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입의 장(4)
5.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사냥꾼의 큰 미덕이지만, 어디까지나 공포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무서움을 느끼는 것으로 사람은 위기를 체감할 수 있어.
그로인한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 이어지는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빅터는 그 어떤 적도 만만하게 볼 수 없단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또한 사냥꾼들은 그 위험의 척도를 하나하나 분류하고 있었으니···.
1단계엔 맹수들이 속한다.
짐승.
그들은 오래 도록 그가 맞서온 적이자 공존해야 할 야생의 벗.
동방에서 호환虎患을 일종의 재해처럼 여기는 것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다.
네발로 땅을 기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그 덩치가 사람만 해지는 순간 결코 얕보아선 안 된다.
문명의 이기를 빼앗긴 인간은 자연계에선 먹잇감에 불과해.
아무리 쇠뇌와 활로 무장한다고 해도 늑대의 날렵함과 곰의 강인함에 대항하긴 어렵기에.
하나, 그것도 지혜와 지식으로 어떻게든 넘길 수 있어.
철저한 준비, 그리고 경험으로 가까스로 맞서는 게 가능하다.
그 증거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기이한 벌레들을 상대로도 빅터와 로이드는 충분히 맞설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외피의 경도가 장난이 아닌 놈들이니 위험등급을 한 단계 더 높여야 할 테지만···.’
그보다 조금 성가신 적이라면 역시나 사역마가 있다.
어둠의 피조물들에게 부여된 위험등급은 2단계에서 3단계까지 다양하게 분포···.
많은 수의 시체로 만들어질수록 그 계수는 최대값에 가까워진다.
마녀가 부리는 이 기이한 괴물들은 온갖 형태로 생명을 모독하며 음지 속에서 급습해오기에.
제아무리 마녀에게 복수를 맹세한 자라해도 그것에 익숙해지기 위한 정신적 훈련이 필수불가결하다.
창조주의 뒤틀린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 흉측한 그 생김새는, 마주하는 이에게 지옥의 존재를 신앙하게끔 만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본질은 피와 살로 이뤄졌을 뿐인 죽은 육체.
술사의 지시가 내려지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마기가 없는 공간에선 움직이지도 못하는 하자 덩어리.
어설픈 반 푼짜리 생물체들인 것이다.
괜히 지레 겁먹지 않고 이 점을 잘만 이용한다면, 일반인조차 상대하는데 모자람은 없으리라.
이하 하급 외래종으로 분류되는 엑조틱의 경우, 대게 사역마와 다르지 않게 취급받는다.
물론 결계에 귀속되는 마녀의 종들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긴 하나.
정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존재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저 괴물에 불과하다.
더욱이 빅터는 차라리 그것들을 상대할 때라면 마음이 편했다.
사역마든 외래종이든, 모두 본디 자연의 것이 아니야.
뒤틀린 형상을 가질수록 양심에 걸릴 것 없이 산산조각으로 파괴할 수 있으니까.
빅터는 오히려 직접 깨부술 수 있는 적이 상대하는데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드물게 유령이나 귀신같은 사념들을 상대할 때가 있지만, 의외로 덜 위협적인 건 이쪽이다.
어떤 악령이라도 2단계를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지.
미신 섞인 영적 세계나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이라면 모를까.
주술에 대한 반발심과 증오를 품은 숙련된 사냥꾼에겐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급부로 허깨비보다 사냥꾼이 질색하는 것은 인간이다.
얄팍한 간계를 꾸미는 탐욕스럽고 무지한 도적들···.
이방인이 두려운 나머지, 호의는커녕 단검을 등에 쑤셔 박는 낯선 사람.
빅터를 비롯한 사냥꾼들은 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인간의 영악함이란 사실을.
특히 미신에 심취하여 맹목적인 교리를 설파하는 다수의 신도는 위험 등급이 2단계.
즉, 맹수보다 무시무시한 상대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마녀 사냥꾼들을 사교도나 불신자라 밀고하며, 수도에서 이단 심문관을 호출해오기 때문이다.
