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74화 (174/186)

추적의 장(2)

4.

니코의 안내를 따라 두 사람은 마을로 들어섰다.

내부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아.

빅터와 니엘이 길가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은 출입구와 창문을 매몰차게 닫아버렸다.

어느 누구하나 이방인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보통 일이 아닌 모양이군. 다들 겁에 질린 걸 보니.”

“슬슬 해가 질 시간이라 바람이 차다.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지.”

니코는 작고 허름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뻥 뚫린 지붕을 판자로 막은 집.

안에는 별다른 장식 없이 탁자 하나와 의자 서넛 개만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자경단이 경계 교대를 위해 만든 대기실인 듯 보였다.

“니코, 울타리에 대해 하나만 물어도 되겠나?”

“얼마든지.”

“무슨 꿍꿍이지? 배치가 수상할 정도로 엉망이다. 외부의 침입이 아니라, 마치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막아둔 것 같던데.”

의자 등받이에 허리가 닿기 무섭게, 빅터가 마을에 대한 감상을 읊었다.

니코는 빅터의 통찰력에 흥미를 보였다.

“대단하군.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거기까지 파악할 수 있나? 과연 마녀를 사냥하는 자인가···.”

“쓸데없는 떠보기는 그만두도록 하지. 자네나 나나 입담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 댁도 나 못지않게 필요한 말만하는 사내였었지. 그럼 괜히 반갑단 인사도 덧붙일 필요는 없겠군.”

니코가 납득하자 빅터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마을에 무슨 이변이 생긴 건가?”

“여러 가지일세.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나서 하나만 짚기 어려울 정도로.”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지. 언제부터 였나?”

그것을 말하려면 우선, 용병인 니코가 어째서 자경단 청년에게서 ‘대장’이라 불리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야만 했다.

“내가 여길 방문한 건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이었다. 본래는 단원들과 북쪽 경계선을 지키란 의뢰만 받았지. 요 몇 년 사이, 국경에서 마찰이 자주 일어나곤 했거든.”

“공국 놈들, 이젠 침공을 숨길 생각조차 안하는가?”

“덕분에 용병 업계는 성황이지.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우리 주머니 사정은 훨씬 나아지니까 말일세.”

“니코, 자네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이 많다. 예전보다 세 배 이상 늘었어. 싸우는 것 말곤 재주도 없는 자식들이라, 어차피 국가의 존망 따위 신경 쓰지도 않네. 이 전란을 틈타 한탕 벌이만 하면 만족하지. 나도 전쟁의 승패는 그저 지도자가 바뀌는 것뿐이라고 여기고 있고 말이야.”

“···.”

“그리고 그건 댁들 마녀 사냥꾼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대스승 늙은이가 그러더군. 자네들은 세간의 일엔 일말의 관심도 없다면서.”

빅터는 부정하지 않는다.

중앙국 아일론이 북방의 프로스트 공국에게 침공을 받던···.

성국 베가시아에게 휘둘리던 알 바 아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마녀와 연관된 현 상황의 전말뿐이었다.

“니코, 고작 정치나 논하려고 여태 두서 긴 소릴 늘어놓은 건가?”

“지루했다면 미안하군. 하지만 다 필요한 이야기일세. 이제 와서 애국심을 논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양심이 찔리긴 했거든.”

국경 수호란 중대한 임무에 파견된 용병단이 어째서 이깟 작은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가?

니코의 기억은 불과 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임무 중에 의뢰주가 저 세상 사람이 됐어. 안전한 곳에서 호위 호식하던 귀족이 뭣 때문에 죽었는지 자세한 내막까진 모르지만, 아무튼 목숨 걸고 공국의 정예군과 붙어봐야 손해만 볼 상황이 되었지.”

“그래서 퇴각했나? 천하의 도펠죌트너 고블린즈 꼴이 아니군.”

“전술적 판단이라고 해주시지. 아무리 실력파라도 우린 용병단에 불과해. 일개 부대로 대응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니코의 부대는 단 한 사람의 사망자도 없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적제적소에 빠질 시기를 판단하는 안목이야말로 한 무리를 이끄는 단장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 덧붙였다.

“이스트 클라인은 머지않아 함락된다. 공국이 정보를 통제하기 때문에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지.”

“소식을 막은 내통자가 있었나보군. 그것도 아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놈이···.”

“어떻게 알았나? 그야말로 정확한 식견이군. 예전부터 느꼈지만 자네는 비범한 자야. 단 몇 마디 나눈 정도로 정황까지 파악하다니.”

