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47화 (147/186)

유혹의 장(1)

1.

“···후후, 흥미로운 상황인 걸? 아주 재미있어졌어.”

암막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쿡쿡하고 웃었다.

그녀는 지금 막 타인의 기억을 엿보았다.

빙의의 주특기, 두뇌를 매개체로 하여 발동하는 기이한 주술.

바로 청람이 경험한 과거를 수신 가능한 뇌파로 변환시켜 전달하는 마법으로···.

“굉장해. 거대 도끼를 든 무자비한 사냥꾼이라···. 떠올리기만 해도 오싹해.”

타원으로 휘어진 눈동자는 노골적으로 흥미를 드러내.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낸 아이의 얼굴로 입가에 실룩이는 물결이 나타났다.

“위협적인 적은 언제나 환영이지. 아, 두근거려. 나, 아직 살아있는 거구나?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게 실감 되. 고동이 느껴져. 이거 오래도록 멈춰있던 내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걸?”

무엇이 그리도 기쁜 것인가?

휘어지는 미소 사이로 송곳니가 내비친다.

“과연 그가 나의 아지다하카Aži Dahāka를 어디까지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것은 점점 길어지더니··· 소녀의 아래턱보다 훨씬 길게 자라났다.

요사스런 변모였다.

···아니, 사실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야.

그늘진 세계이기에 적나라하게 보이지 않을 뿐, 소녀의 육신은 끔찍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덩치가 부풀어 오른다.

금안의 눈동자가 여러 개로 갈라지며 더욱 강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실루엣은 아이의 몸집을 넘어,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진정해주십시오, 용혈이시여! 이렇게 좁은 곳에서 멋대로 신체를 재구축 하시면···.”

“후후··· 미안해, 달리아. 고의는 아니었어. 아주 가끔··· 감정이 고조되면 나도 모르게 변하거든.”

몸뚱이가 변해도 이성은 유지되는 것인가?

빙의의 지적에, 어린 외모를 가진 용혈이 순순히 사과했다.

어느새 그녀는 그림자 속에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이에 안 맞게 주책이었네. 그래도 말이야, 흑접아. 들어온 지 100년도 안 된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만은 내 심정을 이해하지? 원채 지루하게 보냈는걸. 예전처럼 놀지도 못하고 거의 수 백 년 이란 긴 시간을···.”

“그르르, 비교적 감적기간이 길지 않은 나이지만, 어느 정도 짐작할 정도는 된다. 너의 존재는 이미 인간들에게 신화나 다름없음이니.”

“그치?! 몇 세대 전에도 영웅이라 불릴 법한 인간은 태어났지만, 이번은 정말 전례가 없어.”

“가그륵, 마법 무효화Spellbreaker말인가?”

”응! 마치 최초의 사냥꾼이 현대에 부활한 것만 같아! 어쩜 이렇게 벅차지? 하아아··· 든뜬 기분이 가라앉질 않아!”

“극, 그륵! 하지만 예상 밖이다. 사냥꾼들이 별의 지혜를 이해하는데 까지 앞으로 두 세기는 더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크극··· 크그륵.”

“후후후,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그 결핍자들을 얕보면 안 돼. 인간은 뭔가를 죽이고 빼앗는 것에 한해선 가장 우수한 종이잖아? 그 무엇보다 학살을 최고의 행복이자 가치로 여기지. 하물며 구체적인 복수 상대가 있다면 그들은 일생을 바쳐서라도 기꺼이 칼을 들 거야.”

“가그르르. 놈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다.”

갈라지는 음성이 조롱 섞인 감탄을 내뱉는다.

그 특유의 부정확한 발음이 이질적이고 혐오스런 불협화음을 자아냈다.

“쿠쿡, 쿠구국··· 사정이 있어서 한동안 수를 불리는 걸 지켜봐왔지만, 역시나 한결같군. 여전히 해로운 생물이야. 황충蝗蟲의 무리와 다르지 않다.”

“너도 기쁜 것 같아서 다행이네, 흑접!”

“큭, 크쿠그크크큭!”

“하지만 너무 들떠서 군체Kolonie를 풀어버리진 말아줘. 최소한 사고기관은 남겨둬야 대화라도 통하··· 아, 너무 늦었네.”

