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62화 (162/186)

인도의 장(4)

5.

빅터 일행이 돌아온 지 일주일 째.

안락의 일곱 밤이 지났다.

일행은 겨우 바닥의 흔들림 없이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5년 사이, 집결지의 사정이 변했다.

본디 이곳은 장기간 투숙을 고려하지 않은 은신처.

사냥꾼들은 대게 한곳에 머물지 않아.

떠돌이처럼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근래 대스승 크레이그가 정착한 이후로 항만의 정착지는 심의 유파를 대표하는 일종의 도장처럼 바뀌었다.

그에는 두 가지 사정이 존재했으니.

하나는 바로 대스승 알베르트에 의해 정안 이식의 성공률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한 것.

두 번째 이유는 그 과정에서 늘어난 사냥꾼의 동지들이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을 장소가 필요해진 까닭이었다.

지하는 꾸준히 증축되어서 과거에 비해 두 배는 더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철날, 넓은 공동을 바라보던 빅터에게 레이는 말했다.

더 이상 이 장소는 단순한 집결지가 아닌, 신입 사냥꾼이 반드시 거쳐야할 훈련소가 되었다고.

베테랑이 아니라 실전 임무를 아직 배치 받진 못했지만, 순순한 부하들이 늘어난 것엔 여러 이점이 있었다.

레이 혼자서만 대스승의 곁을 지켜야할 수고가 줄고, 잡일을 도맡아하던 아이라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인력이 넘치기에 손님인 빅터 일행은 당장 뭔가를 할 필요가 없어.

오로지 길었던 여행의 여독을 푸는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그저 늘어진 채 허송세월만 보낸 것은 아니었으니···.

6.

앙리는 고향의 언어를 다시 익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긴 시간 동방에서 생활하느라 듣고 말하기가 녹이 쓸었기에···.

그녀에겐 출신이나 태생과 별개로 어느 정도 재활이 필요했다.

겸사겸사 리리 리와 아랑이 앙리를 통해 서양 회화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야.

언제까지고 마르의 번역 장치에 의존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당연한 처사였다.

여담으로, 아이라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앙리와 금방 편한 사이가 되었다.

연배가 얼추 비슷한 동성.

대스승 베누다를 보좌하느라 오래도록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이유로 앙리는 빠르게 아이라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둘의 관심사는 대체로 비슷했던 것은 부차적인 이야기···.

단, 어째서인지 레이가 대화에 참여하면 언제나 대화가 어색해지는 까닭만큼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반면, 로이드는 꽤나 곤혹을 치루었다.

갑작스레 큰 딸과 같은 제자 아가씨에게 연신 시달려야만 했으니.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가 니엘이 사냥꾼의 일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극구 반대한 탓이었다.

‘이봐, 애꾸 아가씨. 애초에 너는 마녀에게 원한이 없지 않았었냐고?’

돈이 되기는커녕 목숨마저 보장할 수 없다.

그것은 빅터도 몇 번이고 강조했던 이야기···.

그러나 니엘은 고집불통이었다.

마녀를 크게 증오하지 않는 건, 이 여행길에 따라온 두 소년소녀도 다를 것이 없다면서.

‘그러는 댁도 죽기 살기로 마녀 사냥하는 건 아닌 모양이던데? 솔직히 말해봐. 저 덩치 큰 형씨처럼 필사적이진 않잖아?’

‘야야, 나는 다 사연이 있어서 그런 거고···.’

‘그건 이쪽도 같거든? 5년 전에 마의 숲에서 죽어간 가족의 한을 풀어주려면 그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 안 통하는구만.’

‘누가 할 소릴?’

니엘에겐 세부적인 사정 따윈 이미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빅터는 그녀에게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을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마의 존재와 싸우려는 니엘의 각오와 의지만큼은···.

다른 사냥꾼들과 비교해서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순수했기에.

결국 레이를 비롯한 다른 사냥꾼들도 니엘의 처우에 대해선 보류.

곧 집결지로 돌아올 대스승의 판단을 기다리기로 정했다.

한편.

빅터는 다른 의미로 굉장히 바쁜 일정을 보내야만 했으니···.

7.

며칠 째 레이의 제자들은 좀처럼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앳되고 젊은 여덟 명이 매일같이 빅터의 뒤만 따라다녔어.

