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24화 (124/186)

이탈의 장(6)

6.

한편, 빅터가 시간을 끈만큼 로이드와 마르는 위험한 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정신 차려! 잠들면 안 돼! 감찰관을 배반하면서까지 달아놨는데, 여기까지 와서···.”

지상으로 내려온 마르의 몸이 요동친다.

반신만 남은 기이한 표면이 새파랗게 질려, 어쩔 줄 몰라 하며 촉수로 로이드의 머리 위를 휘저었다.

그가 오래도록 침묵으로 일관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탁이야, 로이드란 개체! 어서 눈을 떠!

잠시 후.

오두방정이 거슬렸는지, 곧 로이드가 신경질을 부렸다.

“···눈이라면 아까부터 뻔히 뜨고 있거든?”

“아! 그랬구나. 다행이야. 반대쪽 얼굴이 감지되질 않아서 기절한 줄 알았지 뭐야? ···맞아. 네 우측 시각 기관은 기능을 지금 상실했었지?”

“너, 지금 사람 놀리냐?”

“고의는 아니었어. 난 그저 너란 개체가 걱정 되서··· 앗!?”

“엉?”

“번역이 잘못됐어. 음성 신호가 살짝 엇나갔나봐. 그래서 내 의도와 다른 단어가 멋대로···.”

로이드의 미간이 실룩인다.

그가 상대에게 놀릴 거리를 찾아냈을 때의 반응이었다.

“오호? 그럼 원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중요한 연구 샘플인 네가 사라질까봐 속상하다는 표현이 다소 순화된 나머지···.”

“뭐야? 그럼 걱정한 게 맞네. 이 미천한 인간을, 무려 위대하시고 지고하신 먼 미래의 초월종인 마르 님께서!”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우악! 갑자기 뭐야?!”

“고장이야! 낙후된 성능의 번역기 고장이란 말이야!”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해! 귀청 떨어질 것 같으니까 그만!”

“거짓말쟁이! 나에겐 발성 기관이 없는 걸? 너랑 개체가 내 목소리라고 착각하는 건, 전부 가청화된 주파수로 뇌에 직접 전달되는 거라 청각에 영향을 줄 리가 없···.”

“아, 네네! 내가 잘못했어! 이제 농담 안 할 테니까 봐주라! 네 장황설은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뭔 소린지···.”

“그러니까 ‘듣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잖아? 그리고 장황설이란, 매우 길고 번거로운 이야기를 뜻하는 명사로··· 내 합리적인 설명과는 거리가 먼 표현이지!”

“아니, 좀! 적당히 비유 정도로 알아먹으라고!”

“비유? 아! 전부 수사적 표현이었던 거야?”

“···돌겠네, 진짜.”

수다쟁이 로이드의 진짜 적수가 밝혀졌다.

그것은 과묵한 빅터나, 허황된 이야기에 일일이 반응해주며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것은 바로 또 다른 수다쟁이.

특히나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로 무장한 진짜 지식인 학자 마르야말로, 로이드가 질겁하기에 충분한 상대였다.

“너, 임마··· 듣는 사람 입장을 생각 안하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떠들면 악의가 없어도 미움 받을 지도 모른··· 큭!”

“로이드란 개체?!”

“그 개체 어쩌고 표현부터 좀 빼라! 나랑 소통하려면 그 이상한 말투부터 바꾸라고! 크, 쿨럭!”

갑자기 로이드가 각혈한다.

답답한 나머지 피가 역류하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

사실은 정안을 잃어버린 탓에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겼어.

마르는 그게 일종의 거부반응이란 사실을 눈치 챘다.

“···큰일이야. 로이드란 개체··· 가 아니라, 로이드! 네 몸을 이루던 균형이 붕괴되기 시작했어.”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이미 육체의 수복이 시작된 마르와 다르게, 인간은 너무도 연약했다.

원래대로라면 이계의 생물과 융합해있던 사냥꾼의 육체는 아주 절묘한 조화를 이뤘어야 할 터···.

그러나 어느 한 쪽이 크게 훼손되자 즉각적으로 면역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피부는 물론, 내장 기관까지 급속도로 문드러지고 있었다.

‘심해. 너무 장시간동안 피폭됐어.’

온전한 환경이라면 최소한 회복을 꾀할 수 있을 지도 모르나···.

자광석의 유해한 광선은 로이드가 만전인 상태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가다간? 또 뭐? 말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 임마!”

“화내지 마! 나도 확신할 수 없단 말이야. 자칫하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서 너를 괜히 불안하게 만들어버릴 지도 모르니까.”

“까불지 마. 이 사나이 로이드, 그런 거에 겁먹을 정도로 담이 작진 않단 말씀이야.”

“그치만 너는 지금 쓸개가 절반이나 융해되었는데···.”

“···아, 이젠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어쩐지 겁나게 아프더라아아아!”

“농담할 때가 아니야.”

“넌 이게 장난치는 걸로 보이냐?”

“어, 어느 쪽인데?”

“보면 모르냐!?”

“몰라!”

“그럼 앞으로도 계속 궁금해 해라. 절대로 안 알려줄 테니까.”

