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격의 장(4)
4.
‘저 여자가··· 또 하나의 붉은 마녀라고?’
엄밀히 말해, 상대는 클라리스와 완전히 동떨어진 외모의 소유자였다.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간 곱슬머리.
건강한 빛깔의 피부에는 자연스러운 주근깨가 보인다.
표정은 생기가 넘쳐,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마녀들보다 자신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금빛 눈 속에 새겨진 선명한 일자 형태의 동공···.
그와 더불어 치켜세운 미간의 곡선이 한층 더 독하고 사나운 생김새를 남기고 있었다.
클라리스를 도도한 붉은 여우에 비유한다면, 눈앞의 상대는 앙칼진 고양잇과 동물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얼굴의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야.
전반적으로 마른 체구도 한몫했다.
‘작군. 성장기에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채로 자란 흔적이 명백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로이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눈앞의 상대는 그야말로 역대 최흉의 적일 것이므로.
육망성이란 칭호는 결코 장식이 아니었다.
과거에 어떤 적에서 느낀 것보다 깊은 농도.
무방비하게 공중을 부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적발 여인이 품고 있는 마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마치 몸속에 결계를 응축시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홍련.
그것은 육망성에 속한 여섯 중에 가장 어리지만, 최강의 공격력을 가진 자의 이명이었다.
무스펠하임의 주인.
주홍빛 무녀.
화룡.
셀레멘더.
이프리트.
파이로맨서···.
어느 것 하나 불길하기 짝이 없는 이름 뿐···.
“내 정체를 알아챘어?”
적발 여인의 몸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동시에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지면을 향해, 빅터에게로.
“하지만 납득이 안 되는 걸. 어디 한 번 말해봐. 왜 나와 그 배신자 년을 헷갈렸지? 자색과는 무슨 관계야? 부르짖던 목소리가 아주 간절하시던데. 응?”
“···.”
“아, 최대한 신중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걸. 아주 신중하게 말이야. 난 그 계집이 아주 싫거든. 만약 고작 머리칼 때문이라고 하면··· 널 죽여 버릴 지도 몰라.”
이 순간, 빅터는 과거에 없을 위기감을 느꼈다.
그 정도로 홍련의 마녀가 가진 위세가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에···.
‘무슨 배짱이지? 왜 점점 사정권 안으로···.’
본디 마녀는 사냥꾼을 겁낸다.
마법을 겁내지 않는 전문가만큼이나 마녀들에게 무서운 존재는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들은 주위에 자신을 보호할 사역마를 두기 마련이다.
결계도 그것의 연장선···.
어디까지나 사냥꾼들과 전면전을 피하며 온존에 최우선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어디에도 사역마의 그림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아.
일말의 물러섬조차 없이, 상대는 자꾸만 거리를 좁혀오고만 있었다.
“이봐,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너. 귀가 먹었기라도 했어? 왜 답을 안 해?”
그녀는 빅터와 로이드를 쏘아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니면 입을 열 생각이 없나? 무시할 작정? 그렇다면 심히 불쾌해.”
순간, 여인이 오른손을 펼쳐 보인다.
흉물스럽게도 그녀의 손아귀에는 새끼와 검지를 경계로 갈라진 균열이 있어.
조잡하게 기워진 흔적이 보였다.
툭, 투둑···.
살짝 힘을 준 것만으로도 실밥이 풀려졌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여러 개의 기묘한 이물질이 빼곡하게 끼어있는 것이 드러났다.
흡사 부화 직전의 개구리의 알 같다.
그러나 그 정체는 새빨간 보석의 군집···.
바로 마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의 ‘마몬의 적석’이었다.
번쩍!
섬광이 일어났지만 두 사람은 반응하지 못했다.
마녀의 요술은 거의 즉발이었다.
“아뿔싸!”
그 잠깐의 찰나, 빅터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다시금 리리 리를 품에 끌어안아야 했다.
이번에는 로이드도 함께였다.
“비, 빅터 사부?”
“야, 덩치··· 임마!?”
“크···윽!”
살이 타는 냄새가 풍겨온다.
