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11화 (111/186)

예지의 장(5)

5.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맹렬한 기세.

충분히 대응할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것도 잠시.

그 잠깐 사이에 더욱 가속했어.

심지어 로이드가 채찍을 꺼내들기도 전에 그것은 들이닥쳤다.

“열.”

무당이 마지막 숫자를 욈과 동시에, 지붕을 덮고 있던 기와가 반으로 갈라졌다.

번뜩이는 청록과 보라의 그림자.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깃털이 시야를 가렸어.

그 문양이 너무도 화려한 나머지 본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보색 중에서도 특히나 기괴한 형상.

얼핏 구애하는 수컷 공작의 허리 깃털을 닮았으나···.

새겨진 무늬는 무수한 눈알이 박힌 것만 같은 섬뜩한 모양이었다.

‘아뿔싸!’

그 추악한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던 것인가?

그만 두 명의 사냥꾼은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우, 우아악!”

순간, 로이드가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뒤로 튕겨나갔다.

파앗!

강풍인가?

아니면 바람으로 느껴질 정도의 빠른 일격이 닿았던 것일까?

하지만 빅터에게 그 현상을 분석할 여유는 없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빅터!”

또 한 마리가 빅터의 배후에서 튀어나왔다.

시간차 공격.

최초에 모습을 드러낸 놈은 눈속임이었다.

“크윽!”

푸욱!

강렬한 통증과 함께.

왼쪽 어깨와 오른쪽 견갑에 뭔가가 박혀들었어.

이번에 뻗어 나온 것은 흡사 갈고리를 닮은 샛노란 조족鳥足이었다.

이어서 상승.

꽤나 무게가 나가는 빅터의 몸마저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미지의 적은 그대로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콰직!

후두둑!

빅터는 엉망진창으로 튀어나온 지붕과 기와의 파편을 얼굴로 무방비하게 받아들어야만 했어.

덕분에 모자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빌어먹을!’

내려왔을 때만큼이나 올라가는 속도가 빠르다.

어느새 지상과 크게 멀어지고 말았어.

꽤 넓은 부지였던 사당마저도 작게 보일 정도였다.

‘제비나 가마우지와도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활강이란 말인가?’

거기다 당장 육안에 보이는 적의 수만 해도 세 마리.

하늘에는 또 다른 개체들이 활공하고 있었다.

···아니, 아래에 로이드와 대치중인 놈까지 합치면 네 마리인가?

번쩍.

아직 채 저물지않은 태양의 역광이 놈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겍, 게겍! 게게겍!”

새··· 라고 하기엔 이상한 울음소리.

아니, 심지어 그것은 지저귐조차도 아니었다.

단지 주둥이 앞에 튀어나온 두 개의 이질적인 턱이 마찰하는 소리였기에.

처음에는 무당이 언급했던 것처럼 큰 조류의 모습을 상상했다.

단지 마기의 영향을 받아 몸집이 좀 커진 것뿐···.

신수라는 다소 성스럽게 느껴지는 이름이 붙었으니 유순한 뭔가를 기대했어.

하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놈들은··· 단순히 매나 독수리 같은 대형 육식 조류의 확장판 것이 아니야!’

부리를 닮았지만 가로로 벌어지는 흉물스런 아가리.

거미처럼 8개를 넘어가는 기괴한 겹눈들은 틀림없는 벌레의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빅터의 어깨를 관통한 갈고리 구조의 기관은 전갈이나 지네의 앞발과도 다르지 않아.

심지어 깃털이라 생각한 조직들 사이를 채운 관절부분마저도, 절지동물 특유의 마디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본디 자연에선 있을 수 없는 존재.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단절된 생태계에서 자라난 것만 같은 이질적인 모양새.

그것은 그야말로 요괴, 아니 요충妖蟲이었다.

“이딴 게 신수神獸라니, 웃기고 자빠졌군!”

빅터는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절할 지도 모르는 통증.

설마하니, 피부를 뚫고 살갗에 파고든 이 날카로운 발톱에서 신경독 비슷한 물질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인가?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하지만 그는 고통에 익숙했다.

