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68화 (168/186)

징조의 장(4)

7.

빅터의 두 다리가 땅에 닿자, 사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인간이 다룰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도끼.

사람보다는 짐승의 눈동자에 가까운 그 희멀건 시선에 주눅이라도 든 것인가?

정면의 선 수염 남자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이 작자 몸집이 뭐 이리···?’

사실은 말을 멈춰 세울 때부터 상대의 체구가 장난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대면해보니 눈높이부터가 달라.

어느새 그는 고개를 들어 빅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거구의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함부로 겨누지 마라.”

“뭐, 뭐라···.”

“흉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에게 들이밀지 말란 말이다.”

빅터는 왼손으로 수염의 남자가 든 창대를 잡더니···

빠직!

악력만으로 가볍게 그것을 부러뜨려 버렸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

사내는 멀뚱히 서서 자기 손아귀에 쥐여진 부러진 창과 상대를 몇 번이고 번갈아 볼뿐이었다.

“꺼져라.”

이어서 커다란 손바닥이 덮쳐든다.

그것은 거의 한 장정의 얼굴 크기에 맞먹었다.

“컥!”

짜악이 아닌 퍼엉 소리.

순간, 남자의 머리가 터져버린 것만 같은 폭음이 교역로에 울렸다.

“아티!”

수염 난 사내가 저 멀리 날아가 처박히자, 마차를 포위한 이들 중 하나가 서둘러 그에게로 달려간다.

바닥을 구른 남자는 턱이 뭉개진 채의식을 잃어 버렸다.

자세히 보니 그의 귓가에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어, 일격에 고막이 터진 듯 보였다.

“이, 이런 미친 자식! 반항할 셈이냐?”

“우린 갈 길이 바쁘다. 비키지 않으면 네놈도 같은 꼴로 만들어주지.”

“내 친구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순순히 보내줄 거 같···.”

“그럼 달리 어쩔 셈이지?”

꾸욱.

이번엔 빅터의 왼손이 또 다른 사내의 머리를 거머쥐었다.

“커, 커헉!”

엄지와 중지에 실린 가공할 힘이 양쪽 관자놀이를 압박해온다.

두상이 깨질 것만 같은 고통에 남자는 그만 손에 쥔 창을 놓치고 말았다.

“네놈들 골통엔 상상력이 부족한 모양이군. 조잡한 꼬챙이로 협박질이나 하면서, 어떻게 상대에게 당할 거란 각오도 없었나?”

“으, 으으···.”

놀랍게도 그는 다 큰 성인남자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도무지 완력으론 상대가 되지 않아.

빅터에게 잡힌 남자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어떤 행동을 지시했다.

“보리스! 당장 그 여자를··· 마차 안의 여자를 끌어내!”

명령이 내려지자 즉각 바퀴 옆에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이 움직였다.

니엘을 놓치지 않을 셈이야.

한쪽은 문을 열고, 다른 한 명이 창을 겨눈다.

위협 다음엔 인질 확보.

노상강도 무리의 비열함에 빅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놈···.”

“큭, 이제 상황이 파악되셨나? 보아하니 주먹에 자신 있는 형씨 같은데, 우린 우리대로 전략이란 게 있거든? 자, 알았으면 이 손을 당장 놓으시지?”

하지만 남자는 직후 흠칫한다.

빅터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이 두려움이나 움츠려 든 것이 아니었기에.

그것은 아무리 잘 보아도 짜증 섞인 곤란함에 불과했다.

“멍청한 자식들, 이걸로 너희가 곱게 돌아가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아직도 그딴 소릴 잘도···.”

강도 일행은 이 상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 명이 당했다곤 하나 이쪽은 네 명···.

아무리 우직하게 남자가 앞에 버티고 있다 해도, 창을 든 동료가 여자를 겨누는 한 결코 패배하진 않으리라.

그들은 안이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심각한 계산 착오였다.

왜냐하면···.

“크헉!”

“보, 보리스?!”

