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의 장(4)
4.
“단장, 니엘 아가씨. 둘 다 무사해?”
“그런 것 같군.”
“으, 베른 아저씨··· 좀 떨어져. 너무 과보호야!”
하늘에서 떨어진 흙과 먼지를 닦아내며, 베른은 두 사람을 보듬었다.
니엘은 멋쩍은 듯 그의 손을 뿌리치고 일부러 몇 걸음이나 떨어졌다.
그녀는 용이 뿜어내는 숨결보다 있는 힘껏 끌어안는 베른의 악력이 더욱 무서울 지경이었다.
“자칫하면 숨 막혀서 죽을 뻔 했네.”
그래도 재앙의 위기는 지나갔다.
대파된 산맥과 그을린 대지 위로 검은 연기가 일렁여.
심각하리만치 자연경관이 훼손되었지만, 다행히도 마을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헤, 헤헤! 역시 우리 사부님! 뭔가 제대로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니까!”
그림자로 이뤄진 날개가 조각나는 모습을 올려다보며 소녀가 환호한다.
니엘의 눈동자에 승리한 영웅이 비춘다.
용을 쓰러뜨린 빅터가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앗, 사부님?!”
"크흠."
사냥꾼은 지면에 발이 닿자마자 비틀거리더니, 이윽고 대량의 검은 피를 토해냈다.
당장 쓰러지진 않았지만, 몇 번이고 각혈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빅터는 단시간에 대량의 가루를 소모한 대가를 치루고 있었다
“이봐요, 빅터 사부님! 괜찮은 거예요?!”
서둘러 니엘이 빅터를 부축하려 한다.
하지만 기울어지는 무게를 감당하기에 소녀의 힘만으론 역부족이었다.
그런 둘에게 용병단의 책임자는 기꺼이 어깨를 빌려주었다.
“빅터, 자네는 대체 어디까지 날 놀라게 할 셈이지?”
니코의 도움으로 빅터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출혈이 상당하군. 내상이라도 입었나?”
“···별 것 아니다. 매번 있는 일이니.”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상태가 심각해 보인다.
머리카락 일부도 본연의 색을 잃어가고 있다.
이 사내는 왜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것인가?
니코는 자기도 모르게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5년 전에도 그랬지만, 사냥꾼이란 자들을 미워할 수가 없어.’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에 한 번조차 볼 일 없을 기이한 사건.
부하를 둘이나 잃고 또 한 번 지옥의 괴물과 마주해야 했다.
그럼에도 상대를 원망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니코도 빅터의 처절한 싸움에 적지 않게 감화 받았기 때문이었으리라.
‘무서울 정도로 단단한 몸이다. 사냥꾼은··· 어둠과 싸우기 위해서 이 정도로 강해져야 한단 말인가?
팔을 가볍게 붙잡은 것만으로도 극한까지 단련된 몸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단지 몸집이 큰 것만이 아니야.
빅터에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용병들 이상의 강한 과감한 투지가 엿보였다.
니코는 같은 전사로써 빅터에게 깊은 존경을 품었다.
“니엘이 자네를 따르려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군.”
“그렇지, 그렇지? 사부 옆에 있으면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니까?”
“그리고 지금 확신했다. 니엘, 너는 역시 사냥꾼에 어울리지 않아.”
“아직도 그 소리야, 니코 형? 빅터 사부님이 용을 쓰러뜨렸단 말이야! 경사스러운 대승리인데 분위기를 깨서 쓰겠냐고?”
“나에겐 그런 것보다 네 장래가 더 중요하다.”
“하여간 초치는데 뭐 있다니.”
“내 말을 허투루 듣지 마라.”
한편으론 불안한 의문이 든다.
이 사냥꾼에겐 사람의 행복이 있는가?
과연 그가 추구하는 인생에 내일이 존재하기나 할까?
여동생이 나아갈 미래의 길이 도무지 보이질 않아.
니코는 한층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마. 너는 빅터에게서 많은 걸 배울 수 있겠지. 내가 가르쳐주지 못할 지혜나 지식, 나아가선 어른의 책임감까지 알려줄 것이다.”
“거봐! 니코 형도 이젠 충분히 이해한 거 아냐?”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다.”
“뭐?”
