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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이후 용사 파티-13화 (14/49)

제 13화

용사의 성검에 달라붙은 까마귀들. (3)

단테는 눈앞에 있는 대상이 그 누구던, 저쪽에 공격의 의지가 있으면 그게 어떤 존재라도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수류탄의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좀비를 향해, 단테는 등에 들쳐 메고 있던 M4를 오른손으로, 부 무장인 M1911 권총을 왼손에 들고 난사할 준비를 마쳤다.

방아쇠를 당기기 바로 직전, 그때 에리스가 갑작스럽게 영체가 깃든 나이트워커와 단테 사이를 가로막았다.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방독면의 유리 안경 너머로 그녀가 급박한 눈길을 보내는 걸 본 단테는 성질을 내며 고함을 외쳤다.

"야! 너 지금 미쳤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사선에서 지금 당장 나와!"

하마터면 '동료'를 쏠 뻔한 단테가 진짜로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외쳤다.

"저분은 200년 전, 저와 같은 용사 파티에 있었던 동료예요! 부탁이니까, 쏘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에리스가 필사적으로 설득하자, 단테는 혀를 차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가로 저었다.

"저건 좀비야. 거기에 야생의 영체가 깃들어있는 거뿐이야. 어느 쪽이 '네 용사 파티에 있던 동료'인 지는 모르겠지만. 뇌 안 쪽까지 마소에 절어서 썩어 없어진 좀비, 자신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영체. 양 쪽 모두 200년 전의 널 기억하진 못 할 걸? 잔말 말고 빨리 비켜."

단테가 사납게 소리치며 나오라고 총구 끝으로 옆을 가리켰지만 에리스는 단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여기서는 양보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사의 표명이었다.

200년 전 사람인 에리스에게 있어서, 지금 저 앞에 기어 다니는 나이트워커는 단순한 괴물이 아닌, 200년 전의 자신의 세상과 핵전쟁이 터진 이후 세상을 이어주는 하나의 연결 통로였던 셈이다.

하지만 200년 전 사정이든 뭐든. 그딴 건 어찌 되든 상관이 없었던 단테는 그저 에리스가 걱정될 뿐이었다. 좀비든, 야생의 영체든, 양 쪽 모두 생존자에게 있어서 대체로 적대적이다.

가까이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오히려 다칠 수도 있는 상황.

단테는 사선에서 비킬 생각이 없는 에리스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M4를 내렸다. 그러나 왼손의 권총만큼은 좀비의 머리를 조준한 채 슬금슬금 옆으로 걸어갔다.

"그래서 어떡할 건데. 난 여기서 성검에 손도 대보기 전에 죽는 건 사양이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조금만요."

에리스는 단테가 총구를 자신으로부터 거둔 직후, 바로 레인저의 복장을 입고 있던 좀비에게 달려갔다.

"레인저 씨. 지그문트 씨. 저예요. 저. 에리스예요. 용사님의 가이드. 용사님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앞길을 안내해주었던 요정이에요."

마소 때문에 위험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바로 그 자리에서 방독면을 벗어 자신의 맨 얼굴을 보여주었다.

"잠깐...!"

이게 지금 뭐하는 미친 짓이냐. 그렇게 단테가 따지기도 전에, 에리스는 미쳐 돌아가는 가이거 카운터의 소리 속에서 실시간으로 마소 섞인 대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그녀는 좀비에게 다가갔다.

좀비가 바로 사정없이 에리스의 목을 물어뜯을 거라고 생각한 단테는 권총으로 좀비를 겨누는 동시에, 소환기로는 서번트에게 명령을 내릴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의외로, 그 좀비는 에리스를 물어뜯지도 않았다. 좀비에게 깃들어 있던 영체 또한, 별 다른 마법을 쓸 징조를 보이지 않았다.

썩어 문드러진 살갗 사이사이 비치는 하얀 뼈. 그 앙상한 손으로 좀비는 천천히 손을 들어 에리스의 뺨을 어루만졌다.

설마 진짜 나이트워커랑 대화를 하는 게 가능하다고?

그런 의심 속에서 단테가 반쯤 경악한 상태로 에리스와 좀비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소환기에서 표시된 메시지를 읽었다.

"저예요. 저. 기억나세요? 맙소사. 벌써 200년이나 지났어... 이게... 이게 무슨..."

그 순간, 좀비는 좌우로 고개를 젓더니 왼쪽 팔에 장비하고 있던 작은 손 쇠뇌를 느닷없이 가동하더니 에리스의 가슴을 조준했다.

[아. 니야. 넌 용. 사의 요. 정이 아니야.]

충격에 빠진 에리스가 멍한 얼굴로 좀비의 깊게 파인 공허한 눈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뒤에서 단테가 에리스의 목덜미를 잡아 그대로 뒤로 잡아끌고, 대신 자신이 앞에 나서선 좀비가 쏘아낸 석궁의 화살을 대신 맞았다.

