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화
용사의 성검에 달라붙은 까마귀들. (1)
멱살을 건져 올려 어떻게든 욕조의 냉수 아래에서 사무라이를 건져낸 단테는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언제든지 죽여버릴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킨 채로 의뢰주의 이름을 재차 물었다.
"어떤 놈이야. 그래서."
"우리들을 고용한 의뢰주의 이름은..."
그때, 단테는 소환기가 알려주는 데이터 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모종의 막연한 살기를 느끼고 등 뒤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 순간, 꽉 닫혀있던 욕실의 창문이 벌컥 열리는 것과 동시에 세 자루의 수리검이 호를 그리며 날아와 단테가 멱살을 쥐고 있던 사무라이의 경동맥에 틀어박혔다.
"뭐...!"
어떻게든 녀석의 목숨이 끊어기지 전에 정보를 캐내기 위해 단테는 쥐고 있던 사무라이의 멱살을 쥐고 흔들면서 물었다.
"야! 죽을 거면 말은 끝까지 하고 죽어! 어떤 놈이냐고! 야! 야! 새끼야!!!"
단테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수리검에는 맹독이 발라져 있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무라이는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숨통이 그 자리에서 끊어져 버렸다.
적이지만 정보가 절실히 필요했던 단테가 반쯤 사색이 되어 뒤늦게 맥을 짚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혀를 차며 단테는 녀석의 목에 박힌 세 자루의 수리검을 조심스럽게 빼 주머니 안에 넣었다.
"이런 무기를 쓰는 건 네오 쿄토에 있는 녀석들밖에 없긴 할 텐데."
그는 혀를 차며 욕조에 널브러진 시체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처리해야 할 시신이 한 구가 더 늘은 건, 언제나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대체 누가 자신을 노린단 말인가. 그저 성검을 회수해오라는 배달 업무를 도맡았을 뿐인데, 그 이자카야에 성검을 노리는 모종의 세력이 존재하고, 자신과 맥킨지 사이의 이야기를 엿듣기라도 한 건가.
단테는 어깨에 죽어버린 시신을 들쳐메고,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자신에게 박히는 걸 단테는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의 단어를 하나같이 입에 올리고 있었다.
바로.
'흉조'라는 단어를 말이다.
* * *
"레이븐을 암살하러 간 오니무샤들이 전부 살해당했다고...?"
맥킨지는 네오 쿄토 타워 위에서 보고를 들으며 경악에 빠졌다. 아무리 여러 서번트를 다루고, 다양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소환사라 하더라도 숫자로 밀어붙이면 암살이 가능할 줄 알았건만.
역시 소환사를 죽이기 위해서는 똑같이 소환사를 이용하는 방식 외에는 답이 없는 건가. 맥킨지는 이마를 매만지며 보고를 하러 온 또 다른 '사무라이'를 노려보았다.
"그건 그렇고... 당신은 뭐지?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은 고용한 적은 없는데."
복장은 여타 사무라이랑 비슷하긴 하지만, 비교적 갑옷이 차지하는 면적이 적다. 적의 공격을 막는 것보다는, 활동성에 더 비중을 둔 복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목에는 피로 물든 붉은 머플러가 휘날리고 있었으며, 양 어깨에 장비하고 있던 녹슨 견갑에는 까마귀의 문양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팔다리가 전부 사이버네틱 의수로 대체된 것도 동일하지만, 그의 왼팔에는 단테가 차고 있는 것과 동일한 '단말', '소환기'의 기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얼굴에 기괴한 오니의 가면을 본뜬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있던 그는 검지와 중지를 모아 자신 앞에 내보이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도-모. 맥킨지상.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우연히 이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로닌이오. 그리고 한 때, 레이븐즈 로지스틱스 아래에서 일했던 카라스이기도 하지. 사정이라면 알고 있소.
그 까마귀를 암살하고 싶은 거겠지. 오니무샤들을 동원해 녀석을 죽이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고작 해봤자 야생 영체를 심어놓은 무샤들로 카라스를 잡는 건 불가능하지.
내가 만약, 그때 사무라이의 입을 막지 않았더라면 그 카라스의 다음 표적은 맥킨지. 당신이 되었을 것이오. 그러니까 내 하나 제안하지. 내게 녀석의 암살을 맡겨보지 않겠나?"
"내가 자네를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없지 않나."
