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웰컴 투 네오 쿄토. (1)
[오늘도 어김없이 라디오를 들어주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믿을 놈 하나 없는 황무지에서 오늘도 당신의 심금을 울려주기 위한 명곡을 전해주는 당신의 이웃, 레온! 인사드립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레드 그레이브 동부에서 마소에 찌든 바람이 불어와서 고생 많으셨죠?
다행히 오늘은 바람 한 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예상됩니다. 여러분, 다들 따스한 햇볕, 푸르른 하늘, 즐기시고 계신가요?
그런 기분에 들뜬 당신을 위해 전해드립니다. 오늘의 아침 곡은 이걸로 시작해보죠.
Electric Light Orchestra의 Mr.Blue sky!]
레이븐은 트럭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가끔 운전대에서 손을 떼놓고 액셀만 밟아놓은 채 운전하는 등, 하루 이틀 운전대를 잡아본 게 아닌 티가 여기저기에서 묻어 나왔다.
"Sun is shinin' in the sky!
(태양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어.)
There ain't a cloud in sight!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좋은 날씨야.)
It stopped rainin' everybody's in the play.
(비는 그치고 모두가 연극 속의 주인공이 되었지.)"
"엄."
여행길에 유난히 들떠보이는 레이븐에게, 반쯤 깨진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에리스는 슬쩍 그의 어깨를 팔꿈치로 찌르며 물었다.
"그래서 저희 다음 목적지는 어디죠?"
"네오 쿄토."
아무렇지도 않게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터무니없는 지명을 레이븐이 말하자, 에리스는 이번에도 농담인 줄 알고 웃는 얼굴로 재차 물었다.
"재미있는 농담이었어요. 그래서 어디로 간다고요?"
"네오 쿄토로 간다니까?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야? 라디오 볼륨 좀 줄여줄까?"
"농담이 아니었어요?"
"내가 지금 와서 왜 농담을 하냐."
"그럼 알려주세요. 대충 그 네오 쿄토라는 곳이 어디인지요."
흐음, 레이븐은 운전대를 왼손으로 잡고 구불구불 휘어진, 반쯤 반파된 고속도로를 달리며 덧붙였다.
"솔직히 뭔 동네라고 해야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특산물로 유명한 게 몇 개 있기는 해. 데모닉 사무라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데. 데모닉 사무라이?"
"몸에 사이버네틱 임플란트랑 전자 마약을 들이박아서, 신체를 강화하고, 진한 마소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 몇몇 강화인간들이 몸에다가 강제로 잡아들인 야생 영체를 신체에 이식하고, 약간의 사상 개조를 거치면 데모닉 사무라이가 되지.
보통은 잡기 쉬운 악령들을 집어넣기 때문에, 데모닉 사무라이라고 부르는데... 이식한 영체의 스펙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인간병기 그 자체야. 나도 상대하기 버거워. 걔네들은.
레이븐은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쿡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허리춤에 기다랗고 휘어진 검을 차고 다니고. 전신에 기계장치가 덕지덕지 달린 중갑옷을 입고 다니는데, 엄청 우스꽝스럽게 생겼어.
아무튼 그런 사무라이들이 모여서 세운 곳인데. 이 데모닉 사무라이라는 게 보기에는 마냥 우스꽝스럽게 생기긴 했지만, 엄청 강해. 현재 황무지를 양분하는 어엿한 하나의 세력이니까 얕볼 수는 없어."
"사이버네틱 임플란트... 전자 마약... 강제로 영체를 몸에 이식했다니. 그런 걸 하면 보통 죽어요."
에리스가 레이븐의 말을 믿지 못 하겠다는 듯이 어깨를 움츠리며 말하자, 레이븐은 그걸 네가 할 소리라면서 되물었다.
"몸 안에 대천사님을 품은 요정이 말할 말은 아니지 않아? 그거. 그리고 사이버네틱 임플란트 말인데. 나도 몇 개 했어."
레이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살던 시대, 약 200년 전에 사이버네틱 임플란트는 분명 혁명적인 기술이었다. 신경이 마비되어 걷지 못 하는 이를 걷게 해 준다든가, 뇌에 임플란트 칩을 박아 넣어서 두뇌 회전 속도를 늘린다든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이버네틱 시술은 금지되었는데, 이는 임플란트가 가진 중장기적인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디다가 했는데요?"
"눈 쪽에 좀 했지. 총알이 안 빗나가게. 물론, 난 임플란트가 맛 가도 표적물을 놓치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말이야. 저거 보여?"
