼 이제 슬슬 빚을 갚아줄 때구만.

단테는 왼팔의 소환기를 짤깍거리며 만져 몇 가지 '사전 준비'를 하곤, 네오 쿄토 타워로 향하는 길을 얌전히 따라갔다.

높으신 분들이... 정확히는 주머니에 동전이 좀 짤랑거리시는 분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랍시고, 입구에는 유난히 경계를 서는 경비들이 많았다.

개 중에는 데모닉 사무라이도 몇 보였고, 평범하게 총과 방탄복으로 무장한 녀석들도 보였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소환기를 차고 있거나, 사이커처럼 보이는 녀석은 없다는 점이었을까.

"멈추십시오."

타워 안으로 들어가려는 단테의 앞을 그때, 경비를 서고 있던 사무라이가 막아섰다.

"죄송합니다만, 쿄토 타워 안에 무기의 반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레이븐씨, 실례가 되겠지만 이 자리에 당신이 가진 모든 무기를 반납해주셔야겠습니다."

단테는 묵묵히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사무라이에게 건내주고, 코트 안에 숨겨놓고 있던 폭발물들을 얌전하게 반납했다. 그 외에도 경비병이 딴지를 걸 것을 우려해, 나이프나 마체테도 반납했다.

"이거면 만족해?"

단테가 살짝 비꼬듯이 묻자, 경계를 서고 있던 사무라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 레이븐이지? 듣기로는 레이븐은 전부 마법 능력자라고 하던데. 허튼짓 하기만 해 봐라. 막부가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딱딱해지지 마. 난 그냥 여자랑 좀 놀고. 도박 좀 하러 온 건데. 뭘 그리 쩨쩨하게 구시나."

도박을 하러 왔다는 증거로 동전이 두둑히 들은 보따리를 경비병 앞에서 흔들며 단테는 사교성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감쪽같은 단테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경비병은 그제야 누그러진 표정으로 단테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으로 들어가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가장 먼저 반겨준 건 바니걸 차림의 여자들이었다.

'배달부'라는 직업이 200년 전에는 어땠을 지 모르지만, '레이븐즈 로지스틱스'에서 일하는 배달부인 레이븐은 평균적인 수입이 매우 높은 편이다.

꽤 위험도가 높은 의뢰의 경우, 의뢰 한 두 번에 한 두 달 정도는 그냥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게다가 단테는 스탯 상으로 보정 없이 매력이 무려 9에 달하는 마성의 남자. 돈도 있고 평균치 따위 까마득히 뛰어넘는 외모의 보유자니, 콜걸들이 달라붙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야하기 짝이 없는 바니걸 의상을 입은 웨이터 두 명이 레이븐 양 옆에 달라붙어선 한 번 이 마성의 남자와 어떻게든 해보기 위해, 동시에 돈을 벌기 위해 바쁘게 영업을 시작했다.

"아항! 레이븐 오빠다!"

"우리 오빠 돈 쓰러 왔구나!"

"그래그래. 잠깐 클라이언트랑 미팅이 있어서. 미안해."

"에에? 먼저 우리랑 놀고서 미팅하면 안 될까?"

"의뢰가 해결되면 주머니에 그만큼 우리 이쁜이들 손에 들어가는 돈도 많아진다고? 조금 기다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맥킨지라는 이름의 사람을 찾고 있어. 내 클라이언트야."

"우웅. 원래는 이런 건 말해주면 안 되긴 하는데. 뭐, 오빠라면 괜찮겠지? 지금쯤 옥상의 전망대에서 놀고 있을 거야."

"응. 고마워."

서비스용 미소를 지어주며 레이븐은 왼팔에 든 과일 바구니에서 괜찮아보이는 과일 하나를 꺼내 여자애들에게 나눠주었다.

"하나씩 먹어. 오다가 사왔거든."

"고마워! 오빠!"

바니걸들을 뒤로 하고 옥상의 전망대로 올라가자, 그의 예상대로 여자를 거의 세 명 정도 낀 채로 술판을 벌이고 있던 맥킨지가 눈에 들어왔다.

"요!"

단테가 손을 흔들어 반기자, 즐겁게 하하호호 여자들과 놀고먹고 있던 맥킨지의 안색이 마치 섀도라도 본 것처럼 창백해졌다.

그야 그럴 만도 하지, 분명 한베를 시켜 암살을 의뢰해놨는데, 원래대로라면 죽어있어야 할 사람이 버젓이 살아서 의뢰금을 받으러 여기까지 찾아온 셈이니.

"히끅. 레. 레이븐..."

"오랜만이잖아?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술이 좀 셌나?"

레이븐이 능청맞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묻자, 맥킨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당황하면 어쩌면 단테는 한베를 고용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눈치챌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대한 태연하게 행동하는 것이 유일한 살 길.

"크. 크흠. 그렇군. 꽤 오랜만이군. 레이븐."

"잠깐 의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개인실에서 만날까?"

"그... 그렇게 하도록 할까?"

"자 그럼 아가씨들. 파티는 이제 끝이야. 미안, 나중에 다시 올게."

맥킨지랑 어울려주고 있던 창녀들에게 사과하며 단테는 맥킨지의 뒤를 따라 네오 쿄토 안에 있는 호텔의 스위트 룸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듣는 귀가 없음을 확인한 단테는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를 선반 위에 올려놓곤 음악을 틀기 위해 스위트 룸 안에 설치되어 있던 쥬크 박스에 다가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음반을 밀어 넣었다.

"음악 좀 틀게. 한적한 분위기는 좀 싫어서."

"마... 맘대로 하게나."