맥킨지는 고개를 저으며 일단은 거절했다. 레이븐즈 로지스틱스는 레이븐에 대한 강함과 클라이언트로부터의 평가, 의뢰 수행 정도, 신용도 등을 종합하여 각 레이븐마다 '등급'을 매긴다.
하지만 레이븐이 아니게 된 이는 이러한 '등급'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롭다. 맥킨지가 단테에게 일을 맡길 수 있었던 건, 그의 등급이 '은'으로 꽤 상위권에 위치한 레이븐이었기 때문이었다.
은 아래에 존재하는 레이븐의 등급만 해도 6개를 넘는 데다, 은 위에 존재하는 계급은 금과 백금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은'에 해당하는 배달부인 단테는 나름 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규율에서 벗어난 로닌의 대체 어떤 구석을 믿고 일을 맡긴단 말인가. 맥킨지의 말은 돈을 내고 용병을 고용하는 고용주 입장에서 매우 합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고용주가 카라스를 암살하려 하는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지. 까마귀가 자신의 목줄을 쥔 사람이 누군지 구분 못 하고 반기를 들었을 때. 이 이상 그를 방치해두었다간, 일이 더 커질 거란 생각은 안 하는 거요?"
"신용이 보장된 레이븐을 고용하면..."
"다른 카라스를 고용하려면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오. 한 번 속는 셈 치고. 내게 일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지 않소? 고상한 사무라이 따위가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잡을 수 있겠소?
닭을 잡는 데는 닭을 잡는 칼을, 소를 잡는 데는 소를 잡는 칼을 쓰듯. 까마귀를 잡기 위해선 같은 까마귀를 동원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원래 나는 그 레이븐, 단테에게 지하 유적에 있는 어떤 고대 병기 하나를 가져오라는 의뢰를 현재 내준 상태야. 만약 단테를 죽이고, 그의 목과 함께 그 병기를 자네가 가져온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지. 원래 단테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보수를 자네에게 줄 거야. 어떤가?"
"흠. 더 받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신용도가 떨어져 있는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거 같군. 알겠소. 그 카라스의 목이랑, 그 카라스가 회수해올 예정이었던 병기를 회수해오면 되는 거겠지?"
"그래."
"알겠소. 그렇게 하지. 그 카라스가 움직이기로 한 날짜는 언제요."
"지금으로부터 사흘 뒤군. 자, 여기 선금으로 일단은 1만을 주지."
"1만, 확실하게 받았소. 그럼... 그 건방진 카라스를 암살해주도록 하지."
* * *
"최근에 이런 수리검을 산 사람을 본 적 없나?"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네오 쿄토를 출발하기로 한 날. 레이븐은 거의 사흘의 시간을 네오 쿄토의 총포상을 비롯한 모든 무기상과 대장간들을 돌아다니는 데 썼다.
가운데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고, 세 개의 칼날이 날카롭게 치솟은 형태를 한 흉기. 이런 물건을 만들기 위해선 상당히 실력 있는 대장장이의 손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이런 걸 사는 손님은 최근에는 본 적이 없는데."
대장장이는 턱을 매만지면서 레이븐이 건네준 수리검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말했다. 레이븐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뭔가 느낀 것이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장비하고 있던 서번트를 교체했다.
[소환 : 정령형 픽시.]
사람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귀여운 요정이 단테 주변을 한 번 맴돌고는 한 쪽 눈을 감으며 윙크했다. 그는 소환해낸 픽시의 애교를 살짝 받아주다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던 대장장이에게 순간 '마법'을 걸었다.
[픽시 : 매혹의 날갯짓.]
매혹의 날갯짓은 대상에게 '매혹' 상태 이상을 부여하는 마법으로 성공률은 사용자의 '매력' 스탯에 따라서 결정된다.
기본적인 매력 스탯이 안 그래도 9나 되는데, 거기에 픽시의 보정까지 받아 더욱 올라간 단테에게 있어서 일반 사람에게 매혹을 성공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픽시의 매혹적인 춤사위를 보고 잠시 눈이 멀어버린 대장장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단테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최근에는' 사간 사람이 없다고? 그럼 예전에는 이런 걸 사간 손님이 있었다는 건가? 으음? 그 부분은 과연 어떨까나?"
