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습의 장(1)
1.
“어··· 으, 아익··· 칵, 카각!”
끊어지고 어눌한 목소리에 더 이상 사고는 담겨있지 않았다.
하지만 마녀의 뇌세포는 경질화 되어가는 와중에도 부단히 날뛰고 있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이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째서? 나의 불꽃이···?’
쩍, 쩌적!
두상에 파고든 제노리움의 푸른 칼날이 마기를 빨아들인다.
도끼에 박힌 이마를 중심으로, 마녀의 머리가 서서히 하얀 석회질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눈치 채기도 전에 마녀의 신경이 끊어졌다.
그 까닭에 홍련의 시선은 어긋나, 양쪽 눈동자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잘려나간 양팔이, 멀쩡한 두 다리가 경련하며 요동친다.
반사적으로 ‘키에에엑!’ 거리며 갈라지는 비명은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웠다.
마녀의 몸이 축 늘어질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초···.
그 사이, 소변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로브의 하반신을 적시기 시작했다.
처참하다.
단두대나 교살이 훨씬 자비롭게 보일 정도의 추한 몰골이었다.
“겨우 한 번이다.”
남은 목숨은 여섯.
빅터는 아직 자신에게 두른 그림자를 벗어던지지 않았다.
홍련과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었기에···.
고작해야, 이제 한 번 죽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홍련은 순식간에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독기가 서린 안광으로 빅터를 노려보더니.
“···아파!”
빠르다.
벌써 뇌가 재생했나?
빅터는 목숨을 여럿가진 마녀들의 끈질김에 진저리를 쳤다.
“아파, 아파, 아프다고오오오! 머리··· 이마가 깨질 거 같아아아아아! 이거 놔, 당장 놓지 못 해?!”
“정 원한다면.”
퍼어억!
“그렇게 해주지!”
빅터는 도끼를 뽑아냄과 동시에 위해 마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끼야아아악!”
홍련의 몸이 지상으로 곤두박질 친다.
동시에 두상이 으깨지며 창공을 향해 온갖 액체들이 튀어 올랐다.
체내의 끈적한 분비물은 역하기 그지없어.
그것에는 대량의 검붉은 피는 물론, 뇌수나 척수액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쿠과앙!
무시무시한 가속도.
중력이 더해진 낙하는 지면과 충돌한 여인의 몸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두 번째 죽음.
그러나 그 직후에 마녀의 몸은 새로이 육체로 재구성되었다.
피투성이 육편 조각이 찰흙처럼 뭉쳐지더니, 이내 사람의 두상을 닮은 뭔가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커흑···!”
열매가 땅에 떨어져 으깨진 것만 같은 피의 웅덩이에서 마녀는 고개를 들었다.
죽기 직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구역질 섞인 증오를 뿜어내며.
“이, 인간 따위가! 장난감 주제에! 감히 이 몸을··· 어?”
목 아래에 느껴지는 이물감에 홍련은 욕지거리를 멈추었다.
촤륵.
고개를 숙이자 금속질의 마찰음이 들린다.
검게 일렁이는 그림자가 그녀의 목을 길게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태는 여러 개의 고리가 밧줄처럼 이어진 구속구.
“이, 이게에에에!”
홍련은 진저리를 쳤다.
그것이 빅터의 왼손에 감겨진 쇠사슬의 모습과 한 없이 닮아있었기 때문에···.
부웅!
공중에서 빅터는 몸을 한 바퀴 회전했다.
어깨를 타고 내려온 힘이 쇠사슬로 전달되어, 곧 마녀의 목을 휘감은 그림자까지 이어졌다.
그 흐름이 팽팽하게 당겨진 순간···.
홍련의 머리는 몸통과 그대로 분리되었다.
“캬··· 악!”
손도 쓰지 못하고 맞이한 세 번째 죽음.
홍련은 정신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일말의 대처할 틈도 내주지 않는 단호한 판단···.
거침없는 맹공이 마치 원수라도 지기라도 한 것 마냥 몰아붙여온다.
내게 원한을 가진 자인가?
지금껏 이런 사냥꾼이 있었다고?
그렇다면 왜 여태 몰랐던 거지?
“자, 잠깐···!”
한마디 채 끝내기도 전에 도끼가 내리박힌다.
홍련의 뇌가 생각을 할 수 있게 될 때마다 빅터는 그녀의 머리를 뭉개버렸다.
전력을 담아, 방심하는 기색을 전혀 엿보이지 않고서···.
