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32화 (132/186)

요격의 장(6)

6.

예지된 홍련의 습격···.

수많은 사람들이 타 죽고, 빅터는 패배한다.

십 수 분에 걸쳐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엔, 이미 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려온 상태였다.

두 사람은 마을에 들어서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며 대책을 강구했다.

“그렇단 말이지···.”

모든 전말을 전해들은 로이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괬다.

“환장하겠네. 유성의 파편에 선택받은 너마저 쪽도 못쓰고 당할 정도라고?”

반신반의.

믿을 수 없다기 보단,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쯤에서 슬슬 뻥이라고 말해주면 참 고맙겠는데 말이야.”

“로이드···.”

“알아, 안다고! 네가 그럴 위인이 아니란 거. 하지만 그게 진짜로 우릴 기다리는 미래라면··· 제기랄!”

설마하니, 연신 진지하기만 덩치가 이렇게까지 복잡한 이야기를 꾸며냈을 리는 없어.

대부분의 맥락이 그럴싸하게 이어진다.

홍련이 나타난 까닭.

마몬의 적석에 얽힌 정보들.

마기를 빨아들인 돌을 체내에 박아 넣고 사용하는 치명적인 화염의 요술까지···.

그가 말하는 생생한 묘사는 어느 것 하나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체, 어쩔 수 없구만. 홍련이란 놈이 날뛰기까지 앞으로 두 시간··· 그 전에 최대한 머리를 굴려볼 수밖에!”

“음.”

“맨 먼저 폭발이 일어난 곳은 언덕 위의 사당이라고 했었지?”

“그래.”

“좋아. 그럼 마을에 도착하는 대로 아랑부터 찾아서 보호하자고. 마녀가 노리는 게 꼬맹이가 지닌 붉은 보석이라면, 순순히 내줄 수야 없지.”

“좋은 수라도 있나?”

“함정을 파야겠지. 놈이 나타나면 등 뒤에서 집중포화라도 먹여주자고. 그 성가신 마법을 쓰기 전에···.”

“구체적으로는?”

“양동작전이라고 들어봤냐?”

“아이들까지 동원할 생각인가?”

시안에게 곁눈질하며, 빅터는 예지에서 보였던 광경을 떠올렸다.

스무 명이나 되던 무리가 한순간 불기둥의 먹이가 되었던 참혹한 현장···.

또 한 번 소년소녀들의 죽음을 봐야할 지도 몰라.

그 사실이 빅터는 탐탁지 않았다.

“애꿎은 시체만 늘어날 뿐이다.”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도 뭘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

로이드도 뭔가 못마땅한 지 혀를 찼다.

하지만 당장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써먹어야 할 상황.

싸울 수 있는 아군은 모두 동원한다.

“너도 아까 말했잖아. 홍련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그랬다.

홍련을 상대로 방심할 수 없다는 걸, 빅터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적을 똑똑히 마주했다.

그렇게 해서 빅터는 홍련에겐 절대로 도달하지 못할 드높은 벽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 증거로, 대치하는 내내 홍련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건 빅터의 필사적인 발악을 시종일관 시시하게 대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태워죽일 수 있는 장난감.

잠깐의 지루함을 잊게끔 해줄 상대로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다.

준비가 완비되었다 해도···.

몸 상태가 온전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리라.

그만큼 홍련은 강하다.

녹이고, 분쇄하고, 파괴하는 마법에 특화되어 있어.

또한 인간을 향한 적개심과 무자비한 흉포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야말로 지금껏 마주한 적들 중 가장 무시무시한 공격력의 소유자···.

최강의 마녀란 악명이 딱 들어맞는 최악의 상대였다.

“나도 딱히 저 꼬마들을 고기방패로 쓰자는 게 아니야. 조금이라도 더 승리의 가능성을 만들자는 거지.”

“···.”

“나한테 털어놨다는 건, 네 딴엔 도움을 바랐단 소리 아니냐? 그럼 좀 믿어봐라. 마침 뒷공작하면서 음모를 꾸미는 건 내 특기니까.”

그러면서 로이드는 호쾌하게 빅터의 어깨를 건드렸다.

“너무 걱정말라고. 다 잘 풀리겠지. 네가 본 예지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야. 만반의 준비만 갖춘다면, 홍련이든··· 홍련의 할머니든 언제라도 와보시라 그 말이야.”

살짝 불안한 기색이 엿보이지만, 그래도 그는 어떻게든 될 거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비범한 힘을 지닌 빅터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항상 그렇듯, 로이드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었다.

특히 지금은 더욱 더···.