조언은 듣지 않는다.

전신이 붕대로 감겨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여인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어.

마치 앵무새나 구관조가 억지로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만 같았다.

스르륵···.

흑접이 어깨를 들썩일 때마다 그녀의 피부를 감싼 면포 사이가 꿈틀거린다.

그것은 벌레 무리가 요동치듯 한참동안이나 날뛰었다.

‘흑접의 마녀까지 흥분하고 있어··· 급히 육망성의 원로들을 집결시킨 게 시기상조였을까?’

마의 권속으로 살아가며, 지금껏 온갖 사악한 것을 목도했을 빙의의 마녀였지만···.

그녀로서도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복마전을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까진 인간의 거죽에다 억지로 눌러 담아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 속에는 대체 어떤 사악한 뭔가가 암약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소름끼치는 광경에도 불구하고, 용혈의 마녀는 마냥 들뜬 상태였다.

“있지, 있지! 부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비교적 젊은 아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여길까?”

“···성가셔. 한 시라도 빨리 배제할 필요가 있어요.”

“의욕적인 자세 좋아!”

“···바깥 세계에 나오고 싶지 않았는데. 이이상 듣기도, 말하기도 싫은데.”

대화를 가정하지 않은 혼잣말.

신명나게 떠들어대는 용혈에 비해, 이쪽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가뜩이나 작은 속삭임이 머리에 뒤집어 쓴 면갑에 틀어 막힌 것인가?

실로 부이附耳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읊조림이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육망성의 원로들이시여. 방금 여러분께서 보신 것처럼··· 사태는 심각합니다.”

보다 못한 빙의가 다시금 시선을 끈다.

그녀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대사를 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대위기에 봉착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흐으응, 그럴까? 뭐, 홍련이나 청람이 당한 걸 보면 걱정할 만도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건 단지 걔네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못한 탓 아니야?”

마법이 봉인된다는 걸 모른 채로 상대했다.

모든 공격을 흘려 넘기는 사냥꾼의 수법에 홀렸을 뿐이다.

어느 쪽이든 일방적으로 불리한 환경···.

함정에 빠진 채로 상대한다면 당연히 속수무책이야.

그렇다면···.

“한 번 경험했으니 대비하면 그만이란다. 요는 학습능력이지. 음, 머리가 덜 여문 홍련은 몰라도··· 우리 유망주인 청람이라면 다음번에 당하지 않을 거야.”

“···맞습니다. 영민한 그녀는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겠죠. 거기다 청람은 물론, 홍련도 아직 본 실력을 내비칠 기회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랬다.

홍련의 능력은 빅터와 싸우면서 최대한 발휘되지 않았어.

마기의 제약이 없다면 그야말로 ‘최강’이란 칭호에 어울리는 마법을 몇 번이고 썼으리라.

더욱이 청람의 경우, 가장 자신 있는 중합체를 대동하지 못했다.

애초에 빅터에게 낙뢰를 떨어뜨린 구름의 사역마들은, 기껏해야 비전투용 호위체에 불과했던 것이다.

“너무 서두지 마렴, 빙의야. 천천히、느긋하게 하자고? 정말 오랜만의 호적수잖니? 모처럼 이 지긋지긋한 싫증과 권태에서 벗어날 기회야. 내 즐거움을 너무 빼앗지 말아줬음 좋겠어.”

압도적인 자신감이다.

자신이 승리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한 태도였다.

청람의 기억을 통해 빅터의 강함을 온전히 실감했음에도, 용혈이란 마녀는 자신의 패배를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과연 나의 스승 자색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마녀··· 단순히 마법의 화력만을 본다면 홍련 이상의 능력자는 없겠지만, 지혜와 지식을 고려했을 때 그녀도 지진 않아.’

육망성간의 힘의 격차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기본적으로 그녀들은 서로 동등한 입장이야.

그러나, 진지하게 서열을 나누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상하건데··· 홍련이 용혈을 쓰러뜨리는 모습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아.

반면에 승패가 뒤바뀐 경우는 간단히 그려진다.

그만큼 용혈의 존재감은 거대해.

아군이라면 이 정도로 든든한 동지는 없으리라.

