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격의 장(5)
5.
“이해할 수가 없네.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 이만한 힘의 차이를 목도했으면서, 굳이 이 몸과 붙어보겠다고?”
홍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빅터는 자신의 다리에 그림자를 흘려보냈다.
그의 하반신은 단련의 성과를 발휘해.
발달된 비복근과 넙치근, 이어서 인간을 초월한 탄성을 가진 아킬레스건이 순차적으로 힘을 증폭시켜나갔다.
이윽고 크게 부풀어 오른 장딴지가 초인적인 각력을 만들어냈다.
빅터는 달렸다.
동굴을 탈출했을 때보다도 더욱 빠르고 강하게 땅을 박차며 뛰어들었다.
거리는 불과 삼십 십 미터 남짓.
그가 낼 수 있는 전력이라면, 단 세 한걸음만으로 적에게 닿을 수 있는 간격이었다.
“예의없긴, 대화 중에 그러는 게 어디있어?”
빅터의 급습은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그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야 했다.
눈앞에서 일렁이는 화염의 구체를 피하기 위해서···.
쿠과아앙!
불꽃이 쪼개지고 퍼진다.
아무 것도 없던 공간에서 업화로 이뤄진 꽃잎이 만개했다.
이것은 요마멸살대가 쏜 철포를 간단히 녹여버린 마법···.
거기엔 인간의 연약한 육신 따윈 일순간에 만들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빅터의 판단은 옳았다.
옷이 그을리고, 앞 머리칼과 눈썹이 조금 탄 정도로 그는 아슬아슬하게 불덩이를 피해냈다.
“후우우···!”
숨결에서 날숨대신 피의 맛이 나는 열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빅터는 주눅 들지 않았다.
이형의 도끼로 달궈진 파편들을 막아내며 거구가 다시금 돌진했다.
파앗!
이어서 몇 번인가 눈앞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그때마다 빅터가 발을 디뎠던 장소가 녹아내렸다.
그래도 빅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노리는 것은 오직 홍련의 목뿐이었다.
‘앞으로 한 걸음!’
이젠 코앞이나 다름없다.
‘놓치지 않는다!’
빅터는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몸을 날리며, 도끼를 쥔 왼팔에 전신의 몸무게를 실었다.
···그의 공격은 성공했으리라.
땅을 박차기 직전, 바닥이 날아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쿠과아아앙!
경기공을 익힌 것이 천만에 다행이야.
또한 즉시 그림자를 둘렀던 것이 목숨을 구했다.
하나, 그것으로도 막아내지 못할 만큼 강렬한 충격···.
허공에 내팽개쳐진 빅터의 입가에서 각혈이 뿜어져나왔다.
“크··· 헉!”
낙법조차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빅터를 바라보며, 홍련이 눈가를 아래로 향한 초승달처럼 만들었다.
그녀는 이 상황을 유도했어.
빅터의 재빠른 움직임조차 예상하고 지연 폭발을 시킨 것이다.
‘아직이다!’
착지.
땅을 짚자마자, 빅터는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면의 열기가 범상치 않음을 깨닫고, 폭발 직전에 서둘러 회피한 것이었다.
퍼어어엉!
콰광!
쿠과과과광!
그러나 터져나가는 열풍의 범위가 상상 이상이다.
이번에도 빅터는 대책 없이 바깥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 다음도, 이어서도 결과는 똑같았다.
마녀는 그의 접근은커녕, 제대로 일어서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빈틈이, 보이질 않아.’
숙련되어 있다.
거리를 조절하는 능력부터, 기폭의 타이밍까지 예리해.
방심하고 있는 게 명백함에도 일절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
홍련은 사냥꾼과의 싸움에 이상하리만큼 익숙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천지가 뒤집어진 세계를 거꾸로 내려다보면서, 빅터는 이븐 가지의 분말을 최대한 끌어냈다.
완전한 일체화.
그림자로 전신을 덮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었다.
퍼어엉!
폭발로 인해 그림자의 장막이 찢겨졌지만, 그것은 잠깐의 눈속임이었다.
“···어?”
홍련의 얼굴에 당혹의 빛이 드러난 그 사이, 빅터는 어느새 자세를 낮춘 채 지상에 도달해있었다.
맹렬한 가속.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사냥꾼의 안광이 잔상과 함께 뻗어나갔다.
“뻔히 보이는 수작을···!”
하지만 아무리 재빠른 도약이라도, 마녀 쪽에서 팔의 각도를 조절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섬광.
한 점에 집중된 불꽃이 달려드는 빅터의 좌측면을 휩쓸었다.
그림자는 벗겨진 지 오래.
도저히 막을 수 없어.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고열이 그의 반신을 날려버렸다.
검게 피어오르는 폭연 사이로, 처참한 흔적이 드러난다.
빅터의 왼팔은 이미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아핫, 아하하하!”