무장한 군대까지 개입한다면 3단계 이상으로 등급이 올라갈 정도다.
문제는 다음.
사람과 같은 지성 을 가진 존재들···.
위험 등급 4단계.
특수한 조재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상위 사역마, 프리케라이 가이스트Flickerei Geist.
과거, 빅터가 심록의 마녀 토벌전에서 대면했던 지네 여인만 해도···.
그 전투력은 오거급 중합체를 상회할 정도였다.
단, 그것도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무력을 논할 때의 이야기.
높은 지능과 더불어 감정까지 가진 놈들은, 마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가신 놈들이다.
이치에 어긋나는 신묘한 능력까지 가진 경우가 대부분에, 몸뚱이의 강도도 일반 사역마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튼튼했다.
‘그래도 거기까지라면 비책은 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전력을 다 한다면···.
다소의 희생, 베테랑이 목숨을 거는 선에서 무찌를 수 있다.
절망적인 상대까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제기랄, 이런 놈들은 대체 무슨 기준으로 위험등급을 내려야 하는 거지?’
바닥에 쓰러진 몸을 일으키며, 로이드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점점 일이 꼬이고 있어.
미확인 생물체부터 시작해서 이차원 공간에 빠지더니, 이제는 또 다른 상위등급 외래종의 등장이라니?
‘빅터, 너 이 자식··· 혹시 몸에서 이상한 것만 끌어들이는 전파라도 나오는 거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빅터와 동행할 때마다 기이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것도 사실.
이제 그는 자신의 팔자를 원망하는 지경까지 갔다.
“로이드, 무사했나?”
“눈길은 주고 걱정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아니, 저런 괴물을 앞에 두고 한눈을 파는 것도 좀 곤란하지만···.”
평소처럼 농을 건네지만, 로이드는 긴장하고 있었다.
빅터 또한 상대가 가진 미지의 능력과 기세에 위압당했다.
‘분명 정안을 통해서는 보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손으로 쥐거나 도끼로 벨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 실체조차 느낄 수 없군.’
그런 주제에 풍겨오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다.
투명한 비눗방울마냥 둥글게 부푼 저 무해한 형태에서, 어째서 이토록 오싹한 불길함이 느껴지는 것일까?
빅터는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보며, 당장 대치한 상대의 수준을 가늠했다.
딱히 별다른 위협을 해오지도 않으나 놈에겐 끝을 모를 역량이 내비친다.
마치 초월적인 차원의 존재와 대면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실제로도 괴물의 주변에는 차원을 뒤틀릴 정도의 강력한 자기장이 맴돌고 있었다.
‘내게 지정할 권한은 없지만, 최소 4단계··· 아니, 이미 5단계라 봐도 무리는 아니겠지.’
지금까지, 위험등급 5단계란 육망성급의 마녀에게만 한정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사냥꾼들의 주된 목표이자 전문 분야는 마녀의 절멸.
그 이상의 지정 대상이나 분류가 불필요했기에.
애초에 달리 상정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와 로이드가 처음으로 상급 엑조틱과 조우한 것은 기껏해야 5년 전···.’
클라리스와 닮은 여인, 클라르테와 대면한 그 시절.
두 사람은 대스승 크레이그에게 놈들의 존재를 알렸다.
그것이 최초의 보고.
그 이전에는 설마하니 인간을 넘어서는 지성과 요술을 부리는 개체가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랜 선대 사냥꾼의 기록에도 ‘엑조틱’이나 ‘마공작 올비우스’의 이름은 애초부터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영장류의 아이야.”
“···.”
“동물계 척살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 사람 씨?”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늘어놓는다.
이것은 일종의 구분법인가?
인간이란 동물을 나누는 어떤 학문적인 분류?
“호모 사피엔스. 혹은 덩치 큰 수컷 개체야.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뭐?”
“소통이 전혀 안되네. 번역 장치가 고장이라도 난 건가?”