저마다 몰려들어 질문 공세를 퍼붓고 가르침을 요구했다.

“정안 없이 맨몸으로 사역마를 수 십 마리나 처리하셨단 게 진짜입니까?’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과장이 심하다. 실제론 레이 사저가 절반을···.”

“그러면 불과 반년 만에 이식을 받고, 첫 임무부터 중합체를 가볍게 쓰러뜨린 이야기는?”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그땐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것뿐···.”

“산만한 유성의 파편을 심록에게 날려 보내셨다면서요!”

“···.”

영웅.

혹은 유성의 주인.

어느새 빅터는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간 벌였던 사건사고가 새내기 사냥꾼들 사이에선 활극처럼 전해진 모양이었다.

상처를 입어도 물러서지 않는 회색 곰.

혹은 물소가 이끄는 중전차의 기백.

대스승 크레이그의 뒤를 잇는 2대째 학살자.

별에게 선택받은 자까지···.

이처럼 이야기 속의 빅터의 모습은 터무니없이 미화되어 있었다.

“···누구지? 대체 어떤 놈이 날 그런 식으로 포장했나?”

“그, 글쎄요? 저희는 이식을 받은 지 몇 달도 채 되지 않아서···.”

“제가 듣기론 이미 수 년 전부터 그렇게 전해져왔다고···.”

대답한 것은 이들 무리 중에 유일하게 이식을 받은 두 사람, 장신의 잿빛 더벅머리 마누엘과 일견 소년처럼 보이는 외모를 가진 주근깨 단발 소녀 에리히였다.

레이가 아끼는 수제자 둘은 빅터를 어려워하면서도 한마디라도 더 주고받으려 애를 쓰는 눈치였다.

하지만 빅터는 그들의 태도가 영 거북했다.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넘어서 손에 넣은 승리가 구전에서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유쾌한 형태로 바뀌었기에.

‘이해를 못할 것은 아니다. 나도 갓 대스승과 레이 사저를 따르던 때엔 그들을 마냥 경외했으니.’

가뜩이나 끝없는 어둠과의 싸움, 전장에선 누구나 영웅을 바라기에.

사기진작을 위해서라도 희망의 상징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빅터의 활약상은 전설로 만들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그 선전이 다소 지나쳤는 지···.

이 무렵 레이의 제자들이 빅터에게 향하는 감정은 어지간한 존경을 넘어서 있었다.

“로이드··· 그간 애들에게 어지간히 헛소릴 지껄여둔 모양이더군.”

“넌 왜 날 볼 때마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그럼 네놈보다 입이 싼 녀석을 내 앞에 데려와 봐라.”

소문의 발안자가 레이일리는 만무해, 그렇다면 입이 가벼운 떠벌이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로이드는 마지못해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아, 그거? 뭐··· 약간, 흥미를 위해서 아주 조금 양념도 치긴 했지.”

“너, 이 망할 수다쟁이 놈···.”

“왜, 임마! 모든 게 완전 새빨간 거짓말인 것도 아니잖냐? 그리고 이건 대스승 크레이그께서도 허락한 일이라고. 아니, 오히려 그 영감이 더 주책이었단 말이다!”

헛소리.

···라고 일축하기엔 로이드의 말에서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대스승까지 내 일대기를 과장하는 것에 동조했단 말인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그 완고한 대스승 크레이그가 사실은 팔불출이어서 빅터의 자랑을 널리 퍼뜨렸다니···.

“레이 사저도 알고 있나?”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셔. 그 아가씨도 네 이야기가 나오면 싫진 않았던 눈치였으니까.”

“···아니, 관두지. 이제 와서 뭘 어찌해볼 게 아니니.”

“하하, 그럼 그냥 상황을 즐기라고. 딱히 아무 것도 안 해도 귀여운 후배들이 존경해주잖아?”

그러나 빅터는 누구에게도 떠받들어지고 싶지 않았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자칫 어린 놈들이 멋모르고 설치면 어쩌려고. 나를 따라서 자기 목숨까지 가벼이 여길지도 모른다.”

하나, 이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나름대로 수년의 경험을 쌓고 이식까지 끝마친 신세대 사냥꾼들이 살짝 울컥한 것이다.

“저,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건 아무리 빅터 님이라도 너무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마누엘이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의 정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이어서 에리히가 오른 손으로 자신의 가슴 언저리를 꾹 하고 쥐었다.