그림자를 몸에 걸친 사냥꾼은 집요하게 몇 번씩이고 그 행위를 반복했다.
당연하게도, 머리는 여러 개의 목숨을 가진 마녀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왜냐하면 마녀가 재생하기 시작하는 최우선적인 신체가 바로 두상이었기 때문에.
두뇌가 있는 곳.
견고한 두개골로 보호받고 있는 뇌 조직은 실질적으로 인간의 영혼이 머물고 있기에.
비록 그것이 전기신호에 불과한 결과라 할지라도···.
우리가 감정이나 마음이라 부르는 일연의 모든 현상이 복잡한 화학작용의 부산물에 불과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뇌는 정신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즉, 머리를 놓치지 않는다면 목숨이 몇 개가 있어도 두렵지 않아.
이것은 그가 대스승들에게서 배운 나름의 대처법이었다.
‘이놈은···!’
‘나를 얼마만큼이나···!’
‘죽여야 만족할 셈이지?!’
일곱 번째 참수.
고통을 느낄 세도 없이 이어지는 사형집행.
홍련은 지금껏 10번이나 죽었다.
허탈한 죽음과 맹렬한 삶의 경계 속에서 마녀는 되뇌었다.
이제 상대의 정체 따윈 아무래도 좋다.
당장은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폭렬의 주문만이 간절했다.
‘찰나라도 좋아! 단 한 번이면, 터뜨릴 수 있는 약간의 시간만 있다면!’
하지만 마녀는 몰랐다.
자신이 그만큼 사고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지금 막 주어졌단 사실을···.
“으···응?”
보인다.
드디어 가증스런 사냥꾼이 도끼질을 멈추었다.
반복되는 절명.
머리가 없는 여체만이 쌓여갈 뿐인 기이한 광경이 눈에 펼쳐졌지만, 마녀의 정신은 겨우 또렷해져 있었다.
‘핫, 하하하! 멍청한 놈, 드디어 실수를 했구나!’
우연의 산물.
가히 기적이었다.
파묻힌 시체더미의 일부 속에서 마녀의 정체성이 눈을 뜬 것은···.
빅터가 좀 전에 작살낸 마녀의 머리가 쪼개져, 완전히 두 동강이 난 탓이었다.
그것이 시체 더미 아래로 들어간 것이다.
‘킥,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오나니!’
‘역시 이 세계는 내 편이야. 모든 걸 불태우기 전까진 죽지 말라는 주인님의 은혜로운 계시인거야!’
홍련은 그렇게 속으로 외치며 바로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빅터가 반응한다.
마녀는 이미 히죽거리고 있었다.
마법의 발동 조건이 이미 끝나있었기에.
“유감이야, 망할 사냥꾼 씨! 지금부턴 내 차례거든!”
어떤 조화인지, 손바닥에는 또 다른 붉은 보석이 박혀있다.
빅터는 ‘마몬의 적석’이 홍련의 몸에서 생성되는 일종의 혈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터져···버려어어엇!”
마녀가 손아귀를 쥔다.
그것은 기폭의 신호였다.
그녀의 마법에 주문 따윈 필요 없다.
영창이나 기도문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신묘한 술수를 부리기 위한 속임수···.
공기를 일점 집중한 다음, 아주 작은 전기신호로 터뜨리기만 하면 충분.
사실 그녀가 다루는 요술의 정체는 불꽃 그 자체가 아니야.
엄밀히 말해서 기체를 조작하는 능력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발악은 다 했나?”
“아, 으···.”
“왜 그러지? 마법을 쓸 수 없어서 그렇게 이상한가?”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없어!”
터져라.
폭발해라.
산산조각 나버려라.
홍련은 양손을 펼쳐서 마기를 흘렸다.
손끝이 가리키는 장소에 공기를 한계까지 응집시켰다.
빅터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급소에만 집중할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압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마치 어떤 강력한 뭔가가 마기를 모조리 지워버리는 것 마냥···.
“이건··· 서, 설마?!”
“이제야 눈치 챈 모양이군.”
“인간··· 인간 따위가 내 주문을 차단Spellbreaker했다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마녀에게로 빅터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나칠 정도로 차분한 걸음걸이.
빅터는 까마귀의 그림자조차 벗어던졌다.
그때, 홍련은 비로소 보았다.
빅터가 쥔 이형의 도끼가 발광하는 것을···.
빛 사이로 뻗어나가는 미세한 입자들이 주변의 공기에 스며드는 것이 아닌가?