마차 안으로 들어서려던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부리나케 뒤로 몸을 날리며 자신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젠장! 이 계집, 칼을 감추고 있었어!”

남자의 셔츠가 새빨갛게 물들어간다.

그것은 날붙이가 깊게 찔려들어 생긴 자상이었다.

“후우, 이 아저씨는 무슨 소리래? 난 딱히 숨긴 적이 없는데요?”

콰앙!

그때, 문을 걷어차고 사냥꾼 복장의 애꾸 여인이 마차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는 착지와 동시에 바스타드 소드의 칼끝을 쓰러진 상대의 목에다 겨누었다.

“결국 저질렀군.”

“헤헤! 이걸 어떻게 참냐고요, 빅터 사부님? 암, 모험 길은 이래야지! 해적은 아니어도 산적이 있었구나? 간만에 지루함이 확 날아가네!”

“이, 이 계집년이···!”

“쯔쯔, 거기까지! 이거 보기보다 무게가 나가거든? 내 연약한 팔로는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말이야.”

니엘은 자신의 등 너머의 상대에게서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또 다른 남자가 배후에서 덮쳐들려는 찰나, 대담하게도 역으로 인질을 잡아버린 것이다.

“마차 뒤의 아저씨, 날 호구로 생각하지 말아줬음 좋겠는데? 자칫하면 이 친구 분의 사지가 남아나질 않을 거라고?”

“자, 잠깐! 달튼, 물러서! 이 계집애는 진심이다!”

“자, 충분히 알아들었지? 그럼 무기를 내려놓고 열 걸음 떨어지시지?”

“으···.”

“어쭈? 지금 인상 쓰는 거야? 내가 방금 분명히 말했지? 그거 치우라고!”

“끄아아악!”

푸욱!

니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아래로 향하더니, 그대로 남자의 왼쪽 다리에 박아 넣었다.

상대가 아픔에 소리를 치거나 말거나 전혀 아랑곳 않는 동작···.

니엘의 무자비한 응징에는 적을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데에 익숙한 경험이 담겨있었다.

“이 이상 허튼 짓은 용납하지 않겠어, 산적 형씨들.”

“아, 알겠다! 당장 창을 내려놓겠어! 네 요구를 들어줄 테니, 보리스부터 풀어줘!”

“오, 의외로 순순한데? 그래도 아직 멀었어. 가진 거 다 내놔.”

“엉?”

“귓구멍이 막혔어? 주머니 털어보라니까?”

약탈에는 약탈로 대응한다.

그것은 바다의 규율.

니엘이 상선에서 해적들을 상대할 때의 원칙이었다.

“장난이 지나치다, 니엘.”

“에이! 빅터 사부님도 참! 남 털어먹으려는 악당 놈들 괴롭히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쓰러진 남자의 목 언저리에 칼날을 더욱 밀착시키는 니엘.

그 광경을 지켜보던 빅터가 한숨을 쉬었다.

“···이쯤 되면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군.”

툭!

빅터는 남자의 머리에서 손을 때었다.

그러자 사내는 자세도 가누지 못한 채 바닥을 굴렀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졸도한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세 사람이 무력화됐어.

이제 멀쩡히 서 있는 남자는 둘 뿐이었다.

“더 해보겠나?”

가장 나이가 어려보이는 강도에게 말을 던지며, 빅터는 도끼 자루를 어깨에 짊어졌다.

노상강도들은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

이 덩치가 여태 맨손으로만 자신들을 상대했다는 것과···.

그리고 그의 한쪽 눈이 불길하고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일그러져 있다는 사실을···.

이때, 그와 대면한 사내는 가공할 압박감과 공포를 느꼈다.

검게 물든 눈빛이 마치 자신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아.

실제로 빅터의 암안은 청년의 유약한 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우, 우아아악!”

보기보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까닭일까?

아니면 빅터가 차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그는 동료들을 버리고 부리나케 달아나고 말았다.

“이제 네놈 혼자로군.”

“···항복하겠네.”

