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37화 (137/186)

역습의 장(3)

3.

창공에는 어느덧 뇌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젠장! 이건 무슨 일이냐고!”

언덕에 번개가 쳤다.

갑작스레 내리박힌 벼락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 로이드는 서둘러 사당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아래로 급히 내려오는 두 그림자가 보였다.

하얀 무당인 희나.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이끄는 아랑이었다.

“야, 꼬맹이!”

“로이드 사부!”

“둘 다 다친 곳은 없지? 무당 누님도 무사하고?”

“아랑이 저를 지켜줘서···.”

“든든하네. 역시 내가 점찍은 제자 다워. 잠깐 사이에 얼굴이 아주 사나이 다워졌는 걸. 작전은 잘 성공한 모양이지?”

“그게··· 처음엔 빅터 사부가 말씀하신 대로였는데.”

“였는데?”

로이드는 아랑에게 사당에 나타난 또 다른 불청객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청람이라 불리는 마녀의 출현···.

그 이름을 듣자마자, 로이드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좀 작작 하지, 아무리 나라도 이젠 중과부적인데.”

강인한 사냥꾼의 육체와는 별개로, 로이드는 슬슬 정신이 따라가질 못한 지경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하루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어.

자광석 투성이의 동굴 속에서 귀환했더니, 뜬금없이 예지 능력을 각성한 빅터가 시공까지 초월해버렸다.

그리곤 그의 말대로 진짜 육망성의 홍련이 출현하질 않나···.

심지어는 이제 우레를 적으로 돌리다니?

“로이드··· 사부?”

“아? 어, 너는 걱정할 필요 없어. 다 잘 풀리고 있으니까?”

하나, 그는 애써 아랑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랑, 너는 아래에서 꼬마 아가씨를 돌봐줘. 보나마나 칠칠지못하게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있을테니 말이지.”

“사부는요?”

“나는 우리 덩치랑 합류해야지. 그 놈 혼자서 활약하게 내버려두면 나중에 내가 으스댈 자랑거리가 줄어든다고. 영웅 빅터님의 들러리 신세는 폼이 안 살잖아? 그럼 나 혼자만 배알 꼴리니까.”

“···.”

“아무튼··· 그럼 알았지?”

번쩍!

잠깐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 다시금 몇 번인가 하늘이 빛났다.

그때마다 뒤늦게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쳇!”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로이드는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층계를 다섯 칸 이상 씩 오르며, 그는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정상에 도달했다.

“빅터!”

“···로이드, 오지 마라!”

“허억!”

순간, 로이드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콰르릉!

그가 사당에 등장하자마자, 또 한 번 굉음이 울려 퍼진다.

하나, 상식으로 널리 알려졌듯···.

번개는 소리보다 빠르다.

눈치 채기도 전에, 이미 지상에는 뇌신의 응징이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충격파가 인다.

달궈진 공기가 급속도로 팽창했다.

수 초 뒤, 시야가 돌아온 로이드가 겨우 한 마디를 꺼냈다.

‘···지, 지릴 뻔 했네.’

다행히 운이 좋았다.

로이드는 가까스로 방광 속의 내용물을 지켜냈다.

더욱이 목숨도 부지했다.

전격의 창이 지면에 떨어진 곳은 로이드가 서 있던 자리에서 약 1미터 벗어난 위치였기에···.

“···더 이상 우연이라 치부할 수 없겠군요. 또 빗나가다니.”

얌전한 말투로 난색을 표한다.

목소리의 주인인 지붕 위 소녀는 빅터 쪽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당신이 뭔가를 한 모양이죠?”

“글쎄.”

빅터는 능청을 떨었다.

하지만 속으론 꽤나 긴박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어.

벼락을 다루는 청람이 보통 이상임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뭔가 힘을 숨기고 있어.

그녀의 진가가 단지 천둥벼락뿐만이 아니란 걸, 빅터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곤란하게 됐군. 불꽃 다음은 번개라···.’

자연의 힘을 다루는 마녀가 둘···.

더욱이 새로 나타난 쪽은 한층 더 이질적인 외모를 뽐내고 있었다.

자연은 언제나 온갖 색으로 치장하며 세상의 신비를 표현하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파란색 머리는 존재할 수가 없다.

인간에겐 쪽빛을 만들어내는 인자가 내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색소가 없다.

아니, 사실은 우리 인간이 파랗다고 느끼는 것마저도 오묘한 빛의 눈속임···.

벽안은 물론.

바다, 그리고 하늘조차 엄밀히 말해 청색이 아니다.

우리 눈에 푸르게 비치는 것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빛이 조화를 부리기 때문이다.