“그렇습니다. 비록 출전 경험은 없지만, 저희는 언제고 이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애송이 놈들. 함부로 목숨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게 아니다. 너희가 직접 마녀와 사역마를 대면하고도 그 기세를 뻔히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 얼마든지요! 저희라면 가능합니다. 그렇지, 에리히?”

“기회만 주신다면···.”

빅터는 쓴 소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후배들의 강함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기본을 중시하는 대스승과 레이의 밑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덕분인지···.

새제자들은 대부분 나이에 비해 우수했다.

특히 레이가 곁에 항상 대동하는 마누엘과 에리히의 재능은 훨씬 수준이 높아.

두 사람은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미 이븐 가지의 가루를 다루는 법까지도 익힌 듯 보였다.

‘그렇군. 과연 자신만만하게 나설 정도는 되는가?’

염원이 담긴 마음이 전해져온다.

싸우고자하는 감정의 형태가 뚜렷해진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다음 임무에 자신들을 데려가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강한 의지다. 예전의 나처럼 물불 가리지 않는 패기가 보일 정도로···.’

마누엘과 에리히는 틀림없이 좋은 인재다.

그러나 이 둘은 젊다기보다는 어려.

그렇기에 충분히 성장하기 전까진 개죽음을 시킬 순 없다.

빅터는 며칠간 두 신입을 대하며, 어느새 과거의 자신과 겹쳐보고 있었다.

“각오가 되었다라? 정 그렇다면 대련실로 내려오도록.”

“네?”

“너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몸으로 직접 알려주마.”

“비, 빅터 님께서 지도를?”

훈련 상대가 되어 주겠다는 빅터의 선언에, 마누엘과 에리히는 마치 꿈을 꾼 것 마냥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마냥 들뜬 표정.

빅터는 예전의 자신도 레이에게 이런 허당으로 비춰졌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 사저에게 배웠다면 체술 쪽은 기대해도 좋겠지.”

“무, 물론입니다!”

“전설의 사냥꾼께서 한 수 가르쳐주신다면 저희야말로 바라는 바!!”

낯 뜨거운 소리와 함께 호기롭게 답하는 마누엘와 에리히.

하나, 결론만 말하자면···.

두 사람은 빅터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

8.

과거 도리스와 레이가 승부를 벌였던 지하 대련실.

일전을 지켜보는 관객은 아홉명이었다.

이식을 받지 못한 여섯 명의 제자.

이어서 자기네 사부를 응원하려던 리리 리와 아랑.

그리고 그 동안 발전했을 빅터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내려온 레이가 전부였다.

바라보는 눈이 많았음에도, 상황은 일방적이고 지루하게만만 흘러갔다.

리리 리가 하품을 하고, 레이는 연신 못마땅한 표정으로 팔짱만 꼈다.

정안이 없는 이들은 이해조차 하지 못해, 오직 아랑만이 이 맨손 공방에 감탄했을 뿐이었다.

‘저, 전부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야.’

부웅!

팟!

상체를 향해 마누엘이 내지른 당수와 정권이 바람을 가른다.

에리히의 눈빛이 번뜩이고, 하단을 노린 발차기가 쉴 세 없이 몰아쳤다.

두 사냥꾼은 절묘한 연계로 시종일관 빅터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총탄을 표적에 백발백중으로 맞추던 소년의 동체시력이었지만, 마누엘과 에리히의 맹공은 따라가기 벅찰 지경이었다.

이는 빅터도 내심 극찬하고 있었으니.

‘둘 다 훌륭하군. 몸짓 하나 하나가 날카롭고 묵직하다. 레이가 잘 가르쳤군.’

그러나 아랑의 눈으로 보기에, 빅터의 반응이 더욱 놀라웠다.

십 여분이나 지속되었음에도 이들 사이에선 단 한 번의 유효타가 나오지 않아.

바로 빅터가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모든 공격을 흘려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암안과 예지능력이 상대의 타격 궤도를 완벽하게 읽고 있었던 것이다.

“헉, 허억···.”

“말도 안 돼. 내 기술이, 우리의 연격이 전혀···.”

“져, 졌습니다.”

앳된 두 사냥꾼은 경악했다.

제아무리 정안을 이식한 사냥꾼이라도 전력을 다 해 수 십분 이상 날뛰면 지치기 마련.