사냥꾼이 무기를 집는 손을 잃었음을 확인하자, 홍련의 마녀는 폭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
“앗!”
오른팔.
문드러지고, 뒤틀어졌어야 할 그의 오른쪽 팔이 거대한 도끼를 쥐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로 형상화된 그림자의 호완護腕···.
이븐가지의 분말로 만들어낸 본디 존재하지 않을 온전한 팔이었다.
왼팔마저 희생시킨 대가로, 빅터는 일격을 내리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멍청하긴, 네까짓 게 내 피부에라도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홍련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주변은 초고열의 결계로 둘러싸여 있기에.
마녀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아슬아슬 간격···.
그것은 강철마저 순식간에 녹일 정도의, 섭씨 2천도에 육박하는 장막이었다.
이 앞에서는 그 어떤 금속이나 날붙이도 통과하지 못해.
홍련에겐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닿고 말고!”
빅터가 목숨을 걸고 내지른 유성의 파편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녹는점부터가 차원이 달라.
그의 도끼는 이 별에 존재하는 어떤 금속과도 별개의 성질을 가진 무엇인가였기에···!
“꺄, 아아아아아악!”
그가 베어낸 것은 적석이 박힌 홍련의 오른팔.
절단부가 회백색으로 굳어간다.
즉시 마기를 차단하는 작용이 시작되었어.
이걸로 마녀는 마법을 부릴 수단을 잃고 말았다.
“···그, 그만! 내가,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제···.”
“지옥에나 가라!”
“아, 아아아아!”
마녀의 비명 따윈 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빅터는 다시금 도끼를 집어들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목을 떨어뜨릴 작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빅터의 눈동자에 들어온 것은···.
“···라고 할 줄 알았니?”
마녀의···.
입이 귀까지 찢어진 사악한 마귀의 얼굴이었다.
그때, 빅터의 복부에 뭔가가 닿았다.
그곳엔 마녀가 펼친 왼쪽 손바닥이 있어.
쪼개진 균열 사이로 무수한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다.
“유감이야, 사냥꾼 씨. 그리고 안녕.”
치이이이이익!
폭발은··· 없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작열시키면 마녀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터이니.
그 대신, 벌어진 빅터의 입안에서 붉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증발한 피가 만들어내는 아지랑이였다.
“커흐··· 커허어억!”
빅터의 육중한 몸이 비틀거려, 그는 코앞에 적을 두고서도 뒷걸음질을 쳤다.
내장이 녹았어.
심장과 이어지는 혈관이 짓무르고, 기도와 식도가 동시에 타버렸다.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의 고통.
빅터는 끊임없이 입을 통해 뱃속의 일부를 토해냈다.
“와아, 그 지경이 되고도 살아있어? 당신, 굉장히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네? 속이 바짝 구워졌는데도 이렇게까지 버틴 인간은 처음이야.”
그 말마따나, 서있는 것 자체가 기적···.
‘아직··· 아직이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그럼에도 빅터는 쓰러지지 않았다.
사냥꾼의 두 눈은 적을 향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심지어는 도끼를 든 오른팔에 두른 그림자도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싸울 셈이었다.
“크··· 아아아!”
존재하지 않는 골격, 사라진지 오래인 근육이 단지 정신으로만 이뤄진 힘으로 움직였다.
빅터는 자신이 가진 모든 이븐 가지의 분말을 쥐어짰다.
유성의 파편을 해방시켜.
사념을 빨아들이는 톱날의 이빨을 전개했다.
물러서지 않는다.
이걸로 다신 싸우지 못한다 해도.
설사 죽는다 할 지라도.
그는 모든 힘을··· 최후의 한 방울까지 전부 쏟아 부울 셈이었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폭풍.
기백이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야.
그 압력은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홍련조차 살짝 움츠려 들 정도였다.
“말도 안 돼. 고작 인간의 정신이 육체를 초월하다니?”
···그랬다.
살짝.
약 3초 정도.
일순간 놀래킬 수준의 짧은 시간만큼.
“···그래서 어쩌라고?”
빅터가 달려들자, 마녀는 미리 준비해둔 마술의 기폭을 실행했다.
사냥꾼의 머리를 날려버릴 생각이었지만, 그가 짐승처럼 움직였기에 살짝 조준이 어긋났다.
그래도 귀를 비롯한 한면을 태워버리기엔 충분했다.
이걸로 빅터는 왼쪽두상을 잃어버렸다.
‘···아직 멀었다!’
더, 더욱 더 강한 힘이 필요해.
그 갈망이 한계를 초월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뇌가 처리 불가능한 고통을 받아들였을 때.
보편적으로 육체는 쇼크사하거나 통각 자체를 차단한다.
빅터의 경우, 그 후자였다.
불행히도··· 그는 죽지 못했던 것이다.
사방이 터져나가는 폭발.