정말 푸른 빛깔을 띠는 것이 아니라, 산란된 광선이 사람으로 하여금 기이한 환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말로 인간의 눈에만 의지해선 곤란하군.’

하지만 빅터가 보기에, 진실된 색깔은 달랐다.

청람이라는 마녀가 지닌 본래의 머리칼은 기이하기 짝이 없어.

그것은 사실 투명한 프리즘과 같았다.

설마하니, 이 마녀는 빛의 파장마저 왜곡 시킬 수 있단 말인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빅터는 새로이 나타난 적에게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날카롭게 곤두선 빅터의 신경과는 달리, 산 너머에선 은은한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뭐, 됐어요. 괜히 사냥꾼 따윌 상대해봐야 시간낭비인 걸. 어차피 내 목적은 이 덜떨어진 여자를 데리고 가는 것뿐이니까요.”

찰랑.

아무렇게나 풀어둔 하늘빛 머리칼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무릎까지 닿을 정도의 옅은 남색 원피스 치맛자락도 함께 흔들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란 여인이 나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에둘러 꾸민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정.

그녀는 상대에 대한 조소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도 한심하네요. 뭘 꾸물거리고 있나 했더니··· 육망성 씩이나 되는 마녀가 고작 한 명의 인간에게 고전하고 있었던 건가요?”

어찌 보면 요염하고, 다르게 보면 이지적이기도 한 그 생김새에는···.

묘하게 빅터의 은인이 품고 있는 애수에 찬 모습과 은근히 닮아있다.

특히 눈매가 비슷해.

그것이 고압적이면서도 무기질한 더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과연, 딸에게도 아버지의 흔적이 적지 않게 남겨지는 것인가?’

앳된 마녀와 대스승을 겹쳐보며··· 아주 잠깐, 빅터는 그런 감상을 품었다.

한편, 마녀들의 대화는 예상보다 살벌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왜 아무 말도 없죠? 변명이라도 좀 해보지 그래요?”

“크으···.”

“말문까지 막혔나요? 최강이란 칭호가 아까울 정도네요.”

“다, 닥쳐!”

“정곡이었죠?”

“네까짓 게 감히··· 어디 100살도 안 먹은 신입 주제에! 한참 대선배인 이 몸에게 막말이야!?”

“그래요. 그 대선배께서 우리의 원대한 목적까지 잊고, 중요한 명령에서 벗어나 멋대로 날뛰셨다 그거죠? 이 사실을 그분께서 알게 되면 과연 뭐라고 하실까?”

“너··· 멋대로 아가리 놀리면 죽여 버린다!”

“이제 와서 시시한 위협이라? 홍련 언니는 여전히 귀엽네요. 마치 철없는 소녀 같아서.”

“내가 장난치는 것 같아? 너 따윈 언제든 태워줄 수 있어! 어디가 좋지? 가슴팍에 달린 지방부터 녹여주랴? 아니면 그 예쁜 얼굴부터 지져줄까?”

“그럼 어디 한 번 해보시죠.”

할 수만 있다면.

···이라고 말하며 청람은 가벼운 모욕을 이어갔다.

“타고난 지혜조차 없는 불쌍한 여자. 배움을 거부한 탓에 수셈은커녕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제가 친절히 설명할게요. 여기서 댁을 죽이면 내 서열은 더 이상 막내가 아니게 된답니다. 어디보자, 이쪽한테 딱히 손해 볼 일은 없겠는 걸요?”

“···내가 퍽이나 우습게 보이나 보네, 우리 귀여운 막내 씨는!”

“물론이죠. 특히나 잔여 목숨이 하나 뿐인 상태인 지금은 더욱 더.”

표독스런 두 여인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내 먼저 인내심을 보인 건 의외로 홍련이 먼저였다.

그녀는 갑자기 표정을 어른스럽게 바꾸더니.

“그래, 그래. 내가 졌어. 이 몸이 경솔하게 나온 탓에 지체된 거야. 잘못했어. 사과할게. 됐지?”

거짓말처럼 안정된 목소리를 냈다.

그 짧은 순간, 냉정을 되찾도록 뇌의 분비물을 조정한 결과물이었다.

“화해하자, 청람. 우리끼리 싸워봐야 득이 될 건 없으니.”

“겁먹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으시는 건 어떨까요?”

“후, 어느 쪽이 멍청한지 모르겠네. ···잊었나본데, 이 몸을 조금만이라도 건드려 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실험 해보겠어? 네 목숨이 몇 개가 있든 간에, 영원영겁 타죽을 뿐인 불지옥을 경험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건 사양하겠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 힘을 쓸 때는 지금이 아니니까요.”

“킥, 너야말로 쫄았으면 쫄았다고 솔직하게 말하시지.”

