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환의 장(1)
1.
일행은 여명이 내리자마자 마을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음냐아··· 전병은 다 내꺼야. 아무도 안 줘어어··· 부침개 하나만 더···.”
“빅터 사부··· 로이드 사부··· 저는 놓고 가지 말아주세···.”
“얼씨구? 이 꼬맹이 놈들, 꼴 한 번 가관일세. 아주 곯아 떨어졌구만?”
무리도 아니었다.
초인적인 체력을 가진 로이드나 빅터와는 달리, 어린 두 제자는 축제의 피로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아랑과 리리 리는 몽롱한 상태로 마차에 태워졌다.
“우리 고생은 꿈에도 모르는 모양이야. 살짝 섭섭한 걸. 안 그러냐, 빅터?”
석탄으로 얼굴에 낙서라도 해줄까?
로이드는 광장에서 타다 남은 장작을 하나 집어 들어 저 혼자 낄낄 거렸다.
그 모양새가 한심해보여, 막 말에 오를 준비를 마친 시안이 저 멀리서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자칫 창피한 짓을 할까싶어, 빅터는 당장 로이드를 제지했다.
“그냥 내버려둬라. 다 큰 어른이 애들 상대로 뭐하는 짓인지···.”
“이것도 다 애정이야. 귀여워서 그러는 데 뭘.”
“로이드, 그런 걸 팔불출이라고 한다.”
“아앙? 총각인 나한테는 과분한 소리 아니냐?”
“그래. 만에 하나라도 너는 결혼하지 마라. 좋은 꼴을 못 볼 거 같으니.”
“뭐, 임마?”
“너는 연일 아내에게 잡혀서 살고, 자식 걱정으로 발만 동동 구르는 그런 부류다.”
“웃기지 마, 이 자식아! 아니, 라기 보다 애초에 상대가 있어야 그런 꿈을 꾸던지 말던지···.”
“네겐 마르가 있지않나?”
“야, 이···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는 관두라고! 하다못해 사람을 좀 예시로 들면 안 되겠냐?! 촉수 투성이 괴물 말고 사지 멀쩡한 인간으로 말이야!”
“말이 심하군. 자기 마누라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러니까 누가 내 마누라냐고!”
“그러다 미움 받는다.”
“알게 뭐냐!”
마르가 잠들어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마침 그녀는 로이드의 건강점검을 겸하며 새 육신에 적응하기 위한 동면에 들어간 상태였다.
“체, 용들이랑 부대낀 동안 너도 어지간히도 변했나 보다? 감히 날 여자 문제로 놀릴 정도로 간이 커지다니···.”
“그렇게 이상한가?”
“정색하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라. 이건 칭찬이니까.”
“고맙게 받아들이지.”
“바로 그거야! 그런 면이 많이 둥글어 졌단 거지!”
농담의 방향성이 틀리다.
맞장구치는 빅터의 태도도 일전에 동굴에서 보내던 때와 사뭇 달라졌다.
빅터는 마차에 마지막 짐을 밀어 넣고서 살짝 쓴 웃음을 짓더니.
“이해해라. 내가 3년 만에 인간을 겨우 다시 만난 입장이란 걸 잊지 말아다오.”
“아, 그러셔? 그건 진짜로 웃기구만! 무적의 빅터 님께서 외로움을 느끼셨다라?”
“그래. 나도 사람이 그리웠다.”
시원스레 인정해버린다.
이때 로이드는 실감했다.
빅터가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괴리도 함께···.
“뭐, 그건 그렇고···.”
급격히 분위기가 어색해질라.
로이드는 익살꾼의 기지를 발휘해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떻게든 해결했구나, 우리들 말이야.”
“음.”
단 하루뿐인 방문.
리리 리나 아랑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주 잠깐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로이드가 체감한 수십 일은 결코 짧지 않았다.
‘뭐, 빅터 녀석에 비하면 나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말이야.’
돌이켜보면 많은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은 단순 조사나 정찰 정도일 거라 생각했던 임무에서 온갖 해괴한 사건을 겪어야만 했어.