니코는 빅터가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을 꿈에도 몰랐으리라.

“자네가 짐작한 것처럼, 이 일대를 다스리는 영주 마우리지오 살반은 이미 공국의 개나 다름없네. 극렬한 국수주의자였던 그의 아버지 쥬세페 살반과는 완전 딴판이지.”

이어진 니코의 설명은 이러했다.

고블린즈를 고용한 첫 의뢰자는 지금까지 이스트 클라인을 방어해온 것은 선대 영주였던 쥬세페.

그러나 막내아들이었던 마우리지오가 야욕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암살해버린 이후로, 살반 가문은 철저한 공국의 협력자로 전향한 것이라고···.

“결국 사정이 모두 바뀌었으니, 돈에 움직이는 우리들도 선택을 해야만 했네.”

“그 선택이라는 게 나라를 팔아먹은 반역자에게 붙어서 지갑 계산이나 하는 일이었나?”

“애써 나쁘게 말하면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지.”

“더는 못 들어주겠군.”

쿵!

빅터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친다.

인의를 벗어난 자에게, 거구의 사냥꾼이 분노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니코, 네놈에겐 실망했다. 니엘에게 보이기 부끄럽지도 않나?”

그러나, 정작 이 모든 대화를 듣고있던 니엘은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혈육의 살아가는 방식과, 스승으로 모시리라 정한 이가 내뱉은 정론.

그 오묘한 경계 사이에서 고민을 시작한 것이었다.

반면, 악담을 들은 니코도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지.

“···멋대로 떠들어라. 제산을 늘리는 데 관심도 없는 미치광이 집단에 속한 자네는 모르겠지.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실망하고 자시고, 나의 정의는 예나 지금이나 돈에 있다. 내 방식에 달리 불만이 있다면 우릴 고용하도록 해라. 물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지만.”

“더러운 일에서 너희를 건져 줄 사람을 찾았다면 유감이다.”

“기대도 안했다네. 댁들의 물주는 어디까지나 크로이 가의 졸부들이니까.”

“용병단의 시시한 사정은 충분히 들었다. 다음은 이 마을에 대해서다.”

다소 언성 높은 대화가 오갔지만, 니코는 빅터를 적대하지 않았다.

그는 사냥꾼에게 묘한 동질감을 품고 있어.

가히 호의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오히려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빅터가 큰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마저 가지고 있었으니···.

“···후우, 자네 앞에선 자기합리화나 변명도 못 하겠군.”

긴 한숨과 함께 니코가 고개를 저었다.

“···어느 날, 새 영주 나으리께서 우리에게 새 임무를 주더군. 국경 방어가 아닌, 한 마을에 자리를 잡고 치안 유지에 힘쓰란 명목으로···. 전장에서 날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선금을 쥐여 주면서까지.”

순간, 빅터의 뇌리를 통해 니코가 경험한 순차적인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는 상대가 모든 것을 털어놓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이 마을을 봉쇄시키는 것치곤 너무 큰 대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자네··· 우리에 대해서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대답해라, 니코. 너희는 이곳에서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건가?”

몇 단계를 순식간에 지나친 것만 같은 대화.

니코는 잠시 침묵하더니, 빅터가 모든 사정을 안다고 가정한 채 말을 이었다.

“지킨다··· 라기보다 사실 억제에 더 가깝네. 쥐새끼 하나 마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지. 바깥에서 오는 상인에게 최소한의 식량 공급 정도만 유지하고서 말이야.”

빅터는 생각에 빠졌다.

니코가 꺼낸 간략한 정보만으로도, 그는 마을이 처한 대부분의 상황을 이해했다.

중요한 부분은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폐쇄적 구조의 마을.

둘은 외부의 무력집단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간절한 상황.

셋은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어떤 불길한 존재에 대해서였다.

다시금, 빅터의 입에서 날카로운 질문이 나왔다.

“그간 몇 명이나 당했나?”

“반년 사이 마흔 일곱···. 슬슬 다들 한계에 몰린 참일세.”

“자, 잠시만! 두 사람 다 갑자기 뭐야? 지금 무슨 이야길 하는 거죠? 쭉 지켜봤는데도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드디어 니엘이 끼어든다.

답답한 나머지 참견하기로 맘먹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빅터의 질문은 정취자로 하여금 혼란만 가중시켜.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해주는 니코의 태도도 그녀가 보기에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나 니코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단호하게 말할 뿐이었다.

