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웰컴 투 네오 쿄토. (3)
"고맙습니다."
"그런 걸 갖고 뭘."
근처 국수 노점상 앞에서 뒤늦은 끼니를 해결하며 에리스를 위로해준 레이븐은 내심 호기심이 들어 그녀에게 슬쩍 물었다.
"그런데 등 뒤에 있는 샷건은 뭐. 장식이야? 그런 놈들이 오면 바로 꺼내서 쏠 준비를 했어야지."
"설마 이렇게까지 도시의 치안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죠."
젓가락질을 할 줄 몰랐던 에리스는 포크로 국수를 거의 떠먹다시피 하며 레이븐에게 대답했다.
200년 전, 그녀가 살던 시대에는 경비를 담당하는 로봇이나, 경찰이라는 치안 유지 기관이 있었고, 거기에 사건이 터졌을 때 신속하게 그들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괜찮겠어요? 보니까. 나름 이 도시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공무원이었던 거 같은데. 그런 식으로 막 총 쏘고 다녀도 괜찮은 걸까요?"
"보통 저런 녀석들은 권력을 가졌어도 별 볼일 없는 새끼일 확률이 높으니까. 별 상관없어. 그 증거로 아직 그 누구도 날 잡으려고 하지 않잖아? 막부의 중요한 인간을 죽였다면 모를까. 별 볼일 없는 새끼를 죽였으니까, 그냥 꺄악! 살인이다! 하고 넘어간 거겠지."
뒤에 그 녀석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라고 덧붙이며 그는 태평하게 다리를 흔들며 에리스에게 물었다.
"너. 용사의 요정이라고 했었지?"
"네. 맞아요."
"방금 의뢰를 새로 받았었는데. 용사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그는 손수건을 꺼내 방금 쏜 권총을 세심하게 이리저리 닦으며 200년 전, 실제 용사의 보좌역으로 뛰었던 '요정'인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의뢰를 받으셨길래. 용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가요?"
"용사가 사용했던 병기를 회수해오라는 의뢰였어. '성검'이었나. 마계의 왕을 처단할 때 사용하는 무기라고 하더만. 일단은 성검을 회수해오겠다고 말은 했는데, 그 성검이 뭐하는 물건인지. 네게 들을 필요가 있을 거 같아서."
"성검이요?"
에리스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무리일 걸요."
"뭐야. 내 능력을 의심하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에요."
에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국수의 국물을 후후 불어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뜨거움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입 안에 부채질을 하던 그녀는 중요한 이야기인 만큼, 잠깐 뜸을 들였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단테씨는 용사가 어떤 존재인지 아시죠?"
"마왕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전쟁 병기. 브리타니아 쪽 여관에서 머물렀을 때, 잠깐 노래를 통해서 들은 적이 있었지."
지극히 '악마' 관점에서의 설명을 들은 에리스는 단테가 그렇게 여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곤 말을 바꿔 설명했다.
"마왕을 잡기 위해서 마지-테크를 비롯한 여러 인류의 마법 연구소가 개발한 슈퍼 솔져라고 할 수 있어요.
먼저 첫 번째 문제는... 용사가 사용하는 무기 또한 마찬가지로, 마지-테크에서 제작했는데요. 기본적으로 용사는 악마를 멸하기 위해서 육성돼요. 그 상대는 저절로 '악마'로 한정되죠.
즉 마지-테크는 용사의 성검을 비롯한 장비가 악마의 손에 들어가 노획되어 사용되지 않게끔 보안 장치를 걸어놨어요. 단테씨는... 악마의 피를 어느 정도 물려받았다고 했죠? 그러니까 단테씨가 무리하게 성검을 회수하려고 하면, 성검 자체의 보안 마법이 기동할 거예요."
"첫 번째가 있다면, 두 번째도 있다는 거구만."
단테가 묻자, 에리스는 검지에 이어 중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성검에는 자체적으로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어요. 자신에 걸맞는 주인을 자기 자신이 선택할 수 있게끔요. 이는 다른 사람이 성검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두 번째 보안 장치의 역할을 하고 있고, 때로는 용사의 전투를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해요."
즉,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악마가 건드리지 못 하게끔 하는 특수한 장치가 붙어있고, 거기에 더 나아가 자체적인 인공지능이 있어 설령 첫 번째 보안을 뚫어도 두 번째 보안 때문에 회수해가지 못할 공산이 크다는 건가.
"네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어?"
"성검을 얻으시면. 단테씨는 어쩔 생각이시죠?"
"의뢰인에게 가져다줘야지."
에리스는 즉답한 단테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성검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숨겨져 있으며, 그 힘을 잘만 이용한다면 황무지가 되어버린 이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힘이 올바르지 못 한 곳에 사용된다면, 이 황무지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최악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용사의 요정으로 있는 자신은... 레이븐을 도와 성검을 회수하는 걸 도와주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을 챙겨준 은혜를 생각한다면, 이 자리에서 레이븐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는 것 또한 눈치가 보였다.