과거, 몇 번이고 졸도해가며 얻어낸 정신과 육체는···.

고작 이 정도로 무너질 만큼 연약한 것이 아니었기에.

빅터는 이를 악문 채, 좌측 쇄골을 뚫고나온 날카로운 촉각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쩍, 쩌적!

균열.

견고한 키틴질 구조의 생체 갈고리가 문드러져.

괴조의 앞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놔라, 망할 놈의 날벌레새끼.”

“게게게겍!”

콰지직!

순수한 악력만으로, 빅터는 그 구속을 집어 뜯어버렸다.

“흠!”

이어서 그가 몸을 튼다.

측면에서 내리박히는 도끼날.

그 날카로운 일격이 새의 모습을 본 뜬 마물의 신체를 양단했다.

푸슛!

역겨운 액체와 선혈이 사방에 튄다.

적의 손아귀에서 떨어져 나간 빅터는 공중에서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하나, 그럼에도 사냥꾼의 눈은 또 다른 적의 접근을 견제 하고 있었다.

“옳지, 와라!”

마물이 충분히 접근하자, 빅터가 왼팔을 거칠게 튕겼다.

그러자 그의 하완에 걸쳐져있던 사슬이 헐거워져, 반동에 의해 풀어진 채 저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중력을 역행하며 요동치기 시작해.

그것은 마치 의지를 가진 로프마냥 가까이 다가온 놈의 모가지를 휘감았다.

가히 곡예에 가까운 기술.

미리 빅터가 손끝으로 쇠사슬에 이븐가지의 분말을 흘려 넣어둔 덕분이었다.

더불어 지혈의 조치까지 완벽.

손상된 육체에 미량의 그림자로 덮어 보완하는 일쯤···.

5년간 수 없이 싸워온 노련한 사냥꾼에겐 별 것도 아니었기에.

“어딜···!”

끌어당긴다.

하늘을 나는 마물은 빅터가 힘을 준 방향으로 유도되었어.

그대로 지면 쪽으로 기울어졌다.

조류의 모양을 모방한 듯 보이는 기다란 두상과 날갯죽지가 사선 각도로 내려온다.

날붙이로 내려치면 등분하기 좋은 위치다.

그리고 그 절묘한 순간을, 도끼를 든 사냥꾼이 놓칠 리 없었다.

콰직!

푸른 번개가 친다.

그것은 예리한 섬광이 되어 적의 외골격과 함께 몸통을 쪼개버렸다.

하나, 아직 한 마리가 더 남았다.

놈은 동족의 죽음조차 아랑곳없이 빅터를 노려왔다.

부우웅!

문득 옆구리를 파고드는 돌풍.

순간, 검은 가루와 함께 빅터의 하복부에 가위로 절개한 것만 같은 구멍이 벌어졌다.

“칫!”

아슬아슬한 회피.

빠르게 그림자를 씌우지 않았다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하반신과 상반신이 분리되고 말았으리라.

다시 한 번 사슬을 투척하지만, 불운하게도 적에게는 지혜라는 게 있었다.

추락하는 빅터를 더 이상 노리지 않아.

그가 무방비해지기만을 기다리며 선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빅터가 날개를 가지지 못한 생물이라는 것도 아는 눈치.

그대로 지상에 떨어져 죽기만을 기다리는가?

설마하니, 조금 전에 도끼에 당한 벌레가 죽는 모습을 관찰하고 깨달음이라도 했단 말인가?

‘불길한 예감이 맞았군. 이놈들은 사역마랑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랬다.

눈앞의 적들에게선···.

마녀에 의해서 재구성된 어둠의 생물들과는 다른, 일종의 필사적인 생명력이 느껴져.

스스로의 목숨보다 적을 섬멸하는 걸 우선시하는 기이할 정도의 공격성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미약하게나마 공포와 호기심이 감지되고 있어.

비록 뇌의 구조는 다를지언정, 틀림없이 하늘의 요충은 빅터라는 존재에게 다가서길 망설였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조심성이 많은 겁쟁이.

