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07화 (107/186)

예지의 장(1)

1.

타아아앙!

격철이 당겨지자 폭음이 울린다.

그 소리에 새들이 날아올라.

해가 기울기 시작한 하늘을 난잡하게 어지럽혔다.

소란의 중심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얼굴을 가로지는 흉터 사이로 진지한 눈동자가 뭔가를 주시한다.

아랑.

그는 방금 자신이 당긴 방아쇠가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총탄에 맞은 표적이 무슨 운명을 맞이했는지를 확인했다.

노린 것은 산에 사는 수풀 속에 숨어있던 텃새.

수컷 꿩 한 마리.

화려한 깃털을 가진 장끼였다.

“···좋아.”

아랑은 겨우 총구 방향을 위로 들었다.

어쩐지 긴장이 풀린 얼굴.

단 한 발 쏜 것에 불과하지만, 사냥을 위해서 엄청나게 집중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명중.

소년이 노린 그대로였다.

“잘했다, 아랑.”

그렇게 말하며 빅터는 아랑이 쏴 맞춘 꿩의 다리를 집어 들었다.

축 늘어진 새의 몸통에 납탄이 만든 구멍이 적나라하게 뚫려있어.

단 발로 즉사한 것처럼 보였다.

‘집요한 조준이군. 최대한 고통을 주지 않고 죽이기 위해 심장을 노린 건가?’

그렇다면 다정한 아이다.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게, 얼핏 냉정해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먹기 위해 죽이는 일연의 모든 이치를 이해하면서도, 그 안에서 최대한 생명에 대한 도리를 지키려한 흔적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아랑의 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어.

소년은 자신의 손가락이 새의 숨통을 끊었다는 걸 자각하자마자, 묘한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리다.

마음씨가 지나치게 착해.

그 순진함에, 빅터는 위화감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평생 학대에 가까운 환경에 방치되었음에도, 이렇게까지 올곧은 정신이 유지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아랑의 그러한 일면은 이전에도 보았다.

산신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고향을 광기에 물들게 만든 기만의 마녀···.

그것에게 심판을 내리는 순간까지도, 아랑은 자신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다.

그 당시, 아랑이 내뱉은 한 마디를 빅터는 그것을 잊을 수 없었다.

‘못 하겠어요. 이 사람은 너무···.’

이유는 누나를 닮았기 때문에.

사랑에 목마른 여인의 얼굴이, 한없이 누이와 겹쳐 보인 탓이라 했다.

그럴 수밖에.

그들은 알 리 없었지만···.

기만의 마녀는 아랑과 그 누이의 한 세대 이전의 선조였기 때문이다.

하나, 그것과 별개로 아랑은 상대가 밉고도 원망스럽지만 차마 죽일 수가 없어.

마녀의 이기심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을 되돌리지 못함을 알아도···.

아랑은 망설여야만 했다.

그게 소년의 본성이었기에.

빅터는 짐작한다.

···어쩌면 그 순간, 아랑은 마녀나 누이에게서 스스로의 욕망과 흡사한 뭔가를 엿본 것은 아닐까?

사랑.

그 누구보다 애정을 바라는 자신의 바람을···.

증오의 발산이 아닌, 용서와 자비.

···정말로 용기 있는 선택은 어느 쪽인가?

결국 스스로 해답을 내지 못한 채···.

아랑은 화승총을 돌려주었다.

빅터를 복수의 대행자로 선택했어.

끝내 마녀의 최후를 집행한 것 또한 그의 역할이었다.

“음.”

빅터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랑의 빠른 성장이 기쁘면서도, 동시에 아련한 기분도 함께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사냥을 배우던 시절.

그리고 지금은 없는 어린 딸을 데리고 숲을 떠돌던 추억이···.

그러자 드물게 덩치 큰 사냥꾼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고 만다.

만일 자신에게도 아들이 태어났었더라면···.

아랑과 같이 목숨의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이로 성장해주었을까?

···하지만 곧 그는 허튼 망상을 뇌리에서 지운다.

등 뒤에서 들리는 오두방정이 빅터의 정신을 현실로 되돌려놓았기에.

“휘유, 이 꼬맹이··· 역시 물건인데? 고작 스무 발 만에 여기까지 도달하다니.”

“앗!”

“좀 더 자기 재능을 자각하도록 해줘야겠구만!”

등 뒤에서 로이드가 아랑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쓸만한 녀석이야. 너는 덩치랑 다르게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걸.”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칭찬.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년은 상대의 말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그, 그만해요. 로이드 사부!”

“야야, 덕분에 오늘은 푸짐하게 먹을 수 있겠다. 이 로이 삼촌께서 꽁쳐··· 아니, 챙겨온 향신료로 맛나게 조리해주지.”