아무리 뛰어난 학자나 탐험가도 도달하지 못할 세계의 일면을 엿보았다.
몽환적인 무릉도원의 정체를 밝히는 걸 넘어서, 또 다른 시공의 영역에까지 인간의 발길이 닿은 것이다.
‘거기다 엑조틱 마르와의 만남에··· 나는 죽음의 경계에서 새로운 눈을 손에 넣었지.’
“그래도 어쩐지 손해만 본 느낌이란 말이야.”
“뭐가 말이지?”
“찝찝하지 않냐? 아무래도 득을 본 기분이 안 들어. 결국 우린 여기서 뭘 얻었고, 뭘 잃었지?”
“이미 지난 일을 따져봐야 무의미하다.”
“윽, 그러지 좀 마라. 네가 무슨 득도한 수행자가 꺼낼 것 같은 말투로 지껄이니까 닭살이 돋으려 하니까.”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나? 우린 할 만큼 했다.”
“그거··· 네가 말하니까 왠지 좀 의외인데?”
“왜지?”
무미건조한 빅터의 태도에 로이드는 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초자연적인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그가 이런 식으로 가볍게 넘기다니?
“아니, 그게··· 너라면 분명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거든? 너 그런 거 엄청 싫어하잖냐? 부조리한 운명이니, 상황에 휘둘리는 안 좋은 비극 같은 뭐시기···.”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은 또 왜 초연한 건데? 마기에서 모처럼 해방시켜 놨더니, 이제 순순히 죽을 운명을 받아들이는 마을 사람들한테 열 받을 만도 하지 않아?”
“걱정마라. 이젠 괜찮으니.”
“엉? 뭐가 괜찮단 거냐? ‘이제’라는 건 또 뭐고?”
“거기까진 몰라도 된다. 나는 다른 가능성의 세계에서 너와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너는 오히려 나를 설득해주었지. 아픔 없이 떠나는 저승길도 누군가에겐 구원이 될 수도 있다면서.”
“어, 분명··· 그건 내가 할 법한 소리긴 한데···.”
“그러니 이제 와서 마을 사람들의 처우를 논해봐야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짜샤, 너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그냥 물 먹이는 거 아니지? 자꾸만 대화가 엇나가는 기분이 드는데···.”
“설명은 나중에 천천히 하마.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3년이란 세월이 영향을 주었나?
아니면 예지 능력을 손에 넣은 까닭에 성격이나 사고방식마저 변해버린 것일까?
로이드가 묘한 불안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빅터는 수상하리만치 평온한 모습이었다.
틀림없이 뭔가가 있어.
하지만 로이드는 자세한 사정을 깊게 파고들 생각까진 없었다.
‘뭐, 녀석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지.’
전우를 믿는다.
인간의 목숨에 한해, 빅터가 언제나 진지한 놈이란 걸 익히 알고 있었기에.
하나, 사실은 조금 달랐다.
빅터는 숨긴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아니나 다를까···.
“···사냥꾼들이시여!”
언제든 마을을 떠날 수 있게 되었을 쯤, 이별을 아쉬워하는 누군가가 다가왔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미래를 읽는 예지의 무당이었던 자.
지금은 단지 특이한 외모만이 남은 순백의 여인, 희나였다.
그녀는 왠지 매달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두 분께선 어째서 이렇게 서두르시나요? 안 그래도 어제 막 힘겨운 싸움을 마치셨는데, 저희 마을에 조금 더 머물지 않으시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우리는 이 마을에 더 이상 볼일이 없어.”
“부디 제가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대접하겠습니다. 피로가 가실 때까지 충분히 모실게요.”
“사양하지.”
“야, 빅터. 모처럼 무당 아가씨가 권하는데, 그렇게까지 매정하게 대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감사는 어젯밤에도 실컷 받았다. 남은 건 과거를 잊고 내일로 나아가는 것 뿐.”
“또 의미모를 소리만···.”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저 여인은 아랑에게 볼일이 있다.”
“으음?”
