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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이후 용사 파티-2화 (3/49)

제 2화

용사의 요정은 200년의 낮잠에서 깨어난다. (2)

픽시의 도움을 받아 엘리베이터 통로를 쭉 타고 내려온 레이븐은 발로 승강기의 문을 걷어차 강제로 열어버리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환사 반응도, 영체 반응도 없다고 했었나. 레이븐은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홀스터 안에 구겨 넣고, 무거운 M4A1 역시 등 뒤에 둘러멘 다음 손전등을 꺼내 주변을 비췄다.

지하 유적을 탐험하는 거야, 한 두번 해본 일은 아니긴 하지만 언제나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진, 죽은 인간들의 유골을 발로 걷어차며 강철의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상 전력부터 일단 활성화 시켜야겠어."

전력이 끊어져 있으니 손전등의 작은 불빛으로는 지나치게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거기에 꼴에 연구소라고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문을 '해치' 식으로 해놓고, 복잡한 고대 기계 장치로 문을 걸어 잠가놓은 탓에 전력 없이는 출입이 아예 불가능한 구역도 있을 거다.

지하에 들어온 레이븐은 곧장 근처 백의를 걸치고 있는 해골에 다가가 녀석의 목에 걸린 ID 카드를 낚아챘다.

비록 오래 되긴 했지만, 고대 마법 문명 때 물건들은 기본적으로 현대 문명 기술보다 몇 배는 뛰어나기 때문에 다소 세월에 쓸려나갔다고 해도 작동 자체는 원활하게 될 것이다.

비상 전력 발전소가 있는 곳을 소환기의 네비게이터로 찾아낸 레이븐은 옆에 붙어있는 단말 장치 같은 건 무시하고 곧장 총을 꺼내 문고리에 조준했다.

전력이 전부 다운되어 보안 시스템이 먹통이 될 것을 고려해서 그런 건지, 이 문만 해치 형식으로 되어있지 않고, 평범하게 문고리가 달린 경첩식 문이었다.

타앙! 타타타당! 타앙!

문을 고정해놓고 있는 경첩에 총알을 몇 발 박아주자, 지지대를 잃은 문짝은 레이븐의 거친 발차기 앞에 뒤로 밀려나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당신은 총으로 도어 브리칭을 시도해, 성공하였습니다.]

(힘 판정 성공.)

"당연하지."

문고리가 파괴된 문을 발로 걷어차 가볍게 열어젖힌 레이븐은 안에 들어가 비상 전력을 담당하는 발전소의 단말을 소환기에 연동시켰다.

[비상 전력, 가동합니다. ※ 주의. 전력이 돌아오면서 보안 시스템이 재활성화될 시, 해당 건물의 자위 시스템이 재가동할 수 있습니다.]

"자위 시스템?"

철컹. 쿠웅! 위이이잉...

불빛을 잃은 연구실에 다시금 불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핵폭탄까지 맞은 데다, 200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전구가 가동한다니.

내심 감탄하며 레이븐이 발전소 바깥으로 나오자, 천장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그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위험. '악마 반응 감지.' 위험. '악마 반응 감지.'"

"뭐 이런..."

대체 어디 숨어있었는지, 무한궤도가 달린 작은 기계들이 순식간에 레이븐 주위를 에워싸더니, 과거 고대 문명 때 사용하던 화기들을 전개해 그를 조준했다.

"악마 반응이라니 너무하네. 난 혼혈인데."

"침입자 배제. 사격 개시."

총알이 빗발치기 직전, 레이븐은 바로 소환기를 가동. 소환해두고 있던 픽시에게 명령을 내렸다.

"픽시!"

"네엣!"

[정령형 픽시 : 요정의 가루.]

픽시가 순간 등 뒤에 달린 날개를 활짝 펼치자, 초록빛의 가루가 주변에 꽃가루처럼 흩뿌려졌다.