단테가 집요하게 물어보자, 요정에 홀린 것처럼 대장장이는 천천히, 띄엄띄엄 말했다.
"2개월 정도. 전에. 사간 손님이. 있었죠. 네에."
"어떤 녀석이었어?"
"... 사무라이. 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죠. 기억에 나죠. 나고 말고요. 특이한 복장. 을. 입고 있었거든요. 네에. 얼굴에. 이상한... 방독면을. 쓰고. 어깨에. 까마귀 문양이. 박힌. 견갑이..."
"얼굴에 이상한 가면. 어깨에는 까마귀 문양이 박힌 견갑. 사무라이 같은 복장?"
대충 단서를 잡아낸 단테는 카운터 위에 올려져 있었던 .45 ACP탄 한 박스를 하나 다른 사람의 눈을 몰래 피해 집어넣으며 말했다.
"정보 고맙다. 이건 공짜로 가져갈게."
"네에. 맘대로 하시죠..."
매혹에 빠져 정상적인 사고 방식 자체가 불가능했던 대장장이는 헤실거리는 얼굴로 픽시의 춤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그대로 자리에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주인의 허락을 받았으니, 아무튼 절도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단테는 주머니 안에 손을 비집어 넣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에리스와 합류했다.
"어떤가요? 단테씨를 습격한 범인. 찾으셨나요?"
"의뢰주를 찾는 건 물 건너갔어. 하지만 날 죽이려 하고 있는 의뢰주가 고용한 새로운 암살자가 누구인지는 대충 감을 잡았지."
단테는 짤막하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수리검을 에리스 앞에서 좌우로 흔들었다.
"정말요? 어떻게 알아냈나요?"
"뭐 별 거 없어. 매혹 마법을 거니까, 아는 거 모르는 거 다 알아서 불던데?"
정말 기상천외한 마법 사용에 에리스는 이마를 매만지며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저 남자가 자신의 도움 없이, 지하에 묻힌 성검을 자력으로 뽑을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말이다.
"덤으로 이것도 얻어왔지."
자랑스럽게 전리품 삼아 가져온 45탄 한 박스를 보여주며 레이븐은 미소를 지었다.
"알았. 크흠. 알았어요. 그래서 누구일 거 같아요?"
"수리검을 사용하는 암살 방법을 보고, 대충 네오 쿄토 쪽의 암살자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게 웬 걸. 아무래도 옛 동업자인 모양이야."
"동업자라면. 단테씨의 목숨을 노리는 그 암살자도 레이븐... 인 건가요?"
"그럴 확률이 지금으로서는 높아. 상대가 레이븐이라면... 최소한 마법을 다룰 수 있거나. 서번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건데... 그럼 머리가 좀 아파지네. 언제 어디서 서번트 공격이 올 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아주 그냥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단테는 언제 자신의 목숨이 따일 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벽에 기댔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붉은 안광의 방독면도 어째서인지, 조금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검 회수는 어떡할 거예요?"
"가야지. 의뢰인이 회수해오라고 했으니. 까라면 까야지 뭐. 하지만 100% 그 녀석. 내가 성검을 회수하는 걸 방해해올 거란 말이지.
내가 성검을 회수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누군가가 고용한 거 같으니 말이야. 철저히 준비해야겠어. 나중에 의뢰인에게 레이븐을 상대하느라고 진 땀 좀 뺐다면서 돈 좀 뜯어내야겠어."
그렇게 말을 끝마친 단테는 근처 주차장에 대놓은 트럭, 엘리자베스 위에 올라타 시동을 걸기 위해 차 키를 핸들 아래에 꽂았다.
"레이븐은... 언제나 이런 삶을 사는 건가요?"
에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단테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법 사용자인 레이븐을 막을 수 있는 건, 거의 같은 레이븐들 뿐이니까. 레이븐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거야 흔한 일이지.
각기 다른 양 진영에서 서로 레이븐을 고용해서 전쟁 비스무리한 걸 하기도 하니. 서번트 전이야 한두 번 겪어본 일도 아니니. 괜찮을 거야."
소환기를 통해 레이븐즈 로지스틱스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 그는 혹시나 남아있을 지도 모르는 '암살자'의 데이터를 찾아 스크롤을 돌렸다.
"그럼... 어디 한 번 살펴볼까? 그 녀석이 사용했던 서번트에 대한 데이터가 아직 남아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