“인생을 허투루 하는 것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인 홍련 언니, 말은 신중하게··· 그리고 충분히 생각한 다음 내뱉는 거랍니다.”

얼핏 마치 절친한 사이끼리 즐기는 농담 같은 태도였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본심이 전혀 장난이 아니었다.

이들은 진정 서로를 경멸하고 있었다.

“···야, 빅터. 저 마녀 계집애들, 지들끼리 좋다고 신나게 지껄이는데?”

“음.”

“슬슬 열 받으려고 하는데 말이야. 우릴 아랑곳하지도 않는 게 특히···.”

“아서라, 로이드.”

“넌 아무렇지도 않냐, 빅터? 저 꼴들을 보라고! 널 앞에 두고 태연하게 만담이나 하고 있잖아?”

로이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장난치나··· 요즘 마녀들 사이에선 사역마도 없이 나대는 게 유행인가 보지? 홍련은 그렇다쳐도 저 새파란 계집까지 맨몸으로 돌아다니다니···.”

“아니, 사역마는 있다.”

“앙?”

“저 하늘 위에, 산꼭대기보다 훨씬 높은 곳이다. 아주 보란 듯이 대동하고 있군.”

“대체 뭐가 있단 거야? 내 눈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잘 봐라. 적란운 속에 일체화되어 있으니.”

“설마, 저 구름이··· 사역마라고?”

마기를 중화시키는 빅터의 힘이 통하지 않을 만도 했다.

청람이 쏴 갈기는 번개는 해발 10킬로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잘 들어라, 로이드. 지금 이 주변에는 어디서든 벼락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무효화 시키는 데도 한계가 있어. 지면에 박힌 내 도끼가 그 파장을 교란시키고 있어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상태지.”

“오호라, 그래서 네가 어울리지 않게 굳어만 있었던 거냐? 어른씩이나 돼서 벼락이나 겁내고?”

로이드는 실실거렸다.

전황을 알았으니 돌파할 방법을 곧바로 찾아낸 것이다.

“그럼 해결 됐네. 내가 미끼가 될 게.”

“헛소리할 때가 아니다.”

“걱정마셔. 마르와 융합한 뒤로 몇 번인가 찌릿찌릿을 당했다고. 이 몸이라면 벼락 한 두 방쯤 견디겠지. 그럼 그 틈에 네가 다른 방향에서 달려들면···.”

“그런 문제가 아니야. 지금 홍련의 몸속에는 불꽃의 아스트랄이 잉태해있다.”

“···잠깐, 너 지금 뭐라고?”

빅터는 그것에게 유성의 파편마저 녹여버릴 위력이 있다는 걸 덧붙였다.

“···거의 태어나기 일보직전이지. 이대로 목을 치면, 이 일대는 흔적도 없이 증발하고 말거다.”

“그, 그럼···.”

지금으로선 홍련을 죽일 방법이 없다.

빅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녀석은 누님의···!”

“안다. 빌헬미나가 원수를 대신 갚아주고 싶은 심정은 나도 동감이야. 알고는 있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어.”

“제기랄!”

번개에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해.

그렇다고 겨우 몰아붙인 홍련을 처단하는 것도 불가능.

그러나 로이드는 이 이상 빅터에게 따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강하게 주먹을 쥔 빅터의 오른손에 피가 배어나오는 걸 뒤늦게 눈치 챘기 때문에.

가장 분한 것은 빅터였다.

이만한 노력을 들이고도.

필사적으로 힘을 끌어올렸음에도 마무리 짓지 못하다니···.

“홍련 언니, 유린당한 만큼 미련이 남았다는 건 이해하지만. 이쯤에서 이탈하는 게 어떤가요? 무용한 싸움에 집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 않나요? 사냥꾼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고요.”

“칫···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 잔소리는 그만! 그 정도 배려는 해줘. 아무리 버릇없는 너라도 선배의 체면 정도는 살려줄 수 있잖아?”

“홍련 언니에게 체면이란 게 있다면 말이죠.”

“이게···.”

“그보다 통로는 미리 만들어 두었어요. 가까운 곳에 열어두었답니다.”

“뭐?! 내 아까운 적석을 네 멋대로 쓴 거야?”

“대충 서넛 개 정도 들었지만, 시간이 촉박하니까요. ···서두르죠. 슬슬 시간이 다 되었어요.”

청람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리곤 건물 아래로 내려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홍련도 빅터를 못마땅하게 노려보기만 할 뿐, 이 이상 달려들거나 하진 않았다.

“너, 그리고 너! 그 얼굴, 기억했어. 다음에 만나면 태워 죽인다. 반드시··· 뼛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네, 네. 그쯤하고 얼른 떠나요. 언제까지 유치하게 굴 거람.”

