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화
웰컴 투 물고문.
남은 행동수는 5회.
쳐들어온 데모닉 사무라이들이 몇 명 정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 명 이상부터는 슬슬 상대하기 힘들어진다.
아무리 단테에게 전쟁 전 문명의 용사가 사용했던 소환기가 존재하고, 여러 개체의 서번트를 다룰 수 있는 소환사라곤 해도. 그는 한 번에 하나의 서번트만을 다룰 수 있다.
즉, 소환사인 단테가 제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숫자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것이다. 단테가 허리에 걸어둔 방독면을 얼굴에 가져대자, 자동으로 끈이 조여지면서 고글 쪽에 붉은 안광이 감돌았다.
"아이야아앗!!!"
괴상한 기합과 함께 사무라이가 거의 자기 키보다 큰 거 같은 대태도를 단순하고 무식하게 휘둘러오자, 레이븐은 뒤로 한 번 뛰어서 참격을 회피. 그대로 오른손으로는 M4를, 왼손으로는 M1911를 들고 양손으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사방에 탄피가 흩날리고, 요란한 머즐 플래시와 함께 총구 끝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사무라이 녀석은 들고 있던 검을 왼손으로 바꿔들고는, 오른손으로 작은 와키자시를 꺼내선 그가 쏘아낸 탄환을 죄다 튕겨내기 시작했다.
[귀신 사무라이 : 튕겨내기.]
아무리 사이버네틱 기술을 통해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강화한 사무라이라고 하더라도, 영체의 보조 및 도움 없이 총탄을 죄다 튕겨내는 건 불가능하다.
상대가 먼저 총탄을 튕겨내기 위해, 영체의 행동을 소모한 걸 확인한 레이븐은 곧장 왼손의 권총의 탄창을 싹 다 비운 다음에 사무라이에게 내던졌다.
'튕겨내기' 중이었던 사무라이는 그것도 공격이냐면서, 자신에게 던져져온 쇳덩어리를 평범하게 검으로 그어 두 동강 냈다.
아무리 잘 갈린 칼날이라고는 하나, 쇳덩어리를 두부 자르듯 자르는 광경은 오니무샤들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어필하는 데는 충분했다.
[잭 오 랜턴 : 소각.]
"'튕겨내기'로 물리 데미지는 막을 수 있어도. 마법 데미지는 못 막을 거 아냐. 안 그래?"
레이븐 곁에 바로 호박 머리의 '사신'이 나타나서는 손을 뻗어 어마어마한 화염의 열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전신에 불이 붙어 고통스러워했던 오니무샤였으나, 데미지를 '영체'가 대신 받아주니 죽진 않은 모양이다.
마무리를 하기 위해 앞으로 슬라이딩하며 M4 하단에 장착해놓은 유탄 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기자, 퐁, 하고 튀어나온 작은 총류탄이 바닥에 맞닿는 것과 동시에 폭발했다.
잭 오 랜턴을 소환해두고 있던 만큼, 화염 데미지에 대한 강한 내성을 가진 레이븐은 오니무샤 한 마리를 정리한 다음 바로 자리를 뜨기 위해 사격장에서 뛰어나왔지만, 그때 무시무시한 속도의 횡베기가 그의 목 앞에 들이밀어졌다.
"우왓!?"
반사적으로 오른손에 든 M4의 총열로 아슬아슬하게 검격을 흘려낸 레이븐은 솜씨 좋게 오른쪽 홀스터에서 권총 한 정을 더 꺼내 사무라이의 정강이와 무릎 연골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순간 충격으로 인해 한 쪽 무릎을 꿇자, 레이븐은 곧장 잭 오 랜턴에게 명령을 재빨리 내렸다.
[잭 오 랜턴 : 폭발의 룬.]
폭발의 룬이 사무라이의 머리에 제대로 이식된 걸 확인한 그는 그대로 M4로 녀석이 대태도를 든 손을 쏴 무기를 떨어뜨리게 만든 뒤, 그대로 사무라이의 멱살을 잡아 건물 밖으로 던져버렸다.
건물 밖에 돌입을 대기하고 있던 다른 사무라이의 품 속으로 사무라이가 내던져진 걸 확인한 레이븐은 새겨놓은 폭발의 룬에 격발 명령을 내렸다.
콰아아아아앙!!!!
머리에 붙어있던 룬이 그대로 발동하자, 그대로 사무라이의 머리가 터지면서 피와 함께 뇌수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짧은 시간 그들의 시야가 봉쇄된 틈을 타, 레이븐은 전술을 바꾸기 위해 소환기를 조작했다.
[소환 : 환수형 리바이어던.]
[귀신 사무라이 : 참철.]
아무리 폭발의 룬을 통해 주변 시야를 봉쇄하긴 했으나, 화기가 아니라 냉병기를 주무장으로 삼는 그들에겐 딱히 의미가 없었다.
리바이어던으로 서번트를 교체하느라 레이븐이 시간을 들인 틈을 노려, 그대로 두 사무라이가 동시에 대태도의 칼로 레이븐의 가슴을 노려 횡베기를 날렸다.