허공에 떠오른 그것이 중얼거리자, 빅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하나같이 생소한 단어뿐이었지만, 잘 들어보니 목소리 자체는 젊은 여자의 것이야.
어째서인지 엑조틱은 자꾸만 자신에게 대화를 청하고 있었다.
“너무 겁먹지 마. 너희를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니까. 나는 평화적인 개체다. 무익한 싸움은 원치 않아. ···잠깐, 역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왜 나만 일방적으로 떠들어야 하는 거지?”
이상하다, 분명 그 복식에 맞는 시대의 언어일 텐데···.
···라며 뜬금 엑조틱이 구시렁거려.
소통을 진심으로 원하는 마음의 파장이 흘러들어왔다.
“안 들리는 건가? 이상하군. 분명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데. 설마 이 개체들이 수준 이하의 정박인 건···.”
“···들린다.”
“아, 역시! 다행히 정상 지능이었군.”
반짝.
해파리 같은 몸체에서 미묘한 빛이 일렁였다.
긴장하고 있던 두 사람에겐 그것이 공격처럼 보여.
빅터와 로이드는 빠르게 뒤로 몸을 날렸다.
그 신속한 회피에, 심해생물을 닮은 존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어리석긴, 나를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니까.”
속이 비쳐 보이는 유령과도 같은 몸체가 수축한다.
여러 개의 촉각을 겹친 채 흔드는 꼴이 사람의 손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해치지 않을 테니 달아나지마. 좀 더 가까이에서 교류하자.”
녀석은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 조심스런 어조.
아니, 오히려 그것은 강아지나 새끼 고양이를 대하는 듯한···.
“···우릴 바보 취급하는 거냐?”
오만하게 인간을 내려다보는 투가 열받아.
빅터가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러자 뒤늦게 해파리 몸체가 촉수를 양쪽으로 저었다.
알기 쉬운 제스쳐였다.
“음, 미안하군. 내 말투가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비하할 의도는 없었어.”
“···.”
“그래도 말이지, 일단은 이쪽이 훨씬 우월한 종이라는 사실 정도는 자각해줬으면 하는데.”
“뭐?”
“···어디 보자. 네가 보이는 반응과 발음의 특성을 종합해봤을 때, 너희는 중세 말기에서 고전후 쯔음의··· 낙후된 시간대의 종자들인가?”
“아까부터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내 혼잣말은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말해도 너희 지적 수준으론 못 알아들을 테니까. 아직 이 시대에 허락된 지식도 아닐 테고.”
묘한 기시감이 든다.
빅터와 로이드는 일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들었냐, 빅터? 빌어먹게 짜증나는 말투잖아. 너희 엑조틱이란 족속들은··· 전부 그딴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린 모양이지?”
로이드가 그렇게 말하자, 미지의 존재가 살짝 두상처럼 보이는 부분을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아까도 우릴 그렇게 불렀었지? 거기 마른 체형을 가진 현생 인류야, 너는 그 단어를 어떻게 알고 있니?”
“마른··· 뭐?”
“···실례했어. 너에게도 다른 개체와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 따로 있을 텐데.”
“그래, 나한텐 로이드라는 훌륭한 이름이 있다고!”
“로이드···. 로이드, 로이드··· 응, 기억했어.”
“그러는 넌 뭐냐?”
“나?”
“남에게 뭘 묻기 전에 자신이 누군지 밝히는 게 마땅한 태도 잖냐고!”
“···응.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구나. 탐사 자료에도 잘 나와 있네. 분명 그게 중세 문명의 보편적 예절이라고 했었지.”
엑조틱은 두상을 숙였다.
마치 나름의 예우를 지키려는 듯이.
“소개하도록 할게. 내 이름은 %@$%@#···.”
“허, 허어?”
“아차, 그만 너희의 발성기관으론 발음할 수 없는 주파수로 말해버렸네. 그럼··· 선주민족과 교류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코드명을 알려줄게. 특별히 나를 ‘마르’라고 부르길 허락하겠어.”