그 말을 끝으로 두 마녀는 사냥꾼들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라.”

“···또 뭔가요?”

청람은 슬쩍 고개를 돌려 흘겨보았다.

보다 짜증스런 눈빛이었다.

“난 아직 너흴 보내주겠다고 한 적이 없다.”

“···하아, 왜 당신네 사냥꾼들은 전부 일찍 죽지 못해서 안달일까?”

“그러는 너희 마녀들은 어째서인지 목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꿈에도 모르더군.”

“그래요. 재미있네요. 호전적인 마녀였다면 그 도발에 그대로 넘어갔겠죠. 하지만 저는 온화하답니다. 무익한 싸움은 원치 않아요.”

의외였다.

그 말마따나 청람은 살육을 바라지 않아.

그저 귀찮고 번거로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서조차, 빅터의 머릿속에선 또 다른 가능성이 실시간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독심술에 가까운 정신감응능력.

그리고 두뇌를 총동원한 연산으로 이끌어내 미래에서 읽어오는 정보를···.

잠시 후, 빅터가 눈을 떴다.

해답을 얻은 것이다.

“···이제 알겠군. 네가 새로 육망성의 일원이 된 것인가?”

청람이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심록이 남긴 빈자리를 채웠군. 하필 청람, 네 녀석이 차지한 거였나?”

“놀랍군요. 근 5년간 사냥꾼들에게 제 소식이 알려졌을 리는 만무한데.”

“다 아는 수가 있지.”

“그러신가요?”

“이제 흥미가 좀 동하나?”

“확실히···. 당신이란 인간에게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하지만 간단하게 답해주진 않겠죠?”

“당연한 소리. 궁금한 게 생기면 그 답은 스스로 궁리해서 손에 넣는 것이다. 대스승 크레이그의 딸이 그것도 모르나?”

“···그 이름을 내 앞에서 지껄이다니.”

“왜 그러지? 오랜만에 아버지의 존함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운가?”

청람이 반응을 보이자, 이번엔 홍련 쪽이 말리기 시작했다.

“잠깐! 왜 꼭지가 돈 건데? 시간이 없다고 했던 건 너였잖아? 얼른 이탈이나 하자니까! 응?”

적발 여인의 몸이 녹기 시작한다.

소모한 생명력이 예상보다 컷던 모양이야, 이성을 되찾은 지금에서야 홍련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청람은 무표정.

그러나 그 속에서는 고요한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잠깐이라면 괜찮겠죠. 건방지게 입을 놀리는 벌레에게 주의를 주는 일 정도는. 본의는 아니지만, 홍련 언니가 당한 굴욕을 조금 갚아주도록 할까요?”

“잘난 척은 실컷 하더니 제멋대로 굴긴···.”

“어디 당신만 하겠나요?”

사실, 빅터는 이 광경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마녀 둘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고 있어.

돌이켜보면 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기에.

본디, 마녀는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

서로를 적대하며 기회만 되면 죽이려한다.

그들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인간을 증오해.

멸시와 괴롭힘의 주축.

사람이란 종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다.

그 적의의 방향은 타인에게만 머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본인의 생물학적 출신이 인간인 이상, 미움의 대상은 스스로도 마찬가지.

그건 같은 마녀라고해도 예외는 없다.

물론, 이는 모순이다.

그렇다면 왜 예외가 존재하는가?

어째서 그들의 정점인 ‘육망성’은 여섯 마녀회의 모임이라 이름 붙여진 것일까?

서로를 견제하고 잡아먹으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마의 권속.

누가 먼저 인류를 멸망시키나 경쟁하는 광기와 욕망의 노예.

그녀들은 한 명 한 명이 마을을 간단히 집어삼킬 수 있는 천재지변이다.

그런 자들이 여섯 이나 있다.

제대로 융화될 리가 없어.

그렇다면 최소한 표면적으로나마 공통된 목표가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대체 어떤 끔찍한 요인으로?

무슨 사악한 꿍꿍이속에서 이들 여섯 마녀는 뭉치는가?

그 실상을 아는 이는 없다.

육망성의 목적은 가장 오랜 세월을 싸워온 대스승은 물론, 선대의 기록에서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빅터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은 최초로 육망성의 본질에 파고들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자, 원하는 데로 상대해드리죠. 당신이 용서를 빌고, 제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줄 때까지···.”

청람은 양손을 펼쳐보였다.

그리곤 손바닥을 겹쳐, 흡사 기도하는 것만 같은 동작을 취했다.

하늘이 요동친다.

피부로 체감이 될 만큼 대기가 급속도로 메말라간다.

“혹여 힘 조절을 못해도, 원망하지 마시길.”

이내 그녀의 눈동자가 명백한 적의의 빛깔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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