이번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이, 맞아줄 수밖에 없었다. M4로 무리하게 공격을 받아냈다가는 총이 상해버릴 것이고, 리바이어던은 민첩이 빠른 서번트는 아니었기에 회피를 시도했다가 괜히 얻어맞을 확률만 커진다.
대신 레이븐은 뒤에 차고 있던 마체테를 꺼내들어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방어했다.
극동의 날카로운 칼날이, 레이븐의 다용도 나이프와 격돌한 그 순간, 무기의 체급으로만 따지면 레이븐이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쉽사리 뒤로 밀리지 않았다.
리바이어던은 민첩 스탯과 마력 스탯이 다른 서번트들보다 낮지만 그 대신 매우 높은 내구 스탯을 가졌다. 즉, 공격을 회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받아내는 데 더 특화되어있단 소리다.
쉽사리 레이븐이 넘어가지 않자, 두 사무라이는 순간 당황하며 사이버네틱 의수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냥 당하고만 있을 레이븐 역시 아니었다.
[리바이어던 : 뎁스 바이트.]
그의 등 뒤에서 상어와 '용'을 합쳐놓은 것 같은 형상의 거대한 '환수'가 나타나더니, 그대로 힘싸움을 하고 있던 사무라이 한 명을 그대로 통째로 집어삼켰다.
옆에서 동료가 흔적도 없이 야수에게 먹히는 모습을 본 사무라이가 경악한 그때, 레이븐은 무릎차기로 남은 사무라이의 복부를 걷어차고, 떨어진 일본도를 왼팔로 주워 상대의 목을 잘라 날려버렸다.
남은 행동 수는 딱 하나.
레이븐은 나머지 한 명 남은 사무라이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며 탄환이 바닥난 M4의 탄창을 옆으로 던져버리곤, 새로운 탄창을 밀어넣었다.
철컥. 찰칵. 철커덕.
"여... 역시 소환사 상대로는 무리였나...!"
"날 잡고 싶으면 마도 아머라도 끌고 오지 그랬어?"
사이버네틱 사무라이에게 시니컬하게 대꾸한 레이븐은 M4를 한 손으로 쥐고 겨눴다.
"내가 선택지를 줄게. 내 손에 저 꼴 나볼래? 아니면 그냥 순순히 네 고용주를 내게 불고 네오 쿄토에서 도망칠래?"
나머지 하나 남은 행동으로 리바이어던의 뎁스 바이트를 쓰면 어차피 한 번에 끝장낼 수 있다.
그게 빗나가더라도, 레이븐이 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막 탄창을 교환한 M4에는 지금 30발의 탄환이 장전되어있으니 말이다.
"의뢰주의 이름은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곤 녀석은 작은 단검 하나를 꺼내더니, 그 선명한 칼날을 자신 쪽으로 향하게 잡고서는 자신의 배를 가르기 위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ACS 가동."
[조준 보조 시스템 활성화.]
레이븐의 오른쪽 눈에 설치된 사이버네틱 디바이스, 특수 방독면. 그리고 왼손에 찬 소환기가 작동한 그 순간, 일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오 쿄토의 무사들에게는 한 가지 문화가 있다. 적의 손에 넘어가 처형당할 바에는, 명예롭게 자살을 택하고 만다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쓸데없는, '할복'이라는 이름의 전통이다.
녀석의 칼날이 자신의 배에 닿기 직전에, 레이븐의 M4의 총구에서 튀어나온 탄환이 정확히 녀석의 와키자시에 맞아 떨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 총으로 설마 작은 나이프 정도의 사이즈에 불과한 단도를 쏴 맞출 줄은 꿈에도 몰랐던 녀석은 순간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무슨."
[리바이어던 : 뎁스 바이트.]
콰직!
그 순간 리바이어던으로 마법을 발동. 바로 바다의 심연 아래에서 서식하는 드래곤의 턱이 사무라이의 두 팔을 물어뜯어 집어삼켰다. 당연하지만, 일부러 '빗맞춘' 거다.
"끄. 오오오... 아아악!!!"
"아이 씨 시끄러."
M4의 개머리판으로 대가리를 한 번 후려쳐주자 고통으로 인한 쇼크와 머리를 두들겨 맞은 충격으로 녀석은 완전히 뻗어버렸다.
소환기를 통해 주변에 영체 반응이 하나도 잡히지 않는다는 걸 재차 확인한 단테는 방독면을 벗어 허리춤에 고정해놓고, '사이버네틱 디바이스'와 '소환기'의 부작용으로 찾아온 현기증 때문에 잠시 중심을 잃고 자리에 쓰러졌다.
[주의 : 당신의 체내 마소 수치가 정상 수치에서 124% 벗어났습니다.]
"닥쳐... 콜록콜록."