“···윽!”

“야, 빅터?”

“안··· 된다.”

“뭐?”

“그 계획은 취소다.”

“엉? 야, 설마···.”

“그 설마다.”

빅터는 그 짧은 순간, 또 다시 미래의 가능성을 보았다.

로이드가 뭔가를 결심함과 동시에 운명의 흐름이 바뀐 것이다.

최초의 예지보다는 짧은 플래시백···.

하지만 그것은 보다 악화된 상황이었다.

“로이드, 너는 사당 주변을 에워싸고 응전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그걸 실행하면 너는 죽는다.”

“주, 죽어?”

“나보다 먼저 표적이 되어서 산산 조각나고 만다.”

“망할! 그러면 이건 어떠냐? 광장을 비워둔 채로, 민가에 각자 숨어들어서 기회를 노리면···.”

“···무리다. 시간만 끌어봐야 결과만 더 나빠질 뿐이야. 홍련은 언제든 이 일대를 모조리 소멸시킬 수 있어. 녀석이 조금만 수틀리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끝나버린다.”

“전략도, 전술도 통하지 않는다고?”

“최소한 네가 방금 떠올린 생각은 정답이 아니다.”

“낙담하긴 일러.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겠지. 분명···.”

그 외에도 로이드가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았지만, 어느 것 하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시안과 요마멸살대.

모든 마을 사람들.

리리 리와 아랑.

로이드와 빅터.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기화해버리는 참극···.

“그만.”

빅터는 고개를 저었다.

입가가 떨리는 게 눈에 보여, 무엇을 보았는지 그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홍련은 아직도 힘을 숨기고 있다. 놈을 쓰러뜨리기엔 아직 많은 게 부족해.”

“끄응, 그렇게 말해도 말이야. 난 전혀 모르겠거든? 내가 직접 겪은 게 아니라서 뭘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로이드, 너는 잘 해주었다. 네 계획은 조금씩이지만 계속해서 미래에 영향을 주고 있었어. 아주 미약하게나마 틀림없이 변화가 일어났으니···. 그러나 턱 없이 모자라다.”

“체, 쓸모없는 책사라 미안하구만.”

“아니. 모자란 건 나다.”

“엉?”

“내가··· 전부 내 힘이 부족해서다.”

빅터는 예지에서 몇 번인가 홍련의 목을 베어냈다.

큰 희생 끝에···.

로이드를 미끼삼아 한 없이 승리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홍련은 잔여 목숨을 아껴두었다.

17개.

그것은 구체적으로 수치화된 절망이었다.

한두 번 죽여서는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마저도 결정타를 먹이기까지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한다.

미래로 이어지는 문을 가로막는 수문장.

죽음이라는 결과값만을 내놓는 파멸의 운명.

“···그냥 마석만 던져주고 도망간다는 선택지는?”

“그것도 고려해봤다.”

“어땠는데?”

“당장 우리 목숨은 부지할 수 있어. 하지만 여기서 산을 일곱 개쯤 넘으면 있는 이웃 마을의 번화가가 사라지지. 홍련의 심심풀이로···.”

“그건 좀··· 곤란하지.”

새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는 당장이라도 그걸 가지고 놀고싶어하기 마련.

달아나면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타인의 목숨을 바쳐서 살아 남는다···.

두 사람에게 그러한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야, 빅터··· 그럼 답이 없단 소리냐?”

“···.”

“날 놀리는 건 아니고? 그저 모든 게 다 네 망상에서 나온 웃기지도 않은 꿈 이야기라면···.”

“미안하다, 로이드.”

빅터의 고뇌는 진짜였다.

그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그러나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모두를 구할 방법이 없어. 그 어떤 시도로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뛰어 넘지 못하는가?

결국 세상에는 인간이 결코 극복하지 못하는 악의가 존재한단 말인가?

빅터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하나하나 속으로 읊조렸다.

간곡한 마음을 뿜어내, 머릿속에서 이 위기를 타파할 지혜를 필사적으로 헤집었다.

‘더 빨리 달릴 수 다리가 필요하다. 폭발을 일으키는 모든 마기를 찢어발길 더 강한 완력도···!’

그러나 비현실적이다.

단련을 한다 쳐도 지금은 여유가 없다.

근성으로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강한 의지를 현실이 따라와 주질 못한다.

‘적어도 내 모든 능력을 자유자제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대로는 시도 때도 없이 제멋대로 예지가 발동해, 집중력까지 엉망이 되고 만다.’

명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예지를 필요한 순간에 발동시킬 수 있는 숙련도···.