하나, 빙의의 마녀는 끝내 얼굴에서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요?”

사냥꾼이 두려워.

그녀는 수 년 전에 대스승 크레이그에게 난도질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비록 정신만을 담은 고기 인형에 불과했지만, 당시에 느낀 고통과 공포는 아직도 뇌리 속 깊이 박혔다.

아주 잠깐, 탈출한 실험체를 쫓아 은신처에서 벗어난 것만으로···.

여지없이 그 회색늑대들은 따라붙었다.

나흘이나, 쉬지도 먹지도 않고서···.

기지를 발휘해 분신을 그들 앞에 내보이지 않았다면.

본체인 자신은 그때 유성의 파편에 희생양이 되었으리라.

목이 베인다.

이세계의 금속에 체내의 마기가 침식당해서 그대로 무력해진다.

그 다음에는 잔존 목숨이 바닥날 때까지 비참하게 유린만 당할 뿐···.

마치 단검이 영혼에 새겨진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경험.

빙의의 마녀는 광소를 뿜어내며 칼부림을 하던 사냥꾼의 모습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었다.

목 언저리를 조심스레 더듬으며, 빙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결코··· 그들을 얕보아선 안 됩니다.”

“흐으으응? 언제까지 그런 소릴 할거니?”

“5년 전을 떠올려주십시오. 심록의 마녀께서 돌아가신 그 날을···.”

“아아, 심록. 그 가여운 아이?”

“그 분은 동방에서 추적자들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 명의 대스승과 여러 사냥꾼. 그리고··· 빅터라는 자에게요.”

빅터···.

청람의 기억 속에서 잠깐 언급된 그 이름.

“그게 그 사냥꾼이라고? 심록을 살해한 사내와 동일인물?”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어쩐지 익숙해, 용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되묻는 용혈에게, 빙의는 고개를 다급히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용혈이시여. 그 흔해빠진 이름은··· 일전에 자색께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요.”

“아, 맞아! 그랬었지! 예전에 자색이가 뭐에 홀린 듯이 떠들어대던 그거?”

이 순간, 용혈은 천진난만한 소녀의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대충 전말이 드러난 것 같네? 자, 그럼 어떻게 된 거야? 그 남자는 누구? 네가 한창 인간 놀이하던 시절에 사귄 옛 애인이야? 아이, 궁금해! 이제 슬슬 설명해줄 때도 되지 않았어?”

허공의 저편.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의 구석이었지만, 용혈의 마녀의 금빛 눈동자엔 분명 어떤 존재의 모습이 치워지고 있었다.

“왜 아무런 말도 안 해? 아직 대답해줄 생각이 없어? 섭섭하네. 설마 오랜 친구인 날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자, 잠시만요! 용혈이시여. 제 스승께선 아직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응? 뭐?”

“실은 좀 전에 안정상태에 들어가셨습니다. 온전히 대화를 나누기엔 상황이 곤란하···.”

“지금 장난치는 거니? 그로부터 벌써 5년이나 지났잖아? 그 이후로 쭉 이 상태라고?”

“그게··· 필요한 순간엔 주도권을 되찾으시는 듯 보입니다만, 다른 인격의 반항이 예상보다 훨씬 너무 심해서···.”

“흐으응, 그래?”

“그러니 그녀를 너무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떠들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불순물이라, 용혈께서 말을 걸면 괜히 기분만 상하시지 않을까 염려가 듭니다.”

“그렇단 말이지?”

용혈은 턱을 굈다.

흥미와 호기심이 표정에 넘쳐.

빙의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쉽사리 물러날 의사가 없어 보였다.

“데려와 봐. 간만에 얼굴 좀 보게.”

“고, 곤란한 요청이십니다. 용혈이시여···.”

“나 말고도 자색에 대해 궁금한 사람?”

“이 몸은 듣고 싶은데.”

“저도요.”

흑접의 마녀는 침묵.

부이의 마녀도 무관심.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홍련과 청람이었다.

“어때? 둘 다 머리는 좀 식혔어?”

“흥.”

“···실례했습니다. 용혈 언니.”

무용한 싸움 끝에 겨우 냉정을 되찾았는지, 두 마녀는 중앙의 육각형을 향해 걸어 나왔다.