“뭐, 뭐야?!”

마르는 혼란스러웠다.

로이드의 진심을 알 수가 없어.

당장은 겁쟁이처럼 비명을 지르지만, 이마저도 죽음에 직면한 순간까지 스스로를 희화화시킬 셈으로 보였다.

어째서 애써 미소를 짓는가?

내장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장난까지 칠 심적 여유가 있단 말인가?

‘설마··· 일부러 의연한 척 연기를?’

마르는 짐작했다.

로이드가 공감고통Sympathy pains이란 개념까지 알 리는 만무했으나···.

그도 아픔이 타인에게 전염된다는 것 정도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예전에 이 기록을 열람한 적이 있어. 호모 사피엔스처럼 무리를 이루는 사회적 동물들에게 흔히들 나타나는 특성···. 인간은 다른 개체의 아픔을 관측하는 것만으로도 통증 신호를 발하는 전기 자극이 일어나, 마치 거울처럼 신경이 작용한다는 이야기였지.’

그 말인즉, 사람은 타인이 느끼는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

남의 슬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상상하는 것 또한 모두 생리적 작용에 의한 것이다.

“로이드. 나는 너의 동족이 아니야. 그러니까 힘든 걸 숨길 필요는 없어. 수컷이 월경을 하는 암컷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듯이, 나도 신경계를 가진 인간의 고통을 짐작할 수 없으니까.”

“···허? 뭘 어쩌라고? 나더러 울고 불고 하기라도 하란 거냐?”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육체가 있는 생물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해소 반응이 아닐까?”

“쯧, 너는 인간은 물론이고··· 남자란 동물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구만.”

“내가 가진 지식을 시험할 생각이야? 수컷 영장류의 생물학적 특징이라면 한 시간 내내 떠들 수 있···.”

“그런 거 말고!”

“난 네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걸?”

“고리타분한 고서 같은 데서나 나올 법한 헛소리는 잠깐 미뤄두라고. 나는 사람이면서 남자고, 동시에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마술사 로이드니까.”

“···.”

아무렇지도 않게 웃지 마.

이상한 소리로 순간을 무마하려 하지 마.

마르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외래종인 그녀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낯선 감정.

비효율적이고 부조리한 어떤 마음이···.

한참 저열한 생물이라 얕보던 로이드를 통해 발현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적은 없다.

엑조틱이 인간의 사고관념을 이해할리도 만무했다.

모든 현상은 단지 있음직하기에 벌어지는 것···.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전기 신호였어. 아직 로이드의 몸속에 남은 하급종이 만들어내는 자극에 불과해.’

하나, 그걸로 충분했다.

단 한 가지···.

인간의 습성에 대해 전부 간파하지 못한 마르였지만, 로이드가 품은 각오만큼은 결코 거짓이 아니란 것만큼은 잘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육체에 사로잡힌 작고 하찮은 하급 외래종이라고 하나, 그걸 귀속시킨 것은 강인한 인간의 의지력이었기 때문에.

“야, 마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자.”

이어서 로이드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려 부단히 애를 썼다.

“뭐가 궁금해?”

“네 말투를 보니까, 나한테 주어진 시간이 남지 않은 모양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거 같냐?”

“···그렇게 길진 않을 거야.”

“야야, 왜 이러셔? 세상 모든 지혜를 다 가지신 영리하고 멋진 엑조틱 나으리께서 그렇게 모호하게 대답하면 어쩌냐? 좀 더 구체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잖아? 아니면 뭐야? 내가 너희 종족을 너무 과대평가 한 건가?”

“인간 주제에 너무 기어오르지 마! 당연히 알지! 너처럼 단순한 유기 생명체의 세포 붕괴 따위는 오차 범위 10초 내에서 정확한 결과 값까지 계산할 수 있어!”

“거 봐. 역시 넌 대단하잖아.”

“···.”

“잉?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면 어떻게? 칭찬 조금 했다고 또 빨갛게 변한 건 아니지?”

정답이었다.

로이드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분홍빛으로 물든 몸뚱이가 실제로 점멸하고 있었기에.

하나, 그것은 부끄러움의 반응이 아니었다.

그녀 나름대로 상황을 진중하게 생각하며 갈팡질팡했을 뿐.

시한부.

곧 죽을지 모르는 상대에게 남은 수명을 말하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잔혹한 행위···.

때로는 모르는 게 더 나은 정보도 있는 법이다.

특히나 유한한 목숨을 가진 존재에겐 더욱 더 의미가 남달라.

그런 자각이 있었기에 마르는 망설였다.

“자, 그럼 꾸물대지 말고 얼른 알려줘.”

“너의 시간 단위로는 약 두 시간 반 정도···.”

“그래? 난 또 당장이라도 숨 넘어 가는 줄 알았네.”

“로이드란 개체··· 뭘 어쩌려고?”

“어허, 뭐뭐란 개체란 말투는 고치라니까?”

“대답해줘. 너는 그 짧은 찰나에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야?”

“그야 뻔하지.”

“뭐?”

“답답한 덩치 녀석을 구하러 가는 것 말고 달리 있겠어?”