짐작컨대, 그것은 1, 2년의 수련으론 한참 모자랄 것이다.

‘무력하다. 나는 이토록···.’

이래선 뻔히 두 눈을 뜬 채 고향과 가족을 잃고만 5년 전과 변한 게 없어.

심지어 이번엔 닥쳐올 것을 알면서도 막아낼 수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오랫동안 잊혀져있었던 빅터의 공포를 끄집어냈다.

불꽃이 무서운가?

사지가 폭염에 휘말려 찢기는 그 아픔이?

그렇다면 두려운 것은 고통인가?

‘···아니.’

사실 그까짓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자신이 몸이 망가지는 것쯤,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기에.

고문에 가까운 통각은 극복한지 오래다.

육망성이나 되는 마녀와 싸우는데 육체의 손실도 익히 각오한 바···.

그렇지만 빅터는 분명 무서워한다.

무엇을?

이 우직하고 저돌적인 사내는 도대체 무엇을 겁내는 것일까?

‘리리 리, 아랑. 로이드···.’

그것은 아군의 죽음이었다.

동료들이 손쓸 틈도 없이 사라지는 상실감.

그것이야말로 빅터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뼈저린 정서적 위협을 주고 있었다.

소중한 것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

그 영혼이 파괴되는 감각을 잊지 못한다.

그렇기에 다신 빼앗기고 싶지 않아.

지킨다는 행위는, 그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방어기제였다.

빅터는 자신의 상처 이상으로 주변 사람들을 살펴.

자신의 몸에 조금 더 흠집이 나는 정도로 타인이 무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위기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나, 현실은 잔혹하다.

미래는 망설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츰 다가오고 있었다.

‘하다못해 몸 상태라도. 아니, 오른 팔만이 멀쩡하기만 했다면··· 적어도 모든 걸 소모하고, 후회 없이 산화될 수 있었을 것을!’

결국은 시간이다.

빅터에게 부족한 것은 너무도 한정된 시간이었다.

“···잠깐.”

그때였다.

빅터의 뇌리로 어떤 돌파구가 떠오른 것은.

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로이드!”

“오, 뭐야? 뭔가 좋은 아이디어라도 나온 거냐?”

“그래. 우선 마르를 불러다오.”

“···듣고 있었어. 빅터라는 개체.”

“아앙? 마르, 너 우리가 이만큼 골을 싸매고 있을 때, 아무런 도움도 안 주고 있었던 거야?”

“분석 중이었거든.”

“분석은 얼어 죽을! 팔자 한 번 좋구만! 지금이 여유롭게 연구나 하고 있을 때냐고!”

로이드가 약이 올랐는지 투덜거린다.

빅터는 그를 만류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야기가 길어진다, 로이드. 여기서 부턴 내가 설명하지. ···마르, 네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해주겠지만···.”

마르는 말끝을 흐렸다.

진짜 중요한 내용은 그 뒤에 이어졌다.

“그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거라면 단호히 거절하겠어.”

“네가 그 능력을 잃었기 때문인가?”

“···나는 빅터란 개체가 언급한 예지를 믿지 않아. 그러니까, 고차확률분석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야. 너희의 뇌 구조상 그렇게 복잡한 연산은 이뤄지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나는 보았다.”

“그건 증명이 불가능해. 나는 망상에 빠진 영장류의 자살을 도울 생각은 추호도 없어.”

“자살이 아니다.”

“자살이야. 네가 나에게 바라는 게 그거라면!”

영리한 마르는 짐작하고 있었다.

빅터의 노림수.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한 열쇠란 바로···.

“한 번만이라도 좋다. 다른 시간대로 이어지는 통로를 열어다오. 내가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야, 그게 무슨···?!”

“빅터란 개체!”

“할 수 있지?”

“그건···.”

“부탁한다.”

마르가 우물쭈물 거리는 사이, 로이드의 표정도 급격히 변화했다.

빅터가 뭘 바라는 지 그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빅터, 너···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거냐?”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

“미친··· 완전 정신이 나갔구만!”

“정공법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니까.”

빅터는 자신이 호수 아래의 공간과 현실 세계 사이에 펼쳐지는 시간의 괴리를 생각했다.

한 달 가까이 보냈던 그간의 동굴 생활이, 통로를 거쳐 귀환했을 때는 1초 밖에 되지는 않는 기이한 현상···.

해답은 거기에 있었다.

“마르.”

그 부름에, 로이드의 오른쪽 눈이 빛났다.