“함부로 어른들 이야기에 끼어드는 거 아니다.”

“뭐라고요? 니코 형, 나도 이만하면 다 컸거든? 5년 만에 만나서 동생이 성장한 걸 몰라본 거 아니야?”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꼬마를 어른이라고 불러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큿···.”

니엘은 간절한 눈빛으로 빅터 쪽을 바라보았다.

다름대로 도움을 요청하는 모양이었다.

하나, 빅터는 그녀가 기대를 걸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버릇없이 굴지 마라, 니엘.”

“사, 사부님까지···.”

“네가 철없이 굴수록, 널 맡기로 한 내가 니코에게 면목 없어질 뿐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왜 두 사람끼리 아는 이야기만 줄창···.”

“네가 이해할 수 있게 세세한 사연까지 다 말했다간 새벽이 되고 말거다.”

별로 니엘의 머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빅터는 그녀에게 직접 심각한 상황을 들이미는 편이 났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니코 쪽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오게. 가능한 해가 지기 전에 보여주고 싶으니까.”

니코의 손짓에 빅터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용의 행방을 추격하던 중 이 마을에 방문한 된 게 결코 우연이 아님을···.

마는 또 다른 마를 부른다.

이때, 빅터의 품속에서 맘몬의 적석이 또 다시 불길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5.

마을에서 니코가 가진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거리를 나서는 내내, 자경단은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 인사를 건네고 있어.

대장으로 추앙받기에 충분한 인망을 가진 듯 보였다.

영주의 명령으로 강제적인 직책을 손에 넣었다곤 하나, 본래 한 집단의 리더였던 그에겐 한낱 자경단을 이끄는 일쯤은 간단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니코의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이 어디를 가리키는 지 깨닫자, 그걸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깊은 불안의 빛이 감돌았다.

민가와 광장을 지나···.

세 사람은 어느덧 열 댓 명 이상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어떤 장소에 도착했다.

“단장?”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일행이 다가서자, 그들은 즉시 니코를 알아보았다.

마을 자경단 청년들이 아니야.

이들은 전원 용병단 소속으로, 모두가 우락부락한 몸집의 소유자들이었다.

“다들 수고가 많군. 별일은 없었나?”

“있다마다요. 오늘만 해도 두 놈 쨉니다.”

“망할 것들이, 만날 질리지도 않고 기어 올라오는 지···.”

“그랬군. 조금만 더 참도록. 슬슬 교대 시간이니.”

“다음 순번엔 단장께서 직접 관리하실 겁니까?”

“아니, 나는 이들을 데려온 것뿐이다.”

따로 안내할 필요도 없이, 빅터는 이미 혼자서 조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마기의 파동을 추격하자, 병사들이 에워싼 자리에서 가장 큰 반응이 느껴진다.

그곳에는 표면이 깨져 허름한 우물 하나만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으니···.

“···하? 고작 이거?”

니엘이 니코와 빅터를 번갈아본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주변에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진 병사들에게도 시비를 걸었다.

“장정들 여럿이서 소꿉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뭔 짓이래요?”

“니엘.”

“그렇잖아요, 사부님? 정작 우리가 방문할 적엔 출구에다 젊은 남자 한 명만 세워놨으면서···.”

니엘의 불평에도 일리는 있었다.

상식적으로도 마을의 보초를 위해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보통일 터···.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들은 전혀 생뚱맞은 것에 모여 있다.

아주 심각한 얼굴로.

한껏 공포에 질려, 당장이라도 부리나케 달아나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은 채.

마치 외부의 침입자보다, 마을 내지의 마른 우물 쪽이 더 위협적이라 여기기라도 하듯이···.

“이봐, 아가씨.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고. 우리도 좋아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아무렴. 우리가 한 놈이라도 놓치면 그걸로 이 마을은 끝장이야. 아니, 그걸 넘어서 더 큰 재앙이 발생할 지도 모르지.”

“놈? 놓치다뇨?”

“단장에게 아무 것도 못 들었나? 그··· 되돌아온 망자Revenant 이야기를?”

“마, 망자?!”

니엘이 질겁하는 한편, 빅터는 심각한 표정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 속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둠이 불경한 무언가를 품고 있다.

죽은 이끼 특유의 역한 냄새 이외에도 썩은 시취屍臭가 진동한다.

축축하고 가라앉은 공기 너머에 사악한 기운이 풍겨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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