“벼, 별의 조각이 가루로···.”
“그래. 네 짐작대로다. 이 이계의 금속은 너희가 만들어내는 마기를 중화시키지. 나는 그것을 쪼개고, 쪼개어 이 일대를 가득 매웠다.”
“불가능해! 그런 순도 높은 유성의 파편이 존재할 리가 없···.”
“여기에 있지.”
빅터는 보란 듯이 자신의 무기를 들어보였다.
표류자가 남긴 유산.
엑조틱이 말하길, 규소 생물체의 유해.
사념을 먹고, 마기의 사악한 힘을 없애는 별 세계의 유물이 창백한 빛을 냈다.
반딧불처럼 일렁이며, 그것은 공기에 미립자 단위까지 분해되어 녹아들고 있었다.
“이 영역 안에서 너는 무력한 계집애일 뿐이다.”
그 단순하지만 명쾌한 해결책에 마녀는 경악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오직 홍련만을 무찌르는데 특화된 능력이었다.
“이, 이건 이치에 맞지 않아! 어떻게 이런 일이···.”
“웃기는군. 상궤를 벗어난 마녀가 감히 이치를 논하다니?”
“이 모든 걸 미리 대비했을 리는 없을 거 아니냐고! 오늘 나랑 처음 마주친 네가···.”
“처음이 아니다.”
“난 너 같은 사냥꾼은 몰라! 어디의 복수자지? 로헨델? 아세르만? 그것도 아니면 텔럼호스트? 모르겠어. 전혀 기억도 안 난다고!”
“물론 너는 모를테지. 하지만 나는 충분히 너를 상대해왔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아주 무수히 말이야.”
“무슨 영문도 모를 소릴···!”
“아직도 잔꾀를 부리는군.”
홍련은 대화로 시간을 벌 셈이었다.
하나, 빅터는 이미 그녀의 머릿속을 읽고 있었다.
“큭··· 너 같은 건, 너 따위는 내 업화로 태워버리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홍련은 기폭을 시도했다.
그러나 여지없이 마기는 소멸되고 말았어.
빅터가 앞서 이야기한대로, 홍련의 모든 마법은 봉인되어 무방비한 상태였던 것이다.
“···과연 최강의 마녀를 자처 할만도 하군. 이렇게까지 몰려지고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용하다고 해주마.”
“하?”
“너는 항상 압도적인 승리만 해왔을 테지. 상처입지 않고, 위기를 경험해본 적도 없을 거야. 그래서 공포가 마비된 거다. 달아난다는 선택지조차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지? 일개 사냥꾼 따위가 이 몸을 놀려? 감히···.”
“하나, 그건 오만일 뿐. 너는 그저 진짜 강적과 맞서본 적도 없는 철없는 애새끼야. 운 좋게 초월적인 힘을 손에 넣고, 그에 취해서 무분별하게 날뛴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다.”
“뭐라고?”
“아직도 네가 무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가?”
빅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도끼를 휘둘렀다.
다시 마녀의 몸은 맥없이 뒤로 나자빠졌다.
이걸로 남은 목숨은 일곱 개.
“···커, 허억!”
“이제 슬슬 두렵기 시작했나?”
“자, 잠깐···!”
잘려나간 머리를 통해 재생한 홍련이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코앞에는 극한까지 단련된 자의 정권이 날아오고 있었다.
소리는 없다.
심지어 홍련의 몸은 날아가지도 않았다.
그저 명치에 닿은 순간에 커다란 압력이 그녀의 등 너머로 퍼질 뿐···.
‘뭐야, 아무 것도··· 윽?!’
하지만 뒤틀린다.
주먹의 끝이 맞닿은 부위가 움푹 패이기 시작했어.
내장 기관에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 충격은 내부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었다.
홍련의 늑골을 부수고, 흉강에 위치한 횡격막과 기관지··· 그리고 심장마저도 찢어버렸다.
검은 피가 역류한다.
마녀는 몸속에 있는 대부분의 것을 토해냈다.
“아직도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
빅터가 노린 대로였다.
가공할 고통이 엄습해.
그것은 홍련이 살아온 긴 세월을 통틀어 가장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아픔이었다.
그런데도 비명을 지를 수 없었던 것은···.
완전무결하게 적중한 빅터의 파쇄권이, 그녀의 성대를 형체도 없이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음 속 깊이 날 저주하는군. 그렇게 아픈가? 미쳐버릴 정도로 몸이 쑤시나? 하지만 여지껏 네가 앗아간 수많은 인생에 비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힉···!”