“보통 사람은 괴물과 싸우지 않는다. 애써 요술이 난무하는 미치광이 같은 세계만 찾아가며 들쑤실 이유도 없지. 이건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너를 그런 세계에 보내고 싶지 않아.”
“요는 나더러 평범하게 살란 거야?”
“그래. 마녀를 사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다.”
“···.”
“너는 나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아야 해.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틀림없이 나와 같은 의견이었으루거다.”
“칫, 여기서 엄마 이야기는 반칙이잖아.”
애꾸눈의 소녀는 못마땅한 얼굴로 오라비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로선 납득하기 어려워.
자신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니코가 섭섭할 뿐이었다.
이어서 니엘이 고개를 들어 매달리듯 빅터의 얼굴을 본다.
그가 대신 뭐라고 반론해주길 바라.
사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사부님! 그냥 듣고만 있을 거예요? 이러다간 나 수녀원에 끌려가게 생겼다고요!”
이때, 빅터는 고개를 저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선택은 너의 몫이다. 나는 네 의사를 존중하겠다.”
단언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빅터의 대답에 니엘은 용기를 얻었다.
“···흥, 그렇다면 이게 내 선택이야! 보통 사람 좋아하시네. 난 시시한 인생따위 질색이거든?”
“그런다고 네가 특별해질 것 같으냐?”
“그딴 건 상관없어! 어릴 때부터 전장에서 지내고, 배 위에서 성장한 나한테 이제 와서 무슨 얼어 죽을 소리야?”
“고집부리지 마라. 이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혹해. 빅터가 없었다면, 너는 물론 나도 무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치만 사부는 이겼잖아? 나랑 니코 형, 그리고 용병단이랑 마을 사람들까지··· 끝내는 모두를 지킨 거잖아?”
“빅터의 몰골을 봐라. 이게 어딜 봐서 승리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나?”
갈라진 피부와 말라붙은 혈흔···.
사지만 멀쩡할 뿐 산 송장이나 다름없어.
빅터의 얼굴엔 그 정도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보는 그대로 사냥꾼들의 싸움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잘 해봐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받을 뿐이지. 그러니 현명하게 굴어라, 니엘. 눈치가 있다면 마을에 감도는 분위기를 좀 느껴보란 말이다.”
니코의 말처럼, 모두가 빅터를 향해 온건한 시선만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용병들은 빅터의 귀환을 도깨비 보듯 경계한다.
소수의 눈치빠른 자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자신의 구원조차 인지하지 못해.
마을 사람들은 빅터를 응원하기는커녕 창과 문부터 걸어 잠갔다.
갑작스런 용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신화의 생물을 쓰러뜨린 인간의 존재도 그에 못지않게 무시무시하긴 마찬가지···.
그들 입장에선 정체모를 이방인만 늘었을 뿐, 상황이 해결된 건 전혀 없었다.
니코는 두려웠다.
니엘이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봐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빅터. 자네의 노고를 평가 절하하는 게 아니야. 나는 단지··· 내 혈육이 비참한 꼴로 죽길 바라지 않을 뿐이다.”
“나는 상관없다. 자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으니.”
“뭐, 뭐라고요? 지금 제자인 나보다 니코 형을 편드는 건가요?”
“니엘, 네 오빠가 지금껏 무엇을 위해 악착같이 자금을 모았다고 생각하나?”
“하? 누굴 바보로 여겨요? 당연히 세상은 돈이 전부이니까···.”
“아직 어리군. 너는 니코의 진의를 모른다.”
“그야 당연하죠! 저 사람은··· 니코 형은 항상 나한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는 법이 없는 걸요?”
“너희가 지금까지 남매간의 진중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지.”
“아하, 그 잘난 대화 말이죠? 웃기셔. 저 먹통이랑 무슨 말이 통하기는 할까요?”
“너 하기 나름이다.”
그렇게 말하며 빅터가 두 사람에게서 떨어진다.
부축을 마다하며, 그는 이마를 짚은 채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서 있기도 피곤하군. 나는 조금 쉬겠다. 나머진 둘이서 알아서 결정 지어라."
"아니, 그러지 마시고 날 좀 도와달라고요. 사부니이임!"
"빅터, 막지 않을텐가? 이대로 제자가 이탈해도 상관없나?"
"그건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가족 싸움에 끼어드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으니까."