그러자 요정의 가루에 닿은 기계들은 일제히 오작동을 일으키며 작동을 정지. 레이븐에게는 '투명화'가 적용되어 그 자리에서 광학 미채 입자라도 뿌린 것처럼 폴리곤 단위로 투명해지더니, 사라졌다.

요정의 가루가 적용되는 동안 재빨리 좁은 복도에서 빠져나간 직후, 레이븐은 오른손에 M4A1을 들고 기계들을 향해 총탄을 마구 흩뿌리기 시작했다.

[조준 보조 시스템 가동.]

타다다다당! 타타다당! 타다당!

정확하게 기계들의 메인 회로만 총탄으로 꿰뚫어 기능을 완전히 정지시킨 레이븐은 한숨을 한 번 돌리곤, 천정에 설치된 CCTV를 향해 권총을 빼들어 쏘았다.

"좋아. 뭘 지키고 있었는 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지랄 맞은 걸 지키고 있던 모양이네."

레이븐은 어깨를 살짝 움츠리곤 꽝꽝 터지기 시작한 기계들을 뒤로하고 연구실 안 쪽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은 '자동문' 형식으로 레이븐이 가까이 가기만 해도 열렸지만, 더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보안'을 요구하는 장치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잠금 해제됨.]

레이븐은 아까 챙겨둔 ID카드로 그런 문들을 일제히 열어젖히며 파죽지세로 연구소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챙겨온 ID카드로도 침입이 불가능한 문이 등장했다.

[S등급 보안 게이트. 접속 해제를 위해서는 더 상위 보안 등급의 ID 카드가 필요합니다.]

"상위 보안 등급은 개뿔."

시끄러운 보안 단말기를 권총으로 쏴버린 레이븐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이럴 때를 대비해서 챙겨온 '문 따기용' 폭약을 문 앞에 설치했다.

뭐, 소환기를 이용한 해킹도 시도해볼 수는 있겠지만 레이븐은 해킹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머리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잘못 해킹했다가 더 끔찍한 사태를 불러일으키는 것보단 이 편이 훨씬 낫다.

"자아."

문 하나를 터뜨리기 위해 가방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폭약을 늘어놓은 레이븐은 멀찍히 떨어져 뇌관의 스위치를 눌렀다.

...

"어. 어라?"

꾹.

꾹꾹.

"왜 안 돼 씨발!"

당황 섞인 목소리로 레이븐이 놀라서 스위치를 몇 번이고 누르는 사이, 복도 반대편에서 불안한 기계음이 강철의 복도 안을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침입자. 악마. 배제.]

"하아. 진짜 돌겠네."

그렇게 초조하게 숨어서 스위치를 마구 누르고 있을 무렵, 조금 신호가 늦게 들어간 건지, 아니면 운명의 장난이었던 건지, 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다행스럽게도 폭약이 터져주었다.

콰아아아아앙!!!

폭약이 터지자마자, 몸을 숨기고 있던 레이븐은 등 뒤에 둘러멘 소총을 꺼내 들어 곧장 보안 로봇을 향해 총알을 날렸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총알을 날린 건 레이븐뿐만이 아니었다.

보안 로봇의 AI도 바보가 아니었던 만큼, 숨어있던 레이븐이 튀어나오자마자, 신속히 대응 사격을 했다. 녀석의 묵직한 은빛의 탄환이 레이븐의 머리에 닿기 바로 직전.

기잉! 콰지직!!!

"꺄윽?!"

원래 레이븐이 받아야 할 헤드샷의 피해를 그대로 그가 소환해두고 있던 '픽시'가 받으며 소환이 해제되었다. 그 대신 레이븐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총알을 박아 넣어 보안 경비 로봇을 무력화시켰다.

"칫."

소환사가 괜히 '인간 병기'라고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여기에 있다. 소환사가 받는 모든 피해는 그가 다루는 영체, '서번트'가 대신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환사가 다루는 모든 서번트를 무력화시켜야만 소환사 본체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는데, 그동안 소환사 본체가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다.