"퀸이라는 밴드 알아? 내가 개인적으로 진짜 좋아하는 아티스트야. Bohemian rhapsody, Killer queen, We will rock you. 하나같이 명곡들이야. 200년 전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라니까."

"모. 모르네만."

"우와! 퀸을 모른다고? 당신 인생 한 절반은 손해봤네. 아무튼 틀게."

음반을 틀기 시작한 레이븐의 뒤에서 겁을 있는대로 집어먹은 맥킨지는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헛기침을 했다.

"서. 성검은 어떻게 됐나?"

"그거 얻으려고 진짜 개지랄을 했는데. 결국은 못 가져왔어."

"못 가져왔다고?"

"일종의 보안 장치가 있는 거 같아. 나는 멍청해서 잘은 모르겠는데, 선택받은 사람만이 뽑을 수 있게끔 마법이 걸려있었어. 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 힘으로 몇 번 끌고 가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

"그런가. 용사 이외의 인간이 함부로 그런 전쟁 병기를 노획해 쓰는 걸 방지하기 위해 달린 것이겠지. 아. 아무튼 고생 많았네. 레이븐."

"소올직히. 조금 양심에 찔리긴 한데."

단테는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보수... 는 못 받겠지? 나 거기 가느라고 배때지에 칼빵까지 맞았는데. 이상한 닌자가 내 뒤를 노리고 있더라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단테는 살짝 코트와 상의를 들춰 몸에 칭칭 둘러맨 붕대를 보여주며 웃어 보였다.

"그. 그건 정말 위험했겠군. 그래서 어떻게 했나?"

"역으로 쳐죽였지. 별 거 아니더라. 사이버네틱 관련 의수를 잔뜩 달고 있던데. 잘 됐어. 정크 파츠로 내다 팔려고. 근데 조금 걸리는 게 있더라고."

"뭐지?"

"누가 고용주인지 모르겠어. 뭐 때문에 날 암살하려 한 건가. 전혀 갈피를 못 잡겠다는 거지. 데이터가 싹 다 말소되어있던 탓에... 단서가 뭐 하나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데. 뭐 아는 거 있어?"

맥킨지에게 묻자, 그는 시치미를 뚝 떼며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군. 아마 내가 속한 조직에 성검이 넘어가는 걸 원치 않는 조직의 리더가 보낸 자객이 아닌가?"

"너 홀리 소속이었나?"

"그렇다."

"흐음. 알겠어. 일단은. 그래도 치료비 정도는 지불해줄 수 있지 않아? 그거 얻으러 갔다가 진짜 뒤질 뻔했는데?"

"... 알겠나. 1만 정도는 내줄 수 있어."

"1만? 짜네. 짜. 파칭코 몇 번 돌리면 사라지는 돈을 누구 코에 붙이라고... 뭐. 알았어. 성검을 못 가져온 건 내 잘못이니까."

능청맞게 말했던 단테는 맥킨지와 한 차례 악수를 나누고 쥬크 박스를 잠깐 쳐다보았다. 그가 틀어놓은 퀸 노래 중에서, 그가 특히나 좋아하는 트렌디한 비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또 한 놈이 뒈진다.

And another one gone, and another one gone

또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가고

Another one bites the dust, yeah

또 한 놈이 뒈진다!]

"그럼 실례. 아, 과일은 그대로 둘게. 먹고 싶으면 먹어."

단테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쥬크 박스에서 음반을 뽑아내선 얌전히 호텔의 스위트 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굳은 얼굴로 담배 한 대를 꼬나물곤, 자신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바니걸들에게 사과하며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가야겠다고 둘러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단테는 주머니에서 성냥 한 개비를 꺼내 한 손으로 능숙하게 불을 붙여 궐련 끝에 불을 붙이고 경비병들이 회수해갔던 권총과 수류탄을 다시 챙겼다.

"봐봐. 별 일 안 생긴다니까. 거 참."

허전한 홀스터 안에 다시 권총을 밀어넣은 단테는 미소를 지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순간 경비병들의 눈이 다른 쪽으로 돌아간 사이, 그는 자신의 서번트에게 명령을 내렸다.

"잭, 터뜨려버려."

[잭 오 랜턴 : 폭발의 룬/격발.]

* * *

맥킨지는 드디어 한 고비 넘겼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스위트룸의 침대에 뻗어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멍청한 레이븐이 끝까지 자신이 한베를 고용한 고용주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다.

본격적으로 녀석이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이 배후에 있음을 알아내기 전에, 빨리 네오 쿄토에서 튀어서 빨리 홀리의 본부로... '교단'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으헉!?"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동시에 술이 들어갔던 탓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실수로 레이븐이 건네주었던 과일 바구니 쪽으로 쓰러졌다.

안에 그가 선물로 주고 간 과일이 쏟아져나온 그때.

그의 눈에 붉게 물든 사과 하나가 들어왔다.

벌레가 파먹은 것처럼, 겉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던 그 사과에는... 묘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뭐지?"

그가 아무 생각 없이 그 사과를 집어들었던 바로 그 순간. 사과의 껍질에 새겨진 '문자'에서 붉은 열기가 치솟기 시작하더니, 어마어마한 마력을 방출했다.

"이. 이거어언!!!"

황급히 사과를 내던지려고 했던 맥킨지였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투콰아아아아앙!!!!

그의 손 안에서 '폭발의 룬'의 효과가 발동.

그대로 흔적도 없이 그 자리에서 망령의 불꽃에 집어삼켜진 맥킨지는 비명 하나 내지르지 못 한 채,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폭사'당했다.

그리고 똑같은 시간.

쿄토 타워 아래에선 검은 코트의 반인반마의 사내의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And another one gone, and another one gone. Another one bites the dust, yeah!"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딴 게 용사...?

shi2678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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