“···그러면 편하게 말하지. 어쨌거나 마녀 사냥꾼은 안 된다, 니엘. 다른 일을 해라. 그거라면 얼마든지 지원해줄 테니까. 정 그렇게 검을 쓰는 게 좋다면 좀 더 성미에 맞고 안전한 의뢰를 물어다주마.”
“어이없네. 갑자기 파격적인 조건으로 나오시겠다?”
“나도 지역 유지와의 인연 정도는 있다. 급하게나마 상인들의 호위역이라도 맡겨줄 테니, 지금은 그걸로 만족할 순 없겠나?”
“더는 못 참아! 니코 형은 어째서 나를 자꾸만 옭죄려는 건데? 여자라서? 아니면···"
소녀는 안대를 들추어 세로로 난 흉터를 대놓고 보여주었다.
"내가 한 쪽 눈이 찢겨진 병신이라서?”
“니엘!”
“윽박만 지르지 말고 제대로 좀 말해봐! 답답해서 돌아버릴 거 같다고! 형은 나한테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니코는 무거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다.
제 삼자가 혹여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때, 잠자코 지켜만 보던 베른이 끼어들더니···.
“단장, 슬슬 니엘에게 밝혀도 되지 않겠나?”
“···.”
“이래선 남매 사이가 더 악화될 뿐이야. 차라리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편이 났겠지.”
“뭐야? 베른 아저씨? 털어놓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니엘, 사실 너와 단장은 사실···.”
“닥쳐라, 베른하르트!”
“언제까지 숨길 순 없는 노릇이잖아?”
“말해도 내가 직접 한다.”
잠깐의 망설임.
길지 않은 심호흡 끝에, 겨우 니코는 각오를 굳혔다.
“말해도 내가 직접 한다.”
잠깐의 망설임.
길지 않은 심호흡 끝에, 겨우 니코는 각오를 굳혔다.
“베른, 다른 놈들을 물려주겠나? 임무가 끝났다는 걸로 적당히 둘러 대다오.”
"마침 잘 됐군. 안그래도 다들 술집으로 직행하고 싶어하는 눈치던데."
"그럼 부탁하지."
“저 사냥꾼 형씨는?”
“···괜찮을 거다. 저 자는 이미 한참 전에 눈치 챈 것 같으니까.”
"뭐, 네 뜻이 그렇다면야."
베른은 니코의 지시를 따랐다.
용병들은 저마다 떠들썩하게 환호하며 자리를 떴다.
얼마 뒤, 해가 진 우물가에 남겨진 것은 니코와 니엘, 빅터 뿐이었다.
정적이 찾아오자, 니코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곤 오래도록 간직해둔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우선 너와 내가 서로 다른 아버지를 둔 이부남매라는 것부터 설명해줘야겠구나.”
“뭐···?”
“네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이후에 부유한 영주의 첩으로 살았었지.”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하녀로 들어가 잡일을 하던 와중, 우연히 고용주의 눈에 띠게 되었고···.
몇 번인가 동침을 거친 끝에 여인에게 아이가 생겼다.
그것이 바로 니엘이었으니.
“거짓말···.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농담이래?”
“공교롭게도 당시에 귀족에겐 자식이 없었다. 그도 젊은 시절 아내를 잃었던 거야. 그래서 네가 태어났을 때, 다행히 나까지 양자로 들여질 수 있었어. 곁을 지키며, 목숨 걸고 널 지키라는 조건을 부여받고서 말이다.”
“그만해, 니코 형. 이런 거··· 하나도 재미없어.”
“나는 장난치는 게 아니다. 이게 진실이야.”
“···.”
“하지만 후계자가 너로 좁혀지니, 탐욕스런 가문의 혈족들은 우릴 용납하지 않았다. 재산 문제로 얽힌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이 이어졌지. 네 아버지는 너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영지에서 우리를 피신시켰던 거다. 언젠가 사태가 안정화 되었을 때··· 원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용병단은···? 그것도 단순한 위장이었던 거야?”
“전부 널 보호하기 위해서였지. 네 아버지에게 받은 푼돈만으론 부족했거든. 우리에겐 힘이 필요했다. 무력집단을 끼고 있다면 어느 세력이든 간단히 건드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
니엘은 혼란에 빠졌다.
출생의 비밀 따위, 시시한 음유시인의 노래에나 나오는 것이라 치부했거늘.
그러나 니코의 얼굴은 시종일관 진지하기만 했다.