서번트를 이용한 다양한 기술, 마법, 기적. 거기에 대부분 소환사들이 뛰어난 전사라는 걸 감안했을 때, 단순한 총격전만으로도 일개 분대에서 소대 정도는 혼자서 쓸어버릴 수 있다.

"네 차례야. 잭."

[소환 : 잭 오 랜턴.]

소환 해제된 픽시를 대신해 새로운 서번트를 불러낸 레이븐은 타오르는 지옥의 불꽃과 함께 나타난 자신의 듬직한 서번트를 힐끔 쳐다보곤, 폭발의 여파가 가신 문 안으로 천천히 주변을 경계하며 들어갔다.

과연 어떤 무서운 고대 병기가 기다리고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간 그를 반겨준 건...

"이건..."

그것은 투명한 관이었다.

그래. 관, 이라고 하면 수많은 다른 관이 있으니. 정확히 설명하자면 사람이 죽어 땅에 묻힐 때, 시체를 넣어두는 그 관이었다.

달리 좋은 표현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관'이라는 표현이 제일 정확해 보였다. 왜냐하면 투명한 유리 너머로, 꽁꽁 얼어붙은 한 여자가 그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지...?"

누군진 몰라도 얼굴은 황무지에 사는 '평균적인' 다른 여자보다는 훨씬 아름답게 생겼다.

알몸으로 안에 있었기 때문에 낯 부끄럽긴 하지만 몸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그 어떠한 남자도 불평하지 않을 만한 몸매였다.

뭐, 혹자는 지나치게 풍만한 걸, 혹자는 지나치게 마른 걸 좋아하겠다만, 키도 적당하고 그 키에 걸맞게 알맞은 가슴과 엉덩이에, 허리도 잘록하다.

무엇보다 레이븐처럼 황무지에서 나고, 구른 몸이 아니었기에, 상처 하나,티끌 하나, 기미 하나 없는 완벽한 피부를 그녀는 갖고 있었다.

물론, 레이븐은 그런 것엔 일단 관심은 없었다. 그의 의뢰는 이 연구소 지하 어딘가에 있는 '병기'를 회수해오는 것인데, 병기라고 해서 그의 눈앞에 들이밀어진 건 꽁꽁 얼어붙은 아이스캔디 여자뿐이었으니까.

"... 음. 어디보자."

그래도 이거라도 회수해가면 나름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으려나.

레이븐은 투명한 냉동 포드 옆에 가방을 내려다 두고, 단말을 빠르게 조작했다. 아무래도 모든 전력이 비활성화된 현시점에서도, 이 냉동 포드에 만큼은 지속적으로 마나와 전류를 흘려보내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이 여자가 중요한 건가?

그런 의문이 계속 마음 어딘가에 머물렀지만, 레이븐은 단말에 소환기를 연결해 바로 냉동포드의 냉각 시스템을 해제했다.

[급속 냉각 해제 중. * * * 해제 완료.]

천천히 투명한 관에 맺혀있던 서리들이 걷혀 나가면서, 이름 모를 아이스캔디 여자의 몸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냉각이 해제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추위를 느꼈는지, 죽다 살아난 것처럼 그녀는 심하게 기침하며 몸을 부르르 떨며 움츠렸다.

"콜록... 콜록콜록. 우욱... 콜록콜록콜록... 허억... 헉... 헉... 깨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용사님. 콜록... 콜록콜록..."

그녀는 거칠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더니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레이븐 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 당신은... 누구?"

"나?"

"용사님이. 아니잖아...? 누구? 누구에요! 당신!!! 사람을 부를 거예요! 경비!!"

"엄... 그건 내가 먼저 하고 싶은 말이야. 넌 대체 뭐야?"

애써 뱅어 같은 가느다란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난 그녀는 겁에 질린 모습으로 레이븐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뒤늦게야, 레이븐은 현재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눈치챘다.

그는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어 바닥에 던져놓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풀어헤쳤다.

황무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치고는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반듯한 홍안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알게 모르게 마성의 매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는 그의 '출생'과 관련이 있었지만.