덩달아 영악하다는 의미기도 했다.

고차원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면 곤란하다.

마기의 성질보다는 포식자의 본능을 동반한 맹수에 가까워.

어쩌면 말이 통하는 프라이케르 가이스트와 비교해서도 골치 아픈 상대일 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더욱 더 네놈을 살려둘 순 없지.’

거리를 조금 벌린 정도로 안심하고 있는가?

아무리 지능이 있는 생물이라도 너무도 안이한 판단이야.

사냥꾼은 이미 속으로 마지막 적의 숨통을 끊을 계획을 짜고 있었다.

팟!

빅터가 아무 것도 없는 땅을 박찼다.

그러자 놀랍게도, 한 순간이지만 추락이 멈추었어.

검은 코트가 허공에 휘날리며 조금이나마 위로 도약했다.

이것은 과거, 레이가 보여주었던 심 유파의 비술 ‘후케바인Huckebein’의 첫 번째 응용인 ‘허깨비 디딤’이었다.

‘재능이 부족한 나로선 몇 걸음 밖에 쓸 수 없지만.’

전력을 담은 일곱 번의 수직 도약.

당장은 그걸로 충분하다.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할 거라 방심하는 하늘의 마물에게 닿기엔 넘치고도 남기에.

어느새 빅터는 그림자를 머금은 쇠사슬의 고리를 도끼 자루의 끄트머리에 연결한 채였다.

이어서 원심력을 담은 회전.

그리고 부풀어 오른 삼각근과 대흉근에서 뿜어져 나온 완력이 무시무시한 반동을 만들어냈다.

투척.

그것은 그대로 명중해, 날개가 달린 벌레가 피할 틈도 없이 두상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하지만···.

‘제기랄, 아직 위기가 끝난 게 아니었나?’

빅터가 허깨비 디딤을 멈추자마자 코트가 뒤집어졌다.

그대로 수직낙하.

어찌나 빨리 떨어지는 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다.

다시 한 번 허공을 뛰어넘기엔 역량이 부족해.

거기엔 최소한 집중할 시간이 십여 초 이상 필요했다.

‘성공하더라도 충돌 직전의 관성을 역행할 정도는 아니지.’

너무도 위험한 도박이었다.

결국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어느새 균형이 어긋나, 빅터의 머리가 지면 쪽을 향하고 있었다.

앞으로 수초만 있으면 지상에 매다 꽂이고 말거야.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이대론 곱게 죽지도 못하겠군.’

제아무리 강화된 사냥꾼의 신체, 고행으로 단련된 몸이라 해도 수 백 미터나 되는 고공낙하를 견뎌낼 수 있을 리 없으므로···.

그런데 어째서일까?

당장 빅터의 눈동자에 공포의 빛을 찾아볼 수가 없어.

그는 뭔가를 노리고 있는 듯 했다.

‘부작용이 심해서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물불을 가릴 상황이 아니야.

빅터가 뭔가를 결심하며, 도끼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기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가뜩이나 이형의 모습인 도끼의 모습이 변해가기 시작했어.

날붙이와 반대쪽이 여러 면으로 쪼개지면서 사자의 갈기를 연상시키는 형상을 갖추더니···.

이어서 손잡이를 제외한 도끼날이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강렬한 푸른빛이 새어나왔다.

소용돌이.

무시무시한 기세의 흐름.

내부가 회전해.

빛과 바람이 요동친다.

‘좋아. 여기까진 내 생각대로로군.’

어느새 추락 예상지점이 바뀌어 있어.

아래에는 사당과 한참 떨어진 공터가 보였다.

상승 기류를 이용해 궤도를 바꾼 것인가?

···아니.

아무리 빅터라해도 양력과 추력에 대한 이해도는 전무해.

이븐 가지의 분말과 닮았지만 보다 격렬한 어떤 것이 빅터가 나아갈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주변에서는 마기와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고 있어.

별 너머의 세계에서 온 방문자가 남겨준 유산을 기동시키기 위해, 빅터는 고도의 정신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었다.