뒤 돌아선 빅터의 어깨 너머로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열기를 머금은 빛이 직격한 것이 아니야.
이는 단지 배후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피할 수 없는 재앙이었으니···.
몸을 일으킨 빅터는 치를 떨었다.
돌아선 자리가 움푹 패여 있다.
광장이 있던 장소가 흔적도 없이 증발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조금 전까지 축제를 즐기던 무수한 사람들은···.
“뿌득!”
그는 이를 악물었다.
빅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분노로 일그러졌다.
단, 마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건 오직 자신의 볼일뿐이었다.
“이제 대답할 마음이 생겼을까?”
“저 사람들이 대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벌레 몇 마리 좀 죽였다고 시끄럽게 굴긴. 그보다 내가 물은 것부터···.”
“닥쳐!”
빅터는 단호히 말했다.
코트가 그을리고, 등에 심각한 화상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장 우선시 한 것은 무고한 자들이 죽은 사실에 대한 분노였다.
“어째서냐? 너희는 왜 매번··· 내 눈앞에서 약한 자들만 골라서 이토록 비참한 짓거릴···!”
“···말이 안 통하네. 너, 대화할 생각이 아예 없구나?”
“용서 못한다. 네 년은 절대로···!”
빅터의 기세는 무시무시해.
클라리스가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 보인 무방비함이 거짓말처럼 돌변했어.
거기엔 이븐 가지의 분말이 보이지 않는 일반인조차 충분히 짐작할 법한 격렬한 증오가 담겨있었다.
그런데 홍련은 오히려 나른한 한숨을 쉬더니.
“···질렸어. 늬들, 사냥꾼이란 족속은 언제나 변함이 없네. 항상 뻔한 소리만 늘어놔. 뭐가 그렇게 열 받지? 자기네랑 아무 상관도 없는 쓰레기들이 죽을 때마다 버럭버럭···.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단 말이야. 내가 물은 것에나 답하라고! ···하아, 여기서 몇 번을 더 터뜨려줘야 순순히 말해줄 기분이 들까?”
마녀가 또 한 번 팔을 들어 올리려 한다.
뭔가를 노린다.
이번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이 목표인 듯 보였다.
“어딜!”
하나, 같은 실수를 몇 번이고 방치할 사냥꾼들이 아니었다.
부웅!
빅터는 아직 온전한 왼팔로 풀어헤친 쇠사슬을 휘둘렀다.
그가 겨냥한 부위는 마녀의 목이었다.
파앗!
동시에 로이드의 은사가 마녀의 팔을 휘감았다.
이제 잡아당기기만 하면, 토막과 함께 피 보라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하지만 로이드는 끝내 그러지 못했다.
빅터의 시도 또한 실패했다.
“아, 아니?!”
로이드가 경악했다.
손가락과 이어진 은사가 끊어지고 말았어.
빅터가 날린 쇠사슬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둘 다 적발 여인에게 닿기도 전에 녹아버린 탓이었다.
홍련의 마녀는 금속이 녹을 정도의 열기를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쿠과아아아앙!
이어서 끝내 막지 못한 마녀의 마법이 작열했다.
불기둥.
지상으로부터 십 수 미터나 높게 화염의 장막이 솟아올랐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홍련이 금색 눈동자가 발광할 때마다, 그것은 더욱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다.
“뭐, 이젠 됐어. 너도 자색이 가지고 논 과거의 남자들 중 하나겠지. 사냥꾼이 될 정도로 끈질긴 놈은 처음인 것 같지만··· 나랑은 아무 상관없으니까.”
“그만··· 그만둬라!”
“후, 후후. 뭐가 그렇게 싫어? 해충들이 타죽는 게 그렇게 끔찍해? 하지만, 덩치 씨. 이건 전부 너 때문이야.”
“뭐···라고?”
“날 무시했지? 아까부터 이상한 눈으로 봤었잖아?”
“···.”
“왜 내가 사역마를 대동하지 않은 건지, 어째서 맨몸으로 왜 너희에게 다가오는 지···. 있지, 사실 나에겐 그런 조잡한 것들이 필요 없거든? 사역마나 중합체 따위, 무능력한 겁쟁이들이나 쓰는 거란다. 그리고···.”