뱃속에 구멍이 뚫리고, 사지가 찢겨나는 처절한 폭격.
그때마다, 빅터의 손실된 육체는 그림자로 대체되어갔다.
‘아직!’
목숨을 내다버릴 각오로 임하면 인간은 기적을 이뤄낼 수 있는가?
간절한 의지와 부조리에 지지 않는 마음은 이치와 섭리를 초월해 승리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가?
‘아, 직이···다!’
투기는 남아있다.
증오도, 분노도 여전하다.
그러나 어떤 것에든 종말은 존재하기 마련.
“그쯤하지? 거머리 같은 남자는 내 취향이 아니야.”
홍련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흥미를 잃은 무기질한 표정.
그녀는 슬슬 모든 걸 끝낼 생각이었다.
마녀의 왼손바닥이 완전히 찢어졌어.
오로지 마몬의 적석으로만 이뤄진 속살이 드러났다.
모든 마기가 결집한다.
그것은 일제히 빛을 발해, 그림자의 실루엣만 남은 빅터의 몸을 둘러쌓다.
‘아··· 직···!’
주변이 초토화됐다.
광장은 사라지고 불타는 암석의 강이 만들어졌다.
유일하게 다른 빛깔은 땅에 박힌 이형의 도끼 뿐···.
‘일어나. 당장, 도끼를··· 들어. 나는 아, 직···.’
이 시점에서, 빅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육체는 저 멀리 무너져 내린 언덕으로 날려 보내져 있었기에.
···아니, 아니었다.
몸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야.
남겨진 건 고작해야 상반신···.
그마저도 흉하게 불타버린 두개골과 척추의 일부뿐이었다.
잠시 후, 빅터는 희미하게나마 의식을 되찾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채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로.
‘···설마, 나는 지고만 건가?’
그는 패배했다.
최강의 적, 홍련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당했다.
‘어째서냐, 빅터? 왜 진 거냐! 너는 강할 텐데··· 너에겐 지켜야 할 것이 남아있을 텐데!’
무엇이 부족했던가?
힘?
기술?
정신력?
그게 아니면 또 다른 뭔가?
하지만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생존을 이어가는데 필수부가결한 신체는 모조리 잃어버렸기에···.
지금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의식은, 사실 잔류하는 뇌파의 일부.
사념의 편린.
즉, 그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웃기지··· 마!’
빅터의 외침을 외면하며, 의식의 저편에서 암막이 드리운다.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체념하긴 이릅니다. 저편에서 건너온 사냥꾼이시여.’
가느다란 음성.
또렷한 의사가 전해져왔다.
희미해진 빅터의 의식은 자신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었다.
‘너는···.’
‘그래요. 저는 희나. 마을의 무녀이자, 이 무당촌의 관리인···.’
‘무사했던 건가?’
‘아뇨. 저는 죽임 당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경험한 건 현실이 아니까요. 그러니··· 그대도 살아있어요.’
‘그게 대체 무슨···. 그럼 내가 본 건 뭐란 말이지?’
‘당신이 폭포수 아래의 도원으로 떠나기 전날, 저는 제 모든 걸 넘겨드렸습니다.’
‘넘겼다고?’
‘잊으셨나요? 우리의 약속을··· 저는 당신에게 능력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설마···.’
‘그래요. 당신은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흩어졌던 의식이 재조립된다.
빅터의 정신세계에 광명이 비추기 시작했다.
‘돌아가세요, 사냥꾼이여. 이후의 모든 것은 그대에 선택에 달렸으니···.’
파앗!
“···큭!”
강렬한 두통과 함께 빅터는 눈을 떴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야.
수많은 정보가 미친 듯이 뇌리 속을 파고들었다.
“야, 갑자기 왜 그래? 부상이 도지기라고 했어?”
“헉··· 허억! 로, 로이드냐?”
“엉? 그럼 나 말고 또 누가 있는데?”
당혹스런 표정의 로이드가 눈앞에 있다.
주변에 비추는 광경은 막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두 사람은 마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나는 정말로 미래를···.”
“뭔 소리야? 잠깐 사이에 개꿈이라도 꿨냐?”
빅터는 기억을 더듬었다.
부상당한 자신의 팔과 로이드의 복장.
그리고 주변을 애워싼 소년소녀들의 모습으로 짐작하건데.
현재 상황은 시안이 이끄는 요마멸살대에게서 막 구출되어 돌아가는 길···.
다시 말해, 빅터는 홍련과 마주하기 약 두 시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한 경험···.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로이드, 할 말이 있다.”
“허? 너 아까부터 상태가 이상하다?”
“잔말 말고 들어! 중요한 일이다!”
“어? 그, 그러지. 대체 뭐길래 그래?”
“···믿어라. 반드시 내 말을 믿어야만 한다. 우리는 잠시 후에 곧···.”
빅터는 로이드에게 모든 전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