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27화 (127/186)

요격의 장(1)

1.

좌표가 있다.

빅터의 단언에, 마르는 적지 않게 놀랐다.

‘어떻게 인간이 우리의 영역을 여기까지 침범할 수 있지?’

예기치 못한 불청객들.

과거의 편린에 불과한 빅터와 로이드가 여지없이 모든 예상을 뭉개버린다.

대체 어디부터 운명의 인도가 어긋난 것인가?

어느 순간 시간의 흐름이 여러 갈레로 찢겨버리고 말았나?

그녀가 감지하는 미래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계기···.

단지 로이드가 활로를 찾았음을 확신한 정도.

그저 빅터가 강인한 희망을 품은 것만으로···.

마르는 이제야 겨우 그것이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임을 깨달았다.

“···좋아. 목적 시간대가 정해졌으면, 이제 바로 움직일 때야! 로이드란 개체, 저 쪽을 향해 달려!”

“어, 어엉?”

“내가 길을 안내할게! 어서!”

실마리를 얻은 직후.

빅터와 로이드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마르가 갑자기 정색하며 재촉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빨리 도착하지 않으면 너희는 물론, 나까지 이 시간대에 영영 갇히게 될 지도 모르니까!”

“너도 참, 여기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그렇게 닦달이야?”

“가볍게 듣지 마. 아니, 말할 여유가 있다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달려! 출구가 막혀버린단 말이야. 내가 시간대를 옮길 수 있는 권한이 해지되는데 얼마 멀지 않았어!”

검은 엑조틱들에겐 그들이 모르는 비책이 두 가지나 따로 있었다.

하나는 소각.

만에 하나, 불순물을 제거하는 감찰관들이 임무에 실패할 시···.

그들은 희생까지 각오하고 공간을 붕괴시킨다.

외래종의 문명이 가진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초 중력 소멸 병기.

유사類似 마이크로 블랙홀Micro Black Hole.

이는 인류가 아주 먼 미래에 겨우 그 존재를 예견하게 될 물리학의 정수이건만, 이미 엑조틱들은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병기로 이용하기 위해 충분히 안정화 되었고, 발동까지 수 십 분이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그 위력은 절대적.

수 만 톤의 질량을 집어삼키고, 그 수십 배 이상의 폭발을 만들어내는 무시무시한 폭탄이었다.

만일 빅터와 로이드가 서둘러 그것을 소멸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쯤 동굴은 이미 미립자 단위로 분해되어 사라지고 말았으리라.

하나, 엑조틱들이 남긴 최후의 발악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차선책.

바로 봉쇄가 따로 있었으니.

소각 대상이 죽었던 말건, 위험요소는 전부 배제한다.

그것이 외래종의 편집증에 가까운 완벽주의였다.

‘아슬아슬해. 이 속도로는···.’

바깥 세계로 나가는 출구는 좀 더 깊숙한 장소에 있다.

거리 단위로는 불과 수 킬로미터 남짓···.

하지만 남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걸 알면서도, 마르는 점점 초조해졌다.

‘허튼 짓이었던 걸까? 이 개체를 살리기 위한 내 노력이 전부 허사로 돌아가는 거야?’

로이드와 일체화 되면서 많은 능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본래의 몸이었다면 간단히 공간을 도약하면 되었을 것을···.

마르의 감정에서 불안의 기색이 감돌자, 로이드의 뒤를 쫓던 빅터가 입을 열었다.

“마르, 얼마나 부족하지?”

“아?”

“우리가 도달하기까지 한참 모자란가?”

“위험해. 지금 상황으론 약 36.78초 늦어. 하지만 너희 신체의 손상을 고려했을 때, 이 이상 속도를 올리는 건···.”

“괜찮다, 마르. 안심해라.”

“아?”

“우린 반드시 돌아갈 테니···.”

이때, 빅터는 왼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쥐었다.

잿빛의 그림자가 발 아래로 닿아, 두 다리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역 관절.

보다 고속으로 주행하는데 특화된 짐승의 발이었다.

아껴둔 가루를 소모한 극약 처치였지만, 마르의 걱정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보단 훨씬 나았으리라.

빅터는 한 걸음 만으로 3미터 이상의 보폭을 줄였다.

가히 축지縮地에 가까운 움직임.

그는 앞서가던 로이드를 간단히 추월했다.

“우왓, 깜짝이야! 빅터, 너 이 자식! 아직 그런 힘이 남았었···.”

“로이드, 이 정도 부분 변화라면 너도 할 수 있겠지.”

“어쭈? 또 선배님 신경을 긁으시겠다?”

“엎어주기라도 할까?”

“내가 못 따라갈 것 같냐고!”