처음으로, 홍련의 입가가 미소를 그렸다.
“이게 그 대답이야.”
홍련은 자신의 오만방자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것은 강함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스스로가 최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만이 낼 수 있는 망설임 없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후후, 마침 새로 손에 넣은 마석을 실험해볼 좋은 기회네. 잘 농축되어 있어. 여느 때보다 충만하게··· 이처럼 농밀한 마기의 발생지역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마녀가 손끝을 가리킬 때마다, 사방에서 화마가 피어오른다.
그때마다 생명의 기운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비명이 단말마로 변하는 데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구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돕지 못해.
빅터는 리리 리를 끌어 앉은 채, 달라붙는 불길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이었다.
“로이드, 산개하자! 거리를 벌려! 모이면 표적이 될 뿐이다!”
“체, 그쯤은 나도 알아!”
빅터와 로이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너는 꼬마 아가씨랑 떨어져 있어! 이놈은 내가 어떻게든···!”
그나마 양손이 막힌 빅터에 비해, 로이드는 최대한 상대에게 온갖 시도를 다 해볼 셈이었다.
그는 우선 흑색 화약이 담긴 주머니를 집어 던져 폭발을 유도했다.
마녀의 시선을 가리기 위한 발악이었다.
“젠장! 마르, 일어나! 지금이 자고 있을 때냐?!”
그러나 답이 없다.
하필 마르는 로이드의 체내에서 신경의 최적화를 위해 오랜 동면에 빠져든 상태였기에···.
“우앗!?”
인접한 건물이 무너진다.
불이 붙은 판자와 지붕의 일부가 솟아져 내려, 여지없이 로이드를 향해 덮쳤다.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로이드는 그대로 매몰되었다.
“로이드!”
“···오지 마, 멍청아! 나 아직 안 죽었으니까!”
“큭!”
“물러나라고! 너한텐 아직 지켜야할 상대가 있잖아!”
한편, 빅터는 끓어오르는 격노를 참아내며 최대한 냉정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예전에 대스승 크레이그와 대스승 베누다, 그 두 사람이 누누이 경고했었지. 불을 다루는 마녀만큼은 절대 상대하지 말라고···.’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어.
제아무리 베테랑 사냥꾼이라도, 혼자서는 결코 이겨낼 수 없는 재앙이 존재했던 것이다.
수백 살 먹은 마녀는 예외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희생이 필요한 토벌 대상이지만···.
그녀의 경우는 특히나 남다른 취급을 받고 있었다.
‘홍련··· 만물을 불태우는 마녀.’
그녀가 나타난 곳은 여지없이 황무지로 변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확인할 법이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지맥을 후벼 파서 일대를 용암으로 덮어버린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그 소문이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유일하게 사역마를 부리지 않는 마녀.
아니, 부릴 필요조차도 없다.
대처가 불가능한 요술···.
그 무엇이든 잿더미로 만든 정체불명의 발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동안 은둔하면서도,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태워 죽인 사냥꾼이 세 자리 수 이상···. 로이드의 말이 맞았다. 놈은 최악이다!’
정신없이 발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빅터는 끝없이 의문을 떠올린다.
왜 저것이 여기에 있나?
또 오른손에 무수히 박힌 붉은 돌들은 대체 무엇이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해답을 이끌어냈다.
하나는 좋은 소식.
정신감응능력을 통해 간파해낸 진실 중 하나는, 마몬의 적석을 창조해낸 장본인이 홍련이란 사실이었고···.
또 하나는 빅터가 순간 걸음을 멈춰 세울 정도의 참혹한 진실이었다.
‘···아랑?’
파악하는 게 늦었다.
마녀의 손에 박힌 적석 중에는 유독 큰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것은 어디선가 많이 본 모양···.
마기가 짙은 이 마을에 방문하기 전에 소년에게 건네주었던 그 보석과 아주 흡사한 형태였다.
바로 아랑이 품속에 담아둔···.
‘맨 처음 터져나간 것은 사당이 있는 언덕이었다. 아랑은 아마도 그곳에서···.’