양쪽 다 엉망인 몰골.

그을린 피부와 타들어간 머리카락이 가관이었다.

그 꼴을 보고 있기 괴로웠던지, 빙의는 또 한 번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홍련과 청람의 알몸 위에는 로브가 덧씌워졌다.

“···이게 마지막 두 벌이에요. 더는 남는 옷이 없으니 이 이상 훼손하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다.

용혈은 여전히 자색의 상태에 궁금증을 품고 있었기에.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다섯 중에 셋이 동의했네? 자, 그럼 어서 네 스승을 데려와 줘.”

이를 어쩐다.

속으로 그렇게 대뇌이며 빙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비록 동맹 관계에 있다곤 하나, 무력화된 자신의 스승을 다른 마녀들에게 내보이다니?

“얼른! 내 지시를 거역할 셈이니? 아니면 내가 직접 그 같잖은 차단막을 찢어야만 순순히 따를래?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깟 공간 따윈 얼마든지 해치워버릴 수 있다고? 응? 달리아? 혹시 그걸 원해?”

힘의 차이는 역력하다.

더욱이 진명을 아는 상대에게 언제까지고 대들 수도 없다.

빙의의 마녀는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스승이시여! 은혜로운 자색의 마녀여! 하지만 이건 절대로 배신이 아닙니다! 맹세코 저는!’

“네네! 어차피 당사자는 듣지도 못할 테니, 그쯤하고 어서!”

“···.”

협박이 버무려진 재촉에 마지못해 차원을 조작한다.

빙의의 마녀가 손짓하자,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쭉 같은 세계에 존재했지만 지금껏 보이지 않던 자.

바로, 붉은 머리의 여인이···.

“아, 아아···.”

애처로운 신음과 함께, 양손목에 채워진 사슬이 금속 특유의 소리를 낸다.

축 늘어진 몸은 갈비뼈가 내비칠 정도로 야위어 있어.

당장이라도 아사할 것처럼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사소한 문제.

허벅지와 종아리에 박힌 나무 말뚝과 더불어, 가죽이 완전히 벗겨진 채, 뻥 뚫린 눈에 비하면 그쯤은 별것 아니었으니···.

그것의 두상은 거의 해골.

피부 아래를 쥐가 파먹은 흔적이 역력해보였다.

모습이 드러난 적발의 여자의 몸에는 적나라한 학대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오랜만이야, 자색아. 나 기억하겠어?”

“···아으, 우으···.”

“응? 뭐라고?”

용혈은 해실거리면서 상대를 바라봤지만 붉은 머리의 여인은 고개를 들지조차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나, 성대와 식도가 남아있지 않은 여인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낼 리는 만무했다.

“빙의야, 수중에 영양액 남는 거 있어?”

“용혈이시여, 그건···.”

“내놓으렴. 아주 조금만이면 되니까.”

결국 빙의는 품 속에서 작은 약병을 하나 건네었다.

형광색의 액체.

그것을 소량 흩뿌린 것만으로, 빨간 머리 여자의 입가에 순식간에 새살이 돋았다.

“하, 하으으··· 아아.”

“어때? 이제 날 알아보겠니?”

용혈의 상대의 붉은 머리칼을 잡고 강제로 들어올렸다.

안구가 없는 두 눈덩이는 여전히 비어있는 채였다.

이윽고 여인이 힘겨운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으, 만···.”

애원인가?

끝없는 고통의 순환을 여기에서 끝내주길 바라는 것인가?

목소리는 보다 선명해진다.

빙의의 마녀가 개발한 영양액이 확실히 그 효과를 내주어, 발성기관의 재생을 도왔기에.

“이제, 그만··· 해요. 증오에 사로잡혀선 안 돼. 잘못을 저질러서는···.”

아니, 아니었다.

그녀가 말하려던 것은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부탁이에요! 그러지 말아요! 더는 아무도 죽이지 말아줘요! 당신들을 위해서라도, 이 이상 세상에 불행을 퍼뜨리는 짓은···!”

피눈물과 함께 이어지는 간곡한 외침.

일말의 흑심도 없는 여의사의 간청이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클라리스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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