또한 질겁해서 투덜대는 소년의 절규도 마찬가지.

서로의 언어가 닿지 않아.

이 둘 사이를 중재하는 것은 결국 제 삼자 역할이 되었다.

“그만 놓아줘라, 로이드. 아랑이 싫어한다.”

하나, 이 떠들썩한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은지.

빅터도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하! 후배, 너 솔직히 말해! 제자를 빼앗긴 게 분하다고 말이야! 우리 사제사이가 너무 좋아서 질투하는 거 다 알거든?”

“주책부리지 마라. 언제부터 그렇게 팔불출이 됐지?”

며칠 전만 해도 애들은 질색이라고 하더니.

하지만 로이드는 이미 자신이 한 말은 잊은 지 오래였다.

“아무렴, 내 첫 제자나 다름없는데! 거기다 이런 인재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게 더 문제 아니냐?”

“그건 그렇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게 이런 건가? 마치 장총을 다루기 위해서 태어난 꼬마가 아닌가 싶을 정도야.”

하긴, 가르치는 즐거움을 빅터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에.

게다가···.

“···어쩌면 그것도 맞는 말일지 모르겠군.”

“엉?”

“아랑의 다감의 아이다. 그들은 눈이 좋은 편이지. 그래서 대대로 활솜씨가 뛰어난 이들이 많다고 하더군.”

동방에서 지내온 빅터는 그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소수의 저격수들에 대한 일화도 그 중 하나였다.

“하늘과 지평선을 자주 바라보는 민족은 매의 눈을 가진다. ···대충 그런 미신이 오래도록 전해질 정도니까.”

“오호, 태생부터 끝내준단 말이지? 요놈 이거···!”

팔로 감싸고 아랑에게 들러붙는 로이드.

그 모습을 보며, 빅터는 로이드가 가족이 생길 때 일어날 참사를 대략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빅터 사부, 이 분 좀 말려주세요! 아까부터 자꾸···.”

칭얼대며 난색을 표하나, 사실 아랑도 그렇게까지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얼떨떨하게나마 미소를 짓고 있다.

아랑은 단지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소년이 지금껏 고향의 어른들에게 당해온 취급들이 너무도 악랄했기에···.

로이드의 짓궂은 장난에 악의가 없단 걸 알면서도, 막연한 불안함 탓에 무의식적으로 거북했던 것이다.

‘태생이 좋다···라. 로이드 녀석, 여전히 무신경하군.’

그런 의미에서 그가 동방의 말을 못하는 게 다행이었다.

엄밀히 말해, 아랑의 태생은 불행해.

날 때부터 사생아.

심지어 어미를 누이라 부르며 자라온 아이에게 좋은 혈통을 논하는 것은 질 나쁜 농담이었기에.

‘역시 쉽게 극복한 과거는 아닌가?’

아랑은 지금도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로이드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행해서 쏜 장총의 가공할 명중률은 재능 같이 단순한 것이 아니야.

아랑은 자기 나름대로는 필사적이었다.

비범한 자들.

인간을 초월한 일행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더욱이 그 자들이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깊은 신뢰와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면?

‘···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특별한 과거 탓에 육체가 마와 동조한 리리 리의 강함을 따라갈 수 없어.

빅터의 강인함과 로이드의 여유로움은 그들이 그만큼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아랑은 무력 그 자체.

그러니 싫어도 열등감이 생길 수밖에.

‘가르쳐 주는 모든 걸 온전히 받아들여야 해. 사부에게 쓸모 있는 녀석이라는 걸 보여줘야···.’

아랑은 그런 기분으로 총의 방아쇠를 아주 신중하게 당겼던 것이다.

그 애절한 소년의 속마음을 꿈에도 모른 채···.

로이드는 계속해서 신이 나 떠들어댔다.

“두고 보라고! 내가 이 녀석을 명사수로 키워주겠어. 본토에서 이름 날리는 사냥꾼이 될 수 있게 말이야. 그러면 이 로이님의 명성도 더욱 멀리까지···.”

그런데···.

퍼억!

“···어허억?!”

기척도 없이.

로이드의 무릎에 가공할 무게가 실린 발길질이 작열.

그것은 신발과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 소녀의 날아 차기였다.

로이드는 꼴 졸게 뒤로 나자빠졌고, 아랑도 그에 휘말려서 한 바퀴를 굴렀다.

“아이고, 내 다리··· 이 왈가닥이 대체 무슨 짓이야?!”

“멀대 아저씨! 언제까지 내 동생을 괴롭힐 셈이야!?”

이번엔 쓰러진 로이드의 배후에 달라붙어 양쪽 뺨을 잡아당기기 시작했어.

