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34화 (134/186)

요격의 장(8)

8.

그로부터 약 30분 후.

마을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광장은 축제로 분주해, 사람들은 서로의 혼이 해방된 것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반면, 사당에는 묘한 적막이 감돌았다.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이는 단 둘 뿐···.

바로 아랑과 제단의 주인인 하얀 무당이었다.

‘이게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소년의 목 아래로 식은땀이 흐른다.

아랑은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빅터에게 거듭 들었지만, 그 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부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내다볼 수 있다고 하셨지만···.’

빅터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전해들은 직후, 소년은 어떤 충만한 사명감을 느꼈다.

이걸로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어.

이 무리의 일원이 되었다고 들뜨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생각할 여유가 생기자, 이내 그것은 염려로 변하고 말았다.

가벼이 여기기엔 너무 황당한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아랑, 너는 놈의 시선을 끌어라. 아주 잠깐 동안 미끼가 되는 거다.’

놈이란 홍련을 가리키는 것.

그리고 그 홍련은 최강의 칭호를 가진 마녀···.

‘솔직히 말해서··· 무서워.’

마녀는 손을 들어 올린 것만으로도 작열의 폭풍을 일으킨다.

불꽃의 숨결로 산을 녹이고, 그 열기로 대지를 찢어발길 수 있다고도 했다.

믿기지 않아.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빅터가 아랑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언제나 당당히 현실을 직시하라던 그가, 단순히 어린애를 놀려먹기 위해 이따위 장난까지 칠 위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래서··· 더 겁이 나.’

앞으로 수 분 뒤···.

마기를 한계까지 빨아들인 마몬의 적석을 쫓아 홍련이 온다.

그리고 곧바로 그 소유주인 아랑을 죽인다.

스승은 틀림없이 사실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랑은 목숨을 잃는다는 의미···.

즉, 잔혹한 운명은 소년의 죽음을 미리 예정해두고 있다는 뜻이었기도 했다.

“···떨고 있군요.”

“헉!”

스륵.

목 언저리를 스쳐가는 서늘한 감촉과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탓인지, 아랑은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뒤를 돌아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여인이 자신을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무당 누나 때문에 깜짝 놀랐잖아요?”

“미안해요. 많이 힘들어보여서···.”

“···저는 괜찮아요.”

“너무 불안해하지 마시길. 앞서 귀인께서 말씀하셨어요. 당신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고요.”

“그건 저도 아는데···.”

“그래요.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무력한 저와 다르게, 그분은 힘도, 의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로 미래를 개척하기에 충분한···.”

하얀 무당, 희나는 소년의 양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머지않아 재앙이나 다름없을 마물과 대면할 소년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작 떨리는 것은 그녀의 손끝이다.

얼굴에도 감추지 못한 공포의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해도 쉽지가 않아.

희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제 와서 사냥꾼에게 모든 예지의 힘을 넘겨준 걸 후회하는 거야? 처음으로 불확실한 지금을 마주한 것이··· 나는 그렇게도 두렵단 말인가?’

능력을 잃어버린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무당이 아니게 되었다.

이젠 그저 특이한 백발과 벽옥의 피부를 지녔을 뿐인 여인에 불과하다.

마을에서 벗어나면 숨조차 쉴 수 없는, 그야말로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무당 누나···.”

아랑은 바로 그 변화를 눈치 챘다.

희나의 마음이 온전치 못하단 걸 깨달은 것이다.

그 모습이 누군가와 겹쳐 보여.

아랑은 자신의 누이를 떠올리곤, 자신을 껴안은 손을 강하게 거머쥐었다.

“고마워요, 누나.”

“아?”

“덕분에 정신이 들었어요.”

결심이 섰다.

아랑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세게 변했다.

‘···사부가 그랬어. 나는 사부와 같다고.’

갓난아기, 제물이 된 여동생을 피신시키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과 반목한 아랑.

잡혀서 맞아 죽을 것조차 각오한 소년의 용기 있는 결단에···.

빅터는 첫 만남부터 소년을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동생의 시신을 묻었던 그 날.

빅터는 소년의 인생이 뒤바뀔 정도의 한마디를 건넸다.

‘아랑, 너는 지키는 자다. 나와 마찬가지로···.’

빅터는 말했다.

약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그편이 더욱 대단하다.

그건 스스로의 무력함을 알면서도 강대한 부조리에 맞섰다는 의미니까.

비록 지켜내지 못했지만.

끝내 동생을 잃고 말았으나···.

빅터는 소년이 고난을 이겨내고 더욱 성장하리라 확신했다.

‘···잊지 마라, 아랑. 잘 기억해두는 거다. 이 감정을 마음 속 깊이 새겨. 그러면, 너는 강해질 수 있다. 우리 같은 부류는··· 한 번 소중한 것을 잃어본 인간은 그 비극을 알기에 더욱 필사적으로 변하니까.’

당시에 아랑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 지금은 안다.