니엘에게 협박당해 창을 버렸던 사내가 두 손을 들어올렸다.

전의는 사라진 지 오래···.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비굴한 발악뿐이었다.

“내 사과하리다. 인정하겠소. 우리가 덤벼들 상대를 잘못 잡았다는 걸···.”

“그 말인즉, 지나가던 게 우리가 아니었다면 마땅히 빼앗았을 거란 뜻인가?”

“아, 아니오! 아무렴, 도적질은 옳지 않지. 변명의 여지가 없소이다. 습격한 책임은 부디 나 한 사람에게만 물어주시게.”

홀로 남겨진 남자는 그나마 양심이 남아있었던가?

그는 대뜸 무릎을 꿇더니, 서둘러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반짝이는 뭔가를 꺼내들었다.

은화.

중앙국에서 흔히 쓰이는 화폐였다.

“이, 이걸로 좀 봐주시오. 목숨 값이라 하기엔 어림없다는 건 알지만, 우리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사정이라? 지나가는 행인을 털어야만 할 정도로 어렵단 말인가?”

빅터의 물음에 남자는 잠시 안심한 듯 보였다.

무시무시한 겉모습에 비해 의외로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이 년 전에 돌연 산사태가 크게 났었네. 사람도 많이 죽었지만 그 탓에 논과 밭이 매몰 됐지. 생업이 농사뿐인 마을이라 결국 이 지경까지···.”

멋대로 하소연을 시작한다.

사연이 길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하기 그지없어.

결국 먹고 사는 문제 탓에 강도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내는 오래 전에 떠났지만 내겐 딸아이가 있네. 아직 다섯 살 바기 밖에 안됐지.”

“뭐야, 그게? 뒤늦게 감성팔이라도 할 셈이야?”

“나는 몰라도 어린애를 굶길 순 없지 않은가?”

상대가 악당이라면 망설임 없이 내리쳤을 것을···.

애절하게 매달리는 사내의 모습에, 니엘은 맥이 풀려서 검을 거둬들였다.

“···뭐, 아저씨들도 나름 이유가 있긴 한가 보네?”

“알아주는 겐가, 아가씨?”

“흥. 그래도 은화는 안 돌려줄 거야. 알지? 위자료로 챙겨야 하니까.”

“무, 물론일세.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하니···.”

남자가 쩔쩔매는 꼴을 뒤로한 채, 애꾸 여인이 싱글벙글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줍지 마라, 니엘.”

“어? 왜, 사부님?”

“그 돈에선 지울 수 없는 피 냄새가 난다.”

그러나 빅터의 눈을 속일 순 없다.

빅터는 이마에 핏줄이 설 정도로 깊은 혐오감을 드러냈다.

“역겨운 놈. 변명만큼은 청산유수로군. 정작 자기네에게 불리한 말은 한 마디도 안하나?”

암안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강도의 기억이 너무도 역한 장면들로 가득했기에···.

빅터는 달아나기 전에 강도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갑자기 왜 이러시오? 잔금이 부족하다면 마을에 들려서 더 챙겨줄 터이니···.”

“입 닥쳐. 사람 같지도 않은 새끼.”

“빅터 사부님? 뭔가 더 있는 거야?”

“잘 들어라, 니엘. 이 자식은 인신매매 상습범이다. 심지어 지금까지 꽤나 많이도 팔아먹었어.”

“그, 그걸 어떻게···?”

빅터는 말없이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가 충동적인 남자였다면 틀림없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한 강도의 얼굴을 반으로 쪼개버렸으리라.

하지만 빅터는 그러지 않았다.

남자의 기억 속에 있던 또 다른 그림자를 엿보았기 때문에···.

반면, 강도는 빅터의 기백에 눌렀는지, 어느새 소변으로 바지자락을 적신 채 애원하고 있었다.

“살려··· 살려주시오. 목숨만은 제발···.”

“그건 네 녀석 하기 나름이다.”

“예, 예에?”