오기.

이미 체력이 간당간당했지만, 로이드는 빅터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설마하니 부상당한 산송장이나 다름없을 덩치보다 뒤쳐진다니, 그의 자존심이 그것만큼은 인정하지 못할 터···.

더욱이, 적과의 거리를 좁히는 기술쯤은 로이드에게도 있었다.

그는 가루가 스며든 은사를 다리에 나선으로 휘감아, 힘껏 땅을 박찼다.

그 모습은 마치 돌돌 말린 용수철과 같았다.

팟!

반동에 의해 로이드의 몸을 앞으로 날려 보냈다.

착지가 한 박자 늦지만, 단축한 거리만큼은 빅터에 지지 않을 정도.

“야, 덩치! 입구까지 경주 어때? 이긴 놈이 은화 독식하는 걸로!”

“나쁘지 않군. 그럼··· 누구 연료가 먼저 바닥나나 승부다!”

“오우!”

“세상에, 너희 두 개체는 정말···.”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르는 자신의 계산을 여지없이 수정해야만 했다.

가속.

더욱 더 빨라져.

두 사람은 이족 보행 동물이 낼 수 있는 이론상의 최고 속력을 한참 전에 벗어났다.

‘갈 수 있어! 앞으로 오 분, 아니 삼 분이면 충분히!’

마르는 절로 감탄이 나와.

정의를 내리기엔 모호하고, 만질 수조차 없는 마음의 힘을 물리적인 에너지로 변환하는 사냥꾼들에게 경악하고 있었다.

과연···.

그들은 이것으로 감찰관을 무찌르고 초과학의 중력병기마저 무효화시켰단 말인가?

그러나, 갈수록 마르의 가슴 속에서 기묘한 불안감이 생겨났다.

‘···내 선택이 정말 올바른 걸까?’

이들의 근성과 의지는 수치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외래종인 마르마저 알 수 없는 용기가 벅차오른다.

만일, 이 모습이 다른 인간들에게까지 전파된다면···.

‘단 두 마리의 특수 개체가··· 우리 종족마저 위협할 정도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거야?’

믿기 어려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는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 만 것이 아닌가?

“빅터, 로이드란 개체···.”

“야야, 말 걸지 마! 수다는 나중이야!”

“너흰 어째서 나를 신뢰하는 거야?”

“하?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마르? 날 살려주고, 이렇게 새로운 눈까지 준 은인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냐?”

“정말? 그것이야? 만약에 내가 두 사람을 배신할 작정이라면···.”

“시끄럽긴! 어차피 네가 아니었다면 죽은 목숨, 될 대로 되라지!”

“···.”

“마르, 로이드 녀석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널 원망하지 않겠다고. 네가 우릴 보내지 않길 원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빅터는 마르가 변덕을 부리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엑조틱이 가진 가장 강한 본성인 지적 호기심.

그리고 생명에 대한 깊은 탐구욕을 가진 그녀이기에, 두 사람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았기에.

그들은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어.

남은 일은 마르가 장치에 신호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나중에 후회해도 몰라.”

마르는 짐작한다.

마녀, 그리고 차원 너머에 존재하는 적과 싸우기 위해···.

앞으로 빅터와 로이드의 전투는 더욱 처절하고 가혹해질 것이란 걸.

그것은 허락된 수명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심지어 승리조차 기약할 수 없는 무모한 길···.

‘그래도, 나는 보고 싶어. 이 두 개체가 만들어나가는 가능성을···.’

학자로 태어난 자의 본능이 마르를 행동케 만들었다.

비록 야만적인 싸움이라 할지라도, 빅터와 로이드의 최후를 관측하고 싶어진 것이다.

“뛰어 들어! 저기가 바깥이야!”

순간, 마르가 의태한 로이드의 오른쪽 눈이 빛을 발했다.

“뭐어?! 이 앞은 돌벽이잖아, 이런 미친···.”

“잔말 말고, 어서!”

“그럼 나부터 가지.”

로이드가 잠깐 주춤한 사이, 빅터가 도약했다.

시커먼 바위로 된 벽이 눈앞에 있어.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마르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진짜였군.’

충돌은 없었다.

이어지는 유일한 감각은 압력.

마치 순식간에 깊은 물속으로 들어선 것만 같은 느낌.

빅터의 시야에 빛과 어둠이 점멸한다.

그것은 수면 위에 비춰진 것 마냥 기하학의 춤을 쳤다.

이윽고 거미줄이 나타난다.

그 사이사이에 빅터의 얼굴이 나타났다.

마치 깨진 거울의 표면처럼···.

“···허억!”

바람.

