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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이후 용사 파티-12화 (13/49)

제 12화

용사의 성검에 달라붙은 까마귀들. (2)

"준비는 다 됐어?"

운전대에 한쪽 발을 올려놓은 채, 느긋하게 에리스가 준비를 끝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던 레이븐은 입에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고선 자신의 요정에게 물었다.

"네. 지금 바로 출발해도 상관없어요."

엘리자베스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조수석 위에 에리스가 올라타자 레이븐은 라디오의 전원을 올려놓고 에리스의 시트를 손으로 잡은 뒤, 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트럭을 후진시켰다.

핵이 떨어지고 자그마치 200년이 지난 지금, 운전면허라든가 그런 시스템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만 탓에 그의 운전 실력의 신용을 보장해줄 그 무엇도 현재 단테에게는 없었다.

그러나 핸들을 돌리는 단순한 동작에서 묻어나오는 짬과 경험, 부드럽게 좁은 주차 구역에서 차를 빼내는 모습, 능숙한 수동 기어의 사용은 어디서 전문적으로 운전을 배우고 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바꾼 그는 다시 핸들을 돌려 네오 쿄토 바깥으로 향하는 게이트 쪽으로 트럭의 머리를 돌려 느긋하게 액셀을 밟았다.

입에 꼬나물고 있던 담배를 바깥에 아무렇게나 뱉은 그는 창문을 닫고 오른손으로 라디오의 전원을 올렸다. 언제나 듣는 방송이 흘러나오는 주파수에 맞춰놓고 느긋하게 울퉁불퉁한, 거의 비포장 도로나 다름없는 도로를 향해 엘리자베스는 늠름하게 전진했다.

"그래서 찾았나요? 단테씨를 노리던 암살자."

"찾았지. 예상대로 옛 동업자더라고. 레이븐즈 로지스틱스에서 일한 전적이 있었어. 이름은 '한베.' 네오 쿄토 출신으로, 데모닉 사무라이가 아니라. 닌자 출신."

"닌. NINJA...?"

"네오 쿄토 안에서 현 막부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 반란군이 있어. 주로 암살자들인데... 걔네들을 닌자라고 부르더만. 아무튼 현 막부는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쿄토 주민들은 죄다 숙청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비밀리에서 활동할 필요가 있거든.

그래서 중갑옷을 들고, 무거운 태도를 쓰는 사무라이랑은 다르게 가벼운 경갑에 무기도 투척류 암기부터 시작해서 총을 쓰기도 하는 부류까지 다양해. 몸 거의 전신을 사이버네틱 기술로 대체한 모양이야. 인간인 부분이 오히려 더 적을 정도로."

"그리고요?"

"레이븐즈 로지스틱스에 입사할 때, 무조건적으로 보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마법 능력이야. 서번트를 다룰 수 있느냐, 아니면 태생부터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체질이냐. 보통 그런 걸 보지.

한베 같은 경우에는 전자야. 아무래도 고대 유적에서 소환기를 찾았나 봐. 왼팔 사이버네틱 의수에 소환기 기판을 달아서, 나처럼 영체를 사역해 서번트로 다루는 서머너야."

"서머너라..."

용사와의 전투 경험이 어느 정도 기억에 남아있던 에리스는 서번트 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모든 서머너가 용사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용사는 서번트를 다룰 수 있는 서머너였기 때문이었다.

"서머너 전에 있어서 중요한 건 상대가 사용하는 서번트의 약점을 찌르는 거겠죠. 역시. 이쪽에 한베가 다루는 서번트의 정보가 있다면 유리해져요."

"당연하지.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봐. 하지만 한베 녀석, 레이븐즈 로지스틱스를 나갔을 때,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거의 다 삭제하고 나갔어. 현재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는 이것들은 그나마 로지스틱스 쪽에서 복구해낸 내용이야. 녀석이 보유하고 있던 서번트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안 남아있어."

"그거... 그건. 좀 큰일이네요."

"맞아. 쿄토에서 데모닉 사무라이랑 싸우면서 나는 스카아크. 잭 오 랜턴, 리바이어던. 이렇게 세 체의 서번트를 공개해버렸는데. 이쪽은 가진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신중하게 나갈 필요가 있을 거야."