무법자 겸 배달부로서 활동하며, 사람의 목숨을 대체 뭘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총을 빵빵 쏴대는 트리거 해피의 미친 놈이지만.
그래도 그 사나운 들개와도 같은 야성을 아직까지는 에리스에겐 드러낸 적은 없고, 그가 총을 빼들 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리스는 험한 황무지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 그리고 그 옆에서 마찬가지로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국수를 먹는 단테를 번갈아보다가, 끝내 결정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용사의 요정이에요. 제 도움을 받은 단테씨가 성검을 뽑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제게는 용사의 병기인 성검이 악한 의도를 품은 이의 손에 넘어가, 오용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협력하지 않겠단 거야?"
의외로 단테는 자신의 도움을 받아놓고서 지금 와서 도와줄 수는 없을 거 같다며,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에리스에게 화를 내지도, 별도로 따지지도 않았다.
그는 쓸쓸하게 텅 빈 국수 그릇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에리스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검을 뽑는 것엔 협력할게요. 의뢰인에게 건네는 것에도 딱히... 방해는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제게는 그 성검이 나쁜 곳에 쓰이지 않도록, 감시하고 감독할 의무가 있어요. 그게 올바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수 있게끔요. 이번 의뢰가 끝나면 아마. 헤어져야 할 거 같아요."
에리스가 말하자, 단테는 잠시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성검을 뽑아도, 의뢰인에게 건네줘도 방해는 하지 않겠다.
이번 의뢰를 통해 받게 되는 보수, 12만엔에 대해서도 딱히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순수하게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서 무상으로 일해주겠단 소리일 것이다.
어떻게 여행길에서 만난 인연, 거기다가 마법 사용자를 일찍 잃게 되는 건 다소 손해가 있어 보이지만, 적어도 그 정도면 그녀가 먹은 통조림 값은 충분히 하게 된 셈이다.
"좋아 그럼."
단테는 손에서 검은 반장갑을 벗고 에리스의 손을 맞잡았다.
"성검을 뽑는 데 협력해줘. 대신 그동안의 생활이나 경호는 내가 책임져줄게. 이 정도면 나름 합당하지? 잘 부탁해."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레이븐의 손을 맞잡아 위아래로 흔들며 에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착해빠진 여자가, 과연 이 마소로 물든 혹독한 황무지 안에서 제대로 생활이나 할 수 있을까가 의문이지만...
거기까지는 단테의 알 바가 아니었다.
"출발은 일주일 뒤에 할 거야. 그때 동안은 잠시 여기서 보급을 할 거고. 너도 그때 동안 마음 독하게 먹어. 의뢰인의 말에 따르면, 그곳 근처에는 망령이나 좀비들이 튀어나온다고 하니까."
"네."
* * *
"맥킨지님."
네오 쿄토의 호텔에서 묵고 있던 맥킨지의 방에 그의 수하로 보이는 사이버네틱 의수와 의족을 단 사이보그의 무사들이 몇 명 찾아오더니, 무릎을 꿇었다.
"아. 그래. 왔나?"
악마를 몸에 품은 검사, 데모닉 사무라이. 이쪽 현지 언어로는 '오니무샤'라고 불리는 그들은 자신의 고용인인 맥킨지에게 무릎을 꿇어 충성을 내비쳤다.
"네오 쿄토 타워까지 내게 보고하러 올라온 걸 보면 뭔가 알아낸 게 있는 모양이군."
"하이! 쿄토의 마켓 플레이스에서 총기와 관련된 소란이 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막부의 무사를 자칭하는 길거리 낭인을 쏴 죽였다고 하더군요."
"레이븐이 뭐 그렇지. 녀석들은 무법자야. 그런 당연한 일을 보고하러 왔나?"
"중요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카라스는 현재, 한 여성이랑 행동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인적사항은 알 수 없지만, 레이븐즈 로지스틱스에 연락하여 이전까지의 카라스의 데이터를 참고했을 때, 그에게 동행인에 대한 정보는 같은 동료 카라스인 '베아트리체'를 제외하면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즉, 이 알 수 없는 여자의 합류 시점은 카라스의 마지막 의뢰인 유적 조사 이후의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연유에서 그 여자와 합류해 행동하고 있는지는 알 수는 없었습니다만."
"그렇군."
맥킨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지-테크 지하의 연구소. 녀석이 내게 일방적으로 내다 판 데스 스토커는 그냥 그 주변을 지키는 경비였고. 진짜 지키고 있었던 건... 용사의 '페어리'였던 모양이로군.
200년 전에 절멸한 줄 알고 있었는데, 설마 아직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을 줄이야. 레이븐 이 개자식. 감히 홀리 아래에서 직속으로 일하는 내 사기를 쳐?"
"어떡할까요?"
사무라이들이 묻자, 그는 잠시 고민했다. 현재 그가 네오 쿄토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경호 역으로 고용한 오니무샤는 총 6명. 6명 전부 사이버네틱 기술을 통해 강화된 강화인간이며, 영체를 체내에 이식한 매직 유저들이다.