지금은 크게 상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람을 부를 거라니까요! 경비!! 누가! 도와줘요! 여기 강도가..."

"경비는 없어. 내가 다 없앴거든. 물론 네가 말하는 경비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깡통 로봇들 말하는 거면. 말이야."

"... 뭐라고요?"

"그리고 일단은 난 널 해칠 생각은 없어. 그리고..."

"잠깐만요."

그녀는 뒤늦게 자신 근처에 나뒹구는 '연구원'의 유골을 확인하고 공포에 질려 크게 숨을 들이켰다.'

"저... 저기요. 지금 혹시... 오늘이 며칠이죠?"

"오늘? 금요일."

"몇 월...?"

"8월."

"올해가 몇 년이죠?"

"아하."

뒤늦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던 레이븐은 왼팔에 장착한 단말기를 통해 편히들 쓰는 전쟁력이 아닌, 옛 인간 문명이 사용했던 '서력'을 이용해서 답해주었다.

"서력 2293년. 8월 18일. 금요일."

"..... 저... 설마. 200년 가까이. 얼려져 있었던... 거예요?"

"그런 거 같은데."

그리고 감도는 침묵.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는지 그녀는 반쯤 정신을 놓곤 레이븐에게 물었다.

"이거... 무슨 몰래 카메라 같은 거죠? 질 나쁜 장난이라면 지금 당장 관두는 게 좋을 거예요. 뭐, 신입 사원이세요? 언제 들어온 거예요?"

"내가 지금 장난치는 걸로 보여? 그래도 다행이네. 200년 전 사람이랑은 언어 체계 자체가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 통해서..."

레이븐의 얼굴에서 장난기를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게 되자, 그녀는 결국 자신이 잠들고 난 뒤, 2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걸 그제야 받아들였는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거리며 흐느꼈다.

"말도... 말도 안 돼... 200년이나 지났다고? 200년이나? 어떻게 된 거지? 전쟁은? 마왕은...?"

"저기. 일단은 여기서 나가자. 여기 오래 있어봤자 좋을 거 없거든? 지금 경비 로봇이 날 지금 묻어버리려고 움직이고 있는데. 여기 오래 있으면 너까지 휘말려."

그럼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녀'가 고개를 가로 젓자, 삶을 포기해버린 듯한 그녀에 태도에 마침내 신물이 나버린 레이븐은 한숨을 내쉬곤 손으로 그녀의 뺨을 후렸다.

"정신 차려! 200년이 지났다고 해서 뭐. 지금 중요한 건 네가 살아있단 거잖아.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냐? 살아있으면 일어서. 두 발로 걸어. 악착같이 발버둥 치란 말이야!"

"우우우우..."

오히려 더 악효과였나.

한숨을 내쉬며 레이븐이 고개를 내저었던 바로 그때였다.

심상치 않은 지진이 땅을 뒤흔들고, 천장에서 흙먼지가 탈탈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래도 지상 위에 뭔가 일어난 거 같은데, 레이븐은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200년 동안 얼어있던 여자의 손을 끌어당겼다.

"여기 있다간 너든 나든 다 죽게 생겼어. 일단은 여기서 빠져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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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탯 : 지능(Intelligence.)

현재 레이븐의 지능 : 3

* 모든 스탯의 평균치는 5이다.

과학 기술에 대한 전문 지식.

고대 마법 문명의 단말 해킹.

마법 지식을 요구하는 마도구의 사용.

폭발물, 약물을 만들기 위한 연금술 등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마법 지식을 요구하는 마도구의 사용 등에 영향을 주는 스탯. 지능이 높으면 상기 행동에 대한 추가 보정을 얻으며, 지능이 낮을 시, 상기 행동에 대한 실패 확률이 올라가게 된다.

악마를 비롯한 각종 영체가 판치고, 핵이 떨어져 살기 어려운 황무지 안에서도 명석한 두뇌는 때로는 우락부락한 근육보다도 도움이 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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