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전쟁 이후 용사 파티-1화 (2/49)

제 1화

용사의 요정은 200년의 낮잠에서 깨어난다. (1)

"Almost heaven.

(천국과도 같은.)

West virginia.

(웨스트 버지니아.)"

무너져 내린 건물 폐허.

방치된 지 200년은 남은 오래된 옛 문명의 자동차들.

한 때 찬란한 인간 문명이 거기에 있었노라고 자기 주장하듯 여기저기에 우뚝 솟은 건물들과, 사람 내음 물씬 나는 상가의 건물들이 늘어져 있다.

그러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우뚝 솟은 건물은 반쯤 무너져 내려 앙상한 내부 구조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유리창이 멀쩡한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가게 안은 흙먼지로 가득하거나, 아니면 옛 인간들의 유해가 그대로 방치되어 뼈만 앙상하게 남아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처음 이 곳을, 레드 그레이브 황무지를 방문하는 이는 이 곳을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눈을 돌리면 이 곳은 실제 존재하는 다른 '생지옥'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채게 될 것이다.

마계에서 악마 새끼들이 이쪽 차원에 핵폭탄을 쏟아내다시피 날린 나머지, 인류의 문명은 전체적으로 대부분 이런 식으로 리셋 당했는데.

그나마 레드 그레이브 황무지는 그러한 '리셋'으로부터 무사한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증명하듯이, 현재 레드 그레이브의 도시 황무지에는 어느 한 생존자가 귀에 구 시대 문명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던 '이어폰'을 귀에 꽂곤 옛날 고전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Country roads. Take me home.

(고향 길이여. 나를 집으로 데려가줘요.)

To the place. I belong.

(내가 머물곤 하는. 그 곳으로.)"

새카만 검은 코트. 살짝 곱슬기가 섞여있는 머리카락에 양 허리에는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두 정의 권총이 매달리며 춤추고 있다.

등 뒤에는 작은 여행 가방을 매고 있었으며, 대체 어디서 구한 건지, 작은 유탄발사기가 달린 군용 돌격 소총, M4A1을 들고 있다.

대체 왜 이 남자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황량한 황무지를 여행하는 것인가. 이유는 어찌보면 매우 단순했다. 그것이야말로, 이 남자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방사능 감지. 당신은 심상치 않은 농도의 방사능이 주변을 잠식하는 것을 느낍니다.]

왼팔에 장착하고 있던 단말에서 200년 전에 벌어진 핵폭탄 때문에 남은 방사능이 감지된다는 위험 경고가 표시되자, 그 남자는 얼굴을 잠시 찡그리더니, 왼팔에 찬 단말을 조작해 가이거 카운터를 띄웠다.

"좆까. 그깟 방사능이 뭐 어쨌다고."

그렇게 별 대수롭지 않게 단말을 조작해 가이거 카운터를 화면에 표시했던 바로 그 순간, 심상치 않게 미터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그 남자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가방에서 방독면을 꺼내 얼굴에 뒤집어썼다.

"씨발, 이 정도로 수치가 이상하면 얘기를 해줘야할 거 아니야! 근데 갑자기 왜 이래? 방사능 폭풍이라도 불어젖히는 거야?"

왼손에 달린 단말에게 그가 묻자, 그가 차고 있던 PDA는 금방 대답했다.

[기상 정보 확인. 원자의 사막에서 불어오기 시작한 회오리바람이 레드 그레이브를 강타할 예정.]

"그럴 줄 알았어."

그는 어깨를 움츠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왼팔에 장착한 단말을 조작해 주변 위치 데이터를 표시했다.

그냥 '방사능' 자체도 몸에 해로운데, 핵전쟁 이후 200년이 지났음에도 지상에는 전쟁의 산물인 '방사능'이 남아있고, 이렇게 잔류한 방사능은 마계에서 넘어온 마력을 변질시켜 몸에 해로운 새로운 신물질을 만들어냈다.

주로 '마소'라고 불리는 불리는 이 방사능에 의해 변질된 마나는 비교적 오래 노출되도 죽을 확률이 진짜 방사능보다는 낮지만.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

일반적인 방사능과는 달리, 오래 노출되면 그냥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될 정도의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된다.

어찌되었든 전쟁 전 방사능이든. 전쟁 후 방사능이든 노출되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던 만큼 그는 재빨리 단말의 인공지능에게 물었다.

"의뢰인이 언급한 마지-테크 연구소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320미터 전방에 입구 있음.]

근처에 옛날 '인간'들이 사용했던 방공호 같은 곳이 있다면 몸을 피할 수 있겠지만,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굳이 시간을 까먹을 이유는 없어보였다.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주변을 둘러본 그는 단말이 알려주는 경로를 통해 서둘러 본격적인 폭풍이 덮쳐오기 전, 재빨리 연구소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다.