"끄윽!?"

옛 고대 마법 기술이라도 접목된 건지, 화살을 맞은 단테는 그대로 뒤로 밀려나며 지면을 나뒹굴었다. 예상외로 강했던 일격에 단테는 서번트의 현재 남은 잔여 내구를 재빨리 확인하고 백 텀블링하며 중심을 바로 잡았다.

"단테 씨!"

"내가 뭐라 그랬어. 시도는 그래. 뭐 나쁘지 않았지만? 저건 그냥 살아 움직이는 시체야.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사납게 일갈하는 단테에 할 말이 없었던 에리스는 다시 방독면을 뒤집어쓰며 크게 기침했다.

방독면을 벗고 있었던 시간은 거의 10초도 되지 않았는데, 그 짧은 순간에 마소를 비롯해 오염된 대기를 지나치게 많이 들이마신 탓에 호흡기를 비롯한 내장에 무리가 간 게 분명했다.

"스카아크!"

[스카아크 : 투창-게 불그.]

재빠르게 단테의 뒤에서 섬광과도 같은 날카로운 재블린 한 자루가 공기를 찢으며 호를 그리며 날아갔다.

영령형 : 스카아크는 민첩 스테이터스가 높기 때문에 물리 기술에 대한 명중률이 높으며, 동시에 공격을 회피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에리스는 저 좀비가 이전 자신이 속해 있던 용사 파티의 '레인저'라고 추측했는데, 원거리 공격을 장기로 삼는 적의 화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환수형 : 리바이어던처럼 내구 위주의 탱킹이 아닌, 민첩 위주의 회피 전술로 가는 것이 맞다고 그는 판단했다.

스카아크의 게 불그의 끝이 닿기 직전, 레인저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묘한 기계식 검을 꺼내 게-불그를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역시 야생 영체가 깃들어있는 만큼, 전투력은 준 서번트급을 자랑하는 게 틀림없다.

팔목에 달린 손 쇠뇌를 재빨리 재장전한 그는 등 뒤에 둘러매고 있던 돌격 소총을 꺼내 단테를 조준하고 먼저 마법을 써서 자신을 공격해온 마구 쏘았다.

스카아크의 민첩 보정을 믿고 그대로 엄폐물을 찾아 뛰며, 단테 역시 지지 않고 양손에 쥔 두 총기를 난사하며 화려하게 옆으로 굴렀다.

키잉! 키기기긱! 키잉! 키긱!!!

미처 단테가 피하지 못 한 총알 몇 발을 자신의 창으로 대신 튕겨주었던 스카아크는 단테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명령을 내리기 직전, 적의 분석을 끝마친 소환기로부터 데이터를 받은 단테는 다음에 어떤 식으로 나올지, 전략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영체 깃든 좀비.

힘 : 3 마력 : 6 민첩 : 8

내구 : 3 지능 : 1 매력 : 1

영체로 인해 기본 스탯이 일반적인 좀비에 비해 늘어난 상태.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발목을 잡아 지능과 매력, 내구가 떨어져 있다.]

높은 민첩을 갖고 있다면, 회피에 특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회피에 특화된 적에 대한 대처법은 '반드시 공격이 적중하는 필중 마법'으로 격추하거나, 아니면 상태 이상으로 사전에 무력화를 시켜놓은 다음에 두들겨 패는 거다.

안 그래도 내구와 매력 스탯이 낮게 잡혀있다면, 그만큼 상태 이상에 취약하다는 걸 의미하니. 이건 어쩌면 걸어볼 만한 도박수일 지도 모른다.

문제는 상대의 스킬 셋을 모른다는 거다.

상태 이상을 거는 데 특화된 그의 서번트들은 대체로 민첩과 내구 양 쪽 다 낮기 때문에 상대의 공격 계열 마법을 정통으로 맞을 시, 서번트를 교체하자마자 바로 퇴장당할 수도 있다.

서번트를 교체하는 것도 '턴'을 소모하고, 교체한 턴엔 거의 무조건 상대가 선공을 잡는다. 특히나 민첩이 높은 레인저를 상대로 하고 있다면, 교체한 턴 선공을 잡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 모든 판단을 거의 2초 남짓한 시간에 마친 단테는 생각을 굳혔다.

[레인저 : 터보 파이어.]

[스카아크 : 창술사의 발놀림.]

거의 동시에 '마법'이 발동되었다. 레인저의 뒤에는 거대한 여러 중화기들이 소환되어 단테를 조준했고, 스카아크는 바람의 기운을 끌어내 몸에 두르려 했다.

현재 레인저와 단테의 민첩은 보정을 받아 서로 완전히 호각.

거의 운으로 결정되는 선공의 승부에서.

살짝 뒤처진 건...

'단테'였다.

"끄윽?!"

수십 발에 달하는 중화기의 폭탄과 화약의 향연. 광역으로 쏟아지는 폭격이나 다름없는 공격 앞에서, 민첩으로 공격을 일일이 회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콰아아앙!! 쿠구구구궁!!!