빅터가 내린 지시와는 별개의 문제.

아랑을 믿고 맡긴 임무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

지금 눈앞에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미래시의 힘을 잃어버린 가련한 여인이···.

희나를 보호해야할 상대라고 인식한 그 순간.

소년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용기가 솟아나,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안심해요. 누난 제가 지켜드릴 테니까.”

“어, 어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당당한 그 태도에, 백자 같은 희나의 얼굴에 살짝 혈기가 생겨났다.

무슨 말일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소년이, 대체 무슨 근거로 자신을 보호하리라 선언하는 것일까?

그래도 아랑에겐 나름의 믿는 구석이 있었다.

“빅터 사부는 절 지켜준다고 하셨어요.”

“그··· 랬죠.”

“다시 말해서, 제가 살아있는 한 누나도 지킬 수 있는 거예요.”

“아?”

“그러니까 걱정할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억지 논리.

유치해빠진 아이의 위로였지만, 어쩐지 모르게 희나는 순식간에 그에 감화되었다.

의지할 건 화승총 한 자루뿐인 어린애가···.

당장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타인을 염려하다니?

“···그래요. 당신 말이 옳아요.”

희나는 순간, 자신이 능력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었던 예지를 떠올렸다.

해방.

혼을 주박 하는 마기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미래.

그리고 그 사이엔 타지에서 방문한 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

그때 하얀 무당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 나는 분명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어.’

희나는 아랑에게서 손을 땠다.

원치 않는 방문자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왔군요.”

“이럴 수가, 정말 빅터 사부가 말한 대로···.”

아랑의 검지가 위를 가리킨다.

두 사람은 시선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림자를 향하고 있었다.

파앗!

산등성이와 지평선 사이가 신기루처럼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회색 로브를 입은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응? 이건 또 뭘까?”

끝이 말려 올라간 붉은 머리칼.

등장과 동시에 주근깨 소녀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내리깐다.

그녀는 살짝 심기가 날카로운 듯, 동양의 말로 질문을 이어갔다.

“거기 너희들, 왜 날 보고 놀라지 않지?”

충분히 놀라고 있는 걸, 하고 아랑은 대꾸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녀가 풍겨오는 살기에 자기도 모르게 주눅이 든 것이었다.

“벌레 같은 것들··· 뭐, 아무래도 좋나? 대충, 거기 있는 예언가 언니께서 내가 나타날 걸 미리 점지하기라도 했겠지?”

마녀의 영악한 지혜가 그럴싸한 해답을 냈다.

말이 되는 현실적 추리.

이미 마녀는 마을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어.

미래를 보는 무당의 존재도 인지하고 있었을 테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상이었다.

“그럼 내가 뭐 하러 왔는지도 잘 알겠네?”

“···요기가 담긴 붉은 보석을 회수하기 위해서겠죠.”

“정답이야. 역시 잘나신 무녀님이네? 덕분에 이야기가 빠르겠어.”

그럼 당장 내놔, 라는 일방적인 요구과 함께···.

홍련은 잔인한 미소를 흘렸다.

“거기 애새끼, 순순히 내놓으면 고통 없이 죽여줄게. 너희 둘 다 말이야.”

마녀는 간파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마기의 영향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 마몬의 적석이 아랑의 안주머니 속에 있다는 걸.

거절은 용납되지 않는다.

앞으로 홍련이 할 행동은 두 가지 뿐···.

빼앗은 다음 죽이거나, 죽인 다음 빼앗는 것.

그 외의 선택지는 없다.

이후엔 언덕이 폭발하고 아랑과 희나가 죽는다.

그것이 빅터가 처음 본 미래시의 순차였다.

단, 이번만큼은 달라.

아주 치명적인 변수가 있었으니···.

“싫은데?”

당돌하게도.

아랑은 단호히 거절을 표했다.

“가져가고 싶다면 직접 내려와서 가져가 봐.”

“···뭐어?”

“할 수 있다면 말이야.”

고민하지도 않고 떠오른 걸 그대로 내뱉는 태도에, 마녀의 미간이 살짝 움츠려들었다.

“꼬마야? 혹시 내가 누군지 아니? 거기 있는 여자한테서 아무것도 못 들었어?”

“알아. 네가 불의 요녀지? 마귀한테 몸을 판··· 홍련인지 뭔가 하는 사악한 년이라던데.”

“···.”

“아, 아랑!? 왜 갑자기 그런 상스런 말을···.”

“왜요, 누나? 제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나요?”

빅터가 지시한 것 이상의 도발.

지켜보는 희나가 다 조마조마해질 정도의 인신공격이었다.

홍련은 잠깐이나마 얼굴이 굳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표정을 관리했다.

절대적인 강자,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상대에게 휘둘릴 순 없는 노릇이니···.

“후, 후후··· 잘 보니까 얼굴이 귀여운 게, 한 두 살만 더 먹으면 침대에서 상대해볼 만 사내아이로구나. 말버릇이 더러운 건 정말 유감이야.”