창문 하나 나 있지 않은 밀폐된 건물이었는데., 그 탓에 주변에 창문이 산산조각 나 흩어져 있던 다른 건물에 비해선 겉모습은 그나마 다른 황무지 건물에 비해선 나름 멀쩡해보였다.

심상치 않은 방사능 섞인 모래 바람이 덮쳐오기 직전, 그는 아슬아슬하게 근처에 목적지였던 '마지-테크' 안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후우."

적어도 지랄 같은 방사능 폭풍에 휘말려 뒤지는 비루한 꼴만큼은 피할 수 있었군.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한숨 돌리고 있던 바로 그때,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래도 이미 먼저 온 손님이 몇 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먼저 온 손님분은 척 봐도 방사능 폭풍을 피해 이 건물을 찾아온 '그'와는 협조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뜯어온 고철 조각으로 빈약해보이기 짝이 없는 갑옷을 만들어 위에 걸치고 있었고, 급조한 듯한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채 무심하게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쳐들어온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 음."

그는 어색하게 왼손을 들어 손을 흔들며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안녕하세요?"

그의 인사에 대한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인삿말'이 아니라, '탄환'으로 돌아오긴 했다만.

타다다다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다당! 타당!!

총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전력으로 들어왔던 연구실 문을 다시 그대로 열고 밖으로 나온 그는 잽싸게 허리춤에서 '다소 아깝긴 하지만'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문 안에 던져놓은 다음 밖에 방치된 사슬로 문을 걸어잠궜다.

투콰아앙!

"우악!?"

수류탄의 파괴력이 예상 외로 강해서 문이 바깥으로 튕겨져 나왔지만, 이 남자의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이것마저도 전부 계산하고 있었는지, 연구실 벽에 딱 붙어있었던 덕에 폭발의 여파에서 제 몸을 안전하게 사릴 수 있었다.

"하필이면 로그 놈들이 거기 있을 줄이야."

로그.

레드 그레이브 황무지를 돌아다니는 '도적'들을 칭하는 말로, 정착지에 안주해서 농사를 짓거나,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대신, 주변 정착지를 습격해서 돈을 뜯어내거나, '그'와 같은 모험가나 상인을 급습해 등쳐먹는 개같은 족속들이다.

목에 현상금이 걸린 녀석들도 적지 않고, 몇몇 녀석들은 대도시를 상대로 강도질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골칫거리다. 오죽하면, '그'에게도 이런 로그들을 처리해달라는 의뢰가 가끔 올 정도로 말이다.

철컥, 그는 군용 소총 M4A1의 탄창을 끼워넣고, 벽에 귀를 바싹 가져다 대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화염병 같은 급조된 폭발물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군용 수류탄이 터진 거다. 가까이 있던 녀석은 폭발에 휘말려 그대로 즉사했을 거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녀석들도 팔 다리가 찢겨져 나갔을 거다.

"어디 간 거야? 그 씹새끼!"

수류탄 선물을 받고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에 핏줄을 세우며 큼직한 덩치 한 명이 연구실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등에 돌려 메고, 참다 못 해 연구실 바깥으로 튀어나온 덩치의 멱살을 간단하게 왼손으로 잡아 끌어선,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다용도 마체테로 목을 베어냈다.

왈칵왈칵 쏟아져 나오는 피가 '그'의 코트를 비롯한 옷에 흩어지는 바람에 흠뻑 젖고 말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

그는 덩치 큰 녀석의 시체를 방패 삼아 연구실 안으로 다시 뛰어들어간 다음, 내던지듯이 마체테를 내던져 바닥에 떨어뜨리곤, 허리춤에 보조 무장으로 들고 다니는 M1911 권총을 들고 연구실을 미리 점거한 '먼저 온 손님'의 대가리에 총알을 배달해주었다.

흑색의 코트.

왼팔에 달린 '전쟁 전 유물'.

거기에 단순한 로그 몇 명은 가볍게 제압하는 놀라운 전투력.

아직 대가리가 꿰뚫리지 않은 로그는 그의 정체를 금방 파악하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레이븐, 레이븐이다! 안에서 사람들 더 불러와! 우리들만으로는... 끄어아악!!!"

[조준 보조 시스템을 활성화할까요? Y/N.]

"필요없어. 이딴 녀석들 상대하는 데는."

용도를 다한 시체 고기 방패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등 뒤에 들쳐 멘 M4A1을 다시 든 그는 총이 보급되지 않은 로그들의 몸을 순식간에 정확한 3점사 사격으로 벌집으로 만들어주었다.

"오랴아아앗!!!"

연구실 로비 안쪽에서 막 식사 중이었는지, 입에 소스를 묻힌 채 불한당들이 몇 명, 못 박힌 각목이나 야구 방망이들을 들고 매섭게 휘두르며 레이븐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냉병기가 화기를 상대로 앞설 수 있을 때는, 오로지 총알이 전부 바닥 났을 때이며.