“제대로 작별 인사를 건네고 싶어서 찾아온 거지. 내 말이 틀린가?”
“그, 그게···.”
빅터가 그렇게 말하자, 희나의 얼굴에 동요의 빛이 나타났다.
양쪽 뺨에 혈기가 도는 게 뻔히 보일 정도였다.
빅터가 마음을 읽는 힘이 있는 시점에서, 진심을 숨겨봐야 의미가 없어.
희나는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네. 부탁드립니다.”
그 대답에 빅터는 마차에 손을 뻗더니.
“아랑, 일어나거라.”
“으. 아?”
“너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
“비, 빅터 사부?”
부름에 놀란 듯 눈을 뜬 아랑, 하지만 그는 아직 비몽사몽한 얼굴이었다.
잠에 취한 채 마차 아래로 내려오는 소년에게, 새하얀 그림자가 덮쳐들었다.
자기보다 한참 작은 키의 사내아이에게 희나가 갑자기 안겨 든 것이다.
“···아랑, 당신 덕분이에요.”
“무, 무당 누나?!”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저께까지만 해도 바꾸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죽음이··· 바로 어제 개변되었어요. 당신이 절 생환의 길로 이끈 거랍니다.”
눈물.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기쁨이 섞인 울음이 터져 나온다.
사실 희나는 빅터에게 예지능력을 건네주기 이전부터 많은 걸 내친 상태였다.
정해진 날, 자신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재앙을 맞이한다는 걸 이미 알았기에···.
지금까지의 모든 미래시가 항상 이뤄지는 걸 보아온 그녀로서는 조금의 희망도 품을 수가 없었다.
희나가 바랐던 건, 그저 마을 사람들이 마기의 영향권에서 해방뿐.
자신의 생환 따윈 처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느껴지나요? 제 심장이 아직 뛰고 있는 게···. 이렇게 따뜻하게 온기를 느낄 수 있어요.”
“아, 아으으···.”
아랑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여인이 가슴골 사이로 소년을 강하게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희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감격의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정말 감사해요. 여러분 덕분입니다. 비록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라고 해도, 조금이나마 이 감정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셔서···.
“이봐, 아가씨. 다 좋은데 말이야.”
“네?”
“그러다 애 찌부러지겠어.”
“앗?! 죄, 죄송해요! 제가 그만 주책을···.”
희나가 겨우 아랑을 풀어줬다.
하얀 여인은 신비한 외모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방정을 떨며 아랑에게 사과했다.
한 차례 소란이 지나간다.
덕분에 상황을 더 시끄럽게 만들 인물까지 깨워버렸다.
“끄으아, 빅터 사부우우··· 아침부터 무슨 일이래요? 귀청 떨어지겠··· 어, 어라? 하얀 무당 언니? 지금 내 동생한테 뭐하는 거?!”
내놔!
···라며 리리 리가 마차를 열어젖히고 뛰어들었다.
소녀는 양팔을 조여 소년의 목을 있는 힘껏 휘감아버렸다.
의도치 않은 교살의 자세에 아랑은 발버둥.
리리 리는 잠에서 덜 깨어나 난동을 부렸고, 그에 깜짝 놀란 희나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좋은 얼굴이군.”
“빅터, 너 방금 아가씨의 미모를 칭찬한거냐?”
“그게 아니다. 저 표정을 봐라.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생기가 넘친다.”
“아, 그건 그래.”
미래를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된 무당이란, 정말로 평범한 여자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돌발 상황에 놓인 것이 즐거워.
어느새 희나는 난처해하면서도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감정표현이 유창한 아가씨였었나?
마치 모든 굴레에서 해방된 것 같은 모습···.
더 이상 기이한 순백의 외모가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될 정도로 자연스러운 미모였다.
그래서 였을까?
눈치가 빠른 로이드조차 희나에게 일어난 이변을 깨닫는 게 늦어졌다.
“아니? 아가씨, 설마?”
“예? 사냥꾼이여, 갑자기 왜 그러시죠?”
“잠깐 실례···.”
로이드는 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희나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여인의 턱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이게 어떻게 된···.”