반면에 당장 빅터는 숨찬 기색조차 찾아볼 수가 없어.

방어 일변도라곤 하지만, 이 격차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벅.

빅터는 축 늘어진 두 사람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설마하니 모자란 패자들을 조롱이라도 할 셈인가?

그의 시선은 여지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흠, 아무래도 내가 너희를 잘못 판단한 모양이군.”

“큿···.”

“레이의 제자들이 이 정도 수준이었을 줄이야.”

“그, 그 말씀은···?”

더벅머리 마누엘이 이를 악문다.

단발의 에리히가 울상을 지었다.

비참한 감정이 지하를 감산다.

필사적으로 갈고 닦은 기술이 무용지물.

마치 노력의 결과가 부정당한 것만 같아.

이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상대에게 실망을 안겼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 었다.

울분이 밀려와, 마누엘과 에리히는 자칫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몰랐다.

빅터가 직후 두 사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기대 이상이다. 너희는 갓 들어온 시절보다 나보다 훨씬 났군.”

“···네, 네?”

“내 예상보다 훨씬 우수하단 뜻이다.”

뜬금없는 칭찬에 마누엘과 에리히는 또 벙 찐 얼굴이 되었다.

인정받은 것인가?

일격조차 먹이지 못한 자신들이?

“아니, 자신을 가지도록. 너희는 틀림없이 몇 번이나 내게 공격을 명중시켰으니.”

가능성의 세계에서, 빅터는 둘의 콤비네이션을 완벽히 막아내지 못했다.

상대가 고차 예측을 하는 자만 아니었다면, 분명 마누엘과 에리히의 전술은 유효했으리라.

“레이에게 잘 말해두지. 다음 임무에서 너희의 출전을 추천해주마.”

“가, 감사합니다!”

“세상에, 마누엘 이거 꿈이지? 우리가 그 빅터 님에게 인정을 받게 될 줄이야···.”

근래 웃을 일이 늘어난 것은 빅터에게 있어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그는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 하루 빨리 강해지기만을 갈망하며 스스로의 몸과 정신을 학대하던 사내는 없어.

남은 것은 그저 자신을 따르며 동경하는 후배들을 따스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냥꾼뿐이었다.

‘그런가? 만에 하나 내가 쓰러져도 뒤를 이을 다음 세대가 있다는 거군.’

젊은 사냥꾼들과 주먹을 나누며 또 다른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일까?

또 한 번, 그는 예지에 비추는 미래의 방향은 수정했다.

보다 가혹하고, 한층 더 처절한 방향으로···.

“잠깐, 덩치! 네 멋대로 두 사람을 평가하지 마! 감히 체의 유파 놈이 어디서 뻔뻔하게 우리 제자들을···.”

“레이 사부, 그래도 빅터 님은 본래 심의 유파 출신이 아니었던가요?”

“입 다물 거라, 에리히!”

“그치만 역시 영웅은 정말 강했습니다. 어쩌면 레이 사부보다 더···.”

“너도 마찬가지다, 마누엘! 빅터가 잠깐 상대해준 걸로 둘 다 너무 들뜨지 마라!”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 레이.

비록 빅터의 판단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대스승의 결정이 나오기 전까진 두 사람을 임무에 투입시킬 생각이 없었다.

더욱이 레이가 보기에, 마누엘과 에리히는 아직 충분히 준비가 된 상태가 아니었으니.

‘불안해. 빅터 녀석은 유례없이 특별하다고 쳐도, 이 아이들까지 녀석처럼 무모하게 나서게 내버려둘 순 없어.’

당장 서양의 정세가 혼란스럽다곤 하나, 그래도 과거에 레이의 동기들이 싸우던 시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레이는 자신이 겪은 생지옥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효율적인 경험을 쌓아 제대로 된 사냥꾼으로 키워내길 바랐다.

그러나, 아직 사냥꾼들은 알지 못했다.

세계가 레이의 바람을 매몰차게 외면했음을···.

또한 빅터의 예지마저도 근 미래에 벌어질 재앙을 막아낼 순 없단 사실을···.

마누엘과 에리히가 빅터를 따라 첫 임무를 맡을 일은 영영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불과 이틀 사이···.

목이 참수되고 뱃속이 갈라진 채, 항만 도시 광장에 매달려질 운명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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