그는 일말의 거짓도 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니엘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어느새 소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럼, 그러면··· 니코 형은 왜 나한테 참견했던 건데? 친동생도 아닌데···.”
“아니, 핏줄이 어떻건 간에 너는 변함없이 내 가족이다. 그 사실만큼은 절대 달라지지 않아.”
“헛소리 마! 완전히 궤변이잖아? 세상에! 이딴 병신 같은 소리가 어디 있어? 지어낸 거지? 그냥 나오는 대로 늘어놓기만 할 뿐이잖아? 증명은 어떻게 할 건데?”
“증거야 많지. 네겐 잘 보이지 않겠지만, 목 뒤에 세 개의 점이 문신으로 새겨져있지. 그게 가문의 증표다. 거기다 예전부터 있었던 코의 흉터도 마찬가지다. 널 죽이려고 했던 친척 놈들이 새긴 흔적이니까. ”
“뜬금없이 그렇게 말해봐야··· 내가 받아들일 거 같아?”
의심암귀가 든다.
혹여 여동생이 귀족 가문의 혈통이라는 걸 내세워 극적인 신분 상승이라도 노릴 셈이었던 것인가?
니엘은 자신의 머리를 집어 뜯기 시작했다.
니코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진정해라, 니엘.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너와 나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하, 물론 그러시겠지. 먼 훗날 나를 가문에 팔아야하실 텐데. 입장이 달라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응? 안 그래, 니코 형? 아니지, 씨 다른 오빠 님?”
“너는 오해하고 있다. 그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비꼬는 듯 독설을 내뱉는 니엘에게, 니코는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네 아버지의 가문은 몰락한 지 오래다. 시덥잖은 세력 다툼에 이미 십년도 전에 영지를 잃었지. 내가 너를 지키려 한 이유는 그곳에 돌려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마땅히 누려야했을 것들을 되찾길 바라서였다.”
“···.”
“내가 지금껏 쌓아올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모두 네 미래를 위한 투자에 불과해. 나는 아무리 더럽혀져도 상관없다. 언제든 전장에 묻혀도 괜찮지. 하지만 너만은 안 된다. 니엘, 가문을 부흥시키지 않아도 좋아. 그저 행복해지기만 하면 된다. 그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유일한 소원이었다.”
빅터는 니코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
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러운 돈까지 끌어다 모은 이유가 단순한 가족애에 불과했단 사실을···.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너는 내 소중한 동생이고, 우리는 단 둘 뿐인 남매인거다.”
비로소 수수께끼가 풀렸다.
니코가 니엘에게 엄격하게 굴며 묘한 거리를 두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음을···.
하나, 니엘의 마음을 움직인 건 니코의 논리가 아니었다.
내면의 아픔으로 일그러진 표정, 그리고 생전 처음 본 진심이 담긴 목소리 때문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소녀의 응어리는 풀어질 수 있었다.
“···응. 이젠 알겠어. 전부 다 이해했어.”
살짝 불안정하긴 하지만, 빅터는 니엘의 감정이 순식간에 정리된 것을 확인했다.
지극히 가라앉은 상념.
소녀는 이미 냉정하게 눈앞의 현실을 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니엘. 이렇게 밝히고 싶진 않았는데."
"어색하게 그러지 마, 형. 나도 충동적으로 못된 소리만 했는 걸. 그럼 쌤쌤이지."
"기분은 괜찮나?”
“으으으음, 좀 놀라긴 했지만 니코 형 말처럼 별로 변한 게 있는 거 같진 않고.”
“그래···.”
“헤헤, 곰곰히 따지고 보면 이거 대박 아니야? 기대도 못한 신분을 거저 얻어버렸잖아? 아이, 신나라!”
마음을 읽지 않아도 연기라는 게 뻔히 티가 난다.
니엘은 니코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꾸며낸 쾌활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데? 내 진짜 아버지란 작자는? 들어보니까 나름 예전에 잘 나가던 가문 같은데?”
“그건···.”
그러나 니코는 당장 그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니코가 급히 니엘을 껴안고 바닥을 굴렀기 때문에.
“에? 혀, 형?!”
고개를 치켜든 니엘의 눈에 뭔가가 들어온다.
촉끝이 파고든 화살의 깃털.
그것은 니코의 등에 여러 개가 박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