리리 리의 전매 특기인 얼굴 꼬집기였다.

“우아악!”

“사부의 친구라고 내가 봐줄 거 같아?!”

리리 리는 진심으로 화를 내며 로이드를 질책했다.

무리도 아니야.

버섯을 캐러 갔던 리리 리가 돌아오자마자 목격한 게···.

아랑에게 팔로 목을 조이는 로이드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사과해! 얼른 아랑한테 사과하라고!”

“비, 빅터, 이 아가씨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냐?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자업자득이다.”

“아니, 뭔데에에에?!”

“로, 로이드 사부?! 리리 누나?!”

아랑이 뒤늦게 나서지만, 소년의 힘만으로 저돌적인 왈가닥의 폭주를 막을 순 없었다.

덕분에 숲이 한층 더 시끄러워졌어.

빅터는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두 바보들의 난동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그의 관심사는 둘 사이에 끼어서 어쩔 줄 모르는 소년에게 있었다.

“아랑.”

“네, 네에?”

“너무 무리하지는 말거라.”

“아?”

얼빠진 표정.

감정이 그대로 내비친다.

정말로 빅터가 무슨 의도로 말을 한 것인지 모르고 있어.

당장 소년은 고민을 잊고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혼란스런 상황에 넋이 나간 상태였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 아랑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파동은 크게 세 가지.

하나는 리리 리의 극성적인 보호에 의한 난처함.

둘은 그런 자신을 ‘동생’이라 불러준 소녀에 대한 소소한 감동.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무리에 속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인가?’

그것은 가족에게서나 느낄 법한 감정.

소년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안정감이었다.

이 얼마나 기이한 역설인가?

인간의 길을 벗어나, 마녀와 싸우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한 자들과 동행하는 것으로···.

아랑은 인생 그 어느 때보다 인간적인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유독 로이드의 합류 때문만은 아니리라.

빅터는 스스로도 자신이 많이 유순해졌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요 근래, 어느 순간 마녀 사냥꾼 본연의 임무보다···.

리리 리의 미래나 아랑의 처지, 그리고 소년병의 부조리 따위에 더욱 관심을 가질 지경에 이르렀기에.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어.

사제 지간이라고 하기엔 규율이 너무도 헐겁다.

동료하고 하기엔 아직 가르치고 보호해주는 입장에 가까워.

리리 리가 철이 덜 든 행동을 할 때마다 가슴 한 편에선 딸의 모습이 떠올라.

자신을 경외하며 따르는 아랑의 마음이 전해지면, 애써 그걸 모른 척하면서도 아들처럼 돌봐주고 싶어진다.

···어느새 유사 가족과 같은 형태가 되고 말았어.

빅터는 복잡한 고민이 들었다.

‘나는··· 또 지켜야할 존재를 곁에 두고 말았는가?’

···곤란해.

자기도 모르게 독기가 빠졌을 지도 몰라.

격화된 증오의 색이 흐려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접근하니, 오랜 전우인 로이드에게서 정을 느끼는 것마저도 사치처럼 느껴져.

그는 큰 싸움이 없었던 평화로운 일상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리리 리를 데려온 이후로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벌써 잊어버린 것인가?

고작 5년 사이에.

처와 딸이 비참하게 찢겨 죽은 그 광경을?

빅터는 애써 싸늘하게 식은 아델라이드를 떠올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지가 날아간 그레이스의 모습을 뇌리에 새기려 했다.

빅터는 아랑에게 뒤돌아서더니, 고통스럽게 가슴을 움켜쥐었다.

로이드나 리리 리가 볼 수 없도록···.

끓어오르는 이븐 가지의 분말을 눌러 담으며 최대한 숨기려 했다.

새삼 빅터는 깨달았다.

복수에 가장 무서운 적은 강대한 마녀나 사역마가 아니었단 것을.

정말로 두려운 건 행복.

잃어버렸던 뭔가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희망이었다.

그제야 빅터는 오래도록 망각하고 있었던 어떤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내일의 미래따위 아니야.

바로 부조리하게 빼앗은 어제였다.

“빅터 사부?”

이상을 눈치 챈 소년의 부름에, 빅터는 서둘러에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곤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와 일행에게 뭔가를 알렸다.

“···로이드, 슬슬 움직이지.”

이 계절에 해가 지는 것은 금방이야.

신수의 땅은 멀지 않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밤이 도래하고 말 것이다.

이 시점에서 덩치 큰 사냥꾼은 염원했다.

이번 여행길이 허사가 아니길.

소문의 예언자가 아주 사악한 존재였으면···.

부디 처단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잔혹무도한 마녀였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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