빼앗겼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보석과 목숨, 둘 다 이리라.
‘나는 왜 이렇게 중요한 걸 이제야···.’
뻔 한 속셈.
홍련의 목적은 처음부터 마몬의 적석을 회수하는 것···.
실로 영악한 계략이었다.
우선은 마기를 빨아들이는 신비한 보석을 만든다.
그 다음은 제물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시장에 풀어둔 것만으로도 충분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진득한 욕망을 흡수해서, 이윽고는 마기가 응집된 물질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토악질이 나온다. 이 무슨 악마의 지혜란 말인가?’
빅터는 겨우 결론에 도달하고서 그 사악함에 몸서리쳤다.
그리하면 성가신 의식을 치룰 필요도 없기에.
제물을 찾아 헤매지 않고 마기의 보충을 해결할 수 있다.
참으로 간편하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세상에 기현상을 일으키며··· 그로인해 무수한 공포를 새겨 넣는다.
덩달아, 회수가 필요할 때엔 직접 찾아가서 소유주에게서 빼앗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번에 희생된 상대는···.
‘···지켜주지 못했다.’
이글거리는 열기 속에서, 빅터는 외면하고픈 슬픈 사념을 감지했다.
여리고 순진하며, 아직 채 다 크지도 못한 혼백이···.
그저 부모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어 했을 뿐인 소년의 감정이 넋두리처럼 주변을 헤매고 있었다.
“···리리 리, 내려와라. 혼자서 걸을 수 있겠지?”
“빅터 사부?”
“달아나라. 온힘을 다해서, 최대한 멀리.”
“시, 싫어요! 저는···!”
“명령이다! 마을을 떠나서 전서구를 날리도록 해. 대스승을··· 동지들에게 이 상황을 알려라!”
“싫어! 나도 사부랑 함께 싸울 거야!”
“리리 리! 떼를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러고 있다간 전부···.”
그때, 빅터는 자신의 제자에 너무 신경이 팔려있었다.
그래서 또 다른 아이들이 위험에 뛰어드는 것을 채 말리지 못했다.
“···제 1진 준비! 조준이다! 목표는 전방의 요녀!”
먼발치, 백 걸음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검은 옷의 무리가 군형을 잡는다.
시안이 이끄는 요마 멸살대였다.
“잠깐! 물러서라! 이건 너희가 맞설 상대가 아니···.”
“발사!”
“시안!”
빅터는 말릴 수 없었다.
그 우렁찬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소년소녀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펑!
투콰앙!
하늘을 나는 신수마저 관통한 대구경의 화포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어쩜, 귀여운 날벌레들이네?”
조소와 함께 마녀의 손끝이 방향을 바꾼다.
융해.
닿기도 전에 포탄이 허공에서 녹아내려 쇳물이 된다.
그리고 일직선상의 모든 것이 붉게 달아올라, 어느새 아이들의 발아래까지 닿았다.
발화.
아이들의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악!”
“우, 우아아악!”
“모, 모두들··· 아윽!”
훈련받은 대로 위치를 지키던 소년병들은 순식간에 화마의 먹이가 되었다.
지휘를 위해 측면에 있던 시안마저 얼굴에 불씨가 튀어, 그녀는 자신의 안면을 양손으로 거머쥐었다.
그럼에도 시안은 비범했다.
왼쪽 면이 바싹 타들어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결코 두 눈을 감지 않았다.
그것이 비극이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
오랜 친구가, 형제처럼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이 타 죽어가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시안은 자신의 아픔보다, 현실에 처한 두려움과 절망에 통곡했다.
소녀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다.
참혹한 감정의 파동이 전해져와, 빅터는 자신의 가슴을 거머쥐었다.
“얼마나··· 이 이상 얼마나 더 죽여야 만족할 셈이냐!”
“그야 뻔 하잖아? 이 별의 모든 게 불탈 때까지야.”
“너어어어어어!”
“머, 멈춰요! 빅터 사부! 저기로 가면 안 된다는 거 알잖아요!”
“놔라, 리리 리! 너는 방해 말고 도망치기나해!”
“하지만!”
“방해된다!”