“흥, 더러운 건 네 아랫도리겠지.”

“···하?”

아랑은 고향에서 사내들이 자신의 누이에게 건넸던 욕설 중에 가장 천박하고 추악한 것을 꺼내들었다.

당연히 그 효과는 즉발적으로 나타났다.

“뼛속까지 재가 되고 싶냐, 이 망할 놈의 애새끼가!?”

“어, 그래. 나 애새끼 맞아. 그런데 다 큰 어른이 나 같은 어린애를 상대로 뭘 그렇게 열을 내는 거람?”

아랑은 시선조차 피하지 않아.

한 마디도 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뭣도 모르는 철없는 꼬마가 실성을 했나?

아니, 그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홍련은 굳이 아랑을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잘 알았어Einverstanden. 아무래도 곱게 죽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구나.”

홍련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화와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갑자기 보고 싶어졌어. 네가 꼴 사납게 비명을 지르면서 졸도하는 모습을···.”

마녀는 오른 손을 펼쳤다.

붉은 돌이 잔뜩 박힌 손바닥이 전개되었다.

“우선 가볍게 다리부터 날려줄까? 어느 쪽이 좋니? 왼발? 오른발? 아니면 전부?”

휘몰아치는 마기.

아랑 주변에 맴돌던 기체의 흐름이 변하기 시작했어.

급속도 공기가 압축되고 있었다.

홍련은 이미 자신이 노리는 표적에 정확한 겨냥을 마친 상태였다.

“터져라Explosionen···!”

홍련의 손아귀가 쥐어졌다.

동시에 소년을 비추던 마녀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그리고 대폭발.

인접한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불의 꽃잎이 만개···.

“아니!?”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디에도 불씨를 찾아볼 수 없었다.

“터, 터져!”

재시도도 실패.

보이지 않는 마기의 도화선이 끊어졌다는 걸, 홍련은 이 시점에서도 눈치 채지 못했다.

더욱이 그녀의 등 뒤에 접근한 크고 날카로운 잔상의 기척 또한···.

“지금이에요, 사부!”

퍼석!

맹렬하게 날아든 묵직한 참격에 선혈이 튄다.

홍련의 오른팔이 잘려나갔어, 어느새 지상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아으으윽! 너, 너는 또 뭐야아아앗!?”

절단부를 통해 퍼지는 고통에 몸서리치면서도, 홍련은 급히 몸을 틀었다.

그 배후에는 그림자를 두른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있었다.

한 손에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도끼를 든 상태로···.

빅터와 마주친 홍련의 머릿속이 요동친다.

잠깐 사이, 수많은 의문이 스쳐 지나잤다.

‘어떻게?!’

‘저 자는 무슨 수로 내 영역에 들어온 거지?’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어!’

‘공기밀도를 조정하고, 발아래를 고속으로 회전시켜 부유하는 마법은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단 말이야!’

마녀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사냥꾼의 기술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 지를···.

검은 날개.

흡사 뒤틀린 까마귀를 닮은 형상.

그것은 심心의 유파가 자랑하는 궁극의 경지.

휴케바인Huckebein이었다.

“떨어··· 떨어져어어어어!”

홍련이 서둘러 왼손을 펼친다.

마석이 전부 드러나기도 전에 마녀의 손바닥은 빅터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 이익!”

하지만 빅터는 홍련의 사정 따위 봐주지 않았다.

그는 또 한 번 도끼를 휘두르려 했다.

일촉즉발.

먼저 내지른 것은 어느 쪽인가?

마녀의 마술?

사냥꾼의 휘두름인가?

“터···져라아아아앗!”

간발의 차이로···.

마석을 발동시킨 것은 홍련이 조금 더 빨랐다.

공기를 압축시키는 일연의 과정조차 무시한 채···.

다시금 마녀의 눈동자에서 신묘한 빛깔이 점멸한다.

홍련은 생각했다.

이 거리라면 피할 수 없어.

물론 자신도 무사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상태를 불태워버리기엔 충분하리라고.

그렇게 그녀는 사지가 날아간 적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망상 속에서.

“어···?”

푸슉.

후두둑, 하고 동강난 손가락 마디가 추락한다.

마법은 발동되지 않았다.

벌어진 일이라곤, 자신의 손바닥의 절반이 날아가고 왼팔의 어깨 죽지가 통째로 도려 나가졌다는 사실뿐이었다.

“자, 잠깐만 기다···.”

마녀는 얼빠진 표정으로 눈앞의 상대에게 외쳤지만.

콰직!

되돌아온 것은 이마와 정수리 속으로 파고드는 날붙이의 감촉···.

요란하게 머리거죽이 찢긴다.

두개골을 꿰뚫고 이형의 도끼가 깊숙이 처박힌다.

빅터의 일격이 마녀의 머리통을 분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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