“아?”
로이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착각이 아니야.
아주 희미하지만 틀림없이 있다.
색깔이···.
희나가 띠고 있는 피부에 생기가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눈동자는 짙어지고, 백발이라 생각했던 머리칼의 뿌리에서도 옅은 갈색이 돋아나 있다.
마치 저주가 풀린 마냥···.
백자나 벽옥을 연상시키던 흰색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다소 창백할 뿐인 우윳빛이 온기를 품고 있었다.
기적인가?
신비한 초자연적 힘이 고통받던 인간을 불쌍히 여겨서 진짜 구원을 전해준 것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세계는 인간이 어떻게 되던 간에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그런 꿈같은 일이 아무 대가도 없이 벌어질 리 만무해.
로이드는 최대한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으려했다.
그리고 그때, 빅터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미 말했을 텐데.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다고.”
“···참 재주도 좋은 자식이라니까. 뭔진 몰라도 네가 뭔가 저지른 거지?”
대꾸도 없이 마차 안으로 들어서는 빅터.
로이드는 그 모습에 허탈한 실소를 내뱉었다.
“아니, 그러면 그렇다고 진즉 말해주지 그랬냐, 좀!”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대충이나마 그럴싸한 가설 하나 정도는 떠올랐어.
그것은 빅터가 가진 도끼의 능력이었다.
어둠의 힘을 무효화시키는 유성의 파편.
마녀의 마법조차 원천봉쇄할 정도로 강화된 빅터의 능력이라면···.
오랜 세월 동안 마기에 잠식된 주민들의 육체에도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하고.
자세히 보니, 마을을 둘러싼 주변에는 미세하게 반짝이는 입자들이 떠돌고 있어.
빅터는 밤새 그것을 풀어놓고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시술을 행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바로, 그들의 폐가 마기가 섞이지 않은 공기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수의 땅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이 마을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자유를 만끽하게끔.
“일이 너무 잘 풀려도 불안한데··· 부작용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지?”
“모른다. 나도 처음 시도해본 거니까. 죽느냐 사느냐는 앞으로 그들의 의지에 달렸지.”
“역시··· 만능까지 기대할 순 없나?”
“살아갈 의지만 있다면, 당장은 숨쉬기 힘들어도 반년쯤 지나면 알아서 적응할 거다. 마기에 오염된 육체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뿐이니. ”
“그건 그나마 좋은 소식이네.”
“괜찮겠지. 희망을 찾아낸 인간의 숨은 한 없이 질겨지니까.”
이어서 빅터는 마차 밖의 아랑에게 손짓을 했다.
슬슬 출발하자는 그 신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시안과 요마멸살대의 무리들···.
소년은 살짝 늦게 행동을 취했다.
집요한 리리 리의 방해를 뿌리치고, 아랑이 고개를 숙인다.
희나에게 인사를 끝내기 위해서였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무당 누나,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요. 잘은 몰라도, 미래 같은 거 안보여도 사는데 지장은 없으니까. 음,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죠?”
“···안녕히.”
흉터가 진 소년의 눈가가 웃음은 띤다.
묘하게 어른스런 웃음.
나이에 걸맞지 않는 조숙함이 담긴 표정이었다.
그 외에 따로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대답이나, 지키지 못할 약속 따위는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랑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누이에게 그렇게 배워왔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희나는 소년의 표정에서 속내를 읽어냈다.
명백한 거절.
아마 다시 마주볼 일은 없을 거란 표현이었다.
소년은 어렸지만, 자신이 아직 이성간의 애정을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는 정도는 알았다.
희나가 보내는 호의가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짐작하면서도···.
창부로 살아온 누이의 일생을 지켜본 입장에선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어.
기약이 주어지지 않는 고독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아랑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소년은 마부석에 올라가 고삐를 쥐었다.
그리곤 뒤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자,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들어온 입구를 통해 바깥 세계로 나아갔다.
멀어진다.
이윽고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흐려졌다.
마차의 실루엣이 작은 점으로 변하기까지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희나는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