잠깐의 침묵을 끝으로, 마르는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능해. 나는 많은 생체 에너지를 잃었기 때문에 앞으로 단 한 번··· 무작위의 시간 좌표 밖에 만들지 못하지만.”

“잘 됐군. 그럼 당장이라도···.”

“끝까지 들어! 빅터란 개체, 넌 큰 착각하고 있어. 저번에 네가 방문했던 내 실험장은, 비교적 너희 사냥꾼들에게 우호적인 환경이야. 하지만 이번에 내가 새로운 공간에다 널 밀어 넣는다면··· 그곳에서 네가 생존할 거란 보장은 없어!”

“상관없다.”

“거긴 외계나 마찬가지야! 자칫 원시의 지구에 떨어져서, 대기에 중의 독성 가스를 마시고 즉사할 수도 있단 말이야! 그리고···.”

마르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녀는 최악의 가정을 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운이 좋게 돌아올 수 있다 해도··· 이 시대와의 엇나감은 엄청나게 벌어질 거야.”

“그걸 좀 어떻게 해줄 수 없겠나?”

“물론 단기간에 입구와 출구를 만들도록 조정하면··· 작게는 3년, 크게는 10년까지 오차를 줄일 순 있겠지만···.”

“충분하군.”

“···.”

“해다오. 난 언제든 준비 됐으니.”

단호한 대답.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그 당당한 모습에 자극을 받았던 것일까?

덩달아 로이드까지 일어서더니.

“하, 하하. 한 달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이번엔 년 단위라···. 미치겠네. 그래도 너 혼자 보낼 순 없으니까. 나도 따라가 주지.”

“아니, 로이드란 개체. 너는 그럴 수 없어.”

“뭐? 왜?”

“너까지 동행해버리면 좌표의 정확도가 어긋나버려. 우리가 여기 있어야 성공확률이 올라가니까. 보내는 건 빅터만이야.”

“그딴 웃기지도 않는 이유가 어디 있···.”

“괜찮다, 로이드. 너까지 이 도박에 끼어 들 필욘 없으니.”

“지금 도박이랬냐? 이 무식한 자식아! 그걸 알면서도 너는···.”

“로이드, 내겐 이 능력에 완전히 익숙해질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몸을 회복해서 단련하고··· 강해져서 다시 돌아오마. 약속하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내가··· 내가 겨우 네 뒤를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는데! 마르를 통해서 이제야, 너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단 말이다! 그걸··· 치사하게 혼자서 또 앞서나가 버리면, 나는 대체 어쩌란 거냐!”

“···마르, 이 이상 지체하지마라. 지금 당장!”

“무시하지 말라고!”

“···난 이제 몰라.”

파직.

로이드의 오른쪽 눈동자에서 기묘한 빛의 입자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빅터가 선 자리를 굉장한 기세로 맴돌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자.”

“빅터어어어!”

번쩍!

거구의 덩치가 순식간에 빛나는 가루로 분해된다.

그리고 다시 하나의 형태를 이루더니···.

찰나.

75분의 1초.

맥박이 한 번 뛰는 것보다도 극히 짧은 시간···.

그 사이에 빅터는 돌아왔다.

왜곡된 시간의 저편에서···.

본디 자신이 있어야할 장소로.

길게 자란 회색의 머리칼.

수년은 자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수염도 입술을 가릴 정도로 덥수룩 해.

입은 옷가지는 상의와 하의, 둘 다 본래의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헤져있었다.

육체 또한 변모했다.

오른팔의 치유는 완벽해.

오히려 전신이 한계까지 단련된 상태야.

군살 없는 근육으로 탄탄해져 있었다.

그 덕에 상체의 우람함부터가 달라졌어.

덧붙여 몸의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흉터도 무수히 늘었다.

“야, 빅··· 터?”

“···로이드냐? 오랜만이군.”

“오랜만은 개뿔! 나한텐 눈 깜빡할 사이였다고!”

“그래. 그랬었지···.”

초연한 모습.

달관한 태도.

지친 듯 보이면서도 뭔가를 초월해버린 얼굴.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것은 가혹하고도 긴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게끔 만드는 몇 안 되는 흔적이었다.

“너···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모르겠군. 아마 4년··· 아니면 5년인가? 대충 그렇겠지.”

“대, 대충이라니?”

“이제 와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시공을 초월한 사냥꾼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가루의 양은 폭발적이야.

그간 참아온 것을 한 번에 터뜨리듯, 억눌렀던 이븐가지의 분말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가자, 로이드. 비로소 때가 왔다.”

범상치 않은 안광.

빅터는 정면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홍련을 요격邀擊하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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