금방 쉬면 낫는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소환기에 마탄을 장전해 행동 수를 보충하고 쓰러진 사무라이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일주일 동안 체류할 예정이었던 료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보통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반 정도 죽여놓고, 땅에서 질질 끌고 다니면 신고하겠다고 외치는 사람이나, 아니면 말리려 드는 사람 한 명 정도는 있을 법했지만.
자신이 죽여놓은 사무라이들의 피로 잔뜩 젖은 단테의 사나운 인상과, 그의 목에 찰랑거리는 까마귀의 군번줄을 본 시민들 중, 그 누구도 그럴 엄두를 내지 못 했다.
"뭐 구경 났어? 꺼져."
순전히 피해자 입장이었던 단테가 입 안에서 섞여 나오는 피 섞인 가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뱉고, 여관 안에 들어갔다.
"히끅."
"소란 피워서 미안하게 됐수다."
단테는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여관 주인의 카운터 앞에 올려놓고 그대로 자신이 묶고 있었던 방 안에 들어가, 생포한 사무라이를 꽉 묶어놓고 욕조에 천천히 물을 받기 시작했다.
두 팔은 자기가 직접 리바이어던으로 물어뜯어놨으니, 묶을 필요 없고. 두 다리만 묶어놓은 채로 그는 목욕물이 어느 정도 채워지자, 욕조 안에 사무라이의 중갑옷을 벗기지도 않고 그대로 그 안에 던져놓았다.
"우웩! 콜록! 콜록콜록콜록!!!"
"차가운 냉수 맛을 보니까 좀 정신이 들어?"
단테는 손가락을 뚝뚝 꺾으며 욕조 안에서 눈을 뜬 사무라이를 노려보았다.
"흐... 흐기익... 여. 여긴 어디야?"
"내가 묵는 여관이야 멍청아."
롱 코트 안 쪽에서 전쟁 전 유적에서 찾은 고대 궐련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 그는 주섬주섬 주머니 안에서 성냥과 성냥갑을 꺼내 재주 좋게 한 손으로 성냥 끝에 불을 붙였다.
"야."
"..."
"대답 안 하냐?"
그대로 단테는 대답이 없는 사무라이의 상반신을 발로 밟아 차가운 냉수로 가득한 욕조 안에 처박았다.
물 안에서 숨이 막혀 몸부림치는 사무라이가 발버둥치고, 기절하기 딱 직전에 그는 천천히 다리를 올려 녀석이 숨을 쉴 시간을 살짝 주었다.
"푸하아앗!! 크헥! 후아악!! 허억!!!"
"야."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두 번째로 단테가 말하자, '대답을 하지 않으면 지독한 물고문이 자신 덮칠 것이라.'라는 사실을 학습한 사무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의. 의뢰주에 대한 건 죽어도 말 못 해!"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닌데?"
단테는 욕조에 앉아 타들어가기 시작한 궐련을 톡톡 털며 이어 말했다.
"나는 멍청해서 괜스레 머리 굴리기 싫어. 지금 심문하면서 이런저런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면서, 범인이 있는 곳까지 쫓아가는 그런 드라마 같은 건 내가 잘 못 하거든?
난 단서를 원하지 않아. 난 진실을 원하지. 단도직입적인 진실. 그리고 이번 심문에서 내가 찾아내고 싶은 진실은 네가 대체 누구에게 고용되었는가, 이고. 그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이 안 쓰여."
단테는 다 피운 담배를 사무라이의 이마에 비벼 끄며 웃었다.
"배드 캅 굿 캅 짓거리하는 것도 머리가 좋아야 하지. 다시 한번 물을게. 누구한테 고용됐어? 아 그리고, 대답 안 할 때마다 네가 수조 안에 처박히는 시간은 30초씩 늘어날 거야."
물론, 그는 뒤에 덧붙였다.
"내가 멍청해서 숫자를 못 세거든? 내 30초가 뭐. 1분이 될 수도 있고? 3분이 될 수도 있고? 뭐 3일이 될 수도 있고. 그건 좀 유동적이야. 그러니까 신중하게 잘 대답해라. 암살 의뢰 준 새끼 이름. 퍼스트, 미들, 라스트. 석 자를 내게 대기만 하면 돼."
"내가 네게 그걸 말하는 순간 난 죽은 목숨이야!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고! 네게 말해봤자, 내게 뭔 이득이 있겠어. 엉?"
"어떻게 죽느냐가 다르겠지."
단테는 욕조 위에 발을 살포시 올려놓고 말했다.
"네오 쿄토를 벗어나 유랑하다가 운 나쁘게 막부 녀석들에게 들킨 나머지, 단 칼에 사무라이들에게 둘러싸여서 목이 잘려 죽을지. 아니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여관 욕조 안에서 익사체로 발견되든지."
단테의 말은 자신에게 의뢰주의 이름을 불면 적어도 도망칠 기회 정도는 주어진다는 속뜻이 숨겨져 있었다. 대신 반대로, 끝까지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 경우에는...
"알았어. 알았어 말하면 되잖아. 말하면...! 그러니까 물고문만은 제발..."
"봐봐. 말 존나 잘 들을 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