고속도로에서 국도 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에리스의 시야 구석에 큼직한 타워 하나가 나타났다.
"저게 네오 쿄토 타워야. 일종의 랜드마크인데. 시간 있으면 갔다 와 봐. 재미있는 게 꽤 많아. 도박장도 있고. 창녀촌도 있고. 뭐 없는 게 없지."
하기야, 몸에 악마를 이식한 강화 사이보그 사무라이가 있는 마당에 없는 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에리스는 속으로 비꼬면서 세상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음을 깨달았다.
방금까지 있었던 마지-테크 연구소 근처는 핵전쟁의 여파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만, 그래도 쿄토 주변은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깨끗하고,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쿄토, 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왜 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극동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던 모양이야. 헤어 스타일이나, 의복 등도 역사책에서 보았던 중대~근대의 극동 쪽 복장이 많이 보였다.
거기에 개중에는, 레이븐이 언급했던 '데모닉 사무라이'들도 몇몇 보였다. 어디서부터가 기계고, 어디서부터가 인간인 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신체를 개조한 인간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는, 거대한 '대태도'.
자신도 모르게 겁에 질려 침을 꿀꺽 삼키고 있을 무렵, 도시로 진입하려는 엘리자베스를 경비가 가로막았다.
"신원을 밝히십시오."
다른 사무라이들처럼 고풍스러운 갑옷 겸 방탄복을 걸치고 있던 그가 레이븐에게 묻자, 그는 창문 바깥으로 자신이 목에 걸고 있던 군번줄과 주머니에 꾸깃꾸깃 접힌 송장을 벗어 보여주었다.
"레이븐 로지스틱스에서 일하는 레이븐이올시다. 여기 신분증이랑 송장."
레이븐 로지스틱스에서 왔다고 그가 밝히자마자, 경비병은 코웃음을 치며 트럭의 운전석에 앉은 그를 아니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까마귀 납셨구먼. 이봐 당신. 부탁이니까, 여기서 괜한 문제를 만들지는 말라고. 우린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아주 피곤해. 당신들이 저지르고 다니는 사건사고들을 수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인력이 들어가는지 알아?"
"내 알 바야?"
레이븐이 썩은 표정으로 대꾸하자, 그의 허리춤에 빛나는 권총을 보고 경계를 서고 있던 경비는 '이 새끼라면, 진짜 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뒤로 물러났다.
"좋게좋게 넘어가자고. 난 그냥 배달하러 온 거야. 꼬투리를 잡을 거면 내가 누구 쏴 죽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잖아."
"막부가 널 주시할 거다. 카라스."
경비는 레이븐을 통과시켜주긴 했지만, 마지막에 이상한 말을 덧붙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 마지막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카라스는 무슨 말이에요? 이쪽 방언 같은 건가?"
"카라스?"
그녀의 물음에 레이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단칼에 대답했다.
"흉조라는 뜻이야."
* * *
트럭에서 내려, 짐칸에서 의뢰인에게 가져다줄 경비로봇 데스 스토커의 잔해물이 든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고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리스는 지금까지 레이븐이 트럭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건 자주 봤어도, 트럭의 짐칸 내부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아무래도 여기저기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용병답게 거의 트럭 내부에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온갖 설비들이 간소하게나마 준비되어 있었다.
야영에 쓰는 도구들부터 시작해서, 그의 무기 콜렉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비싸게 팔 수 있을 것만 같은 각종 전쟁 전 고철들. 그런 것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중에서 레이븐은 옛 가정집에 한 두 개씩 정도는 비치해두고는 하는 더블 배럴 샷건을 하나 꺼내선, 그대로 에리스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집어."
"에? 이거 뭐에요?"
"생각해보니까. 총을 처음 잡는 초심자에게 권총으로 뭔가를 맞추라는 건 조금 힘든 부탁일 수도 있겠더라고. 그래서 그런 당신에겐 맞추기 쉬운 샷건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아니. 도시 안에서 그렇게 샷건 같은 걸 들고 다녀도 되는 거예요?"
에리스가 별 생각없이 그녀가 살던 '전쟁 전 상식'을 갖고 얘기하자, 레이븐은 코웃음을 치며 주머니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던져주며 말했다.
"그럼 네 주머니는 조상님이 지켜주냐? 어딜 가든, 네 몸 하나는 네 힘으로 지켜야지. 말만 사무라이지, 거의 하는 짓거리 보면 범죄조직이랑 다를 바 없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샷건 하나 정도는 들고 있는 편이 좋아."