필사적으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쏟아지는 폭격을 피하려 애썼던 단테였지만 애석하게도 스카아크는 '창술사의 발놀림'을 쓰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누적된 데미지로 인해 퇴장해버리고 말았다.

스카아크가 퇴장하자마자, 터보 파이어가 화염 속성 공격이라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화기를 이용한 공격을 주로 삼아왔다는 점을 떠올려낸 단테는 서번트를 '잭 오 랜턴'으로 교체했다.

"잭 오 랜턴!"

[소환 : 악령형 잭 오 랜턴.]

만약 이 턴에 선공을 잡을 수 있었다면, '창술사의 발놀림'으로 '회피'를 높여 한 턴을 넘긴 다음 곧장 상태 이상을 거는 서번트로 교체할 거다.

스카아크의 '창술사의 발놀림'은 서번트에 적용하는 것이 아닌, 서머너 본체에 적용하는 것이기에 그 효과는 서번트를 교체해도 남는다.

즉 다음 턴에 교체되는 서번트는 회피 증가의 효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설령 선공을 레인저에게 빼앗긴다 하더라도 스카아크를 통해 확보한 회피를 토대로 안전하게 턴을 받은 다음, 상태 이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선공을 빼앗겨버리는 바람에, 그 전술은 이제 쓸 수 없게 되었다.

"큭..."

제대로 낭패를 본 단테가 잠시 서번트를 교체하느라 무방비한 틈을 타, 레인저는 날카롭게 소총을 쏴 단테의 가슴을 노려 쏘았다.

아슬아슬하게 탄환이 방탄 섬유 재질의 코트에 막히는 바람에 크게 피해는 받지 않았지만, 아마 코트 안 쪽을 벗어 확인하면, 시퍼런 피멍이 들어있을 게 분명하다.

"커흑..."

자 이제 어쩐다. 고민하고 있던 찰나, 마소를 들이마신 탓에 잠시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던 에리스가 마법궁을 소환해 레인저를 노리고 쏘아냈다.

[에리스 : 새벽의 화살.]

청명한 푸른빛의 화살이 빛의 궤적을 그리며 레인저가 총을 들고 있던 오른팔에 맞아 들어갔다. 마력 수치가 높은 에리스였던 만큼, 꽤나 위력적인 공격이었기에 레인저는 쥐고 있던 총을 순간 놓쳐버렸다.

레인저의 시선이 단테에서 에리스 쪽으로 쏠린 그때. 단테는 상태 이상을 걸 거라면 지금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곧장 그는 잭 오 랜턴에서, 서번트의 교체 명령을 내렸다.

"부탁한다! 픽시!"

[소환 : 정령형 픽시.]

[예이!]

요정의 가루를 흩날리며 소환된 픽시가 손을 흔들며 소환된 바로 그때, 레인저는 순식간에 에리스를 향해 거리를 좁혀선 게-불그를 막아냈을 때 사용했던 기계식 칼을 꺼내 에리스를 사정없이 공격했다.

전 파티원 출신임에도 자비 하나 없이 매섭게 검을 휘두르는 그 모습에서, 광기의 편린을 살짝 엿볼 수 있었던 단테는 에리스에게 외쳤다.

"피해 병신아! 아님 막든가!"

에리스는 왼손에 소환해낸 마법궁으로 거의 찰나의 순간 그의 검을 막아내며 레인저를 노려보았다.

"지그... 문트... 씨이!!! 제발. 저를... 기억해주세요...!!!"

[아니야. 아니야. 아니. 아니야. 아니. 넌 아니야. 넌 요정. 용사... 의 요정. 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좀비가 칼날을 더욱 밀어붙이자, 에리스는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힘 스탯에서 밀리는 건가. 짧게 판단한 단테는 픽시에게 명령을 내렸다.

[픽시 : 매혹의 날갯짓.]

[아... 에으... 으. 에?]

순간 픽시의 요망한 술법에 걸린 레인저의 움직임이 멎자, 소환기에 알림이 표시되었다.

[당신은 적을 매혹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2턴 간 적은 '뇌쇄' 상태에 빠졌습니다.]

"2턴이면 충분해!"

[소환 : 잭 오 랜턴.]

[잭 오 랜턴 : 소각.]

소환한 잭 오 랜턴에게 소각을 명령해두고, 단테는 총기를 내던지고 양손에 각각 수류탄을 하나씩 꺼내 이빨로 안전핀을 제거. 그대로 레인저를 향해 던졌다.

에리스를 폭발의 여파로부터 지키기 위해, 단테가 뛰어든 바로 그때.

호박 머리의 망령이 손 끝에서 지옥의 불꽃을 분출하는 것과 동시에 수류탄이 터져나가며 검은 연기와 함께 사방에 날카로운 철 조각이 흩뿌려졌다.

콰아아아앙!!!!

"해치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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