빅터는 제자에게 처음으로 감정을 실은 손찌검을 날렸다.
뒷목을 후려갈겨, 그녀를 기절시켜버린 것이다.
축 늘어진 리리 리를 그나마 불씨가 없는 곳에 누이고서야, 빅터의 시선은 다시금 적에게로 향할 수 있었다.
“···이 아이만큼은 건들지 마라.”
“그거야 너 하기 나름이지, 애 딸린 사냥꾼 씨?”
피눈물마저 증발할 정도로 사방의 공기가 끓어오른다.
빅터는 불구하고 계속해서 열기의 중심부로 발걸음을 향했다.
바로 홍련의 마녀의 앞으로.
빅터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하자, 어째서인지 홍련의 마녀는 살짝 들뜬 표정이 되었다.
“흐응··· 너, 자세히 보니까 우락부락한 것치곤 나쁘지 않은 걸? 은근히 야성적인 매력이 있어. 머리를 물들이고, 그 지저분한 수염만 좀 단장하면···. 후후, 자색에게 넘기기엔 좀 아까워.”
우리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홍련은 열기를 만들어내는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빅터를 도발할 작정이었다.
“그러면 말해라. 왜 이런 무의미한 학살을 했지? 네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을 것을···.”
“글쎄. 간만에 마실 나온 김에 심심풀이?”
“···뭐?”
“놀이를 즐기는데 이유가 어디 있어? 길가에 꿈틀거리는 거미가 있으면 밞아주는 거야. 어차피 내버려둬도 죽을 거, 기왕이면 힘이 있는 자의 유희에 쓰이는 게 더 좋지 않아?”
“너, 이 새끼···.”
“후후, 실은 나 알고 있어. 불과 몇 시간 뿐이었지만 대략적인 사정 정도는 들었거든. 이 마을의 쓰레기들을 죽고 싶어 한다지? 이 축제도 그걸 기념하는 거고?”
“···.”
“응, 이해해. 어미가 자식을 낳을 때마다 죽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기억이 씌이면 끔찍하겠지. 그게 몇 세대를 이어지면 미쳐버리고 말거야. ···거기다 촌락에 신탁을 내리는 무당이란 년은 매일같이 의미 없는 예지를 했다며? 그런데 이거 어쩌나. 자기가 뒈지는 순간만큼은 예측해내지 못했던 모양이던데?”
“···죽인 거냐? 그녀까지?”
“시시했어. 도자기 같은 몸을 해가지곤, 까맣게 그을려질 때까지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더라. 뭐랬더라? 이미 넘겨주었으니, 이 이상 내줄 것은 없다나? ···불쌍하게도 섬길 존재조차 없는 반푼이 주술사 계집···. 세상을 온전히 저주했더라면 나처럼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위대한 존재께 모든 걸 바치면, 비로소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을···.”
“···그 딴 건 도움도, 해방도 아니다. 그저 달아난 거지. 너는 공포에 무릎 꿇고 도망친 거다!”
“하지만 그거 알아? 죽으면 그 공포조차 느낄 일이 없다는 걸? 모조리 태워버리는 게 나아.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마을 사람들은 구해준 거라고?”
“웃기지 마라! 너에게 죽은 희생자들은··· 아스트랄에게!”
“맞아. 모두 우리 주인님을 위한 산제물이 되지. 자기 목숨마저 포기한 아둔한 자들. 놈들은 충분히 이성이 마모되어 있었어. 별다른 작업도 없이, 이렇게 손 쉽게 바칠 수 있을 줄이야··· 후후후.”
마녀는 사람이 바뀐 것만 같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타인의 비극과 죽음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악한 웃음이었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다른 마녀라면 최소한의 동정심이라도 느껴질 것을···.’
이때, 빅터의 울분은 한계에 달했다.
몸이 삐걱이고 오른팔도 가누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적을 향한 투지만큼은 더욱 증폭해나가고 있었다.
‘살려 둬선 안 된다. 이놈만큼은···!’
그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이 자리에서 매장시킨다.
빅터는 그것을 깊이 맹세하며 왼팔로 도끼의 자루를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