대신 에리스에게 이전에 건네주었던 권총을 다시 가져간 레이븐은 턱 끝으로 네오 쿄토를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의뢰인을 만나러 갈 거니까. 알아서 시간 보내고 있어. 주머니 안에 몇 엔 정도 넣어놨거든? 그 정도면 간단한 밥이랑 술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을 거야."
"네... 네네... 네엣? 저 혼자서 여기 있으란 거예요?"
"의뢰인에게 그럼 널 뭐라고 소개해. '마지-테크 유적에서 꽁꽁 얼려져 있던 여자를 발견했어요. 그래서 이건 거기서 얻어온 데스 스토커의 잔해물이랍니다?'라고 의뢰인에게 말하는 순간, 의뢰인은 데스 스토커보다 널 더 관심 있어할 걸?"
"그냥 직장 동료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거 안 됐네. 레이븐은 동료같은 거 안 만들거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데스 스토커 가방을 챙긴 레이븐은 말은 그렇게 했어도 200년 전 사람인 에리스가 걱정이 되었는지, 작은 발신기 하나를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뭔 일 있으면 그걸로 연락해. 내 소환기랑 연동되어있으니까. 나중에 봐. 챠오."
왼팔에 찬 거대 PDA를 검지로 톡톡, 가리키며 레이븐은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의 시동을 끄고, 자동차 키를 뽑곤 그는 손을 흔들며 인사하곤 네온사인으로 반짝이는 쿄토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에리스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큼직한 더블 배럴 샷건 한 정이랑, 그 샷건 안에 집어넣는 12게이지 탄 몇 개. 그리고 그가 쥐어주고 떠난 돈 주머니뿐이었다.
현금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었던 그녀는 레이븐이 넘겨준 돈자루를 슬쩍 열어보면 그 안에 든 주화를 요리 살피고, 저리 살폈다. YEN, 엔이라고 적혀있는 거 같은데, 가치가 얼마 정도인 지 알 수가 있어야지...
"에휴. 내가 하나하나 알아가는 수밖에 없나."
에리스는 한숨을 쉬면서 역시 레이븐의 뒤를 따라 찬란한 극동풍의 도시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이 미친 세계에 어떠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지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 * *
"하여튼 간 쿄토 새끼들 문자들은 읽기가 힘들어갖고. 어디 보자..."
레이븐은 툴툴거리면서도 용케 극동의 문자를 힘겹게 읽어 내려가면서 '이자카야 모리'라는 이름의 선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단테가 소속된 회사, 레이븐 로지스틱스가 다른 배달 업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소속된 배달부들이 전원 '마법 사용자'거나, '소환사'라는 점에 있다.
기본적으로 싸움 꽤 하는 인간들만 소속되었기 때문에, 보통 레이븐 로지스틱스에 일을 맡기는 의뢰인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하나는 단순히 엄중한 보안 속에서 배달을 맡길 일이 있을 때다.
배달하는 물건이 상당히 가치가 높은 물건이거나, 취급 주의가 붙을 정도의 위험한 물건이라 평범한 배달부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보안과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배달부가 필요할 때, 사람들은 레이븐을 찾는다.
두 번째로 레이븐 로지스틱스는 배달이 주로 세일즈 포인트이긴 하지만, 경호 혹은 암살 업무, 혹은 용병 일을 맡고는 한다.
이번 일은 굳이 따지면, 배달과 용병이 합쳐진 일이라고 해야할까.
경비 로봇이 드글거리는 지하 유적 안에 들어가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유물을 파헤치고,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의뢰인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특히나 이번 의뢰인은 직접 물건을 다이렉트하게 받고 싶다고 요청을 했고, 그 만남의 주선 장소가 바로 이 원목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극동풍의 선술집이었다.
"어서오십쇼. 음."
레이븐 로지스틱스의 기본 유니폼이라고 할 수 있는 '방탄 성능을 지닌 검은 가죽 코트', 이름과 신원정보가 적힌 '도그 태그', 주렁주렁 허리춤의 홀스터와 등짝에 찬 흉악한 총기들.
한눈에 그가 레이븐이라는 걸 알아챈 가게 주인은 껄끄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 총 좀 쏜다는 인간들이 받는 눈빛이야 언제나 익숙했기 때문에 그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엄지손가락으로 튕겨 주인장에게 던져주곤 짧게 주문했다.
"자, 난 쿄토 말은 잘 몰라. 그냥 차갑고 시원한 걸로 줘. 공용어는 할 수 있지?"
"네. 네에.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