단테는 그렇게 말하며 핸들을 잡고 맥킨지가 말했던 지하 유적 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쭉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 군데군데 파손된 데가 많았지만, 핵이 떨어진 이후 오고 가는 차량 자체가 매우 적어졌기 때문에 달리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지뢰가 매설되어있나, 그런 걸 계속해서 살펴나가면서 운전하는 일은 상당히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는 이 편이 훨씬 빠르다.

"그 성검이라는 거."

"네. 듣고 있어요."

"만약에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되지?"

본래 레이븐이 배달 품목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는 건 철저하게 금기시되는 행위다.

자신이 무엇을 배달하게 되는 지, 배달 업무 중에 그걸 '맥거핀'으로 취급하고 고개를 들이밀지 않는 것이 레이븐의 철칙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200년 전, '용사'가 사용했던 병기라니. 에리스의 말대로 허튼 녀석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세상 자체가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그걸 쓸 수 있게 되면... 서번트급의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되요. 저도 자세한 건... 잘 몰라요.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결전 병기란 사실만 알고요."

"서번트급의 힘이라. 스카아크같은 영체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건가. 그 정도 힘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통째로 바뀌지는 않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래도 제게는 그걸 감독할 의무가 있어요. 저는... '용사'의 요정이니까요. 성검을 뽑아 사용한다는 건, 그 사람이 '용사'로서의 자격을 갖췄다는 걸 의미해요. 저는 용사의 가이드로서, 용사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니까요."

"그렇구먼."

단테는 운전대를 잡고서 슬쩍 물었다.

"만약... 만약 말이야. 내가 성검을 뽑아서, 자격을 갖추게 된다면."

"네? 잘못 들었어요?"

"... 아니다. 가던 길 가자."

* * *

"그 놈의 보안. 보안. 노래를 부르던 이유가 있었구먼."

소환기의 네비 기능을 이용해 목적지에 도착한 단테는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성검이 묻혀있다고 언급된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터렛이 대체 몇 개가 깔린 거야. 좀비들도 엄청 기어 다니는데. 지금 내 눈에만 안 보이지. 영체도 몇 개 나돌아 다니는 거 같고."

"... 여기는."

"여기는... 뭐?"

"여기는 옛날 용사의 길드 본부로 쓰였던 장소에요."

200년 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던 에리스가 이제는 반쯤 폐허로 전락해버린, 용사의 '집'이나 다름없는 곳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한때 찬란했던 용사의 길드 본부가... 지금은 녹이 슬대로 슨 데다가 핵폭탄의 영향을 제대로 받은 나머지 마법으로 결계가 유지되고 있던 부분을 제외하면 전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용사님과 자신. 그리고 용사의 연인이었던 마법사. 언제나 마도 아머를 벗던 적이 없었던 전사. 그리고 다소 말투가 경박하긴 했지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주었던 레인저.

그들은 여기서 언제나 모험이 끝나곤 하면 축배를 나누며 모험의 아픔을 씻어내고는 했었는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향수 탓에 새어 나온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말했다.

"전체적인 구조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용사의 성검이 여기 묻혀있는지 어떤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일단은 이 곳의 보안 시스템은 마법사가 만든 거라. 골렘이라든지. 영체들이 많아요."

"터렛은?"

"... 그건 레인저의 취향이에요."

"하는 수 없지."

엘리자베스에서 내린 그는 뒤에 실린 짐칸에 뛰어든 다음, 안에서 이것저것 용사의 길드 본부를 뚫기 위한 장비들을 몇 개 챙기기 시작했다.

"나가기 전에 서번트를 몇 개 좀 바꿔놔야겠어."

"서번트를 바꾼다고요?"

"응. 한베는 내 서번트 구성을 알고 있으니까. 한 번 틀어줘야지. 내가 한 번에 갖고 다닐 수 있는 서번트의 숫자는 4개밖에 안 돼. 내 몸이... 그. 소환기에서 나오는 마소를 못 버텨서."

단테는 그렇게 말하며 짐칸 뒤에서 큼직한 터미널에 소환기를 연결해 이것저것 조작하다가, 벽에 걸려있던 거의 박격포 수준의 화기를 낑낑거리며 꺼냈다.

"뭐... 뭐에요 그거?"

"Barret M82A1. 터렛을 제거하려면 이게 최고지."

대물 저격총을 자랑스럽게 꺼내 든 그는 성큼성큼 그걸 등에 들쳐 메고, 엘리자베스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선 조준 자세를 잡았다. 먼저 문 앞을 살벌하게 지키고 있는 기관총 터렛들부터 하나하나 제거할 생각이었다.