갑자기 등 뒤에서 강풍이 불었다.

그 힘은 빅터의 등을 떠밀어, 순식간에 하늘 위까지 띄워 올릴 정도였다.

그는 반사적으로 왼팔을 뻗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뭔가를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촉감···.

살며시 눈을 떠보니, 그곳에는 세월에 깎여나간 절벽의 돌부리가 있었다.

“드디어···.”

얼굴에 뭔가가 튄다.

물방울.

맹렬한 기세의 폭포에서 갈라져 나온 일부였다.

이제 피부를 연신 녹이는 푸른빛은 사라진지 오래···.

은은한 햇살만이 비추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코언저리에 느껴지는 가벼운 공기···.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어.

기압은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우와아아앗!”

뒤이어, 로이드의 비명이 들려왔다.

녀석은 빅터 바로 아래에 튀어나온 바위에 겨우 매달리더니···.

“어랍··· 쇼?”

“로이드!”

미끌.

그만 부러진 손가락으로 제대로 쥐지 못하고, 그대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으아니, 왜 나마아아안!?”

그래도 운이 좋았다.

로이드가 추락한 곳에서 불과 2미터 밑에 돌출된 암반이 있었기에.

빅터는 돌부리를 잡고 있던 왼손을 놓았다.

그리곤 로이드의 바로 옆에 착지했다.

“깜짝 놀랐다.”

“컥, 어헉···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완전 식겁했네.”

“로이드란 개체, 심호흡을 해. 이곳의 대기농도는 너에게 이로운 것 같으니까. 그 증거로 세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어. 아까보다 혈관의 재생이 빨라졌는걸?”

“그야 당연하지! 안 그래도 이 공기 너무 그리웠다고!”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표정.

그는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고, 귀환의 감격을 음미하고 있었다.

“돌아왔어! 우리가 지옥에서 돌아왔다고!”

“···로이드.”

“왜, 임마? 너도 감회가 새롭냐?”

“위를 봐라.”

“엉?”

그때였다.

하늘에서 커다간 그늘이 지나간 것은···.

“저 놈들을 잊고 있었군.”

“···아, 좀! 잠시도 쉬게 내버려두질 않냐?!”

새카만 날개를 가진 기괴한 괴물들이 날고 있어.

마르는 한 눈에 그것이 자신의 피조물이란 걸 알아챘다.

“이럴 수가! 어째서 이 시간대에 내 실험체들이···? 설마!? 통로에 내가 모르는 빈틈이 존재했던 걸까? 저 조류의 깃털과 비슷한 기관··· 저 육중한 무게를 지탱하다니? 비행이 가능할 정도로 굉장히 발달해 있어. 이건 놀라운 발견이야.”

“마르, 지금은 여유롭게 분석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피 냄새를 맡았는지, 창공의 적들이 접근해온다.

빅터는 서둘러 왼팔로 도끼를 쥐었지만···.

“크윽!”

들어 올릴 수가 없다.

자루에 손가락을 걸친 것만으로도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필 지금까지 억눌러온 신경이 급속도로 회복되고 말았어, 통각신경까지 살아나버린 탓이었다.

“야, 마르. 이거 어떻게든 안 되겠냐?”

“그만둬! 네 손가락의 상태는 그저 모양만 갖춰뒀을 뿐, 아직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단 말이야!”

“죽기 살기로 하면···?”

“영영 쓸 수 없게 되겠지!”

“빌어먹을, 환장하겠네.”

그리고 전투가 불가능한 것은 로이드 쪽도 마찬가지···.

“장난 치냐고! 한 달 가까이 마계에서 살아남았는데, 돌아오자마자 이딴 개 같은···.”

빅터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로이드가 분한 듯 입술을 깨무는 사이···.

“기엑!”

“갸기긱!”

퍼어엉!

투과아앙!

허공이 작열한다.

폭발과 함께 하강하던 몇 마리가 이탈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애송이 놈들이···.”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치닫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겨우··· 겨우 따라잡았어. 다신 당신들을 놓치지 않습니다.”

한이 서린 목소리와 함께 작은 몸집의 그림자들이 언덕을 타고 내려온다.

밧줄에 의지한 채 활강을 시작하는 검은 옷의 무리···.

하나같이 손아귀에 대구경의 화포를 들고 있다.

“온다! 모두 진영을 갖춰! 훈련받은 대로만 해! 전하의 기대에 응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다!”

개중 하나는 아는 얼굴.

황자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소녀, 시안이었다.

“우리는 전하의 칙명에 따라··· 총력을 다해 사냥꾼들을 엄호한다!”

그들은 다름 아닌 요마멸살대.

바로 이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떼어놓았던 소년소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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