“안내해라. 마을··· 아니, 네놈들의 소굴로.”

철컹!

강도의 목에 서늘한 감촉과 함께 묵직한 뭔가가 조여들었다.

빅터의 쇠사슬이었다.

“허튼 수작부리면 모가지를 날려주마.”

“힉, 히이익!”

강도는 본능적으로 겁에 질렸다.

이것은 단순한 엄포가 아니야.

빅터는 당장이라도 남자를 죽이고픈 감정을 애써 참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감응능력을 통해서 방금 빅터가 목격한 것들이 너무도 잔인한 현실이었기에.

눈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한 소녀가 보인다.

그 아이는 실어증에 걸렸음에도, 손가락이 모두 잘린 채 산 너머로 팔려나갔다.

한편, 임산부를 겁탈하는 무리가 적나라하게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녀는 유산될 때까지 수개월 간, 무려 서른이나 되는 남자를 상대했다.

또한 갓난애에게 흙이 뿌려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애물단지인 아기를 구덩이에 매몰시키는 과정이었다.

그 옆에는 땅을 팠다 묻은 수 많은 흔적이 엿보였다.

이 모든 것은 각각 개별적인 사건···.

그 일부분만을 엿보았음에도 빅터는 당장 토악질을 하고 싶어졌다.

“자비··· 제발 용서를!”

“조용히 해라. 마음 같아선 널 당장이라도 패죽이고 싶으니까.”

“잠시만요! 덩치 큰 형씨···가 아니라, 빅터 사부님! 이러는 게 맞아?”

“무슨 불만이라도 있나, 니엘?”

“아니, 그게··· 사부님이 뭘 봤는 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지금 하는 행동은 명백히 사냥꾼들 철칙에 어긋나는 거 아니야?”

노골적인 살의를 드러내는 빅터.

니엘은 그런 그의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감정적인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니엘이 알기로···.

마녀 사냥꾼은 세간에 일에 간섭하는 걸 엄격히 금하고 있지 않았던가?

“사부님, 분명 출발 전에 사바세계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금한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엄청 잘난 척 했었잖아?”

“그래. 맞는 말이다.”

“근데 지금은 왜 이러는 거야? 아, 물론 내가 건방지게 끼어드는 걸 수도 있는데··· 빅터 사부님은 잠깐 머리를 식히는 게 좋지 않을까?”

“정론이군. 통상이라면 그게 옳다.”

“그렇지? 그럼···.”

“하지만 이 자식과 마을 놈들은 내버려둘 수 없다.”

“어째서?!”

니엘의 염려와는 다르게, 빅터는 냉정했다.

타오르는 분노에 휘둘릴 정도로 그의 정신은 연약하지 않았으니···.

단지, 빅터는 니엘이 마기의 흐름을 볼 수 없단 사실이 약간 답답할 뿐이었다.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니엘, 당연히 지금의 너로서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하나, 이건 어디까지나 마녀와 연관된 일이야.”

“뭐, 뭐라고요?”

“이놈들이 팔아먹으려고 잡아간 희생자 중에서··· 마의 유혹에 빠져들기 일보직전인 여인이 있기 때문이지.”

빅터는 이미 강도들의 발자취를 통해 강렬한 마기의 흔적을 감지했다.

무수한 슬픔.

그리고 끝 모를 절망.

모두가 별 세계의 존재, 아스트랄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농도를 머금고 있어.

그것은 마을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방향에서 풍겨오는 중이었다.

“저기, 미안한데요. 그렇게 현학적 표현을 쓰면 겉으론 그럴싸해보여도··· 나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거든? 알기 쉽게 말해주면 안될까···요? 네? 빅터 사부님?”

조바심에 코트 끝자락을 잡아당기는 니엘에게, 빅터는 마지못해 한마디를 건넸다.

“자칫 이 자리에 새로운 마녀가 탄생할 지도 모른단 소리다.”

부디 늦지 않기를···.

거구의 사냥꾼은 또 한 번의 사투를 각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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