제아무리 은 등급의 레이븐이라고 하더라도, 숫자 앞에는 장사가 없을 거다. 거기다가 현재 단테는 지하 유적에서 주워온 요정을 지켜가면서 싸워야 하는 입장이니, 더더욱 전투에 있어선 불리할 게 틀림없다."
"카라스를 암살해라. 대신, 고용주가 나라는 걸 들키면 안 돼. 지금 그 녀석에겐 성검을 회수하라는 의뢰를 건네준 참이니 말이야. 그리고 그 녀석이 데리고 있는 그 여자를 벗겨서 내 앞에 알몸으로 데려와.
능력 좋은 레이븐을 드디어 구했다고 생각했는데, 성검을 회수해올 레이븐을 따로 구해야겠구만... 나 원 참. 일이 귀찮게 되었어."
"하이. 알겠습니다."
오니무샤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쿄토 타워의 아래로 사라졌다.
어둠이 내린 밤, 쿄토 타워의 옥상에서 빛나는 네온사인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그는 자신이 고작해야 방랑자인 레이븐에게 통수를 맞았다는 걸 곱씹으며 분해했다.
"두고 보자고. 단순한 딸배가 권력 앞에서 별 수 있을 거 같나?"
* * *
"중요한 건 호흡이야."
단테는 마켓 플레이스의 총기상에서 구매한 싸구려 AK를 들고 늘어놓은 유리 콜라병 앞에 선 에리스의 자세를 고쳐주며 말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바싹 붙여. 그래야 반동의 영향을 덜 받아. 방아쇠를 당길 때 최대한 눈을 감지 않게끔 노력해봐. 눈을 감으면 조준선을 다시 맞춰야 하니까."
"네."
"총구가 자꾸 아래로 떨어지잖아. 팔에 힘 꽉 주고. 일단은 처음이니까, 한 발씩 저기 놓인 유리병을 맞춰봐. 서두르지 말고, 조준선에 목표가 들어왔다 싶으면 숨을 참아."
타앙!!
자신 있게 쏜 탄환은 아쉽게도 유리병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 여파로 세워둔 유리병이 쓰러지긴 했지만 명중했다고는 볼 수가 없었다.
"잘 했어. 전보단 낫네. 자 바로 옆에 다음 표적을 노려보자."
타앙! 타앙!
두 번째 탄환 역시 빗나갔지만, 세 번째 탄환은 표적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해냈어요!"
"잘했어! 나쁘지 않구먼. 초심자치고는."
"한 번 단테씨 실력 좀 봐도 될까요?"
칭찬에 약한 여자인지, 헤실헤실 웃으며 에리스가 묻자 단테는 근처에 떨어진 유리병을 세 개 집어 다시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럴까?"
그는 ACS를 쓰지 않은 상태로 홀스터에서 M1911 권총을 오른손도 아니라, 왼손으로 꺼내 들어 빠르게 속사로 세 발을 연달아 쏘았다.
타앙! 타앙! 타앙!
순식간에 지나간 단테의 사격.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45탄은 세 발 전부 유리병의 한가운데를 지나가 그것들을 산산조각 내었다.
(민첩 판정 성공.)
"... 대단해..."
소총도 아니고 권총으로. 주로 쓰는 손인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을 이용한 사격임에도 불구하고 타겟을 전부 명중시킨 단테의 놀라움 사격 솜씨를 직관한 에리스는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한 발 한 발에 목숨을 걸고 쏴야지. 내 탄이 빗나가는 순간, 상대의 탄이 내 미간에 꽂힐 지 어떻게 알아. 첫 발로 미간을 내가 먼저 뚫어버리면? 그런 일은 없지."
그는 털털하게 그렇게 말하곤 권총을 재장전했다. 그리고 그때, 단테는 소환기를 통해 심상치 않은 무리가 자신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걸 사전에 빠르게 눈치챘다.
그리고 그가 그 '무리'가 적의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아챈 바로 그 순간.
그의 앞에 호를 그리며 작은 구체 모양의 쇳덩이가 그들의 앞에 굴러들어왔다.
"에리스! 숙여!"
"네... 네엣?!"
파아앙! 콰아아아아앙!!!
찰나의 순간 단테는 에리스를 끌어안고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순식간에 시뻘건 폭발과 함께 주변에 날카로운 세열의 조각들이 흩뿌려진 그 순간, 단테가 소환해두고 있던 서번트 '영령형 스카아크'가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이런 씨발 예의 밥 말아먹은 원숭이 사촌 쪽바리 새끼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단테는 에리스를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네... 네에. 괜찮은... 거 같아요."
"죽으면 안 돼. 성검 뽑는 데 너 없으면 힘들어져."
"... 알고 있거든요.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겠어요?"
"빨리 피해.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등 뒤에 차고 있던 M4를 꺼내들고 전투 준비를 하며 그는 새로운 서번트, 잭 오 랜턴을 소환해내며 자신을 건드린 귀신의 사이보그 무사들을 노려보았다.
"한 판 해보자 이거지?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씹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