“후우우···!”

부우웅!

공기의 저항조차도 무시하는 완력의 후려침.

그 손끝에는 저물어가는 태양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그의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투과아아아앙!

지상에 폭발이 일어나.

주변에 있는 거목들보다 더 높은 위치까지 파편과 흙이 튀었다.

그 중심에는 맹렬한 충돌의 흔적인 파인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역시 힘 조절이 잘 안되는군. 사념의 주입이 너무 지나쳤나?’

코트에 들러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걸어 나오는 빅터.

꽤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음에도 전혀 충격을 받은 것 같지가 않아.

바지의 끝자락이 조금 상한 듯 했지만, 두 다리 자체는 상처 없이 멀쩡해보였다.

“자, 다음은···.”

빅터는 사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로이드가 염려가 되.

그가 평소처럼 사역마를 상대하듯이 여유를 부릴까봐 걱정이 든 것이다.

“우, 우우우우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그는 주변의 건축물들을 작살내가며 한참 괴물과 교전 중이었다.

“이, 이 썩으으으으을!”

매달려있다.

어떻게 했는지, 로이드는 괴물체의 등에 올라탄 상태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반투명한 실선이 그의 손에서 번뜩이는 걸 보아, 은사를 통해 적의 몸통을 조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나, 속살까지 파고 들진 못했어.

괴물을 보호하는 외피가 그만큼 두껍고 견고하기 때문이었다.

빅터는 보다 못해 고함을 쳤다.

“로이드, 놈에게서 떨어져라! 이쪽으로 몰고 와!”

“···오, 빅터! 무사했냐!?”

“어서!”

“까불지 마, 자식아! 나도 폼 좀 잡으려면 한 마리라도 처리해야지!”

고집부리긴.

빅터가 답답한 마음을 품는 사이, 로이드는 속으로 자신이 수련해온 기술의 이름을 읊고 있었다.

로이드식 괴뢰술 제 8형.

“···올가미!”

며칠 전 그가 보여주었던 ‘은안개’와는 다른 재주.

그것은 흩뿌리는 것이 아닌, 반대로 교차시킨 은사의 강도를 증폭시키는 대응법이었다.

거기다 양팔의 근력까지 증폭.

용도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그대로의 것이었다.

콰직!

조이는 힘이 강해지자, 마물의 날개마저도 뭉개졌어.

몸을 쥐어 터뜨리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바닥에 곤두박질치게 만들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각, 기긱···!”

“헤엑, 헥··· 야, 봤지? 나 고전 같은 거 안 했다?”

“···마무리나 하고나서 말해라.”

“아아, 그렇지.”

이어서 땅에 널브러진 벌레의 머리를 채찍으로 날려버리는 로이드.

그것으로···.

수 분 사이에 일어난 소동이 끝이 났다.

“쯧.”

빅터는 찢겨진 자신의 코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특히 어깨를 관통했던 부분은 수복이 불가능해 보여.

잠깐 잡아당긴 것만으로도 북북 찢어질 정도였다.

“하하, 빅터. 너 번화가로 가면 옷부터 새로 맞춰야겠다?”

“누가 할 소릴.”

“오잉?”

로이드의 꼬락서니도 온전한 편은 아니야.

여기저기가 치여서 엉망이었다.

뾰족한 돌부리에 온통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 사이에 잘도···.”

“우리가 아직 미숙하다는 증거다.”

잠깐의 전투.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성가셨어.

경험이 풍부한 두 사람이었음에도 괘나 고전 했다.

“대체 뭐였지 이것들? 마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단순한 유해 조수라기엔 너무···.”

“그건 사정을 아는 자에게 물어봐야겠지.”

빅터는 코트 상의를 벗어던지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지붕이 허물어진 사당 쪽을 향하고 있었다.

‘자칫 심문이 될 지도 모르겠군.’

차마 그 말을 친구의 앞에서 꺼낼 순 없었지만, 빅터는 아직 자신의 손에서 도끼를 놓치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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