“···이해할 수 없어. 말도 안 돼. 로이드, 너라는 개체는 어째서 자꾸만@##$^%$#@%!”

“야야야, 진정해! 또 뭐가 문젠데?”

이번엔 정말로 번역 장치에 이상이 생겼다.

질겁하는 마르의 모든 의사를 인간의 말로 변환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기껏 내가 살려줬더니 감사는 못할망정!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서서히 죽어갈 뿐인데, 일부러 죽음을 가속화시키는 어리석은 행위를 굳이 하겠단 거야?”

“아, 물론 네 협조는 고맙게 생각해.”

“뻔뻔해! 넌 나를 이용했어!”

“켁!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여자를 울리기라도 한 나쁜 놈 같잖아? ···아, 어떻게 보면 정말인가? 급 양심에 찔리는구만.”

“그 농담은 하나도 재미없어!”

“그렇지? 나쁜 남자 로이는 이쯤에서 물러나주도록 할게. 이런 멍청한 놈은 얼른 잊는 게 좋을 거야, 아가씨. 그럼 이만···.

로이드가 등을 돌린다.

그는 이대로 미련 없이 사지로 향할 셈이었다.

그런데···.

“···야, 마르. 너 지금 내 팔을 잡고 있는 거냐?”

보이지 않는 손길이 로이드의 팔목을 휘감았다.

이대로 보내지 않으리란 의도가 명백했다.

“왜··· 너는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참, 너도 궁금한 게 많구나?”

“함부로 생명을 내다버리면서까지 다른 개체를 염려하는 이유가 뭐지?”

“내다버려? 웃기시네!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지금 목숨을 걸지 않으면 언제 거는데?”

“아?”

“좋은 기회잖냐? 이럴 때가 아니면, 그 멍청한 자식이 제 혼자 폼 잡는 걸 언제 또 막을 수 있겠느냐고!”

말투는 가벼웠지만 로이드는 성을 내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순간을 허비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놔라, 마르. 빅터는 지금 혼자 싸우고 있어. 틀림없이 무리하면서 몰매나 처 맞고 있겠지. 그 놈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뭐야, 그게?”

“워낙 단순한 놈이니까 꿍꿍이야 뻔해. 어차피 너랑 내가 도망칠 수 있게 시간을 벌 셈 일거야. 하하, 곰처럼 미련한 등신이··· 내가 곧 뒈질 운명이란 것도 모르고 말이지.”

“다시 생각해! 지금 가봐야 둘 다 죽을 뿐이잖아? 너흰 비전투요원인 나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 그런데 어떻게 제압소멸전문가인 감찰관들에게 대항하겠단 거야?”

“내 알바냐? 이제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그는 팔을 잡아당겼다.

마르의 촉수가 풀어 헤치기에 충분한 거친 움직임이었다.

“이래 봐도 말이야. 나는 겉멋이란 걸 엄청 중요하게 여기거든? 그런데 언제나 맡는 역할이 우스꽝스러운 광대라서 언제나 불만이었어. 참내, 물론 나도 조연이 무대에 필요하다는 건 알아. 하여간 눈치 빠른 게 죄지. 주제 파악하는 게 특기라, 나도 내가 주인공에 어울리지 않는 단 것도 금방 이해했어. 그래서 참았지. 인내하고 견디면서··· 그래도 최후의 마지막엔 거하게 무게 잡고 퇴장하고 싶었으니까.”

“역할? 주인공? 왜 갑자기 무대 예술에 대한 네 식견을 읊는 거야?”

“그리고 있지? 지금이 바로 그때야.”

두서가 없는 이야기.

대화도 이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마르도 상대의 입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촛불을 향해 뛰어드는 나방의 뒷모습.

죽음마저 흔쾌히 받아들이는 그 걸음걸이에, 마르는 묘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망설임 없는 결단.

얼마 남지 않은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타오르는 투지가 전해져온다.

전부 미약하게 그의 몸에 잔류하는 하급 외래종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들이었다.

그는 은퇴 무대를 찾는 광대가 아니야.

사실은 스스로가 묻힐 묫자리를 선택하는 전사였다.

“···로이드. 역시 널 이대로 보내줄 수 없겠어.”

“야야, 네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애초에 나한텐 네 허락 따위 필요 없다고!”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마르에게도 신물이 나.

로이드는 돌아보지도 않고 거친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멋대로 행동한 것은 마르 쪽도 마찬가지였다.

“허억!”

찰나, 로이드의 사지가 경직되었다.

관절이 굳고, 근육에 마비가 찾아왔다.

예전에 올비우스가 사용했던 포박술과 비슷한 현상···.

마르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었다.

“이··· 방해하지 마라! 마르, 당장 이걸 풀어!”

“방해? 가당치 않아. 나는 널 도우려는 거야.”

“장난 치냐? 이 상태로는 아무 것도···.”

“이론 상, 하위종이 할 수 있는 의태와 융합은 상위종인 나도 할 수 있어.”

“뭐? 너 지금 뭐라고···?”

그때였다.

손상된 로이드의 오른쪽 눈을 통해 뭔가가 파고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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