숙련된 '레이븐'은 의뢰를 앞두고 총알을 어정쩡하게 챙겨가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온 녀석의 다리를 발로 걸어 쓰러뜨리고, 대가리에 가볍게 소총탄을 박아준다. 왼손에는 권총, 오른손으로는 소총을 들고 옛 일본의 카미카제마냥 돌격해오는 녀석들을 벌집으로 만들어준 다음, 앞으로 지면을 한 번 미끄러지며 근처 연구실 데스크에 몸을 숨겼다.

타앙! 타앙! 타앙!!

멀리서 급조된 고철 권총으로 저격하려는 녀석의 총탄을 엄폐물 뒤에 숨어 피한 뒤, 최대한 총알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투척용 나이프를 던져 마무리 했다.

[당신은 조준 보조 시스템 없이도 몰려든 로그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아씨. 5탄 아까워."

척 보니, 곧 다가오는 방사능 폭풍 때문에 몸을 피하려고 연구실 안에 틀어박힌 거 같은데. 설마, '해충 청소'까지 병행하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클라이언트에게 돈을 더 뜯어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븐'은 녀석들이 떨어뜨린 급조된 권총에 들은 탄환을 그대로 자신의 권총에 끼워넣으며, 갈 길을 서둘렀다.

"네비게이트."

[목표물까지 최적화된 경로 색적 중. * * * 완료. 안내를 시작합니다.]

레이븐의 눈에만 보이는 홀로그램의 이정표가 나타난 바로 그때, 레이븐은 연구소 안 쪽에서 인기척이 몇 개 더 느껴지는 걸 확인하고 자세를 낮추고, 권총을 고쳐쥐었다.

어디까지나 권총이, 그것도 평범한 .45 ACP 탄이 통하는 건 '인간'을 상대로 할 때이다. 그 외의 것. 예를 들면, '괴물' 같은 녀석들에게는 이런 탄환은 무용지물이다.

설마 평범한 로그 집단이 영체를 소환해 사역하거나, 아니면 소환사를 고용해 데리고 다닐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확인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안에 '영체' 반응 한 번 확인해봐. 아니면 소환사 반응."

[확인된 영체, 혹은 서머너의 반응은 없습니다.]

"진짜겠지?"

그렇다면 안에 무리없이 들어가도 되겠지. 그렇게 판단한 그는 연구실의 로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비상 계단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네비게이트'의 도움으로 금방 비상 계단을 찾을 수 있긴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핵폭탄의 흉악한 파괴력으로부터는 고대 마법 기술을 지닌 천하의 마지-테크 연구소조차도 어쩔 수가 없었는지,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로 인해 길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어쩔 수 없네. 마나 공급 상태."

[본 건물의 마나 공급은 차단된 상태입니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갈 수는 없으려나. 비상 전력 발전기 위치는?"

[지하에 있습니다.]

"지금 그 지하에 비상 계단으로 못 가니까 물어보는 게 아닐까?"

정 뭐하면 여분의 폭발물로 길을 뚫고 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만. '해충'을 구제하느라고 귀중한 수류탄을 하나 써버린 지금, 더 이상의 폭발물을 낭비하기는 싫었다.

레이븐은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앞에 서서 발로 문을 걷어찼다. 마지막으로 멈췄던 곳이 지상 3층이라는 걸 확인하고, 그는 왼팔에 장착된 작은 PDA 단말을 조작했다.

[소환 : 정령형 픽시.]

"얏호. 불렀어?"

왼팔의 단말, 주로 그를 비롯한 '소환사'들은 '소환기'라고 부르는 단말에서 녹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레이븐보다 조금 체구가 작은 날개 달린 요정이 튀어나와 그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동시에, 화면 상단에 표시된 리볼버의 실린더가 조금 회전하며 현재 잔여 '행동' 수를 표시해주었다. 원래 6/6이라고 표시되어있던 행동수는 하나 줄어, 5/6이 되었다.

"그래. 지금부터 이 통로 타고 내려갈 건데. 그냥 내려가면 처박히겠지? 네 날개 이용해서 살살 내려줘."

"맡겨만 줘."

[정령형 픽시 : 비행.]

픽시가 자신의 몸을 두둥실 띄우는 느낌이 들자, 레이븐은 주저없이 엘리베이터의 깊은 통로 안쪽으로 뛰어들어 그대로 지하로 조금씩 내려갔다.

클라이언트로부터 받은 의뢰는 단순했다.

마지-텍에서 만들어낸 유물 중 하나, '용사의 성검'을 비롯한, '용사'의 버려진 장비들을 회수해오는 것. 레이븐 자신도 용사가 뭐하는 건지, 뭐하는 사람인 건지는 잘 모른다.

클라이언트가 언급하길, 전쟁 전 고대 인간 문명이 만들어낸 '대 악마 인간병기'라고 하던데. 그 인간병기가 사용하던 '검'을 상품화해서, 비싸게 팔아 먹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보안이 허술했으면 좋겠는데. 어디 한 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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