과묵하게 인상을 쓴 빅터보다 로이드 쪽이 비교적 대하기 쉬워보였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어떤 이름을 부여한 그것은 살가운 목소리로 로이드에게 말을 걸었다.
“따라해 봐. 마르.”
“마, 마르?”
“그렇지. 곧 잘 따라하는구나. 생각보다 영리한 생물체인 걸.”
“···장난 치냐? 사람을 놀리는 데도 정도가 있지, 이 망할 괴물이···!”
“장난이라니? 나는 어디까지나 진심이란다. 그리고 괴물? 그 지칭은 올바르지 않아. 방금 알려줬잖니? 나는 ‘마르’. 거기다 우리 종은 에너지 기반의 지적생물체··· 그저 살아가는 시간대가 다를 뿐, 엄밀히 따지면 같은 별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동지라고 할 수 있으니까.”
대부분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한 로이드였으나.
맨 끝에 덧붙인 ‘동지’라는 단어만을 듣고서 그는 말문을 잃었다.
당연히 납득하지 못한다.
외래종과 동시라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놈들은 인간을 잡아먹는다.’
두 사람은 잊지 않았다.
5년 전, 어떤 마을의 빈민가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도플갱어 사건이 벌어진 뒤로, 피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던 여인의 얼굴을.
로이드의 인상이 변했어.
그는 다시금 눈앞의 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상대가 태도를 바꾸자, 엑조틱은 이제 빨간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이 놈···!”
대게 붉은 빛은 불온한 징조.
빅터는 이 미지의 생물체가 드디어 사악한 본색을 드러내려 하는 게 아닌가 날카롭게 경계했다.
“내가 뭔가를 또 실수라도 한 건가? 공통언어가 익숙하지 않은데다, 호모 사피엔스랑 접촉하는 건 처음이라 살짝 흥분해버렸어. 신경을 건드렸다면 다시 사과할게.”
“···.”
“믿어주렴. 나는 순수하게 너희와 소통하고 싶을 뿐이니.”
믿기 어렵지만, 빅터의 암안은 상대의 말에서 거짓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진심.
눈앞의 엑조틱은 어디까지나 빅터와 로이드에게 학문적 호기심만을 가졌을 뿐이었다.
‘정신 차려라, 빅터. 설사 그럴 지라도 방심해선 안 돼.’
빅터는 도끼를 든 채 한 걸음 걸어 나갔다.
그가 공간에 파문처럼 퍼져나가는 자기장에 닿기 직전···.
“멈춰. 나라면 그 이상 접근하지 않겠어. 너희 종에게도 학습능력이란 게 있겠지?”
“···우리와 그렇게 교류하고 싶다면 영양가 없는 소린 집어치우고 내 질문에 답하시지.”
“음, 너라는 개체는 여전히 나에게 적대적이구나? 그래서? 궁금한 게 뭐지?”
“이곳은 대체 뭐냐?”
“그건··· 이 공간의 좌표에 대해 묻는 건가?”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라.”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수컷이로구나. 좋아, 그게 알고 싶다면 얼마든지 알려주지. 하지만 그 전에 네 이름부터 말해.”
엑조틱의 몸에 물결이 친다.
모습만 보아선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빅터는 그 속에 담긴 감정이 ‘서운함’이라는 걸 알아챘다.
인간이 아닌 주제에 삐지기까지 하는 것인가?
빅터는 마지못해서.
“···나는 빅터라고 한다.”
“응. 빅터. 빅터, 빅터. 기억했어. 나는 마르야. 잘 부탁해.”
“그딴 건 아까 들어서 안다. 그보다 얼른 말해주실까?”
“얼마든지.”
잠시 후.
엑조틱 ‘마르’가 선심쓰듯 말을 이었다.
“여긴 실험장. 우리가 종 분화를 관측하기 위해서 지상 세계와 격리해 둔··· 지저세계의 요람이란다.”
마치 자랑하는 것만 같은 어투.
순간 빅터는 생각했다.
만약 마르에게 표정이 있었다면, 상대는 틀림없이 미소짓고 있었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