처음으로 홍련의 표정에 순수한 감정의 빛깔이 돌았다.
다른 마녀들이 사냥꾼에게 품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
바로 겁에 질린 사냥감의 얼굴이었다.
‘이 인간은 이상해, 정상이 아니야!’
차분한 표정 속에서 내제된 끓어오르는 분노···.
마기와는 다른 격렬한 반응이다.
그에게선 감정이란 불순물이 가미된 마음의 열기가 전해져오고 있었다.
“너는 너무 많이 죽였다. 지나치게 많이···.”
빅터의 시선에 마녀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무서워? 이몸이 두렵다고? 단지 덩치만 클뿐인 이까짓 놈팽이에게··· 이 몸이, 최강의 마녀인 내가 공포를 느낀단 말이야?’
홍련은 오래도록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녀는 단일 개체로서 최강의 마녀.
이 세계에 자신에게 위해가 될 요소 따윈 존재하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죽여 버릴 수 있다며 자신했다.
인간은 두렵지 않다.
같은 마녀 또한 적수는 못된다.
사냥꾼을 자처하는 자들 따위, 잠깐의 여흥으로 상대해줄만한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은 물론, 조직···.
나아가선 한 나라조차 한줌의 재로 만드는 것도 간단하다.
홍련에게 있어서 세상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놀이터.
고통뿐이었던 유년기와 구원을 바라기만 했던 청소년기를 보상받기 위한 신의 선물.
지금까지 그렇게 여겨왔을 터인데···.
“인간의 생명을··· 목숨을 가지고 논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잔혹한 꾸짖음과 함께 열한 번째 죽음이 찾아왔다.
어느새 도끼를 고쳐 잡은 빅터가 또 한 번 참격을 가한 것이다.
철퍽!
다시금 마녀의 모가지는 토막이 난 채 바닥을 굴렀다.
악순환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있는가?
‘이대로는··· 이대로는 진짜로 죽어버리고 말아아아아!’
목숨이 두 자리 수까지 줄어들자, 홍련은 필사적이 되었다.
무슨 수를 써야만 해.
이 무서운 사냥꾼 앞에서 달아날 지혜를 짜내야 한다.
다행히도, 홍련에겐 그만한 기지가 있었다.
“···헤, 이제 너한텐 안 죽어!”
마녀는 되살아나자마자 양손을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댔다.
그리곤 마기를 내부로 흘려보내더니···.
“날 너무 얕봤어, 사냥꾼 씨!”
퍼어어엉!
홍련의 두상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경악스러운 자살.
빅터의 도끼에 참수 당할 바에 스스로 목숨을 끊자는 자포자기 였던 것인가?
하지만 거기엔 영악한 계략이 숨겨져 있었다.
“아무리 당신이 재빨라도···.”
“이렇게 하면···.”
“혼자선 당해내지 못하겠지?”
“이 이상 순순히 당해주진 않을 거야!”
순식간이었다.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마녀의 뇌가 각자 다른 식으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 수는 스물 댓 명 이상···.
당연하게도 어느 것이 본체인지 분별하기는 쉽지가 않다.
빅터는 말없이 이를 악물었다.
생명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을 정도의 금단의 지식이란···.
남은 목숨을 쪼개고 쪼개서 이런 식으로도 응용할 수 있단 말인가?
“킥, 알겠어.”
“당신도 자기보다 남이 상처받는 걸 더 괴로워하는 부류지?”
“사냥꾼들이란···.”
“하나 같이 바보 같은 인간들뿐이네!”
“그러면 지켜보도록 해!”
“지금부터 촌락으로 내려가서 학살을 벌여줄 테니.”
“축제에는 불꽃놀이가 제격이니까!”
홍련의 분신들이 흩어졌다.
전 방향으로 일제히 달아날 셈이야, 빅터가 쫒아가기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이대로 홍련이 유성의 파편으로 짠 항마의 결계를 벗어나기라도 한다면, 참사는 불 보듯 뻔한 일···.
하지만 빅터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올 거라 생각했지.”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홍련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녀가 만들어낸 분신들이 어느 방향으로 산개할지조차.
“지금이다!”
빅터의 외침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고개를 든다.
“체, 기다렸다고!”
언제든 은사를 날릴 수 있도록 전개한 로이드.
반으로 갈라진 링 블레이드와 함께 몸을 날리는 리리 리에, 언덕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옷의 무리까지···.
그 머릿수는 도주를 시도한 홍련을 쫒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