"ACS 가동."

[조준 보조 시스템 활성화.]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대고 엎드려쏴 자세를 취한 그는 거의 8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터렛을 스코프의 십자선 안에 넣었다.

"아 참, 에리스."

"네?"

"귀 틀어막는 게 좋을 거야."

콰아아앙!!!

호흡을 멈추고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기자 묵직한 반동과 함께 옆에서 .50 BMG의 탄피가 떨어져 나왔다. 초장거리에서 틀어박힌 저격에 기관총 포탑은 제대로 작동도 하지 못 한 채, 단테의 저격에 꿰뚫려 그대로 폭발해 바닥에 잔해를 흩뿌렸다.

그렇게 몇 발 정도 저격을 거듭하자, 입구를 지키는 터렛은 어떻게든 전부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에리스의 기억대로라면, 이런 식으로 터렛이 파괴될 경우 마법사가 설치해둔 자동 방어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안에 있는 골렘들이 기어 나올 텐데...

핵폭탄에 직격을 맞은 탓에 보안 시스템이 고장이라도 난 건지. 입구에서 골렘들이 튀어나올 기색은 아직까지는 보이지가 않았다.

"나이스 샷."

자화자찬하며 그는 부드럽게 엘리자베스 위에서 내려와 짐칸에 다시 저격총을 싣고, 대신 돌격 소총을 꺼내 등에 둘러맸다. 긴급 상황 시에 휘두를 냉병기인 마체테를 꺼내 허리 뒤춤의 칼집에 넣은 그는 방탄 코트 안에 수류탄부터 시작해 각종 탄환들을 챙기고, 허리춤의 방독면을 눌러썼다.

"안에 마소가 너무 짙어. 그냥 들어갔다가는 피부가 썩기 시작할 걸. 계속해서 매끈한 피부로 살고 싶으면, 이거 쓰는 게 좋을 거야."

에리스 몫의 방독면도 챙겨준 단테는 어깨를 움츠리며 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용사의 길드를 한 번 뒤져보자고."

* * *

틱. 티딕. 티디디딕. 티딕. 티디딕.

가이거 카운터가 상승하는 소리가 소환기를 통해서 전해진다. 이곳의 마소의 농도가 얼마나 짙은 지, 단테는 굳이 소환기의 미터기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원래의 형태가 어땠는 지 거의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망가졌지만, 에리스는 이곳이 원래는 거대한 저택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영광 같은 건 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야생 영체들이나 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용사의 성검을 찾는 것. 에리스의 말에 따르면, 미약하게나마 용사가 휘둘렀던 강대한 힘의 편린이 느껴진다고 하였고. 그것이 지금 지하에서 느껴진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지하로 가는 길을 어떻게 찾느냐 였지만...

그걸 걱정하기도 전에, 단테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하나 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비집고 거의 썩어문드러지기 직전의 사람의 손이 불쑥하고 튀어나왔다. 만약 지금 시간대가 낮 시간대가 아니라, 밤 시간대였더라면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뭐... 뭐뭐... 뭐. 뭐야?"

"뭐 볼 게 있겠냐."

단테는 이런 광경을 수도없이 접해왔다는 듯이 허리춤에서 챙겨 온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는 야구를 하듯 던졌다.

어차피 낮 시간대에서는 섀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즉,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모든 존재들은 적어도 총알이나 마법이 먹힌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뭐가 나타나도 전혀 두렵지 않았던 단테는 소환기를 바라보며 표정을 찡그렸다.

"... 영체 반응이네."

짧게 읊조린 직후, 수류탄의 폭발 범위에서 도망치듯 뒤로 물러나자 잔해의 더미가 폭발하며 안에 묻혀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좀비...?"

하지만 좀비는 아침에는 나돌아다니지 않는데. 에리스가 생각한 순간, 단테는 벌레를 씹은 얼굴로 M4를 겨누었다.

"나이트워커에 영체가 달라붙었군. 이럼 낮에도 돌아다닐 수 있지. 어떤 영체가 달라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에 지옥으로 보내줘야겠어. 에리스, 마법을 준비해줘."

"네."

그렇게 말하며 에리스가 마법의 궁을 준비하려던 바로 그때.

잔해에서 기어나오는 '좀비'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 좀비가 입고 있던 옷은...

".... 레... 레인저... 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다가 망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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